요새 이슈 중 하나가 '국민 중심의 의약품 판매'이다. 대통령이 서민들 편의를 배려하도록 강력히 지시했다는 소식도 전해졌고, 정책 추진에 소극적이던 보건복지부 장관이 혼쭐났다고도 한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제는 서민 프랜들리로 방향전환을 했나보다 여기기도 하고, 서민들을 그렇게나 생각하고 있었던가 고마워도 한다.
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더 들여다보자. 슈퍼와 마트에서 의약품을 팔도록 하자는 데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첫 째는 일반 의약품을 국민이 편리하게 구입해 복용할 수 있도록 하자. 둘 째는 경기회복이 수출대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고 내수경기는 영 더디니 내수시장을 강하게 자극하기 위해 필요하다.
전국의 약국은 2만1천개, 편의점·슈퍼·마트는 10만개가 넘는다. 결국 이 모든 곳에서 약을 팔면 약 소비가 늘어나고 치열한 선점경쟁으로 제약사들의 약 광고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슈퍼나 마트에서는 약사가 골라주는 것이 아니니 잘 알려진 약품들 위주로 팔린다.
약품 이름을 알리기 위해 광고비를 엄청 늘릴 수밖에 없다. 특히 유통망이 탄탄하게 확보돼있는 LG, CJ 등 대기업 계열 제약사들이 대대적인 방송 광고로 밀어붙이며 약품 시장을 재편할 거라는 예상이다.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은 바로 방송광고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혹시 이것이 약국 외 의약품 판매를 밀어붙이는 세 번째 이유는 아닌가. 그 문제를 파고들어가 보자.
◈ 종편채널을 위해 술 권하고 약 권하는 사회?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시급한 과제가 바로 방송 광고시장을 키우는 것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와 최대 경제일간지인 매일경제까지 합쳐 4곳의 대형 보수신문사에 종합편성이라는 방송채널을 허가해 줬다. 그러나 방송광고 시장은 종편 1~2 개 추가로 먹여 살리기도 빠듯한 형편인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현실이다.
설마 의약품 약국 판매가 무슨 방송체제 개편하고 얽혀 있나 싶을 수도 있으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0 방송통신위원회 업무계획'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방송광고 금지 품목을 축소하도록 추진하겠다."
방송광고 금지 품목은 담배, 흡연제품, 알코올 17도 이상의 술, 먹는 샘물, 전문의약품 등이다. 각 해당 부처별로 안을 마련해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기획재정부는 종합해 발표하는 형식인데 그 타이틀은 "내수 기반 확충방안"이다.
복지부는 올해 말까지 의료법을 고쳐 케이블방송부터 '병원·의원'광고를 허용하겠다고 나섰다. 환경부는 KBS, MBC, SBS 등 지상파 텔레비전에서 '먹는 샘물' 광고가 나가면 수돗물이 별로라는 얘기로 오해될 수 있다고 막아놓았던 '먹는 샘물' 광고를 이제는 허용하려는 중이다. 국내 '결혼중개업' 광고도 풀고, 밤 10시 이전에는 못하던 '알코올 17도 이하 주류 광고'는 벽을 넘어 밤낮으로 하는 쪽으로 추진된다.
문제는 전문의약품이다. 현재 의약품 시장은 전문의약품 시장이 11조원, 일반의약품이 2.5조원, 의약외품이 1조원 모두 14.5조원 규모로 전문의약품이 75% 이상 이다. 전문의약품이 방송광고 품목으로 들어와야 효과가 제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전문의약품 광고는 함부로 풀어주기엔 너무 위험하다. 오죽하면 친이계 국회의원 출신의 복지부 장관이 머뭇거리겠는가. 그러나 전문의약품은 방송광고 금지로 계속 묶어 놓되 재분류 작업을 해 전문의약품 중 일부를 일반의약품으로 끌어내리는 방법이 있다.
일반의약품으로 명찰을 바꿔 달고 슈퍼와 마트에서 팔게 한다면 대형 제약사들이 광고비를 쏟아 붓게 만드는 통로가 열린다. 그래서 의약품 재분류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의약품 약국 외 판매 정책에서 핵심은 의약품 재분류고 소화제, 감기약 같은 친서민 약품은 뒷전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실제로 어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복지부가 분류한 슈퍼판매 가능 품목 44개에 시민들이 자주 복용하는 진통제, 감기약, 소화관용 약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미국은 슈퍼에서도 감기약 쉽게 사먹는다는 이야기를 꺼낸 시점과 전문의약품까지도 방송광고를 허용해야 한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업무 추진, 정부의 내수시장 진작, 종합편성 채널이 조선.중앙.동아.매경으로 건너간 시점 등이 맞물려 있다. 이걸 모두 우연이라 볼 수 있을까. 내수시장 진작과 종편 채널을 위해 약 권하는 사회, 술 권하는 사회로 가자는 것이냐는 비판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온 배경이다.
또 하나 살펴 볼 것은 종편채널 사업자로 선정된 신문사들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요구한 특별 배려 사항에도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첫 째, KBS수신료를 인상하라, (그런 뒤 KBS 광고를 종편 쪽으로 밀어달라는 의미)
△둘 째, 지상파 채널과 근접한 채널을 달라(황금채널을 달라)
△셋 째, 의약품 광고를 늘려 달라
△넷 째, 종편사업자가 직접 광고영업을 하게 해 달라(막강한 언론의 힘을 이용해 광고 시장을 휘젓고 다닐 수 있게 해 달라)
△다섯 째, 방송발전기금 등 공적인 기여금을 면제해 달라(우리는 개인회사이고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방송 아니냐는 의미)
그동안 방송계에서 이슈가 되어 온 방송광고 금지품목 축소, 방송광고 판매제도 개선, KBS수신료 인상... 이 모든 것이 보수 대형신문사들의 종편채널이 뿌리를 잘 내리도록 하기 위해 방송광고 시장을 넓히고 열어놓는 작업들이라는 지적들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발언이다.
"종편이란 아기를 낳았는데 걸을 만 할 때까지는 각별하게 보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로벌 거대 미디어 기업을 만들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더니 신생아니까 잘 보살펴야 한다고?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갓난아기이긴 한데 먹어 치우는 양은 엄청나니 코끼리 새끼라고 봐야 한다. 더구나 자랄수록 엄청난 덩치와 힘으로 마구 먹어치우다 시장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 방송계의 4대강 사업이 종편채널?
말 그대로 방송계의 4대강 사업이 종편채널사업이다. 무조건 지지해야 하고 어쨌든 밀어줘야 하는 성역이 되어 버렸다.
학교 재정이 어려워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사립대학들이 조선·중앙·동아 종합편성 채널에 큰돈을 투자해 깜짝들 놀랐다. 미래에 수익을 낼 유망한 투자처라고 이유를 대지만 앞으로 몇 년간 적자에 허덕일 것을 누구나 아는데 무슨 헛소리. 더구나 재단이 부담해야 할 교직원 연금, 보험에 쓸 법정부담전입금도 제대로 안내고 결국 교비회계 즉 학생들 등록금에서 교직원 연금과 보험료 충당했다.
△수원대 - 조선일보 종편에 50억(법정부담전입금 낸 것은 1억4천만 원, 학생등록금에서 끌어간 돈은 14억 원)
△성신여대 - 동아일보 종편에 1억(법정부담전입금은 1백만 원 냈고, 학생등록금에서 끌어간 돈은 20억)
△고려대 - 동아일보 종편에 20억(학생등록금에서 끌어간 돈은 66억)
지난 5월 초 제일저축은행 사태가 터졌을 때 동아일보와 매경 등 대형 신문들은 저축은행을 믿으라고 주장했다. 오죽하면 편집부국장이 쓴 칼럼의 제목이 < 저축은행 구하기 > 였을까. 금융감독원 자료로는 제일저축은행은 동아일보 종편에 30억, 매경 종편에 10억을 투자했다. 솔로몬, 현대스위스 등의 저축은행도 역시 동아와 매경 종편에 투자를 했다. 물론 대형 제약회사들도 저마다 조중동매 종편에 투자를 해 놓고 있다.
정말 방송계의 4대강 사업이다.
과연 앞으로 이 종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얼마나 술을 마시고 약을 삼키고 시청료를 더 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4대강에 돈 쏟아 붓기가 어디까지 갈 지 모르는 것처럼.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