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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가량 접속을 하지 않던 친구로부터 귓말이 왔다.
"야, 나 요새 바빠서 못했는데 오늘 안하면 강등이야! 져도 되니까 랭겜 한큐만 돌려주라."
랭겜을 50판도 채 하지 않았지만 골드 5까지 올라간 실력자 녀석....은 아니고 꽤 오래 한 녀석이다. 아이디 삭제와 생성을 반복하여 이 아이디가 3번째 아이디다. 내가 처음 롤을 할 때 많이 알려줬던 스승님 격의 친구녀석이다.
금빛 심해라는 둥, 여기저기서도 불만이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어찌 됐건 브론즈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했다. 하물며 져도 된다니, 좋은 경험이 되겠지 생각하며 큐를 돌렸다.
2픽에 배정받아서 서포터를 가겠다고 했더니 4,5픽이 듀오라며 양보를 바랬다. 사실대로 "나 사실 브론즌데 친구아이디임ㅋ"이라고 말하면 욕을 먹을까 두려워 그러시라고 했다. 남은 자리가 탑이라, 쉔을 살리고 탑을 달라고 했지만 상대방에서 쉔을 밴 한 상황.
어쩔 수 없이 엘리스를 픽 했으나, 두려움이 앞섰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스킬 콤보나 논타게팅을 잘 맞추지 못해서 공격적인 녀석 보다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는 취향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주에게 '야 앨리스 13승 0패인데 앨리스는 안돼ㅐㅐㅐㅐ'라는 귓말이 왔지만, 이미 로딩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상대는 이렐. 초반부터 영혼까지 털렸다. 아군 리신이 탑에 와서 더블킬+쌍버프 덕에 앞으로 나갈 수 조차 없었다.
차이가 계속 벌어지고 '야 이렐상대로 w빠진다음에 싸워라'라는 귓말이 왔다. 관전할거면 지가 하지 미친놈
여튼, 리신은 연신 죄송하다고 조아리고, 미드와 봇은 날 응윈하고 있었다.
상대 정글 자크는 이렐이 자꾸 부르는지, 탑 지박령이 되어 '니가 조금만 틈을 보이면 다이브를 하겠어'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미니언 하나 먹으려다 결국 흑백tv관람을 자주 하게 되었다.
작골까지 먹으며 근근히 버텼지만 미니언은 100개가량 차이가 났다. 차라리 탑 타워를 빨리 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나, 라인 프리징을 기가 막히게 하고 있었다.
브론즈와 골드라는 실력차이와, 내가 가장 기피하는 라인이 탑솔이어서일까, 짜증난다기 보다는 대단해보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정글을 필두로 모든 라이너들이 내 멘탈의 안부를 물으며 힘내자고 한다.
다행히 미드라이너가 제법 흥한 상황. 결국 이렐은 다른 라인으로 로밍을 가기 시작했고, 나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3일 굶은 거지마냥 미니언을 우적우적 먹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상대 다섯명이 미드 타워 앞에 대기중인 상황. 결국 나도 내려 갈 수 밖에 없었다.
상대가 무리하게 다이브를 하여, 용도 가져가고 2차타워까지 밀었다.
'할수있다.'
나를 배려해주던 팀원들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정말 이 사람들에게 패배를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라기보단 역전해서 이긴다음에 "나 사실 브론즈임 헤헤"라고 상대방에게 더 큰 패배감을 안겨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독 고치는 허공을 갈랐고, 라인클리어를 하러 가면 지독하게도 와드 위치를 피해서 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나치게 만회하려 했고, 결국 무리함에 한번에 억제기까지 내줘버렸다.
결국 억제기와 바론을 뺏기고 라인관리만 하다 다시 한타 패배 후 넥서스가 밀려버렸다.
허탈하다.
이다지도 심각하게 차이가 날 줄이야.
통계화면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아마 날 욕하는 아군들의 글이 주를 이루리라.
하지만 조금 달랐다. 그 흔한 '이렐때문에 졌네'라는 적을 칭찬하는 듯 하지만 사실 날 욕하는 글 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엘리스님 멘탈 좋으시다' 라던지, '아쉽네요. 제가 좀 더 무리하지 말 걸' 이라고 하는 둥. 내가 겪던 일반적인 랭겜 분위기와는 달랐다.
오히려 적에서조차 나를 조롱하는 듯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상황까지 몰렸음에도 끝까지 하려 한 나를 칭찬해주고, 몇 번의 소규모 승리를 말하며 격려 섞인 메세지를 전했다.
살짝 눈물이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2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게임하다가 눈물이 나온다는 건 수치로 여겨져서 눈물을 삼킨다.
"사실 저 브론즈1 티어에요. 강등당한다고 랭 한게임만 해 달라고 해서 한겁니다. 정말 부족하다는 걸 알고 노력했는데 잘 안됐네요... 아군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라는 커밍아웃을 했다.
차라리 누군가 욕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를 향한 분노가 누군가에게 전이될 것이 아닌가. 가슴에 응어리진 이 감정들을 풀어줄 대상이 필요했다.
이에 적팀과 아군은 "그래도 상황 잘 보시던데~ 조금 노력하면 금방 올라오실거 같아요" "와.. 브론즈 답지 않은 멘탈 및 실력인데 ㄷㄷ 아깝지만 잘 하셨어요~" 라는 둥, 날 응원을 해 주기 시작했다.
결국 뜨거운 것이 참지 못하고 눈으로 흘러내렸다. 대기화면에 떠 있는 팀워크 +4 와 명예로운 적 +3 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언젠가는. 그 사람들에게 받은 관대함과 따듯함, 친절함을 나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자 오늘도 랭겜 큐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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