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을 싫어하진 않았던 입장으로 지금의 사태는 매우 아쉬울 뿐이다. 인간 이동형에 대한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그가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과거 우리가 그렇게 싫어했던 이들을 닮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불편함 중에서도 최근 이동형의 언동에서 느껴지는 최고의 문제점이라면 그가 스스로를 ‘기득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윤리적 판단 없이 말이다. 물론 서 있는 곳이 바뀌면 보이는 풍경도 변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 것처럼 엄혹한 시절에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할 자기반성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이동형을 재밌어 했던 사람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돌아보자.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이동형의 태생은 유사 언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그들(이동형과 그의 스탭들)의 지향점이 기존 언론이 수행하지 못했던 기능을 수행하고자 했기에 청취자들은 그들에게 관대한 평가를 내린 것이다. 지금 다시 그의 지난 팟캐스트를 들어보자. 넘치는 섹드립과 난무하는 쌍욕은 닥표간장 이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제 자신은 그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매우 천박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장 놀랐던 두 가지 워딩은 “극문”과 “400만 스피커”다. “극문”에 대해서는 개인의 판단이므로 넘어간다. 물론 기분은 나쁘지만.
하지만 “400만 스피커”는 결이 다르다. 본인이 어떤 방식으로 400만이라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오피니언 리더들을 맹목적으로 추구했던 과거의 대중이 아니다. 그들은 동원되지도 동원할 수도 없다. 다만 필요에 의해 그들이 공감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던 것뿐이다.
하지만 이동형은 이를 마치 자신이 관리하고 컨트롤 할 수 있는 소유의 대상으로 이야기한다. 이동형은 400만 스피커가 있다고 말하기 전에 그들이 자신과 아직도 뜻을 같이 하고 있는지를 물어봤어야 한다. 굳이 어려운 개념을 쓰지 않더라도 그들은 조직된 시민이지 조직할 수 있는 시민들이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동형은 이러한 것을 이미 잊은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준 역동적인 시민들의 힘을 이제는 그 자신이 부정한다. 여러 가지 잡음을 진압한다는 명복으로 자신이 가진 알량한 권력을 과시한다. 하지만 이동형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신도 과거 어떤 시점에서는 그러한 잡음 중 하나였음을.
닥표간장. 사실 동네 아저씨들이 낄낄대는 것 이상의 의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건 그들 스스로도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에 귀에서 피가 나는 것을 참아가며 듣는 것이다. 과거 지금과 같은 품위를 가지지 못했던 이 작가를 포옹했던 것과 같은 감성으로. 이 게시판에서 닥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재명을 싫어해서? 혹은 알바라서? 글쎄.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이라 응원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이제는 400만이 아니라 3999999만이다. 그대가 말하는 400만에서 나는 빼주라. 물론 이러게 말하면 본인 스타일대로 “필요 없으니까 꺼져!”라고 하겠지. 그럼 나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필요 없으니 이제는 입좀 그만 털라고.”
닥표간장몰에서 사본 거라곤 진트리겔 밖에 없다. 사실 치약에 민감한 사람도 아니고 뭐가 좋은지 모른다. 다만 본인처럼 치약에예민하지 않으신 분들은 기왕이면 진트리겔 써보시길 권해드린다. 더불어 코아옹의 인생 이모작의 성공적 시작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