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만둘 줄 알아야 한다
심리학자 리언 페스팅어는 흡연자들이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왜 계속 담배를 피우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는 네 가지 패턴을 찾아냈다. ① 행동을 바꾼다. 담배는 나쁘다. 그러니 끊는다. ② 생각을 바꾼다. 금연에 실패했다고 ‘의지박약한 놈’, 자신을 탓하려니 괴롭다. 덜 괴롭고 쉬운 방법이 있다. ‘건강보다 흡연의 즐거움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③ 나쁜 행동을 정당화한다. 하다 보니 좋다. 이 좋은 게 왜 나빠. “흡연은 스트레스 해소에 좋아”라며 정당화한다. ④ 믿음을 흔드는 정보는 무시·부정한다. “흡연이 나쁘다는 연구는 과장됐다”며 외면한다. 생각과 현실이 다를 때 현실을 부정하는 심리, 그 유명한 ‘인지 부조화’ 이론이다. 요즘 말로는 ‘정신 승리’쯤 될 것이다. 집권 1년을 맞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이 꼭 그렇다. 말 앞에 마차를 놓는 ‘소득 주도 성장’이 1년 내내 삐끄덕거렸지만 바꿀 생각이 없다. 되레 더 강하게 밀어붙일 태세다. 최저임금 1만원부터 보자. 애초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3조원의 혈세를 부잣집 신부의 정승댁 혼수마냥 주렁주렁 딸려 보낸 것도 그래서다. 막상 시행해 보니 충격이 컸다. 연초부터 일자리가 줄자 통계청은 “(한두 달 만에) 최저임금 영향으로 단언할 수 없다”고 했다. 3월엔 더 나빠졌다. 서비스 업종이 직격탄을 맞았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1.1% 성장했지만 도·소매와 음식·숙박업은 0.9% 쪼그라들었다. 취업자 수도 지난해보다 11만6000명 줄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6개월은 지나야 최저임금 영향을 분석할 수 있다”고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이쯤 되면 과속에 대한 반성이 나올 만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아예 한발 더 나갔다. 법무부가 나서 국가인권기본계획에 ‘최저임금 1만원’을 못 박았다. 인권 계획에 1만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를 적시한 것은 처음이다.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는 ‘인지 부조화 3단계’까지 간 것이다. 노동 정책은 또 어떤가. “정규직 과보호가 고용 부진 원인”(3월 15일 청년 일자리 대책)이라고 진단해 놓고 직무급제 도입은 꿀 먹은 벙어리다. 기획재정부는 “구조적 문제는 하루아침에 고칠 수 없다”며 아예 생각을 바꿨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고 장관들마다 말하지만 세금 풀어 공무원 늘리는 일은 계속한다.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다면서 규제 프리존 특별법은 반대다.
정신 승리의 끝판왕은 통상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마친 뒤 “미국에 ‘빛 좋은 개살구’만 주고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빛 좋은 개살구가 철강 70% 쿼터에 관세는 관세대로 맞는 것이었나. 쿼터제는 자유무역의 기본을 흔드는 일이라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금기시하는 일이다. 관세는 시간이 흐르면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극복 가능하지만 물량은 한번 정해지면 꼼짝 마라다. 캐나다·멕시코가 관세 폭탄을 불사하면서까지 쿼터제를 거부하는 이유다. 여기에 한술 더 떠 환율 주권까지 내줄 판이다. 그래 놓고 ‘빛 좋은 개살구’만 주고 왔다니, 그야말로 정신 승리의 최고봉이 아닐 수 없다.
경제는 정신 승리로 안 된다. 결과가 나와 있다. 1년을 맞은 문재인 정부 성적표 중 경제 분야가 가장 나쁘다. 10대 경제지표 중 지난해보다 좋아진 건 소매판매·소비자심리지수 2개뿐이다. 수출·수입 증가율, 제조업·서비스 생산 등 8개 지표는 일제히 나빠졌다. 상승·회복세를 타던 경기가 1년 만에 둔화·하강으로 뚜렷하게 방향을 튼 것이다. 틀린 걸 알았으면 그만둬야 한다. 경제에선 그걸 매몰비용이라고 한다. 더 가면 돌아올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