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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육군소속 직업군인이에요.
요새 한창 전쟁이다 뭐다 말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이리저리 시끄럽네요.
오늘도 아는 사람에게서 카톡이 왔어요.
"전쟁나면 너가 다 죽여줘."
그냥 잘지켜달라는 말일텐데 괜시리 말이 섬뜩했어요. 그말에 고등학교때 은사님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때는 고1때였어요.
담임선생님께서 늘 그러듯이 진학하고자하는 희망학교와 장래희망을 적어서 내라고 하셨어요.
별 고민할 것도 없었어요. 이미 군인이 되기로 그때부터 마음을 먹었기때문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는 "육군사관학교", 장래희망은 "군인"이라고 적어서 냈어요.
애들도 다 신기해했어요ㅎ. 정말이냐. 진심이냐. 등등등-
아무튼, 사건은 다음날이었어요. 종례시간이 끝나고 담임선생님께서 진지하게 나를 부르시고는 상담실에 데려가서 나를 앉히셨어요.
"XX야. 어제 내가 우리반 애들이 지망대랑 장래희망 써놓은걸 봤다? 근데 그중에 너꺼를 보게 됐는데
육군사관학교에 지망하고 군인이 되고싶다고 적었는데 맞아?"
선생님은 심각한 얼굴로 물어보셨고 나는 영문을 모른채로 대답했어요.
"네."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시고는 물어보셨어요.
"왜 군인이 하고싶은거야? 다른거 하고싶은건 없어? 보니까 공부도 못하는 편도 아니고, 책도 좋아하는 것 같던데."
"음, 군인외에는 생각해본 것이 없어요."
"혹시 박정희 장군이라고 알고있어?"
그당시에 나는 박정희란 사람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었기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그럼 박정희 장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대단한 사람이고 국가에 커다란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군인이 되고싶어요."
선생님의 표정이 더욱더 안좋아지셨어요. 저는 정말 이해가 안갔어요. 내가 예의없게 행동이라도 했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어떤 군인이 되고싶어?"
"박정희 장군같은 군인이 되고싶어요. 먼저 육사에 들어가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승승장구해서 별을 달고
권력을 쥐어서 국가에 보탬이 되는 군인이 되고싶어요."
선생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박정희 장군은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로인해서 죄없는 사람들이 많은 피를 흘린거 알아?"
"네, 알고있어요. 하지만 박정희 장군이 그 쿠데타로 인해서 권력을 얻었고 그 권력으로 우리나라를 발전시킬 토대를 마련했잖아요."
"그래서 너도 장군이 되어서 여차하면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손에 쥐겠다는거니?"
"음...네. 나라가 위태로우면 당연히 그래야해요. 저는 솔직히 우리나라가 좋지만 정말 많은게 올바르지 않은 길로 가고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그만큼 진급을 하고 권력이 생긴다면 쿠데타를 일으켜서라도 이 나라, 썩어빠진 것들 다 없애버릴거에요.
필요하다면 그것을 위해서 총칼을 들어야하고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나라에 친일파니 뭐니, 악덕기업체니 뭐니.
썩어빠진 것들 투성이잖아요."
선생님의 눈에선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은 제 손을 잡으셨어요.
"XX야. 그러지마.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 너는 한쪽면만을 보고 있는거야. 그래, 너 말도 맞아.
분명히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거는 맞아. 그 엄청난 권력과 추진력으로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밀어붙였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냈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흘린 피는? 그것도 적군의 피가 아닌 자국민의 피.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이 피를 흘렸어.
그리고 그는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대를 위해선 소를 희생해야 한다고. 그래, 그말도 맞지만 사람 목숨 가지고
그말을 갖다붙이는건 아니지. 경제발전을 위해선 몇사람 죽어도 된다? 그래서 경제발전만 되면 죽어도 된다?
아니야. 그건 정말 위험한 생각이야. 경제발전이 누구를 위한건데, 나라를 위한거라고? 그 나라는 누구때문에 있는건데..
국민. 국민이 있기때문에 나라가 있는거야. 그 국민들 보호해주려고 결성된게 나라야.
그 나라가 국민들 행복해지라고 경제발전을 해. 근데 그 경제발전을 하기위해서 국민을 죽여. 국민을 괴롭혀.
이런 모순적인게 어디있어. 그때 죽은게 다 서민들이었고 노동자들이었어. 그리고 그 보상이 다 부자들한테만 갔어.
부자들만 국민이고, 서민들은 국민이 아니야?
이런 모순적인 걸 당연하고, 그렇게 행한게 박정희란 사람이야.
박정희는 대통령이 아니야. 박정희는 군인이 아니야. 국민의 피를 흘리게 하는게 어떻게 대통령이고 군인이겠어.."
"..."
할말을 잃었어요.
"그런데 너는 지금 그와 똑같은 길을 가겠다는거야. XX야. 선생님은 정말...정말 걱정돼. 너가 정말 그럴까봐 걱정돼.
다른거, 다른거 생각해본적 없니? 선생님이랑 같이 찾아볼까?"
그때 그 심정은...그냥 뒤통수를 쾅하게 때려맞은 기분이었어요. 되게 멍한 기분이었어요. 지금까지 올곧게 믿어왔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 그래도 난 군인이 하고싶었어요.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선생님, 그래도 전 군인이 되고싶어요. 저는 권력이 좋은게 아니에요. 그것은 또 하나의 꿈일뿐이지
저는 군복을 입고 우리나라를 지키고 싶어요.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서 군인이 하고싶은게 아니에요. 그건 그럴 수도 있다는거뿐이에요.
국민들을 죽이기 위해서 군인이 하고싶은게 아니에요. 국민과 이 나라를 지키고 싶어서 군인이 하고싶은거에요."
그리고 선생님과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거의 세시간정도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아요.
그 대화들을 모두 다 담아내기에는 제 기억력이...하지만 저런 이야기들과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었어요.
그로인해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선생님, 죄송해요. 하지만 전 정말 군인이 하고싶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전 정말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서 군인이 되고싶은게 아니에요.
제가 그것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 권력은 필요없어요. 그런 군인은 이제 되고싶지 않아요.
저는 그냥 정말 단지 군복을 입고 나라를 지키고 그것을 위하는것을 하고싶었던 것 뿐이에요."
다행히도 선생님은 나를 이해해주셨고 더이상 눈물은 흘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 아직도 잊지못하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 너가 그렇다면 선생님은 안심할게. 그런데 선생님이 부탁할게 있어.
너는 피를 흘리게 하는 군인이 되지마렴. 피를 흘리는 군인이 되렴."
"네???"
"총칼을 남에게 들이밀어서 피를 흘리게 하는 군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우리 국민들을 위협하는 총칼을 대신 막아내주어서 보호해주는 그런 군인이 되렴.
절대 남의 피를 흘리게 하는 군인이 되지마렴. 남을 위해 피를 흘리는 군인이 되야해."
이말은 지금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살고 있어요.
그러면서 선생님은 나에게 "한강"이라는 소설을 정독하고 그거에 대한 독후감을 작성해오라는 특별한 숙제를 내주셨음.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무려 한강이 10권이나 되는 긴 소설이었음ㅋㅋ
보면서 많이도 울었음. 내가 얼마나 잘못되고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도 많이 느꼈어요.ㅜ
P.S - 8년이란 시간이 지나 어느새 직업군인이 되어서 못난 제자가 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렸을때
선생님은 장하다고, 꿈을 이룰줄 알았다고 정말 기뻐해주셨음.
나는 다시 한번 그때의 대화를 말씀드리며 "피를 흘리게 하는 군인이 아닌 피를 흘리는 군인"이 되겠다고 말씀드림.
선생님은 아직도 그 말 기억하는 줄 몰랐다고 감동하심:D
선생님은 정말로 그때 내가 나라의 역적이 될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반대하셨다고 함.
아무튼 군인에 대해서 반감이 굉장히 크셨던 선생님은 나와 대화이후로 군인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셨고
급 호감이 생기셨다고 함.
그리고 직업군인이셨던 남자를 만나 지금은 결혼까지 하시고 애까지 낳으셨다고 함.ㅋㅋㅋ
히히ㅋㅋ
나 아니었으면 지금 남편하고 결혼 안했을거라고ㅋㅋㅋ
남편분이 내게 고마워해야한다고 농담하심ㅋㅋ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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