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유시민씨와 이철희씨가 각기 다른 프로그램에서 정의한 '표현의 자유'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유시민 : "표현의 자유란것은 원래,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될때..."
상대 패널(홍관희 당시 자유선진당) :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생각하지않고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 보장하게 될 경우, 근본적인 질서 자체를 위협..."
유시민 : "사람들 위에 군림해서 우리들이 사람들의 가치관을 정해줘야한다고 생각치 마시고 사람들의 건강한 양식과 상식 그리고 판단력, 이걸 신뢰하고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 사람들은 그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철희 소장은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 직후, 큰 범주에서는 같은 주장을 하면서 단서를 두가지 달았습니다.
1. "무고한 생명이 다칠 수 있다" 는 전제가 있을 때.
2. 그리고 다른 어느 한쪽의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때.
(유럽에서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이슬람권만 제약 당하는 불공평한 사례를 들며)
그리고 문제의 짤.
어떤 상황인지 굳이 설명 안하겠습니다.
분명히 9월호 맥심 표지와 잡지 안에 있는 사진들은 일련에 벌어졌던 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 그리고 요즘 만연한 여혐 등과 맞물려서 일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유발할 소지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는 순간 성인잡지 수준의 표현과 유머로 인지했고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습니다만, 불편하다고 느끼신분들을 깊이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먼저 이것이 이철희 소장이 말한 "무고한 생명을 다칠 수 있게하는" 단서에 해당이 되는가 짚어보겠습니다.
해서 따져봐야할 논점은,
1. 본 표현물이 범죄를 미화하는것이며 심지어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봐야하는가.
2. 범죄적 표현과 실제 범죄의 인과관계.
(혹시 다르거나 덧붙일 견해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첫번째로, 어느 표현물이 범죄가 "저질러도 괜찮은것" 내지는 "정당한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멋있어보이는 것" 등의 어느 하나의 뉘앙스라도 풍긴다면 해당 표현물은 범죄를 미화한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것입니다.
위 짤은 우리가 영화를 통해 많이 봐온 배우 김병옥씨의 시네마틱한 모습, 그의 문화적 상징성과 간략한 필모그래피, 그리고 논란이 된 코멘트가 있습니다.
일단 표지는 김병옥씨의 다이제틱(diegetic 영화속에 존재하는 세계와 그 세계와 관련된)한 이미지를 빌어서 표현을 하고 있다는 전제를 먼저 하지요.
지금까지 김병옥씨의 출연작중에서 그의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묘사되거나, 저지르는 폭력이 정당성이 있어보이는 장면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시면 역시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오히려 그의 캐릭터들은 이유없이 악랄하고, 혐오스럽고, 심지어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찌질한 모습을 보이며 굳이 간략하자면 "타도의 대상" 내지는 "경계해야할 인물"로 상징된다고 하겠습니다. 거의 절대악이라 불러도 무방할만큼 단면적이었습니다.
"왜 하필 사진속 피해자가 여성이냐?"
까놓고 말해서 맥심은 여성의 신체적 매력으로 밥빌어먹는 잡지입니다.
맥심은 그냥 그런 잡지입니다.
뭐가 옳고 그르다를 따지는게 아니라... 맥심 표지에 왜 여자다리가 나오냐고 묻는것은 왜 뽀로로에 귀여운 캐릭터들이 나오냐고 묻는다는지, 왜 포르노에서 남녀성기가 결합하냐고 묻는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거같습니다.
포르노 얘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포르노그래피의 컨셉중에 근친상간, 납치, 강간, 집단강간 등 범죄를 실현시키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느 표현물의 존재 이유는 깡그리 무시하고, 단지 내용이 나쁘다는 이유로 근절해야한다면 사람들 야동부터 못보게 해야지요. 그게 가능하지 않은것처럼 영화에서 범죄나 폭력을 없엘수도 없고, 여러 매체들이 맥심같이 논란을 일으키고 도덕적 선을 넘나드는 일 역시 막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런일이 계속 있을겁니다.
"표지에 문구를 봐라. 저건 분명히 범죄의 심각성을 망각하고 여성을 비하한것이다."
그런 견해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만약 저걸 유머가 아닌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말이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김병옥씨가 잘생겼다거나 섹스심벌과는 거리가 멉니다. 너무 당연한걸 풀어 설명해 죄송합니다만, 저건 독자로 하여금 '매력있는 나쁜남자 이미지'와 '영화속 김병옥씨'의 괴리감을 느끼고 웃게만드려는 위트입니다. "그 나쁜남자가 그 나쁜남자가 아니지 깔깔깔깔깔"
저는 개인적으로 웃겼고 저런류의 유머를 즐기고 좋아합니다.
부족한 제 생각입니다만 싫으면 안보면 되지않습니까?
맥심 9월호 표지와 관련해서 서명운동하고 맥심 본사를 비롯해 여기저기 압력을 행사한 분들께 한번 묻고싶습니다.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매체, 그리고 그런 B급 문화를 즐길 일부 사람들의 자유를 방해해서 얻는게 뭔가요? 정말 외설이나 B급예술을 말살할 수 있다고 믿으세요?
그럼 이제 두번째로, 범죄와 관련된 표현물과 실제 범죄의 인과관계입니다.
"그래도 해당 표지는 김병옥씨의 마초적 매력을 어필하는것처럼 보인다. 모방범죄가 우려된다."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지요. 다만 '나쁜놈'이 '매력없이 철저하게 나쁜놈'인 구도는 세익스피어나 그리스 고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만큼 흔치 않습니다. 이미 오래된 영화계 대세는 아무리 악당이라도 최대한 복합적인 인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악당이 저지르는 악행을 미화하는것이 아니라 관객이 더 몰입하게 하기 위한 요소일 뿐입니다.
그러한 요소가 사람들의 가치관속에서 악행을 미화시키거나 유발하는 기능을 하는지, 아니면 악의 평범함을 이해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메세지를 던지는지 한번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쉽게말해서, 누군가 춘향전을 읽고 변사또를 부러워하거나, '그가 춘향이와의 섹스를 성공했더라면' 하면서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사람 가치관의 문제지 춘향전의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만약 저 표지에서 누군가가 김병옥씨가 멋지다고 느꼈다면 그건 '납치 살해'라는 행위에서 매력을 느낀것이 아니라, 김병옥씨의 배우로써의 카리스마나 연기능력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철희 소장이 "표현물로 말미암은 무고한 희생"을 언급한 경우도 표현물의 폭력을 모방하거나 동기부여를 받아 범죄를 일으킨게 아니라, 표현물의 가벼운 풍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격분한 과격주의자의 케이스였습니다.
또한 과격주의자들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프랑스 정부를 더 비중있게 비판했으며, 갈등과 이슬람권의 분노에 아랑곳하지않는 샤를리엡도의 태도도 문제삼는 등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것이 귀감이 되었습니다.
오원춘 사건 등 최근 몇년간 있었던 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들은 경찰의 무능과 치안의 부재 등, 더 직접적이고 중차대한 원인이 많은 복잡한 사안인데도 화살을 일개 B급 표현물로 돌리는것은 너무 안일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은 어디인지 각자가 판단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약자의 탈을 쓰고 B급예술을 밟는 일은 지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시절 그 심의위원회같은데서 일하는 학교 동기랑 술먹다가 대판 싸운적이 있는데, 제가 걔한테 그랬어요. '너 그런 영화에서 살인하고 강간하는거 보면 너도 막 살인하고 싶어지고 강간하고싶어지냐?' 그랬더니 걔 대답이 아니래요. 그래서 제가 '야이 새끼야 너는 그러면서 왜 맘대로 가위질하고 못보게해?' 그랬어요." -유시민 (정치까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