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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마(蓋馬)는 현(縣) 이름이고 현도군에 속한다. 그 산은 지금의 평양성(平壤城) 서쪽에 있다. 평양은 즉 왕험성(王險城)이다.'
그렇다면 후한서 동이 열전에 대한 신뢰성을 충분히 검증하고 확인하셨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런데 같은 후한서 동이열전에 다음과 같은 묘사도 나옵니다.
'한(韓)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진(弁辰)의 3 종(種)이 있다. 마한(馬韓)은 서쪽에 있는데 54개 국이 있다. 북쪽으로 낙랑, 남쪽으로 왜(倭)와 접한다. 진한(辰韓)은 동쪽에 있는데 12개 국이 있다. 북쪽으로 예맥(濊貊)과 접한다.
변진(弁辰)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또한 12개 국이 있고 남쪽으로 왜와 접한다. 모두 합해 74개 국인데 백제(伯濟)가 그 중 한 나라이다. 큰 나라는 만여 호(戶), 작은 나라는 수천 가(家)인데 각각 산과 바다 사이에 존재한다.
그 땅은 모두 합해서 사방 4천여 리이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막혀 있다. 모두 옛날의 진국(辰國)이다. 마한이 가장 크고 그 중에서 진왕을 함께 세워 목지국(目支國)에 도읍하여 삼한의 땅을 모두 다스린다. 여러 나라들의 왕은 원래 마한 혈통이다.'
네 중국에 서해가 있다고 합니다.
한과 옥저는 별개라 하실지 모르나 역시 후한서 동이열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濊)는 북쪽으로 고구려, 옥저, 남쪽으로 진한(辰韓)과 접한다. 동쪽으로 큰 바다에 막히고 서쪽으로 낙랑에 이른다. 예와 옥저, 구려는 모두 본래 조선의 땅이다.'
네 같은 조선의 땅이라고 합니다.
결국 현조님의 논거를 따르자면 중국에는 서해가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위 링크는 지명 유사 같은 반박을 하시려고..? 라는 글입니다.
이 글을 통해 고서를 통해 이해하는 지명의 본질적 관점의 새로운 시각을 통한 역사의 올바른 이해라는 주장을 확립하셨는데,
여기서 현조님의 주장과 논리를 따르자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게됩니다.
'조선왕 '만'은 연나라 사람이다. 연나라가 전성할 때로부터 일찌기 '진번','조선'을[사고는 전국시대에 연나라가 빼앗아 얻은 땅이다.] 침략해서 자기 나라에 붙여 관리를 두고 요새를 쌓았었다. [사고는 '장'은 스스로 가로막다이다. 음이 량으로 바뀌었다.] 그 뒤에 진나라가 연을 멸하자 요동 경계 밖을 소속시켰다.
한나라가 일어나자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니 다시 요동의 옛날 요새를 수축하여 패수에 이르러 경계를 삼아[사고는 패수는 낙랑현에 있다. 음이 보개로 바뀌었다.] 연에 속하게 했다.
연왕 '노관'이 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은 망명해 달아났다. 그는 무리 천여 명을 모아 가지고 머리에 상투를 틀고 오랑캐의 옷을 입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 밖 으로 나가 패수를 지나 진나라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살았다.
여기에서 그는 차츰 진번조선 오랑캐와 옛날 연나라, 제나라에서 망명한 자를 모아서 왕노릇하고[사고는 '연','제'나라 사람이 망명하여 거하는 땅이다. 이에 진번조선의 오랑캐는 모두 '만'에 속했다.] 왕검에[이기는 왕검은 땅의 이름이다.] 도읍을 정했다.'
이것은 전한서의 기록으로 왕검성은 요동 너머에 위치하여 있다고 합니다.
요동이란 요하의 동쪽을 의미하는 바 상기의 개마와 평양의 위치를 언급하심에 있어 중국에 위치해 있다는 평양 즉 왕검성을 언급하셨는데 이에 따르자면..
뭐 좋습니다, 그럼 비정하신 왕검성 즉 평양의 위치 서쪽에 요하가 흐릅니까?
요서와 요동이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리적 환경을 가진 강인즉 없을리가 없겠지요,
'한나라의 요동태수는 위만을 외신(外臣)으로 삼아 요새 밖의 만이를 다스리도록 하고 그 부족의 군장들이 천자를 보고자 하면 저지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군사와 재물을 동시에 얻게 되었고 그 위력으로 이웃에 있는 작은 고을을 쳐서 세력 확장을 꾀하니 진번과 임둔이 모두 복속했는데 그 영역이 수천리에 달했다. 위만 임금은 왕위를 그의 아들에게 넘겼고 그의 아들은 우거에게 계승케 하니 한나라에서 우거에게로 망명해 가는 자들이 더욱 많아졌다'
또한 위에 언급한 사기에 나오는 요동태수는 어디에 있는 자입니까?
대체 한나라는 어디있던겁니까? 현조님의 지리적인 비정을 통해 살펴볼때 한나라는 더 나아가 중원은 도저히 있을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한소제 원봉 2년, 한나라 사신 섭하가 조서를 (고조선에) 들고 우거 임금에게 그렇게 하지 말도록 타일렀으나 그는 끝내 황제의 조서를 받지 않았다. 섭하는 돌아오는 길에 (한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인 패수에서 마부를 시켜 자신을 배웅하는 조선의 비왕(裨王) 장(長)을 죽이고 강을 건너 요새로 돌아와서 천자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했다. 천자는 더 이상 죄를 붇지 않고 섭하를 요동동부도위로 삼았다. 조선의 병사들이 섭하를 습격해 죽였다.'
역시 사기에 언급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요하의 동쪽에 있는 패수는 어디에 있는 강입니까?
위치하신 비정에 따르자면 요하를 가기전에 패수가 있을텐데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나라 더 나아가 중원의 위치는 나올수가 없는데 말이지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사료 위략에 이르기를 고조선 서방을 침공하여 수천리의 영토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는바, 우리의 역사는 중국에서 이어지다 근세 조선에 들어와 뒤바뀌었다는 아무튼 그렇다는 현조님의 주장을 따르자면 아무리 따저봐도 삼국시대나 춘추전국시대등 중국의 역사 자체가 도저히 성립이 안되는데 우리가 아는 중국은 어디에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금은 보류로 간 글을 통해 사료를 읽지도 않고 던지는 우문이라 고압적 자세를 취하셨는데, 과연 그런 자세를 취하실 정도의 견고한 주장과 논리 인지 의문이 들어 글을 몇자 남겨보았습니다.
분명 저는 현조님이나 풍림화산2님이 말씀하시는 강단사학과는 참 거리가 있는 소소하게 탐구하는 평범한 일반인입니다,
그러나 현조님이 그러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리를 베푸는 듯이 이야기 하심에 있어 과연 그것이 옳은가 하면 아니라고밖에 할수있지요, 다른 사료들을 통해 위치 비정을 다시금 언급하신다 할지라도 같은 사료에서 조차 중국에 서해가 있다고 하는 마당에 없다고 하실수 있을리가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잣대를 바꾸고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외면하고 취사선택하시는 등의 이른바 조작을 하시지 않는 이상 서해가 없다는 현조님의 말은 자가당착적 논리일텐데 무엇을 보시고 고압적으로 찍어 누르시듯 말씀하시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장 고고학적 부분을 제하고 현조님의 사료만을 탐구하시는 방법을 따라가도 일반인인 제게도 이 처럼 구멍이 성성한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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