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순항전차 Mk.8 크롬웰, 살아서는 기병으로, 죽어서는 전차로. 여덣번째 순항전차, 크롬웰을 향하여. 1940년부터 너필드 사는 기존의 주력 순항전차인 크루세이더가 화력에서나 방어력에서나 충분치 않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크루세이더의 뒤를 이을 새로운 순항전차 개발 프로젝트인 'A24 크롬웰'에 착수합니다. 크
롬웰이라는 이름은, 철기병으로 유명했고 과거 영국에서 유일한 공화정의 국가원수였던 군인 출신 정치가 올리버 크롬웰에서 따 온 것이었습니다.
목표는 6파운드 전차포와 좀더 대형의 포탑링, 48km의 최대시속과 75mm의 전면장갑. 기존 크루세이더에서 이미 대박을 친 크리스티식 현가장치와 당시 영국의 전차포 중에선 가장 우수했던 6파운드 전차포, 그리고 스핏파이어와 훗날의 P-51 머스탱을 최고의 전투기로 끌어올려낸 롤스로이스 사의 걸작엔진, 멀린 엔진의 전차 탑재용으로 '개발 예정'인 미티어 엔진. 이 셋의 조합은 영국이 생각하던 우수한 순항전차의 필수요소로 빛을 발할 것이었습니다.
빠른 개발을 위해 너필드 사가 동분서주한 결과 1941년 초에 A24 '크롬웰'의 개발이 완료되어 그 모습을 선보입니다.
하지만, A24의 성능은 영국 전차위원회가 생각한 것만큼 성능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영 시원찮은 전차였습니다. 최대장갑은 76mm, 주포는 6파운드로 적절했지만, 기동력 쪽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A24 크롬웰의 최대속력은 영국 순항전차로선(실패작 Mk.2는 논외입니다.) 최저인 시속 39km에 불과했고, 고장도 빈번한 수준이었는데, 이런 실패작이 나온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원래 엔진으로 장비하려 했던 미티어 엔진은 당시 영국 본토 항공전을 겪는 상황에서 머린 엔진을 찍는 것도 바빴던 롤스로이스 사내 사정과 솔직히 사제 엔진을 더 오래 쓰고팠던 너필드 사의 욕심 때문에 개발이 늦어져 출력이 딸리는 크루세이더의 너필드 리버티 엔진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너필드 사 또한 구형 엔진을 그대로 쓰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에 410마력으로 출력을 늘리긴 했다만, 전차의 중량도 기존의 크루세이더보다 7톤은 더 늘었기 때문에 속력도 제자리걸음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다 너무 급히 개발한 탓인지 생산된 차체 여기저기서 기계적 결함과 문제가 발생해, 제식 순항전차로 쓰기엔 상당히 뒤떨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뒤늦게 미티어 엔진이 개발되어 이를 A24에 장착해 보았지만, 리버티 엔진도 잘 안 맞던 A24가 미티어 엔진에 어울릴 리가 없었습니다.
A24, 순항전차 Mk.7 캐벌리어. 카베난터처럼 완전 '썩어버린' 망작은 아니었다만, 차기 순항전차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카베난터와는 달리 이렇게 구난전차나 포병지휘차량으로나마 전장에 나서게 됩니다. 때문에 A24 크롬웰은 이어서 등장한 A27 시리즈에게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1941년 6월부터 A27의 개발이 완료될때까지의 임시 제식 순항전차로 선정되어 순항전차 Mk.7 크롬웰로 1943년까지 500량 가량 생산되지만, 크루세이더가 잘 뛰고 있는 마당에 실패한 A24가 전장에 나설 일도 없었기 때문에 포병 지휘전차와 전차회수차량 사양의 파생형을 빼면 전부 훈련용으로 본토에서 썩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그나마 A27M이 크롬웰 순항전차로 확정된 후로는 이름까지 빼앗겨 캐벌리어(철기병)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제 너필드 사가 말아먹은 크롬웰 계획은 새로운 경쟁자인 레일랜드 사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1941년 11월부터 시작된 A24의 개량판, A27 크롬웰의 개발은 주로 A24의 변속기와 서스펜션, 그리고 엔진 탑재 구획에 집중되었고, 그 결과 A27에 와서는 구동 문제와 신뢰성이 상당히 향상되며 동시에 미티어 엔진을 장착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엔진 호환성도 안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롤스로이스 사는 미티어 엔진을 많이 찍어낼 여력이 없다고 징징거렸고, 아직 미티어 엔진에 신뢰가 가지 않았던 레일렌드 사도 최소한 중박은 잡자는 생각에 리버티 엔진을 한번 더 믿어보기로 합니다.
이리하여 1942년 6월부터 미티어 엔진의 생산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때까지의 출력을 약간 줄인 395마력짜리 리버티 엔진 장비형인 A27L이 생산됩니다. 처음에는 크롬웰로 칭했지만, 이후 A27M이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센토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부르게 됩니다.
A27L 센토어, A27M 크롬웰과의 차이점은 엔진뿐입니다. 식별포인트는 차체에 전방 기관총이 없다는점으로 그 외에는 크롬웰 초기형과 동일했습니다. 센토어의 성능은 미티어 엔진 장착형인 A27M과 속력을 빼면 동일했고, 캐벌리어에서 생긴 문제점을 대부분 해결했기 때문에 주력전차로 쓰기에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센토어나 크롬웰이나 첫 실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고, 그 무렵에는 크롬웰의 생산도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중이어서 캐벌리어처럼 센토어도 상당수는 훈련용으로 돌려지고, 대공전차나 95mm 유탄포를 장비한 화력지원형 같은 파생형 전차나, 엔진을 교체해 크롬웰로서 전장에 참여하게 됩니다.
센토어 CS(Close Support). 95mm 유탄포로 무장했고, 80량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되어 해변 돌파 역할을 맡았습니다. 포탑 주위의 눈금은 실제로 눈금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에 센토어 CS는 상륙용 주정에 실린채로 해안의 독일군 진지에 발포하며 상륙했는데, 이때, 상륙용 주정의 승무원이 포탑에 그려진 눈금을 보며 전차병에게 목표를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크롬웰 MK .3, 센토어 전차를 미티어 엔진으로 교체한 모델입니다. 쌍발 폴스텐 고사기관포로 무장한 센토어 AA Mk.2. 크루세이더 AA와 비슷한 용도로 쓰였을 거라 추정합니다. 1943년 1월부터 드디어 진정한 크롬웰이 완성을 보았습니다. 미티어 엔진이 본격적으로 양산되면서 그것을 장비한 A27M 크롬웰은 기존 캐벌리어와 센토어의 향상된 전투력에 최대시속 64km라는 날개까지 달게 되면서 2차 세계대전
각국의 주력전차중 가장 빠른 전차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그 빠르다는 판터와 T-34도 각각 46km, 53km 수준 정도입니다.)
크롬웰 MK .1, 이제서야 영국이 원하던 6파운드 전차포와 크리스티 현가장치, 미티어 엔진의 조합이 완성되었습니다. 벅스홀에서도 처칠 생산을 접고 크롬웰을 생산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벅스홀측은 처칠 MK VII의 포탑을 사용한 시제 모델을 내놓았지만, 크롬웰 차체와 처칠 포탑은 잘 맞지 않기도 했고, 벅스홀은 처칠의 생산을 계속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져서 벅스홀 모델은 불발로 그쳤습니다. 크롬웰 MK 2, 또다른 변형 포탑과 장갑이 강화된 차체를 시험 한 모델로서 포탑은 채용 되지 않지만, 차체는 후에 장갑 강화모델의 기초가 됩니다 크롬웰의 완성과 실전 크롬웰의 전반적인 성능은 M4 셔먼과 유사한 정도로, 미티어 엔진 덕에 상당히 앞서는 속력과 생산의 편의를 위해 수직장갑을 채용해 방어력에서 조금 뒤지는 것을 빼면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945년까지의 총 생산량 3000량 가량으로는 영국군 내에서 주력전차로 사용하기에는 수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크롬웰 전차연대로 완편된 사단은 왕립 제 7기갑사단뿐이었습니다. 그래서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데뷔전을 치른 크롬웰은 셔먼과 혼성 편성되거나, 그 속력을 살려서 영국 기갑사단의 정찰연대에서 활약하게 됩니다.(이러한 정찰 역할 때문에 영국 전차병들 중 상당수가 크롬웰을 싫어했습니다.)
또한 애초에 6파운드 전차포용으로 설계된 크롬웰이었지만, 당시 왕립 육군 내에 불던 75mm 전차포 바람을 타고 크롬웰도 이내 Mk.4부터 75mm 전차포를 장비하게 됩니다.(본격적으로 보급되는 것은 1944년 10월) 하지만 75mm 전차포의 철갑탄 위력 부족과 순항전차인 크롬웰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당시 영국군이 유탄의 위력과 보급 체계만을 지나치게 고려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크롬웰도 Mk.4부터는 75mm 전차포 라인으로 갈아타게 되며 그 장단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독일의 힛총독이 거포 쨔응 하앜하앜 이었다면, 영국 지휘부는 유탄 쨔응 하앜하앜.스러웠습니다 후반 연합군 전차를 다룰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티거. 그건 크롬웰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크롬웰의 데뷔무대인 노르망디에서부터 연합군 앞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티거와 판터는 여태까지의 연합군의 주류인 75mm 전차포가 먹혀들지 않았고, 셔먼에게도 그리했듯이 크롬웰에게도 무서운 천적이었습니다.
물론 빠른 속력을 살려 측면으로 우회하거나 후퇴할 가능성이 좀더 높기는 했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기에 크롬웰에게도 뭔가 대책이 필요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크롬웰은 여러 업그레이드로 생존성을 늘리지만, 주포는 종전까지 75mm 전차포를 유지합니다.
또한 처칠처럼 크롬웰도 한국전쟁에서 영국군의 순항전차로 투입되어 사용되었으며, 이 중 일부가
북한군에게 노획되어 사용되기도 했답니다.
이래저래 사연이 많은 크롬웰. 한국전쟁 당시 크롬웰 전차 1량이 1.4 후퇴시 북한군에게 노획되었다가 다시 대한민국 해병대에게 노획당한 기구한 사연도 있었다고 합니다.(위 사진은 관련이 없습니다.) 여기서 다시 개조를 보면, 일단 방어력을 늘리기 위해 사실상의 최후기형인 크롬웰 Mk. VII에 와서는 전면장갑을 101mm까지 늘리고 이왕이면 엔진 수명도 늘리기 위해 서스펜션을 조정해 속력을 52km로 줄이게 됩니다.
주포 쪽에서 보면 사실 크롬웰 원형으로는 힘들었지만, 서부전선에 접어들며 옆동네 미군들도 76mm 개조하랴 울버린 투입하랴 공군 포병 부르랴 이리저리 바빴던 데에 비해 영국군에겐 여유가 있었습니다.
영국군은 이전부터 이미 17파운드 대전차포 자체와 그것을 자주화한 아처와 아킬레스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독일의 중전차들을 잡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7파운드 대전차포를 장비한 전차 또한 필요했기 때문에 영국군은 1942년 중순부터 1943년 초에 걸쳐 셔먼과 처칠, 크롬웰을 각각 17파운드 전차포 탑재형 전차로 개조하는 계획을 진행중에 있었습니다.
실패한 17파운드 순항전차, A30 챌린저 17파운드 대전차포가 아직 개발 중이던 1942년 5월부터 이미 BCW(Birmingham Carriage & Wagon) 사가 주도하는 17파운드 형 크롬웰 개발도 진행중이었습니다.
17파운드 대전차포 자체는 크롬웰의 원래 차체만으로 견뎌내기에는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양쪽에 로드휠을 하나씩 늘리고 포탑링도 불려서 17파운드의 위력을 이겨낼수 있도록 개조하게 되고, 탄약고를 늘리기 위해 차재기관총을 제거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개조들은 그럭저럭 잘 진행되었지만 정작 문제는 포탑에서 발생했습니다.
노인네들이 육군에 들이댄 TOG(The Old Gang: 노친네들) 1차대전의 대형 참호 돌파 전차(유명한 MK 시리즈)의 개념을 그대로 담은 시대 착오적인 물건 이었습니다. 아무튼 신세대 전차에 맞서서 영감님들이 열심히도 들이 댔다니, 오죽했으면 영국육군이 탱크 이름을 노친네들 이라 했을까요 1차대전의 전차에서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TOG(사진은 TOG2 17파운드 전차포형) 그나마 처칠이 등장하며 왕립 육군과 전차위원회에게 찬밥만 먹고 맙니다. 1942년 8월 완성된 A30의 시제차량에는 당시 1차 세계대전용 전차 개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원로들에 의해 진행되던 실패작, TOG2의 17파운드 전차포 포탑이 탑재되어 있었고, 이는 그다지 크롬웰 시절에서 달라진 것도 없는 A30의 구동장치에 크게 무리를 주게 되었던 겁니다.
생각없는 짓을 많이 벌이는 영국 전차위원회였지만 쓸데없이 큰 대형포탑이 문제를 일으킬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포탑 장갑을 줄이는 등 중량 감소를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신뢰성 부분에서 나빴고, 지나치게 전고가 높아져 적 전차나 대전차포의 맛좋은 표적이 되기에 딱 좋았습니다.
끝내주는 조망권은, 전차에게는 필요없죠 실패작 A30 챌린저. 中전차에 重전차급의 포탑을 얹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구동장치 부분의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덕택에, 속력이 51km로 떨어진 것은 어찌 봐준다 치지만, 신뢰성과 조종성까지 엉망이 되었습니다. 긴 포신 때문에 함선, 열차로 수송하거나 행군시에는 포탑을 뒤로 돌렸다고 합니다. 마치 현대의 전차들 같이 말이죠, 그리고 일단은 포탑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이 같았기 때문에 크롬웰과 함께 운용 되었습니다 일단 1943년 1월에 중량을 줄인 A30의 최종 시제차량이 개발된 시점에서는 티거와 4호전차 장포신형에 대항할 만한 전차가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A30은 일단 챌린저(도전자)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달며 200량이 생산됩니다.
애초에 영국군은 이 200량분의 챌린저와 뒤이어 개발할 파이어플라이, 블랙 프린스를 각각 크롬웰, 셔먼, 처칠 보유 부대에 기존차량 3 : 17파운드 차량 1 비율로 지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의외의 상황이 터집니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개발했던 셔먼 파이어플라이가 대박을 터트린 겁니다.
챌린저 X까! 난 파이어플라이 탄다고! ...어째 영국제 전차보다 17파운드 대전차포를 더 잘 받아들인 것은 셔먼 파이어플라이나 M10 아킬레스 등의 미국제 전차들이었습니다. 졸지에 존재의의를 상실한 챌린저를 개량하기 위해 어벤져 대전차자주포로 개량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는 1946년이 되어서야 성공합니다.
200량의 챌린저야 이미 만든 전차인데다 17파운드 탑재형이니 안 쓸 수는 없었고, 결국 기존 17파운드 전차포 탑재 전차 배분이 모조리 파이어플라이에게 돌아간 상황에서 챌린저는 전 차량이 크롬웰과 함께 기갑 정찰연대로 돌려지며 씁쓸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
아킬레스에 치이고, 코메트에 밀려 결국 2차대전에는 참전하지 못한 A30어밴저 대전차 자주포 순항전차 Mk.8 크롬웰의 개량형과 파생형 크롬웰의 실질적인 개량형은 앞서 언급한 6파운드 장비형인 Mk.1과 75mm 전차포를 장비하였으며 용접차체를 사용하기 시작한 Mk.5, 그리고 장갑을 늘이고 속력을 줄인 Mk.7이 있습니다. Mk.2는 채용되지 않았고, 그 외는 단순한 센토어의 미티어 엔진 탑재형이거나 95mm 유탄포를 장비한 근접지원형들입니다.
크롬웰도 족보가 꽤 복잡한지라 위키에서 계보도를 빌려왔습니다 크롬웰의 사실상의 최종형인 Mk.7. 속력은 줄었지만 장갑이 101mm로 늘어났습니다. 차체 기관총이 제거되었습니다. 파생형을 보면, 이 당시 공병전차는 처칠 계열과 센토어 계열 차량이 꽉 잡았기 때문에 의외로 적은 편입니다. 주된 파생형은 전차회수차량인 크롬웰 ARV와 포를 제거하고 통신장비와 목제 훼이크 포로 무장(?)한 지휘전차인 크롬웰 지휘전차, 그리고 전후에 영국 전차들이 코메트와 센튜리온으로 통일 되었고,이에 대량의 크롬웰이 남아 돌게 되자 일부 크롬웰을 상대로 센튜리온 MK3부터 장비된 20파운드포(83.9mm)를 탑재시킨 포탑식 대전차 자주포 FV4101 채리어티어입니다.
전차회수차량 크롬웰 ARV. 엔진을 빼면 센토어의 동파생차량과 동일합니다. 대규모 기갑 세력을 보유한 소련 육군에 대항할 화력을 갖는것을 우선시 해서 개발 된 채리어티어 크롬웰은 개발될 당시 영국 전차기술의 종합적인 강화판으로 기대받았으며, 실제로 셔먼과 함께 영국의 주력 순항전차로서 잘 사용되며 성능도 비슷했고, 속력은 오히려 빨랐습니다.
하지만 수직장갑이나 보다 강력한 주포의 미탑재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영국의 전차는 모자란 점이 많았고, 이런 아쉬운 점은 영국 최후의 순항전차이자 최초의 MBT인 센츄리온에 와서야 해결됩니다.
순항전차 Mk.8 크롬웰 스펙(Mk.7) 중량: 28000kg
승무원: 5명
엔진: Rolls-Royce Meteor / 12실린더 / 600마력
속도: 52km/h
항속 거리: 도로: 278km
연료 용량: 139 gallon
전장: 6.35m
전폭: 2.91m
전고: 2.83m
무장: 75mm Mk.V L/36.5 전차포 & 1 x MG (1 x 7.92 mm Besa MG - 동축)
탄약: 75mm - 64발 7.92mm - 4,950발
장갑: 8-101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