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가 지나부렀으니 어제가 되었네여
평소와 똑같이 저녁 먹는데 남편이 그럽니다
남편 : 오늘 무슨 날인 줄 알아?
나 : 9월 14일.
남편 : ...????
나 : 아! 아니다 9월 21일! (혼자 깔깔깔 넘어가며) 아 요새 아기랑 집에만 있으니까 저번주를 이번주로 착각했어~
남편 : 어...아니 내가 오늘 무슨 날인줄 아냐고 물었는데 9월 21일이라고 날짜를 대답한거야 지금?
나 : 응. 왜 무슨 날인데?
남편 : 하...어떻게 오늘이 무슨날인지 모를수가 있냐...하...
나 : (평소에 남편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이런 시답잖은 액션 잘해서 받아주기 귀찮음...완전 시큰둥하게) 몰라~어제도 몰랐고 오늘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거야~
남편 : (액션이 안통함을 깨닫고 빠르게 태세전환) 오늘 2주년이잖아, 2주년~!
순간, 섬광처럼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슴다. 9월 21일...!!!!
얼른 핸드폰을 켜서 디데이 어플을 들어가보니
남편하고 처음 연애시작했던 날(ㅋㅋ)로부터 "2주년"이 떡하니 쓰여있더라구요
결혼한 후 결혼기념일 디데이만 위젯으로 띄워놔서 까맣게 몰랐다능...
나 : 헉 여보!!!! 우리 처음 사귄날로부터 벌써 2주년이야!!!!
남편 : 그걸 여태 몰랐단 말이야~? 으이그~
나 : 꽃다발은?
남편 : 응?(당황)
나 : 2주년인걸 알고도 꽃다발을 안사왔단 말이야?!
남편 : (동공지진)
나 :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내가 2주년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데!!(상황극 시작)
남편 : (침착하게 이어받음) 하...미안하다...꽃다발도 안사오고... 내가 죽일 놈이지...
나 :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오열하며 그릇모아 설거지 하러가면서 짧은 상황극 종료)
그리고...
저는 설거지하고 남편은 아기보면서 그렇게 2주년 기념 저녁식사(?)도 함께 종료되었습니다.ㅋㅋ
사실 저는 기념일에 대한 로망은 있는데
정말 로망만 있어서 매번 못챙기고 지나갑니다...
(디데이위젯 띄워놔도 매번 까먹음 "헐 오빠 우리 어제 300일이었어!! 추카추카" 보통이런식으로 넘어감)
그마저도결혼한 후엔 연애디데이는 이제 필요없지~ 싶어서 위젯도 안띄워놨는데
그걸 기억하고 말이라도 해준 신랑이 기특하다가도
아니 그럼 기억했으면 꽃이라도 좀 사오지 로맨스가 없잖아-.- 하고 설거지하면서 혼자 투덜댐;
연애 2주년. 결혼 10개월차. 근데 아기는 4개월ㅋㅋ
저희 남편은 제 기준으로 볼 땐, 로맨스가 좀 부족해요-.-
그러고보니 결혼 전, 프로포즈로 서운했던 글을 썼다가
뜬금없이 베오베를 가버리고 불펌 당해 네이트판까지 진출해버린ㅋㅋ 사건이 있었지요ㅠ
(부끄럽지만 링크 첨부를...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76612) 요약하자면 내가 바라는 프로포즈는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꽃+케이크+반지였는데
남편은 알았다고 해놓고는 어느날 뜬금없이 집 거실 쌩형광등 아래에서 쌩얼에 추리닝 차림인 저에게 본인 친구와의 우정 금목걸이를 내밀며...프로포즈를 한 사건입니당.
당시 본의아니게 프로포즈 콜로세움ㄷㄷ이 열린 걸 보고 무서워서 댓글도 못달았는데
네이트판 댓글은 훨씬 쎄더군요ㅜ.ㅜ 아직도 간간히 생각나는 베플내용이
'겨우 저정도 소원도 못들어주는 남자랑 결혼하면 앞으로도 절대 대접 못받고 산다' 뭐 이런 거였어요
하...그래서 제가 실제로 같이 살아보니까요. 제 남편 어떤줄 아세요?
퇴근 길에 서프라이즈 꽃 한번 사오는 적이 없어요.
꽃은 커녕, 제가 좋아하는 간식 거리 한번을 짠~! 하고 사와본 적이 없네요.
그런데,
단 한번도 "지금 퇴근함, 몇시 도착 예정" 연락을 안 준 적이 없구요
퇴근 후 약속은 최소 하루 전 알려줍니다. 당일 급약속 급회식 일절 없음
간식이나 군것질거리는 절대 본인 스스로 사올 생각은 못하지만 마누라가 요청하면 반드시 사옴
서프라이즈 로맨스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지만
너무나도 예측가능한 평온한 일상을 저에게 선물해주는 남자
가 제 남편입니다.ㅋㅋ
저는 위의 프로포즈 사건에서도 보시다시피...
그냥 살면서 한번쯤 남들한테 자랑할만한 프로포즈도 좀 받아보고 싶고
아무것도 아닌 날이지만 남편한테 깜짝 꽃선물도 좀 받아보고 싶은
누군가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일수도 있는ㅠ 그냥 소심하고 평범한 여자이구요.
하지만 남편과 결혼하고, 겨우 몇개월의 신혼을 지나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어느날 문득 내 마음과 정신이 매우 안정적이라는 걸 느꼈어요
항상 어딘가 불안하고 결핍되어 무언가에 목말라 있던 저였거든요
아마도 남편이 선물해준 예측가능한 일상의 영향이 매우 큰 것 같아요
언제 어디서든 항상 내곁에 당연하게 같은 모습으로 있어줄거라는 믿음?
음...이걸 표현을 잘 못하겠네요.ㅋㅋ 아무튼,
물론 저희 남편이 서프라이즈 로맨스도 할줄 알면 정말 좋겠지만(아직도 미련을ㅠ그런건 우리 남편에게 있을수가 엄쒀)
남편에게는 남편만의 저를 사랑하는 방식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서, 저는 저희 남편이 참 좋습니다.
아...이거 마무리를 어떻게 하지?
생각난 김에 남편 일화를 하나 더
생일선물도 서프라이즈 따윈 없다
이신발어때? 소가죽이야 하면서 링크 보내줌
여보 나 신발은 됐고 걍 쿠폰을 발급해줘ㅋㅋ 무엇이든 부탁할수 있는 쿠폰, 무엇이든 살수 있는 쿠폰~ 이런거
(내 의도 : 설거지 쿠폰, 청소 쿠폰, 여행 쿠폰 같은거... 5만원 한도 내에서 마음껏 택배를 지르세요~ 쿠폰 뭐 이런거ㅠ)
남편은 쿠폰? 알았어~ 하고는
롯데상품권을 사다줌
...
그래도 눈치껏 생일에는 꽃다발을 사왔다고 합니다.
근데 처녀적엔 꽃다발이 마냥 좋았는데 결혼하니...
꽃다발 말려서 장식해놔도 나중엔 어차피 다 버릴 생각에 별로네요ㅠ 이렇게 아줌~뫄가 되어갑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