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 앞 구두 수선집에는 '프린스'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살았다. 수선집 아저씨께서 어느날 아침 출근길에 어미를 잃은 아기 고양이를 보시고 차마 그냥 둘 수없어 데려왔다가 정이 들어 그대로 함께 살게 된 아이였다. 아저씨는 프린스가 좁은 가게 안에서만 지내는 것이 가여워서 평소에는 근처 화단에서 놀게하고 저녁에는 가게 안에서 재웠다. 주말이라 가게 문을 열지 않는 날에는 집에 데려가 깨끗이 목욕시키고, 월요일이면 다시 데리고 출근했다.
프린스는 프린스대로 아저씨를 아빠로 생각했는지 한참 놀고 있다가도 아저씨가 부르기만 하면 부리나케 달려오곤했다. 아저씨는 리본 모양의 머리끈을 녀석의 목에 넥타이처럼 메어주었다. 유난히 애교가 많던 프린스는 이내 손님들 사이에서도 귀염 받았다. 나 역시 프린스를 보기 위해 일부러 아저씨의 가게 쪽으로 먼길을 돌아가곤 했다.
프린스는 무럭무럭 자랐고, 어늘 날은 여자 친구까지 데리고 와 아저씨에게 인사를 시키고 자신의 밥을 나눠주었다.
그런 둘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오래오래 둘이 행복하길 빌었다.
하지만 둘의 행복은 계속 되지 않았다
. 어느날 갑자기 프린스가 사라져 버린것이다.
아저씨와 프린스를 아는 사람들이 합심해 찾아보았지만 프린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아저씨는 그제야 며칠 전 찾아왔던 한 여자를 떠올렸다. 그여자분은 어떻게 큰 길가에 고양이를 풀어놓고 키우냐며, 계속 프린스를 위험하게 방치하면 프린스를 데려가겠다고 했단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걸 보면 정말 데려간 것 같다고 말씁하시면서 한숨을 쉬셨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누군가의 눈에는 프린스가 위태로워보였고 또 아저씨가 프린스를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책임한 반려인에게서 아이를 구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눈에 아저씨와 프린스는 함께라서 행복해보였다.
아주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아저씨는 최선을 다해 프린스를 돌보아 주셨고 프린스는 그런 아저씨를 아빠로 생각하면서 사랑했다. 그런 둘을 떼어놓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겐 불행이 아니었을까. 삶의 모습이 여럿인 것처럼 사랑의 형태 또한 여러 가지다.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겉으로 드러난 외형만이 아닌 진심을 볼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