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 볼 만한 글이라 생각되어 올려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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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기업 이사진에 적극적으로 포함한 기업들보다, 그렇지 않은 기업들의 성과가 더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 지난 한 해 동안, 런던 증권거래소 FTSE 상위 100대 기업 전체에 걸쳐서 여성 이사의 수는 20% 증가했다. 그러나 여성 이사 수가 가장 많은 열개 기업의 60%는 평균 이하의 성과를 보였다. 반면 여성 이사 수가 가장 적은 기업들은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었다.”
2003년 타임지에 실린 기사, ‘여성의 이사회 진출, 도움일까, 방해일까’의 일부입니다. 위의 기사를 학생들에게 읽어준 후,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현재 포춘 500대 기업 중에서 여성이 CEO인 기업의 수는 27개, 전체에서 여성 CEO의 비율은 5.4%입니다. 여성 CEO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은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답이 있습니다. 여성의 정서적 감수성과 대인관계 능력이 남성 중심의 기업 환경에 잘 맞지 않다는 대답입니다. 이러한 대답의 이면에는 이미 한 가지 논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앞서의 기사를 경영진의 여성 비율이 높으면 기업의 성과가 줄어든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엑서터 대학교의 미셸 라이언 교수는 좀 더 자세히 데이터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관련논문 1) 특히 여성이 경영진으로 임명되는 시기가 언제인지, 과연 임명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기업의 주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주의깊게 살펴 보았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성과가 좋지 않고, 이미 주가가 하락한 상태일 때, 여성들의 경영진 임명이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라이언 교수는 이를 두고 ‘유리절벽’ 현상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성차별로 인해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이 어려운 상황을 ‘유리천장’이라 빗대어 부르는 것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만 여성이 고위직에 진출하는 상황을 ‘유리절벽’이라 부른 것입니다. 유타주립대학교의 쿡과 글래스 교수는 과연 유리절벽 현상이 미국의 포춘 500대 기업에서도 나타나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관련논문 2) 이들은 기업의 주가와 재정 상태가 15년 동안 이루어진 남녀 CEO의 변화와 어떤 관계를 보이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유리절벽 현상은 미국에서도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기업의 성과가 부진할 때, 남성에 비해 여성의 CEO 승진이 두드러지게 이루어졌습니다.
여성에게 원인을 묻다
경제학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가장 애타게 가르치고 싶은 것 하나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구분입니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합리적 사고가 요구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가장 배우기 힘든 것이기도 합니다. 고등학생들의 과외 시간과 성적의 관계를 살펴 보았다고 합시다. 많은 시간의 과외를 받는 학생의 성적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외는 학업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까. 학업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과외를 그만 두어야 하는 것입니까. 사실은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더 많은 과외를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경영진 비율이 높을수록 기업의 성과가 낮다는 사실은 단순히 상관관계일 뿐입니다. 과외 시간과 성적의 예와 같이, 실제 인과관계는 거꾸로 나타났습니다. 기업의 성과가 낮을 때, 여성의 경영진 진출이 늘어난 것입니다.
상관과 인과의 차이에 대한 인식의 실패가 벌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편견 때문입니다. 편견이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생각하는 사고의 오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이 관련된 이슈에서 이런 식의 사고 오류와 편견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는 여성에 대한 수많은 상관관계들을 양산하였고 여성에 대한 편견이 양가적 형태를 띠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쓴 노스이스턴 대학교 심리학과의 리사 펠드먼 바렛 교수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합니다. 만약 어떤 여성이 감정을 잘 드러내면, 사람들은 그를 두고 리더십에 적합하지 않고 안정적인 조직 운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어떤 여성이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가 따듯하지 않고 신뢰할 만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상반된 편견이 동시에 존재하기에, 여성 이슈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찾는 일이 빈번하게 실패합니다. 여성과 관련한 많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바렛 교수의 실험은 여성에게 원인을 귀착시키는 사람들의 편향을 잘 보여줍니다. (관련논문 3) 남성과 여성의 감정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살펴보는 실헙입니다. 사진 속의 남성과 여성의 얼굴은 적당한 정도로 슬픔, 공포, 분노, 혐오와 같은 감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진 아래에는 ‘직장 상사로부터 고함 소리를 들었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욕설을 들었다’와 같은 짤막한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사진 속의 사람들이 왜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진을 제시받은 실험 대상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사진 속의 사람은 감정적입니까, 아니면 운이 나쁜 날을 보내고 있습니까?”
더 많은 비율의 실험 대상자들이 여성에 대해서만 “감정적”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찡그린 얼굴의 남성에게는 뭔가 나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에 대해서는 원래 감정적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드러난 것입니다. 화가 나거나 슬퍼하는 원인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지만, 실험 대상자들은 사진 속의 여성들을 감정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처럼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면 너무나 분명하게 제시된 원인마저 무시합니다. 원인을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에 결부시켜 버리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성추행과 성폭행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성폭력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여성이 먼저 유혹을 했을 것이다”, “여성이 조신하게 행동해야 했다”와 같은 말들을 하는 남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피해자에게 문제의 원인을 묻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성에게 책임을 묻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면, 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오히려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결과를 낳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펜스 룰입니다. 펜스 룰이란 의도하지 않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남성이 여성과는 단 둘이 있지 않겠다는 원칙입니다. 펜스 룰은 원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관관계를 해소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성에 대한 성추행의 원인은 남성의 잘못된 행동인데, 단지 상관관계로 나타난 현상을 차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펜스 룰은 여성을 다시 편견과 차별에 가두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들이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고, 채용 및 승진 탈락으로 이어집니다. 조직의 남성중심성은 더욱 공고화되기 쉽습니다. 상관과 인과를 구분하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두고 여성의 능력 부족으로 해석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펜스 룰은 결국 성추행의 책임과 비용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잘못 만들어진 성추행 예방 교육도 비슷한 방식의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성추행 예방 교육이 오히려 남성들의 젠더 편견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연구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성추행 예방 교육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더욱 부각할 뿐만 아니라, 남성을 직장 상사로, 여성을 부하 직원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여성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인식되게 만듭니다. 결국 남녀 간의 평등 의식을 키우기보다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추행 예방 교육이 실제 성추행 사건을 줄이거나 직장내 문화를 바꾸었다는 결과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성추행 예방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 하나는 법적 책임을 줄이기 위한 목적 때문입니다.
어떻게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가 여성에 대해 항상 틀리는 이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남성중심적 사회가 낳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하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워야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경제학으로 밥벌이를 하는 저도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할 때가 많습니다.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 제가 궁여지책으로 사용하는 방법 하나가 있습니다. 여성과 관련한 이슈를 접하면, 저는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라고 세 번 반복해서 속으로 말해 봅니다. 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분들께도 권해 드립니다.
비록 실수를 줄이기는 하지만 이 방법이 여성에 대한 편견 자체를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편견에 대한 연구를 많이 알고 있고, 편견에 대한 자각이 상당하다 해도, 뿌리깊은 편견의 영향을 벗어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편견을 낳는 남성중심적 세상을 바꾸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저는 두 명의 젊은 여성 목사가 이끄는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남성 목사가 없는 교회는 미국에서도 흔하지 않습니다. 3년째 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니, 요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과연 남성의 설교를 듣고 남성이 베푸는 성찬식을 참여할 수 있을까.’ 여성중심의 조직과 사회를 경험해 보십시오. 수많은 상관관계의 역전을 경험할 것입니다.
미국 인디애나 퍼듀대 교수
관련자료
1. Michelle K. Ryan S. Alexander Haslam (2005). “The Glass Cliff: Evidence that Women are Over ?Represented in Precarious Leadership Positions.” British Journal of Management, 16(2), 81-90
2. Alison Cook and Christy Glass (2014).“Above the Glass Ceiling: When Are Women and Racial/Ethnic Minorities Promoted to C.E.O.?,”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35(7), 1080-1089
3. Barrett, L. F., & Bliss-Moreau, E. (2009). “She’s emotional. He’s having a bad day: Attributional explanations for emotion stereotypes.” Emotion, 9(5), 649-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