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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증 #1
알람소리에 잠에서 깼다. 오늘은 일요일…
어젯밤 술이 과해 늦잠을 자게 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거지…’
어젯밤 일이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는 무겁고..가슴은 답답하다.
냉장고를 열어 시원하게 만든 보리차를 벌컥벌컥 마신다.
담배를 한대 물고 tv를 켠다. tv는 지지직 거리면서 나오지 않는다.
여기저기 TV를 때려보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아 짜증나네…안테나가 말썽인가?’
안테나를 고쳐 잡으러 집 옥상으로 올라간다. 아니나 다를까 안테나가 비뚤어져 있었다.
안테나를 기존 위치로 고쳐 잡고 집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장독대 사이로 피가 묻은 옷가지가 보인다.
‘어..이게 뭐지?’
옷을 꺼내 보니 어제 내가 공장에 출근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
‘아니…왠 피가 이렇게 묻어 있는 거야?’
약간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옷을 황급히 숨기고 계단을 내려간다. 마침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총각!’
하고 나를 불러 세우신다.
‘예…아주머니.’
‘이번 달 방세는 언제쯤 내려우? 번번이 이야기하기도 질려.’
‘조만간 에…꼭 드리겠습니다.’
‘이번엔 알지? 제때 못 내면 이번 달 말로 방을 빼줘.;
‘예…’
언제나 오고 가는 뻔한 대화.
하지만, 이번엔 주인집 아주머니의 표정이 비장하다.
연실 굽신 거리며 다음주까지 집세를 드리겠노라 하고 겨우 위기를 넘겼다. 집세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돈이 없다. 일주일전에 받은 월급봉투는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답답하다. 다 귀찮고. 귀찮다.
모든 것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방에 누워 담배에 불을 당긴다.
아…이대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교대를 한다. 언제나 상대하기 싫은 김반장이 기다리고 있다.
김반장…언제나 사소한 것 까지 트집을 잡으며, 나를 괴롭히는 인간이다.
‘야…정석구…’
‘예, 반장님.’
‘너 임마, 그제 퇴근할 때 3번 기계 점검했어 안했어??’
‘예…했는데요.’
퍽. 바로 정강이 조인트
‘아…아…’
‘임마, 점검했다는 기계가 어제 퍼져서 난리도 아니었어.’
‘으….으…’
‘너 이러다가는 모가지 잘린다. 정신 차리고 일해라. 카약 퉤 에이 재수없는 새끼’
더러운 것이나 보았다는 듯이 가래침을 뱉고 김반장이 사무실로 들어간다.
욱신거리는 정강이를 부여잡고 기계 앞으로 다가간다. 서러워 눈물이 맺힌다.
‘개자식’
죽여버리고 싶다.
3번 기계 내부를 다시 점검해 보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계에 오일을 공급해 주는 관이 살짝
구멍이 났다. 구멍이 라기 보다는 누군가가 날카로운 것으로 흠집을 내어 그 사이로 오일이 새고 있었다.
관을 새로 뜯어 고치고 하느라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 썼다.
사무실에 들어가…작업복을 벗고 담배를 한대 문다.
‘오늘 하루도 전쟁이 시작되는구나…’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다.
퇴근길에 김반장이 직원들을 불러 모은다.
‘오늘 월요일이니 대포집에 가서 막걸리나 한잔씩 하고 가자고’
모두들 싫은 눈치이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작업반의 실세중의 실세 김반장이 가자고
하면 가야한다. 빠졌다가는 어떤식으로 보복이 올 지 모를 일이다.’
오늘도 마시기 싫은 술을 마셔야 한다.
술자리는 점점 무르익어 간다. 아…정신이 혼미하다. 김반장이 연거푸 내미는 막걸리 주전자에
빈속에 급하게 먹은탓인지 너무 일찍 취했다.
김반장의 갈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옆에 있던 박씨 아저씨가 나를 챙겨준다.
“석구야…괜찮은겨?”
“예…예….”
“아이고 뭔 술을 이리 멕인데, 술도 약한 친구한테,,,”
그때 김반장이 끼어든다.
“:야…박가. “
“…”
묵묵부답의 박씨 아저씨를 향해 김반장이 거친 말을 쏟아낸다.
“임마. 니가 그러니까 맨날 말단 기계공 인거야. 임마… 야. 애가 취했으면 일으켜 따귀라도 갈겨 군기를 잡아야지. 그걸 니 어깨에 기대게 하고 있냐? 물러터진 새끼…”
박씨 아저씨는 주먹을 꽉 쥐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김반장을 말리듯이 이야기 하고 박씨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말없이 가게를 나서는 박씨 아저씨..
나도 따라 나선다.
뒤에서 김반장의 고함 소리가 들린다.
‘에이 병신 같은 놈들아.흐하하하하핳 한쌍의 바퀴벌레군. 아주 잘 어울린다. 이런 병신들….”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박씨 아저씨를 쫓아간다.
‘아즈씨…아즈시…같이 가요.딸꾹’
뒤를 돌아보는 박씨 아저씨.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신다.
“석구…많이 취했네, 오늘은 우리집으로 가서 자는 게 어때?’
“예….저 안 취했….”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 앉았다.
쓰러진 나를 따뜻한 팔로 부축해주시는 박씨 아저씨가 너무도 감사했다.
‘고마워요 아저씨…흐흑….흑흑’
‘울지마. 녀석아…에휴.’
그러다, 기억이 점점 사라짐을 느낀다. 아…점점 멀어지는 기억을 잡고 싶집만,
역부족이다. 정신이 점점 아련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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