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옵션 |
|
‘시발택시
가족들이 모여 아버지의 은퇴식을 조촐하게 진행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외식을 하려던 계획이 취소되어 사촌형님들과 여동생 내외 이렇게 집으로 모여 음식을 장만했다.
50년…한 분야에서 그렇게 오래 일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약주가 평소보다는 과하셨다.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가신다 길래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주변을 천천히 걸으시다가 나에게 묻는다.
“큰애야…담배 있니?”
“예…아버지.”
약 20년간 금연을 하셨는데…일단 이유는 묻지 않고 담배를 한대 드린다.
길게 한모금 담배를 빨으시다가 나에게 건넨다.
“아이고…이거 이젠 못 피우겠다.ㅎㅎㅎ”
“예.ㅎㅎㅎ”
“큰애야. 애비가 처음 운전 했을때가…벌써 50년이 지났구나. 그땐 참 먹고 살기 힘들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게 평생을 하는 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니?”
“…”
“참…많은 일이 있었지….”
하시며, 아버지께서는 그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버지의 시점으로 이야기 드립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주제는 실화이며 약간의 픽션이 섞여있음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나는 그 때 갓 스물이 된 ‘시발택시’ 운전수였다. 운전 면허를 갓 따고, 외사촌 형님의 도움으로 부랴부랴 취업한 곳이 그 운수회사였다. 사장님은 내가 살던 ㅇㅇ군은 물론 옆 ㅇㅇ군의 운수업까지 독점하고 계시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는데, 외사촌 형님이 6.25때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였기에 흔쾌히 청탁을 받아주셨다.
한편 당시엔 월남전이 한창이었다. 월남에 파병된 큰형이 실종되면서, 집안의 생계는 엉망이 되었다. 난 학업 대신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폐병에 걸린 둘째 형과 아직 어린 여동생 둘이 입에 풀칠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운전수는 나름 희소성 있는 직업으로 인정받았을 때였고, 나는 외사촌 형님과 운수회사 사장님의 배려 덕에 어린 나이에도 꽤 높은 봉급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요령 피우는 일 없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선배 기사님들을 대신해서 땜빵근무, 야근 등을 대신 해 주고 선배기사들에게 그 대가를 받기도 했다. 물론, 이 일은 배차계 에게는 반드시 비밀이었다.
당시 배차계는 사장의 집안 친척이라는 사람이 맡고 있었는데, 어리숙 하기도 했거니와 일에는 관심이 없어서인지 기사들을 전혀 관리하지 못했다. 오히려, 매번 빵꾸가 날 수 있는 상황을 내 덕에 모면 하는게 고마웠는지 가끔 사과며, 마른 오징어, 과자 등을 한 봉투씩 사서 나에게 슥 내밀곤 했다.
그러던, 1967년의 비오는 가을날 밤이었다. 나는 택시 일을 마치고, 어두운 빗길을 뚫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 부락에 있던 ㅇㅇ 국민학교 근처 냇가 다리를 지나가게 되었다. 비가 좀 내려서인지 어두운 밤에도 물이 불어나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때 나는 몇 일 동안 야간 운전을 도맡아 몸이 피곤한 상태였다. 사무실에 빨리 복귀해 어서 퇴근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한편 그날은 몸은 피곤했지만 팁을 받아 놓은 상태라 그런지 더욱 신이 나서 차를 밟았다. 한참을 빠르게 달리던 그 순간, 전방에 누군가가 손짓을 하는 게 보였다. 갑작스런 인기척 때문에 살짝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차를 세웠다.
당시에는 빈 차로 가다가 동네 분들을 만나면 차를 태워 바래다 드리는 미덕이 있었고, 늦은 밤시간에 비까지 오는 날이었기에 나는 급하게 차를 세웠다. 그런데, 손을 흔들며 내 차를 멈추게 한 사람은 바로 얼마전 OO국민학교에 새로 전근을 오셨다는 여 선생님이셨다. 우리부락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그분. 이 동네 장정들이라면 다 그 선생님을 알고 있었고 나 또한 그러했다. 그런 분이 이 야심한 시각, 그것도 내리는 비를 맞으며 여기서 뭘하고 계신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일단 차에서 내려 선생님 앞으로 갔다. 조수석 문을 열고 옆좌석을 제껴서 뒤좌석에 앉으실 수 있게 해드렸다. 선생님은 말없이 차에 탔고, 나는 조수석 문을 닫은 뒤 운전석쪽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비가 어찌나 오던지, 그 사이에도 온몸이 빗물에 젖었다. 차에 올라타 출발함과 동시에 나는 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이 시간에 퇴근하신 거에유?”
“예…(조용히, 감정없이)”
“아…많이 늦으셨네유? 아니, 그런데 이 밤에 그 길로 부락까지 가시려고 하신 거에유?”
“예…”
“댁으로 가실거쥬?”
“예…”
비를 맞고 늦게 퇴근해서 기분이 안 좋기라도 한 것인지 선생님의 대답은 이상하리만치 짧았다. 호의를 베푼 사람한테 적어도 고맙다라는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살짝 야속한 마음마저 들었다.
‘뭐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
하며 속으로 생각하곤 앞만 보며 운전만 했다. 학교에서 우리 부락까지는 30분은 더 가야하는 거리였다. 거기다가 선생님을 집에 내려 드리고, 읍내 회사까지 가려면 거기에 20분은 더 가야했다. 그리고 나서 집에 가면 꼭두새벽이 된다.
시간을 계산하며 나는 부지런히 속도를 높여 달렸다. 어느덧 선생님이 사시는 하숙집이 있는 동네에 접어들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걸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유.”
“예…”
끝까지 고맙다는 말을 안 한다. 약간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침을 꼴짝 삼키며 한번 더 참았다. 집 앞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다 왔습니다. 내리세요.”라고 말하며 옆 좌석을 제끼고 뒷좌석을 보았다.
하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어...? 아무도 없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 자리에서 비를 쫄딱 맞는 줄도 잊은 채 차 이곳 저곳을 살폈다. 정말로 차 안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누군가 내 머리를 친 것처럼 눈앞이 어지러웠다. 이게 뭐지…? 그렇다면 30여분 동안 내 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선생님은 뭐란 말인가? 비에 젖어서인지 몸에 한기가 몰려왔다. 그 와중에도 나는 비정상적인 상상을 했다.
‘선생님이 부끄러워서 내가 차에서 내릴 때 재빠르게 차에서 내리신거야. 그리고는 집으로 빨리 들어 가신거지…’
이런 생각이 미치자, 그 하숙집 대문 앞으로 가서 대문을 쾅쾅 두들겼다. 내 두 눈으로 선생님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였다.
“누구슈?”
하며 하숙집 할머니가 나오셨다. 어머니와 같은 교회를 다니시던 할머님이시기에 나를 잘 아셨다.
“어..OO이 아니여?“
“할머니. 방금 선생님 들어갔지유?”
“으잉?? 선생님이라니? 뭔말이여?”
“여 선생님 있잖아유?”
“여선생님? 아니. 아직 안 왔는데?”
“예?”
“아직 안 왔어. 안 그래도 고향에서 선생님 어머님이 오셨는데 하도 안 오길래 걱정하고 있던 차였는디…넌 갑자기 뭔 소리여?”
“할머니…내가 …아!! 내가 방금 선생님을 학교 앞에서 태우고 왔는데, 와보니까 없어유!”
“뭐? 그게 뭔 말이여?”
결국, 나는 할머님께 붙잡혀 들어가 할머님과 선생님의 어머님이라고 하시는 분께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의 어머님은 자꾸 가슴께를 쓸어 내리셨다. 상황이 하도 수상하지만, 비가 억수 같이 오는 밤이고 너무 늦은 시간인지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도저히 차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던 나는 결국 첫닭이 울고 비가 잦아든 후에야 차를 몰고 읍내 회사까지 갈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교대를 나온 김 기사님에게 인계를 하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동생이 차려준 밥상을 받아 대충 밥을 먹고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몇 시간 잠도 못 자고 가위 비슷한 것에 눌려 잠을 깨고 나니 시간이 벌써 2시였다. 어차피 야간운전 교대를 하러 나가야 하기에, 나는 그 김에 대충 씻고 옷을 챙겨 입고 회사로 갔다.
대기실 의자에 편하게 앉아 어젯밤 일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저녁때가 되어 김 기사님이 오셨고, 나는 자동차 열쇠 등을 인계 받고 있을 때였다.
김기사님이 언짢은듯이 이렇게 말했다.
“어이 차기사…뒷좌석에 비 맞은 손님을 태웠으면 도착해서 의자에 물기를 닦아야지. 그걸 그냥 두면 어떡한데?”
“야? (예?의 충남식 사투리)”
“아니 사람 엿 멕이는것도 아니고 손님 모시러 갔다가 좌석에 물이 잔뜩 묻어 내가 얼마나 욕봤는지 아는가!”
김기사님은 아예 화를 내셨다.
그 순간 나는 멍해지는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애썼다. 아득해져 온다. 어제 뒷좌석에 비에 젖은 누군가가 분명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