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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0cm, 10억 맞죠?”
단정한 옷에, 손에 끼고 있는 반지는 억 단위가 될 것 같은 남자가 허름한 옷에 키는 180cm가 넘을 것 같은 남자에게 물었다.
“네, 어제보다 조금은 올랐죠. 그나저나 한 번에 10cm라니 대단하시네요.”
“대단하긴요, 그만큼 할 일 없는 인간이라는 거죠. 아무튼, 10억 보내드렸습니다.”
“넵, 감사합니다.”
키 10cm를 10억에 판 남자는 할 일 없는 인간이 가게에서 나갈 때까지 웃는 얼굴로 배웅했다. 그러나 그 인간이 나감과 동시에 얼굴이 싹 변했다.
“하여간에 자기가 할 일 없는 인간이라는 건 아는가 보네.”
남자는 중얼거리면서도 폰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폰 화면에는 원래보다 정확히 10억이 늘어있었다. 남자는 투덜거리면서도 입꼬리는 조금 올라가 있었다.
키를 거래하는 것. 이제는 뭐 당연시하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다른 여러 가지도 팔았다던데 예를 들자면, 이름이라던가? 나이라던가? 지금은 법으로 키만 사고팔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이유? 애초에 남자는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유’라는 걸 절대 알 수 없었다.
키를 거래하고 한 번 잠을 자고 일어나면 거래한 사람의 키가 조정된다. 10cm를 판 사람은 키가 줄고, 반대로 구매한 사람은 키가 10cm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키는 무한대로 있는 게 아니다. 그랬기에 키의 가격은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이걸로는 제대로 된 집은 살 수 없잖아... 애초에 키 팔면 부자 된다는 선전을 믿는 게 아닌데.”
남자는 10억을 벌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번 돈에 만족하지 못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10억은 절대로 집을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작은 집조차도 살 수 없는 돈에 불과했다.
“언제까지 길바닥 생활이냐.”
남자는 가게 바닥에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더 팔 거 아니면 나가.”
“예예.”
가게 주인장은 딱딱한 말투로 남자를 내쫓았다.
“어차피 우리가 여기 안 오고 딴 데 가서 팔면 거지 되는 건 똑같은데 왜 저러는 거야.”
남자는 가게 주인장에게 안 들리게 작게 투덜거리면서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런 남자 앞에 “장식용 키를 팔아 부자 되자!”라고 적인 선전용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그걸보자 남자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남자는 또다시 “저딴 선전을 따르게 아닌데...”라며 한탄했다.
그러면서도 남자는 내일은 얼마나 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남자에게 손쉽게 들어온 10억은 다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나지 않게 만들었다.
“내일이면, 좀 더 오르겠지?”
남자는 오늘도 집 없이 길바닥에서 잠들었다. 집은 없는데 왜 폰은 있는지 의심도 하지 않으면서.
[1cm당 1억 2000만원]
다음날, 남자가 폰을 확인했을 때 키의 시세는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2000만원이 올라있었다.
10억 가지고도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이 정도까지 오르다니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cm당 1억 3000만원]
[1cm당 1억 6000만원]
[1cm당 1억 8000만원]
.
.
.
[1cm당 2억 5000만원]
키의 시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친 듯이 올라갔다.
남자는 더더 높은 값을 원하던 사람들이 팔지 않고 기다린 결과라고 생각하고 마냥 기뻐했다.
*
“2cm 사겠네. 5억.”
“네. 5...”
남자는 오랜만에 키를 거래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게. 내가 사도록 하지 1cm 5억.”
순조롭게 거래가 마쳐갈 때쯤 어떤 노인네가 원래 가격의 2배에 달하는 가격을 불렀다.
“아... 최아현 형님! 제가 먼저 사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시세의 2배라뇨!”
“그 시세를 누가 정하는지 모르나? 10cm 사지, 50억.”
먼저 거래하려던 사람은 노인의 한 마디에 뒤돌아서 나가버렸다. 진짜 50억을 주면 나야 좋겠지만, 이런 노인이 과연 제대로 값을 낼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을 하고 있을 때 노인은 내 손을 잡았다.
“자네, 나랑 계약하지 않겠나? 영구적으로 나랑만 거래하는 거야.”
“영감님께서 키는 왜 필요하시다고...”
남자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곧 남자의 앞에 노인의 차가 나타났다. 앞에 나타난 차가 노인의 차라는 걸 안 건 운전수가 일일이 내려서 노인에게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었다.
그 차는 차를 타 본 적이 없는 남자가 보기에도 상상도 못 할 가격을 지닌 차로 보였다.
“키의 시세가 올라가는 건 마냥 기뻐하더니 나 같은 사람이 부자인 건, 마냥 신기해할 수 없는 건가?”
남자의 눈에는 이제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화려한 차 한 대만이 보였다.
“타시지요.”
운전수는 남자에게도 문을 열어줬다. 이 상황에 남자는 지독한 쾌감을 느꼈다. 자기가 적어도 이 운전수보다는 위에 있다는 그런 쾌감. 그래서 어디로 가는지 잘 모름에도 남자는 덜컥 차에 올라탔다.
“저기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남자는 살짝은 재수 없는 말투로 운전수에게 물었다. 그러나 운전수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전 이름이 없습니다. 이미 팔았거든요.”
남자는 이런 거마저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정장을 빼입고, 이런 귀한 차를 몰고 다닐 수 있다면 이름 정도야. 뭐, 없어도 되지 않을까? 라고도.
*
“내리시죠. 도착했습니다.”
운전수는 내릴 때도 노인 다음으로 남자의 차 문을 열어줬다.
“당신의 이름은 뭐죠?”
운전수는 남자에게 덤덤하게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름 같은 거 필요 없잖아요?”라고. 운전수는 남자를 멍한 눈빛으로 배웅했다. 남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 배웅에 응답했다.
“자, 앞으로 시세에 2배. 2억 5000만원이면 5억을, 3억이라면 6억을 주지. 어떤가?”
“왜 저에게 이런 기회를...?”
“...”
노인은 남자가 노인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물었다. 남자는 물음에 물음으로 답하였다. 노인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얼마 후, 남자에게 집을 주고 먹을 것도 주었다. 그 대가는 간단했다. 영원히 노인과만 거래할 것. 노인은 자기가 원할 때마다 키를 거래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노인의 키는 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뭐, 돈은 꼬박꼬박 제대로 들어왔으니까.
“키 20cm, 120억.”
“키 20cm, 140억.”
“키 30cm, 240억.”
“키 40cm, 400억.”
키 40cm를 400억에 팔았을 때쯤 남자의 키는 대략 50cm가 되어있었다.
“저 이제 그만할래요. 이만하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어요.”
“잊었니? 영원히 거래한다고 계약했지 않은가?”
노인은 인자한 얼굴로 남자를 계속 바라봤다.
“키 40cm, 400억 추가로 구매하겠네.”
“아니요, 아니요. 이제 제발 그만요!”
“왜 그러나? 서비스로 좀 더 줄까?”
“아뇨! 아뇨! 제기랄 이제 됐다고요!”
노인이 인자한 얼굴로 마지막 거래를 하자 남자의 키는 이제 10cm만 남게 되었다.
“가장 작은 인간이구나. 이런 건 누구도 본 적 없을 거야.”
“이 망할 노인네!”
남자는 노인의 손에서 꽥 소리쳤다. 그러자 노인은 되려 더 활짝 웃었다.
“노인네라니? 나는 아직 25살인데?”
“노인네가 미쳤나?”
남자는 또다시 소리치며 노인의 손을 깨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따가웠는지 손에 남자를 떨어뜨렸다.
노인이 잘못 떨어뜨렸는지 바닥에는 빨간 점 하나가 생겨버렸다.
“주인님, 오늘의 시세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요?”
촬영기를 든 운전수가 다가와 빨간 점을 밟으며 노인에게 물었다.
“상관없잖아? 어차피 값은 내가 정하는 거고, 돈의 가치는 뭐, 우리 아빠 때부터 의미 없었어.”
노인은 저 높은 우주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촬영기를 들고 있던 운전수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다른 존재들도 이런 걸 보면 즐거워하겠지? 우리 인간의 외모도, 이름도, 나이도, 전부 색다른 거니까. 적어도 무료하진 않을 거야? 아, 잘 찍어뒀지? 이런 건 본 적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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