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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조지 로메로 감독의 "랜드 오브 데드"라는 좀비 영화가 상영 금지된 적이 있습니다.
상영 금지된 이유가 "랜드 오브 데드"에서 묘사되는 좀비들의 식인 행위가 우크라이나인들의 가슴 아픈 과거를 회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1932년~1933년에 발생한 대기근으로 당시 우크라이나인 천만 명(정확한 집계 불가)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발생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식인 행위가 함께 수반되었기 때문에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이 나오는 좀비 영화가 우크라이나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상영을 금지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곡창지대로 유명해서 "유럽의 빵 바구니"라는 별칭이 붙어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런 끔찍한 비극은 왜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바로 소비에트 연방의 독재자 스탈린이 집단농장 정책을 펼치며 우크라이나의 각 지역마다 공산당원을 파견하여 농민들의 모든 토지와 가축, 그리고 곡물들을 모조리 수탈해 갔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농민들은 빼앗기기 전에 잡아먹겠다는 심리로 농사일에 써야 할 소와 말을 대부분 도살하였고 그 영향으로 이듬해부터 농작물 수확량이 급속도로 감소하였습니다,
게다가 스탈린은 수출량을 늘려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 곡물 재배를 줄이고 면화나 사탕수수를 재배하도록 명령하였기 때문에 가뜩이나 줄어든 곡물 수확량에 수탈까지 당한 우크라이나의 농민들은 매일 거친 빵 한 조각 입에 넣는 것조차 힘들어질 정도로 사태는 악화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스탈린은 수탈을 멈추지 않았고 경작지를 떠나지 못하도록 인위적으로 고립까지 시켜버리니 우크라이나의 농민들은 나무껍질을 씹으며 연명하거나 개미나 곤충알이 있을까 싶어 흙덩이를 깨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하네요.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져 어디에서도 먹을 것을 전혀 구할 수 없는 막장으로 치닫자 우크라이나의 농민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폴란드 등..... 다른 나라로 탈출을 감행하였는데 스탈린은 국경을 봉쇄하고 탈출하려는 우크라이나 농민들을 총으로 전부 쏴 죽였고....
결국 농민들은 이미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곳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카니발리즘은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었구요.
우크라이나에 몰래 잠입한 외신 기자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렸고 일부 국가들은 식량 원조를 제안하였지만, 스탈린은 그 상황 자체를 부인하고 식량 원조 제안을 전부 거절하였습니다.
그렇게 우크라이나인들은 스탈린의 고의적인 인종 말살 정책의 희생양이 되어........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줄어들어 버렸고,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늙어버렸습니다."
1932년~33년에 벌어진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홀로도모르(Holodomor)라고도 표현되는데, ‘기아’라는 뜻의 ‘홀로도(Holodo)’와 ‘죽음’이란 뜻의 모르(mor)가 합쳐진 우크라이나 말입니다.
지금부터는 홀로도모르 당시 카니발리즘과 연관된 여러 목격담과 증언록들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33년에 우크라이나의 한 여의사의 편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착한 사람이 먼저 죽었다.
남의 것을 훔칠 줄 모르는 사람, 몸을 팔길 거부한 사람이 먼저 쓰러졌다.
소비에트 정부는 “당신의 아이를 잡아먹는다면 야만인이다”라는 포스터를 내걸었다.
하지만....
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이면 나도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또한, 대량 학살 분야 관련 전문 학자인 R. J. 러멜의 데모사이드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당시 빅토르는 열네 살이었다.
아버지가 너무 쇠약해졌기 때문에 낮에 빅토르는 혼자서 사냥을 나갔다.
긴 자루가 달린 망태기를 들고 다니며 마을 근처와 밭에서 눈에 띄는 대로 아무 동물이나 잡으려고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마을에 들어와 애완동물을 총으로 쏴 죽이고 그 사체를 자루에 넣어 짊어지거나 트럭에 실어서 가지고 갔다.
그들은 집집마다 뒤지고 다니며 모든 가축과 식량을 빼앗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따뜻한 빵까지 가져갔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새를 잡아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마을에 와서 나무에 앉아 있는 새를 모두 쏘아 떨어뜨려 자루에 담아 갔다.
그들은 빅토르의 집에도 찾아와 긴 막대기로 집안과 마당을 쑤시고 돌아다니며 숨겨 둔 식량을 찾았고, 결국 빅토르의 어머니가 훗날 심으려고 펌프 옆에 숨겨 둔 종자까지 찾아내어 약탈해 갔다.
(중략)
빅토르는 떨면서 말했다.
"그놈이 그 애를 먹었어요."
"누구를 먹었다고?" 아버지가 물었다.
"야나요."
"야나?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아래쪽에서 살던 야나요.
그 애가 실종되었거든요.
그래서 그 애 아버지가 숲을 뒤지다가 개울 건너편에 사는 타란의 집에 갔어요.
그런데 그 애는......"
"토막이 나서 냄비 속에 들어 있었어요."
"뭐라고?"
"그래서 그 애 아버지가 삽을 들고 타란과 그의 어머니를 때려죽였어요."
마지막으로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지만 홀로도모르 때 찍혔던 것으로 추측되는 사진을 몇 장 보여드리겠습니다.
스너프 필름에서나 볼 수 있는 잔인한 사진들이 많았는데....
가장 끔찍한 종류의 사진은 절단된 인간의 신체가 가득 담긴 양동이를 앞에 두고 찍힌 무표정한 모습의 가족사진입니다.
사진과 함께 이러한 증언이 함께 있었습니다.
한 가정의 식량창고에서 우리는 두 덩어리의 사람 신체를 발견했다.
스토브 위엔 또 다른 한 조각의 사람고기가 냄비 속에서 끓고 있었고,
툇마루 안쪽에는 잘 저며진 부드러운 고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곳에서 여러 개의 뼈들을 발견했다.
우리가 그녀에게 이 고기들의 출처를 묻자 그녀는 8살 된 아들이 죽은 후. 배가 고팠기에 가족이 다 같이 그 시신을 먹었다고 고백했다.
그 뒤에 더 이상 남은 고기가 없어지자, 그녀는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구하기 위해 그녀의 딸들 중 한 명을 살해하기로 했다.
그녀의 딸들 중 선택되었던 한 명이 잠들어있을 때 그녀는 딸을 죽이고 전과 마찬가지로 여러 부위로 고기를 자른 뒤, 그것을 요리했다.
그녀는 다져진 고기와 간을 이웃에게 나눠주며 그것이 말의 고기라고 하였다.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저 모습이 아닐까요?
이보다 더 비참한 세상은 머릿속으로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 우크라이나의 아픈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가슴 아픈 역사가 지금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루지야의 인간 도살자" 스탈린 못지않은 푸틴이라는 악마의 독재자가 홀로도모르가 끝난지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다시금 우크라이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도대체 언제쯤 끝이 날 수 있을까요?
하루빨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끈질긴 악연을 끊고 평화를 되찾길 바랄 뿐입니다.
☞ 영상으로 보기
출처 | https://youtu.be/PLM-xjbRgd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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