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월초군요. 어제 3월 초에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글을 썼는데, 생각해보니 제일 중요한 것에 대해 쓰지 않았군요. 모기지 내야죠. 우리 집을 완전히 페이오프 하기까지는 매달 달달이 모기지를 내야 하니, 우리 집은 아직은 은행 것이라고 봐야지요. 그리고 크레딧카드 사용한 거 갚아야 하고. 월초야말로 통장에서 돈 나가는 액수가 가장 큰 때지요.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이 컴퓨터에 사진 폴더를 하나 더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 해, 그 달의 이름을 가진 폴더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지요. 그리고 외장하드에 이 사진들을 옮겨 놓습니다. 이젠 '앨범'이라고 하는 것이 큰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만 해도 '오래전 앨범'을 들춰보는 세대지만, 이렇게 디지털화된 기록들을 통해 자기의 어렸을 적을 들여다보는 세대와, 우리처럼 인화된 사진을 들춰보는 세대 사이의 간극은 분명히 존재하겠지요. 어젯밤, 아직 여기는 2월의 마지막이었을 때, 제 99주년 삼일절 기념사를 들었습니다. 조근조근하면서도 강력한 대통령의 기념사 한구절 한구절이 마음에 와 닿더군요.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대통령. 당당하더군요. 3.1운동이 우리 마음 속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고 말한 후, 대통령은 "형무소 벽돌에 숭고한 이야기 새겨져 있다. 서대문 형무소 수감자 대부분은 독립운동가였고, 나이와 지역 막론, 조국 독립 실천했던 분들" 이라며 행사가 열린 장소의 의미를 부각시켰고, 이어 "전국 각지서 독립선언서 낭독했고 만세 운동이 퍼졌다. 만세 시위 참가 인원, 당시 인구 10분의 1 넘었다"며 구체적 수치들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3·1운동 경험은 항일 독립투쟁의 정신적 토대"라고 강조하고, 이를 통해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 을 주었음을 재삼 강조했습니다. 즉, 우리가 그렇게 민주공화국이 됨으로서 계층, 성멸, 지역 등을 뛰어넘어 당당한 국민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요. 그리고 대통령은 지난 겨울의 촛불이 3.1 운동에서 시작된 국민주권을 되살렸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연설의 백미는 일본에 대한 반성 촉구였습니다. 독도가 우리 고유의 영토이며, 가장 먼저 강점당한 곳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고 해선 안 된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한 발언은 가슴 속에 뭉클뭉클한 무엇인가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진실한 반성과 화해를 토대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일갈 속엔 일본으로 인해 일어난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분단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전제가 깔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시 대통령은"분단이 더 이상 평화와 번영에 장애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본 건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저는 그 뒤에 있었던 일을 경향신문에서 포토뉴스로 정리해 놓은 것을 보게 됐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독립문으로 나서서 삼일운동의 모습을 재현한 모습은 참 좋았습니다. 그 중간중간에 있었던 일들을 담아 놓은 사진을 보다가 저는 폭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행사장에 입장할 때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했던 홍준표 자유당 대표가 나갈 때는 그냥 자리를 떴다고 하더군요. 대통령을 피해서. 왜였을까요? 물론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그 당의 정서야 그렇다고 쳐도, 일본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듣는 것이 불편해서였을까요? 원래 친일 부역세력들과 그 후예들이 모여 있는 당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만, 그 다음에 저는 뭔가 퍼뜩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모두들 힘차게 치켜든 태극기. 문제는 거기에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이번 삼일절 행사에서 펄럭인 태극기, 모두가 함께 힘차게 흔든 분명히 2016년 겨울 박근혜 지지자들이 흔들기 시작한 태극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의미를 덧씌우려 했던 태극기,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했던 '저들만의 태극기'가 갑자기 '우리 모두의 태극기'가 된 겁니다. 저들이 박사모와 극우의 이미지를 덧씌우려 했던 그 태극기가 다시 매우 정상적인 '우리 모두의 국기'가 되는 순간, 저들은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나라의 상징을 '극우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리려 했던 저들의 의도가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는 것, 저는 삼일절 행사 직후의 사진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고 마음이 푸근해지기도 했습니다. 역사의식이 투철한 대통령 한 명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봅니다. 그리고 곧 역사의식은 고사하고 공인으로서의 의식도 없었던 전직 대통령들이 차례로 법적인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우리 마음 속에 역사의식을 고이 간직하고 있으면, 그들에 대한 심판이 지나치다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다시 태극기를 빼앗긴 홍준표는 그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겠지요. 태극기가 펄럭여야 할 그 자리에서 펄럭였을 때, 저들이 입혀 놓은 극우의 이미지가 한꺼번에 벗겨져 나가는 걸 느꼈을 때, 저는 새삼 태극기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조상들이 힘들게 지켜 온 그 태극기가 그렇게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태극기가 '자랑스런 태극기'가 됐을 때, 홍준표는 현장을 지킬 수 없었을 겁니다. 매우 당연히.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