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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저승사자 영감, 나 좀 데려가소!”
칠순 할망구인 나는 손주들을 데려온 자식을 볼 때면 볼멘소리를 내뱉는다. 물론 본심은 아니었지만 괜히 며느리 눈치도 보이고 하다 보니.
“할머니, 오래오래 사셔야죠! 제가 대학교 들어가는 것도 보고!”
대부분의 손주 놈들은 이렇게 답하곤 하는데, 한 손주가 괘씸하다. 둘째 아들놈 내외가 낳은 손주인데 녀석은 죽겠다는 내 말을 골똘히 생각하다 씩,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이름은 재민이고 이제 12살쯤 됐을 거다. 아들 내외는 또래들과는 조금 다를 뿐이라며 애써 웃어보였지만, 아직 노망이 들진 않은 내 눈엔 미심쩍을 뿐이다.
둘째 아들내외가 고향집에 내려온 날. 부부가 장을 보러 간다며 나간 사이, 나와 재민이가 방안에 남겨졌다. 난 학교 얘기, 친구 얘기, 내가 어렸을 때 얘기를 해주며 할미로서의 역할을 다하려 애썼다. 미심쩍더라도 어찌됐든 내 손주니까.
재민이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척했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시선은 자꾸만 바깥을, 혹은 천장으로 향했으니까.
“할머니.”
재민이가 날 불렀다.
“왜 그러냐?”
“진짜 돌아가시고 싶은 거예요?”
“아이고! 그래, 온 몸도 아프고 너무 오래 살았다. 이제 고만 잠자듯이 갔으면 좋겠다!”
난 재민이 이마에 꿀밤을 먹이며 웃으면서 답해줬다.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도 나이가 들었을 땐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셨지. 그런데 이 녀석은 내가 죽겠다는 말에 왜 이리 집착하는 것일까?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난 가만히 재민이의 모습을 살피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지 밑단에 흙이 잔뜩 묻어있었으니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아차, 싶었다. 자식내외가 이걸 발견한다면 눈치가 보이겠지. 손주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면서. 난 재민이를 급히 화장실로 데려갔다.
해가 지고 있다.
아들내외는 일이 있다며 이른 저녁을 먹곤 집을 나섰다. 젊은 부부와 아이를 실은 회색 승용차가 먼지를 풀풀, 뿜으며 떠나갔다.
‘하룻밤 자고 가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꾸 아들을 은근슬쩍 보채는 며느리를 보고 있자니 이 말이 쉬이나오지 않았다. 혹시 재민이의 바지에 조금 남아있던 흙이 문제였을까? 장성한 자식들을 배웅할 때면 지독하게 쓸쓸해졌다.
물끄러미 떠나는 차를 보다 뒷유리를 통해 내 쪽으로 돌아앉은 재민이를 봤다. 녀석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날 밤. 꿈자리가 사나웠다.
어느 산골이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그 산골. 먼저 떠난 할아범이 창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난 “영감!” 이라 외치며 뒤쫓았지만 영감은 다가갈수록 멀어져갔다.
“미숙아! 엄마가 했던 말 기억하지?”
이번엔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휙 돌리자 하얀 소복차림을 한 어머니가 보였다. 생전의 곱디고운 모습으로.
그녀는 울먹이고 있었다. 난 어머니에게 달려가 안기려고 했지만 그대로 잠에서 깼다.
*
대낮이었다. 난 안방에서 간단히 차린 밥상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TV를 켜서 트로트가 나오는 채널을 선택했다. 브라운관 속에 가수들이 맛깔나게 꺾는 창법을 구사하는 모습은 묘한 쾌감을 안겨줬다. 그럼에도 밥맛은 없어 밥을 물에다 말았다. 속에 좋진 않겠지만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넘겨야지. 난 사실 오래 살고 싶으니까.
쾅쾅.
누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놀러 올만한 할망구라 해봤자 김씨 뿐인데, 그녀는 지금 논밭에 나가 있을 시간이었다.
“누구세요?”
현관문을 열었다.
휘잉, 하고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마당은 텅 비어있었다. 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문을 다시 닫았다. 밥상 앞에 다시 앉아 TV를 보려는데 또다시 쾅쾅.
“... 거 대체 누구요?”
조금 성질이 났다. 누가 이런 시골에서 유치한 장난을 펼친단 말인가? 어떤 자식내외의 손주 놈들이 장난이라도 치는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내 단단히 혼쭐을 내줄 것이다.
문을 벌컥 열어 한껏 상기된 표정을 지어보였다.
휘잉, 또다시 텅 빈 마당만 보였다. 난 한두 발짝 나아가 마당과 바깥을 살펴봤다. 아무것도, 지나가던 똥개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맨발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난 발을 털려다 발바닥에 붙은 알 수 없는 털을 손에 쥐었다.
새하얗고 기다란 털. 짐승의 털 같기도 했고 사람의 머리 털 같기도 했다. 난 소름을 느끼며 현관문을 급하게 닫고는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숙아. 만약에 네가 나이 먹거든 조심해야 될 것이 있어. 먹을 것, 잠자는 것, 그리고 마음가짐. 이 세 개만 잘 지켜도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단다. 헌데... 만약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밖에 나가보면 아무도 없는 일이 생길 수 있어. 그것도 두 차례에 걸쳐서. 누군가의 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하얗고 긴 털이 문 앞에 놓여있으면... 몹시 위험한 상황이란다. 누군가 네가 죽으라고 산신에게 사주한 거거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산신이 언제고 나타나 널 끌고 갈 거란다.’
또다시 현관문에서 쿵쿵, 소리가 들려왔다. 문은 다행히 잠겨있었다. 난 침을 꼴깍, 삼키며 쿵쿵, 소리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쿵쿵, 소리는 점차 작아져 아무 소리도 안 나게 됐다. 어머니는 이런 상황이 생길 때를 예측했나보다.
‘마을 뒤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하나 있지? 그 바로 아래 초가집이 하나 있을 거야. 거기 사는 노파한테 가야돼. 반드시.’
난 부리나케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느티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뛰는 내내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놨다. 그 생각들이 한데 모여 한 이미지로 형상화 되었다. 재민이의 바지 밑단에 묻어있는 흙. 재민이는 어딜 갔다 온 것일까?
*
쾅쾅.
“거 아무도 없소?”
느티나무 아래 덩그러니 서있는 초가집 하나. 창호지로 이뤄진 문을 두드리며 외쳤지만 응답이 없었다. 거기다 문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슬며시 힘을 줘 밀자 허무하게 문이 열렸다. 난 고개를 내밀어 방 안을 살폈다.
벽에 붉은 한복이 걸려 있고 작은 책상 위로는 무구(巫具)가 놓여있었다.
그랬다. 노파는 무당인 것이었다. 헌데 지금 내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녀가 없다.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책상위에 노파로 추정되는 초상화와 함께 향을 피운 흔적이 남아있었으니까.
허망했다. 어머니가 내게 남긴 희망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죽고 싶다고 말했지만 정말 죽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데. 그때 벽에 커다랗게 적힌 휴대폰 번호가 보였다. 저 번호가 의미하는 것은 뭘까? 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뚜르르릉. 자식들이 장만해준 2G 휴대폰을 꺼내들어 전화를 걸었다. 누가 받을 진 모르겠지만 이 시도조차 무산된다면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해야겠지.
“김미숙 씨?”
어떤 사내가 전화를 받았다. 통상적으로 말하는 ‘여보세요’가 아닌 대뜸 내 이름을 말했다. 난 어안이 벙벙해져 할 말을 잊었다. 사내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전 그 집에 거주하던 무당의 자식입니다. 공교롭게도 어머니의 능력을 물려받았죠. 전화를 받으면서 어떤 상황에 처하셨는지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용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고... 우선 제가 곧장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천만 다행이겠지만... 만약에요. 어떤 의심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면 정신 바짝 차리고 계십시오.”
뚜, 뚜... 사내가 전화를 끊었다. 이곳에 있어야 될까? 집으로 돌아가야 될까? 문을 열고 온 사방을 살폈다. 아직은 해가 중천에 뜬 대낮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흐린 구름떼가 다가오고 있었고 느티나무가 느릿느릿... 마치 양팔을 늘어뜨린 사람마냥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난 침을 꼴깍 삼킨 뒤, 집을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할머니, 오셨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재민이가 보였다. 녀석은 내가 틀어두고 나간 트로트 방송을 보고 있었다. 따로 온다는 연락이 없었는데, 아들내외는 어디가고 손주인 재민이만 있는 것일까?
“재민아, 아빠하고 엄마는?”
재민이에게 물었다.
“잠깐 시내에 다녀온대요. 아참! 할머니. 저랑 마을 뒤편에 있는 동산에 같이 가주시면 안 돼요?”
재민이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부탁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저 애가 내게 죽음의 사주를 내릴 일이 없지. 내 손주이고 내 핏줄인데. 어제도 동산에 갔다 와서 바지에 흙이 묻은 것일 게야.’
난 재민이의 손을 잡고 집밖으로 나갔다.
*
우린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걸었다. 초가을이었지만 날은 포근했다. 논밭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푸르른 산을 둘러봤다. 지나가던 똥개 한 마리가 날 보며 꼬리를 흔들다가 흠칫하며 뒷걸음질 쳤다. 가만히 보니 재민이를 보고 겁에 질린 모양새였다. 이 어린 아이가 뭐가 무섭다고.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갈락말락... 그때 우린 목적지인 동산에 올랐다. 난 이미 힘이 부쳐 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새파랗게 어린 재민이는 힘이 남아도는 듯, 이미 나를 앞질러 가고 있었다.
동산 정상에 오를 때쯤 내 눈에 재민이의 뒷주머니가 보였다. 실이 삐져나온 것 같아서 그걸 떼어내려 가까이 다가가다 멈칫하고 말았다.
하얗고 긴 짐승의 털. 그것이 재민이의 뒷주머니에 있었다. 이게 왜 재민이에게 있을까? 혼란을 느낄 때 재민이가 뒤돌아봤다. 해가 거의 지기 직전이었고, 동산 위엔 나와 재민이만 있었다. 앙상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치며 우릴 내려다봤다.
“할머니, 그거 아세요?”
재민이가 씩, 웃으며 흙바닥을 파헤쳤다. 손에 무언가 쥐고 올렸는데 그 물건은 칼이었다. 난 당황을 넘어 경악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옆집 강아지 순이, 가지 할머니네 고양이 똘복이. 다들 아파보여서 제가 잘 보내줬어요. 저 잘했죠? ...이번엔 할머니를 도와 드리려구요.”
재민이는 아무렇지 않게 동물을 죽인 것을 말했다. 난 어느새 입을 부들부들,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재민이가 말했던 동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불쌍한 것들. 말 못하는 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휙, 하고 재민이가 칼을 휘둘렀다. 난 죽을 힘을 다해 몸을 던져 피해냈다. 그 바람에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지만. 재민이는 틈을 놓치지 않고 재차 칼을 휘둘렀다. 난 그것을 피하느라 바빴고, 녀석은 연신 칼을 휘두르기 바빴다. 칼이 흙바닥에 푹푹, 박혔다.
손자가 할미를 해치려는 괴이한 상황. 결국 녀석이 휘두른 칼이 내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아악!”
한쪽 다리가 마비된 느낌이었다. 난 다리를 절뚝거리며 동산 아래로 내려가려 애썼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재민이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나를 뒤쫓았다.
“재민아! 할머니한테 왜 이러니? 응? 우리 손자 이런 애 아니잖아?”
난 울먹이며 외쳤다.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친손자에게 살해당한다는 사실. 그것은 살아온 세월을 모조리 부정 당하는 기분일 테니까.
“이 동산에 올라와 소원을 빌어봤어요. 그러니까 어떤 하얀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타나 제게 이 칼을 건네는 거 있죠? 전 그제야 깨달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재민이가 칼을 치켜들었다. 한쪽 다리는 저려오고 호흡은 가빠졌다. 김미숙, 70 평생 열심히 살아왔지만 손주 손에 허망하게 죽는구나. 난 눈을 질끈 감았다. 남겨진 자식들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할꼬. 기가 막혔다.
퍽.
둔탁한 소리가 났다. 마치 몽둥이로 후려치는 듯한 소리. 눈을 떠보니 어떤 중년의 사내가 몽둥이로 재민이의 등을 후려친 뒤였다. 재민이는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주저앉았다. 사내는 품에서 부적을 꺼내 재민이의 이마에 붙였다. 곧이어 붕대를 꺼내들고는 내 허벅지를 감싸 응급처치를 실시했다.
“너무 늦게 오지 않아 다행입니다. 저는... 아까 전화했던 무당의 아들입니다.”
사내는 구하러 오겠다고 통화한 무당의 아들이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쓰러진 재민이를 살폈다. 우리 재민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이곳에 깃들어 있던 악귀에게 잠시 씌었던 것일까요?”
사내에게 물었다.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펴 동산 아래를 가리켰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저 멀리서 아들내외가 동산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이 참혹한 광경에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우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부축을 받은 채 동산 아래로 내려갔다.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서 내린 응급구조사들이 날 침대에 눕혔다. 난 “잠깐만” 하고 양해를 구한 뒤 사내만 불렀다.
“정말... 제 손자가 뭔가에 씌었던 것 맞죠?”
사내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듣는 귀가 있는지 살폈다. 그러고 나서 내게 바짝 다가와 귓가에 대고 말했다.
“... 아니오.”
구급차 뒷문이 닫히면서 차가 출발했다. 텅 빈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차올랐다. 차라리 재민이가 무언가에 씌었길 바랐다. 그것도 간절하게.
난, 아니 우린 이 이상한 손주를 어떻게 바라봐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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