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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의 여인
이른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오두막을 나선 사냥꾼은
푸른빛이 도는 어스름한 겨울 숲을 걸었습니다.
숲을 지나 눈 덮인 평원에 도착한 사냥꾼은
지평선 위로 태양이 머리끝을 내밀며
희미하게 빛나던 하늘의 별들이
유령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간밤에 내린 새 눈이 뽀드득뽀드득
사냥꾼의 걸음을 부추겼고
정처 없이 눈밭을 걷던 사냥꾼은
길게 이어진 다른 누군가의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발자국의 크기와 보폭으로 보아
어린아이 내지는 여자가 틀림없었고
이런 추위에 홀로 어디로 향하던 걸까…
발자국을 따라간 사냥꾼은
얼마 가지 않아 발자국의 주인과 마주쳤습니다.
모포를 둘러싸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사냥꾼을 올려다보는 여인…
하지만
여인은 이미 사망한 뒤였습니다.
눈썹과 속눈썹에 하얗게 낀 서리에
반쯤 올라간 눈동자는 더욱 또렷해 보였고
얼음같이 창백한 입술은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천사라도 본 것일까…
허공을 응시하며 미소 짓는 여인을 보며
사냥꾼은 생각했습니다.
그때
멀리서 다가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한 사냥꾼…
여인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사냥꾼은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목소리 높여 불렀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발견하고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던 사냥꾼은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여인은 길을 향하던 중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멈춰서
자신이 떠나 온 마을을 향해 뒤돌아 앉아 있었던 것일까…
마치 자신을 발견해달라는 듯…
사냥꾼의 마음은 불안으로 동요하기 시작했고
여인의 앞에 서서 여인을 마주 본 사냥꾼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섬뜩한 생각에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여인의 치켜세운 도발적인 두 눈과
입가의 뒤틀린 미소…
여인이 둘러쓴 모포를 걷은 사냥꾼은
여인의 품에 안겨 죽은 아기를 발견했습니다.
때마침
사냥꾼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도착했고
여인을 발견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사냥꾼은 분노와 당혹감을 보았습니다.
무리 중 한 남자가 여인에게 달려들어
여인의 품에 안긴 아이를 떼어 놓으려 했지만
돌덩이처럼 얼어붙은 여인의 두 팔은
좀처럼 아기를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인의 품에서 죽은 아기는
여인의 아기가 아니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각 집을 돌며
식모살이를 하던 여인이 임신하자
마을은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마을에 남편을 둔 아낙들은
남편을 의심하는 동시에 여인을 비난했고
집요하게 아기의 아빠에 대해 추궁했지만…
여인을 탐했던 많은 남자들…
여인 또한 아기의 아빠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일자리를 잃고 생계가 막막해진 여인은
유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기를 잃은 슬픔과
마을을 향한 증오에 휩싸인 여인은
마을의 아기를 훔쳐 눈보라 치는 평원으로 달아났고
여기… 이곳에… 뒤틀린 미소와 함께 차갑게 얼어붙어
자신을 쫓아온 마을 사람들을
경멸이 담긴 두 눈으로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여인의 품에서 아기를 떼어낼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도끼로 여인의 두 팔을 자르고 나서야
아기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두 팔 잃은 여인의 곁에 서서
멀어지는 마을 사람들을 보던 사냥꾼은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이 밀려들자
두 손을 꽉 쥐었습니다.
그렇게
사냥꾼은 여인의 곁을 오래도록 지켰습니다.
겨울의 차디찬 바람에
피부의 감각이 무디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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