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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꺼는 그 유명한 이수스 회전이네요.
이수스 전투 - 제2회전
그라니쿠스 전투를 승리한 후, 기원전 333년 8월경 킬리키아 지방으로 들어온 알렉산드로스는 비로소 진지해진 다리우스가 바빌론에서 병사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책에서 60만이라고 과장을 떨었지만 어쨋든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군대의 규모를 훨씬 압도하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다리우스의 행동은 빨랐다. 다리우스가 병력을 모은다는 소문이 알렉산드로스의 귀에 들어갈 즈음엔 이미 다리우스가 그의 대규모군대를 이끌고 접근해오고 있었다. 이것이 아래의 알렉산드로스의 진행방향의 불합리함의 원인이 되는데, 알렉산더는 파르메니온이 앗시리안게이트를 점령할때쯤 이미 다리우스가 이틀거리에 있는 Sochoi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햇다.
어쨋든 위의 맵을 보면서 설명하면, 다리우스가 그의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오는 동안, 알렉산더는 파르메니온으로 하여금 이수스 해안을 장악하도록 명령했다. 다리우스가 해안을 먼저 장악하게 된다는 것은 해안으로부터 들어오는 보급이 쉬워질 뿐만 아니라, 해상과 육지 양동작전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파르메니온이 해안을 장악하면서 아시리안 게이트를 장악하자 다리우스는 북쪽으로 진행방향을 바꾼다. 이후 아마니안 게이트를 지난 다리우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장악했던 이수스를 손쉽게 손에 넣게 되자, 알렉산드로스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피나루스 강을 건너 오는 적을 기다리면서 방어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
이제 알렉산드로스의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해상권은 전부터 페르시아가 잡고 있었고, 동쪽 남쪽 어느쪽도 아군은 없었기 때문에 보급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북으로 가서 다리우스와 결판을 내는수 밖에 없엇다.
1. 지형과 병력
지형은 그라니쿠스 전투 때와 비슷하게 피나루스 강이 양쪽 군대사이를 흐른다. 그러나 그라니쿠스 전투때와는 달리 한쪽으로 경사가 진다는 점이 다르다. 이래서는 평지가 좁다. 그러면 당연히 군대규모가 작은 알렉산드로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데, 이런 이유에 대해서 다리우스가 겨울철인데다가 규모가 큰 부대로 인한 숙영의 불편함과 더불어 보급의 어려움 때문에 페르시아에게 불리한 지역으로 먼저 나와서 싸울수 밖에 없었다는 견해가 있는데, 위에서 이미 보았다시피 보급로를 끊긴 것은 알렉산드로스쪽이라는 점에서 동조하기가 힘들다.
아시리안 게이트가 이미 파르메니온의 손에 있음을 알고 북쪽으로 우회하여 알렉산드로스의 뒤통수를 때리는 위치로 가는 재주까지 보인 다리우스가 왜 갑자기 이런 지형에서 전투를 벌렷을까? 젊은 알렉산드로스의 충동질에 대국 페르시아의 힘을 보여주겟다는 오기심이 동한 것일까? 어쨋든 전투장소를 정하는 주도권은 알렉산드로스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연합군은 보병이 4만 1천, 기병이 6천이었고, 페르시아 군은 (플루타르코스가 60만이라고 과장한 것과는 달리)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약 20만이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다리우스는 중앙에 그리스 용병을 배치하고 양익으로 the Cardaces라 부르는 페르시아식 팔랑크스부대를 배치했다. 그러나 좁은 지형으로 인해서 군대의 배치를 2열로 할수 밖에 없엇다. 또한 다리우스는 강건너 마케도니아 우익의 오른쪽으로 부대를 배치한다. (이 부대를 이용하여 배후를 칠 생각이었던것 같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의 생각에는 강을 건너오는 적을 맞아 방어한다는 생각 따위는 없엇던 것 같다. 다리우스가 강건너 오른쪽으로 배치한 군대에 대응하여 이동력이 좋은 경기병과 경보병 궁수를 약간 배치했다. 공격하는 것은 알렉산드로스 자신이고, 강을 건너는 것도 알렉산드로스 자신이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 군대가 강을 건널때까지만 버텨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는 파르메니온이 지휘하는 좌익의 팔랑크스 부대와 그리스 기병을 좌익에 배치한다. 여기에 대응하여 다리우스는 자신의 기병 대부분을 페르시아 우익에 집중했다.
2. 전투
페르시아 우익에 집중된 기병이 파르메니온이 지휘하는 좌익을 공격하는 것으로 전투는 시작된다. 이에 (2년 뒤에 벌어지는 가우가멜라 전투처럼) 그리스 기병과 파르메니온의 팔랑크스 부대가 같이 버티기에 들어간다. 페르시아 기병이 강을 건너 돌진해오자 파르메니온의 좌익과 그리스기병은 비스듬히 후퇴하면서 마케도니아 중앙의 배후를 내주지 않으면서 시간을 번다.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컴패니언 기병대는 강을 건너 오른쪽으로 진행했다. 이에 페르시아의 좌익에 있던 페르시아 팔랑크스 부대가 같은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것이 페르시아 좌익과 중앙에 틈을 만들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벌어진 틈에 착안하여 히파이스피스트와 그의 기병대로 틈을 비집고 페르시아 중앙의 배후와 왼쪽을 공격하는데 성공한다. 이때와 동시에 마케도니아 중앙이 강을 건너 페르시아 중앙을 앞쪽에서 공격했다.
다리우스도 중앙에서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그의 호위병이 전멸하자 어쩔수 없이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스 역사가들은 후일 이를 비겁한 행위로 곧잘 묘사하지만, 다리우스는 자신이 죽게 되면 발생할지도 모를 일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선에서 이탈한 것 뿐이엇다. 어쨋든 다리우스가 퇴각하는 것으로 전투결과는 명백해졋다.
다리우스가 열심히 싸운것에 대한 결과인지는 모르겟지만, 알렉산드로스의 피해도 만만치 않앗다. 450명이 죽고, 4천명이 부상당했다(Curitius). 페르시아군의 희생자는 보병 6만, 기병 1만, 포로 4만이었다.(Curitius, 아리아누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이 동일하다.)
다리우스는 처자식을 내버려둔채 유프라테스 강너머로 도망간다. 이후 다리우스는 유프라테스강 서쪽의 모든 영토를 조건으로 자신의 처자식을 돌려줄 것과 강화할 것을 요구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거절한다.
출처-http://blog.naver.com/gladius73/80025149123
[출처] 이수스 전투 - 제2회전|작성자 글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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