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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느 때처럼 며칠간의 먹을거리를 사서 집문을 여는 중이었다. 외계 종족과의 전쟁보다도 무서운 것이 취업난이던가. 나는 직업군인이 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자취생이었다.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처음보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나의 전 여자친구였다.
"제니, 여긴 어쩐 일이야?"
그녀는 어떻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일까? 무서웠다. 그녀는 서구적이고 예쁜 턱을 움직이며 말했다.
"톰, 널 도와주러."
날 도와준다는 게 무슨 말일까. 갑자기 나타난 그녀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녀만큼 날 걱정해준 사람도 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넌 나랑 헤어졌잖아. 갑자기 뭘 도와준다는 거야?"
"내가… 너랑 헤어졌었나?"
그녀는 이상한 말을 했다. 난 이상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녀의 말이 이상해서가 아니었다. 모든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잠깐, 제니… 넌 나랑 사귄 적이 없잖아. 우린 만난 적이 없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만난 적이 없다면서 어떻게 날 알아보지?"
나는 제니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봤다. 낯설다. 처음보는 여자의 얼굴이다. 내가 조금전 문을 열었을 때 처음 본 사람이라고 생각한 느낌.
그러나 제니는 나의 전 여자친구이다. 그러나 난 그녀와 헤어진 적이 없다. 그녀는 내가 시험에 합격하고서 만난 사람이다.
"넌… 나랑 만난 적이 없잖아."
"맞아."
제니는 날 빤히 바라다보았다.
"혼란스러워. 내 기억이 어떻게 된 거지?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제니가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몸으로 날 안아주었다.
"수고했어."
"무슨…? 내가 뭘 수고했단 거지?"
"인류를 위해 너가 했던 희생 말이야."
"무슨 희생?"
"외계종족과의 전쟁에 참전했었잖아."
순간 불현듯 미래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난 시험에 합격한 후 그녀와 사귀었고 외계종족과의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와는 헤어진 적이 없다. 갑자기 이 세상이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나는 나를 감싸는 물리법칙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진정해, 톰."
그녀는 나를 더욱 꽉 안았다. 나의 힘으로 그것을 벗어날 수가 없이 조여왔다.
"어떻게 된 일이지? 전쟁은 어떻게 된 거야.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거야?"
"놀라지 말고 창밖을 봐."
나는 창밖을 보았다. 초록색 잎이 무성한 여름날의 나무, 4차로 도로를 달리는 차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다만 그것들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난다거나, 순식간에 낡아버린다거나 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톰, 전쟁은 끝났어. 우리가 이겼어."
나는 오소소하게 소름이 돋으며 제니에게 물었다.
"난 죽은 거야?"
"아냐, 넌 절대 죽지 않아."
나는 톰에게 말했다.
"톰, 넌 절대 죽지 않아. 우린 하나야."
나는 톰의 공포에 떠는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내 예전 얼굴을 바라보니 조금 낯설었다.
"제니… 넌… 누구야?"
톰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너야, 톰."
톰이 일그러진 세계의 공포속에서 사실을 깨달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외계종족과의 전쟁을 위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먼 거리를 오갔던
톰이 지구에 왔을 때 지구는 이미 괴리감이 들 정도의 발전을 이룬 뒤였다. 지구인들은 모두 단일 지성으로 통합되었고 톰도 그 지성에
융합되었어야만 했다. 그 지성은 톰을 융합시켰고 제니의 환상을 본 것은 톰의 적응시점이었다. 톰이 처음 제니를 봤을 때 헤어졌다고 느꼈던 것은, 그녀와 헤어진 사실은 없지만 그녀가 단일 지성에 융합됨으로 인해서 그녀와 사귀는 것이 불가능해졌음을 톰이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가 된 우리(전 인류)는 생각했다. 어쩌면 톰이라는 인격체를 저 방에 놔둔다는 것도 재밌겠다고 말이다. 나는 당분간은 톰을
그 시간과 그 공간에 두기로 하였다. 그 당분간이 톰에게는 영원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아직 내가 확신할 수 없는 것은,
그 공간에 있는 것이 실제 톰인지, 혹은 뭔가가 거기 있다고 믿는 나의 마음이 거기 있는 것인지 하는 것이다.
둘 중 무엇이 진실이든 거기에 어떤 존재의 생각들은 시간을 따라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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