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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연기가 뒤섞인 불구덩이 속에 한 남자가 뛰어들었다.
건물 잔해 속에서 죽은 어미 옆에 울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는 남자의 손에 길러지게 되었다.
남자는 킬러였다. 사람을 죽이는 것 외에 아무런 재능이 없던 남자는 아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암살, 살인에 특화된 기술들을 가르쳤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는 그가 기술을 가르치는 족족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아이가 소년이 될 무렵부터 남자와 함께 킬러 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 남자는 소년이 난간 위에서 무언가 읽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에 보던 암살 인원 리스트가 아닌 고전소설책이었다. 소년은 남자가 온 것도 모르고 책에 열중해 있었다.
"재밌냐?"
남자가 옆에 걸터 앉으며 물었다. 소년은 갑작스런 기척에 깜짝 놀랐으나 그를 보고 안심했다. 그러고는 반사적으로 접은 책의 표지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뭔가 아쉽다는 듯이.
남자는 소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연속적으로 소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연이어 그가 그저 자기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도.
"소설가가 되고 싶어?"
"아니. 선생님."
"허. 선생님이?"
"그런데 못 돼."
"왜? 킬러라서?"
"킬러에 재능이 있으니까. 하고 싶은 것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남자는 소년이 안타까웠다. 자기가 원하는 진로가 아닌 자기가 할 수 있는 진로만을 향해 걸어가는 저 어린 아이의 등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토 붙이듯 불어가는 소년의 꿈과 미래의 형태에 남자의 틀을 그대로 가져다가 스스로 찍어 눌러버리는 상황이.
얼마든지 뭉치면 다시 쓸 수 있는 겉부분을 필요없다며 버려버리는 소년의 현실이.
킬러의 길은 일방통행.
타겟이 정해지면 죽이는 것.
뒤도는 순간 도사리는 죽음.
그런 외길 인생을 가르쳤기 때문에 소년은 한 곳밖에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남자는 생각하며 책임감을 느꼈다.
남자는 그 날 이후 소년과 따로 행동했다. 소년조차 불안할 정도로 부주의하고 활개를 치는 매일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위에서 지령을 받았다.
타겟은 자기를 키워준 남자.
소년은 남자와 함께 집에서 타이밍을 쟀다. 혹여 상대가 눈치채지 않을까, 주머니에 날붙이를 쥔 손을 넣은 채.
남자는 오랜만에 부엌에서 바쁜 하루를 지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냄새와 소리가 시시각각 변했다.
기회가 왔다.
남자가 시장으로 향하고 얼마 뒤, 소년 또한 뒤를 밟았다.
그리고 남자가 골목으로 돌아서는 순간, 소년은 뒤에서 날붙이로 찔렀다. 등을 찌른 날은 가슴팍을 뚫고 선혈을 튀겼다.
남자는 있는 힘을 다해 가슴팍의 날붙이를 움켜쥐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힘에 이끌려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남자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고 소년은 인상을 찌푸린 채 죽어가는 몸뚱아리를 내려다봤다.
"왜 등을 내줬지?"
"왜 등을 찔렀지?"
남자는 되물으며 실없이 웃었다.
"사는 게 행복하니?"
"……."
"살기 위해서 사는 거겠지. 그게 뭐가 행복하겠냐."
"킬러의 삶은 일방통행."
"뒤돌아서면 죽음뿐."
남자는 소년의 얼굴을 힘없이 올려다봤다. 침음을 눈물 대신 흘리며 떨리는 어깨를 감추려 주먹을 다부지는 소년의 얼굴은 천조각처럼 구겨져 있었다.
남자는 고백한다.
"불구덩이에서 널 구해냈을 때, 네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가진 모든 걸 네게 가르치기로 다짐했다. 실제로 그랬고. 그런데… 네가 살기만을 바랐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네가 한쪽만 바라보게 되었고."
"난…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오른쪽 가슴 주머니."
소년은 남자의 가슴 주머니를 뒤졌다. 붉은 것이 젖은 갈색 봉투가 들어 있었다.
그 곳에는 소년의 이름이 적힌 처리 완료 리스트.
그리고 소년의 가명이 적힌 주민등록등본, 여권 등 정교하게 위조된 인적사항이 적힌 문서와 증서 등이 들어 있었다.
벙쪄 있는 소년의 서면 아래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상황을 전했다.
"선생님 되고 싶다며. 선생님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
"나는, 나는 죽이는 것밖에 할 줄 몰라. 킬러의 삶은 일방통행. 돌아서면 죽음뿐!"
"사람이 바라보는 쪽으로만 간다고 앞이 아니더라. 옆으로 돌아서도 뒤로 돌아서도 나아가는 쪽이 앞인 거야. 넌 겁을 내고 있는 것뿐이야. 겁내고 뒷걸음치다가 머리통 깨지는 건 누구나 다 똑같아."
"……."
"진정 행복한 사람은 돌아보지 않아도 뒤가 든든하더라. 잠깐이지만 나도 그걸 느꼈던 것 같아."
남자는 주먹을 들어 그의 무릎을 터치했다.
"사람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낳는 거야. 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게 그냥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너는 축복받은 알 같은 거야. 뭐든지 할 수 있고 얼마든지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남자의 주먹이 바닥에 떨어졌다.
"살기 위해 사는 길은 여기까지다. 내가 짊어지고 갈 테니까. 하고 싶은 걸 하고, 행복하게 살아라."
"……."
"뒤로 돌아."
소년은 뒤로 돌았다.
"앞으로 가."
턱끝까지 흘러내린 눈물을 애써 감추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봐. 간단하잖아."
소년은 남자가 들고 있던 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허전한 온기를 정겨운 냄새가 흐렸다.
미역국 끓인 냄새였다.
소년은 남자가 해놓은 밥과 반찬으로 상을 차리고 그 위에 상자의 내용물을 꺼냈다.
모양이 조금 뭉개진 케잌과 작은 촛불 하나.
소년은 밥에 미역국을 말아 한 입 크게 뜨고 입 안에 욱여 넣었다.
최고의 생일 한 상이었다.
"Happy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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