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
글: 월향
#1
“야, 야. 오늘 이시현 안 나오냐?”
“몰라. 아, 오늘 걔한테 돈 좀 뜯어내야 되는데. 왜 안 오냐?”
이시현. 학기 초에는 다른 애들과 잘 어울리는 애였다. 공부도 잘하고, 반장도 하고. 나름 인기 있는 애였는데 어느 순간 웃음기가 사라졌다. 헤실헤실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애는 더 이상 그런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드르륵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 담임선생님이 오셨다. 오늘도 쓸모없는 하루가 시작되겠지.
“...”
뭐지. 이상하다. 왠일로 담임이 분위기를 잡지.
“쌤. 무슨 일 있으세요?”
“쌤쌤~ 오늘 수행평가 내야 하는데 주번 하루만 빼주시면 안 돼요? 제발요~”
“얘들아. 선생님이 너희에게 말해야 할 게 있는데.. 시현이는 앞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을 거다. 시현이 장례식이 오늘 있을 거라고 하는데, 가까운 친척끼리만 이뤄진다고 하니까 그렇게 알고. 우리 시현이를 위해서 잠시 묵념하자. 자세한 건 묻지 마라.”
뭐?
“자, 묵념.”
이게 무슨 말이야. 죽었다고? 이시현이?
“미친 크크킄 그 새끼 결국 자살했나?”“와 씨. x될 뻔 했네. 나 아직 생일 안 지났는데, 존나 다행이다. 소년법 나이스~ 한승우 넌 생일 어제였는데 어쩌냐 키키킼”
“와 x발 크크킄 그래봤자 자살이잖아. 걘 분명 주위사람한테 피해가는 거 싫어서 아무 흔적도 안 남겼을 걸? 시현이가 마지막까지 날 생각해주는구나~”
수군거리는 소리가 세 자리 앞인 나한테 까지 들린다. 젊은 담임은 사립학교에서 힘이 없다. 교내에 학교폭력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위험하겠지. 이건 사립학교에 들어온 우리의 탓일까 시현아? 정말로 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야? 나에게 아무 말도 없이?
#2
“야 이시현.”
“응?”
“너 뭐해. 수행평가 이미 냈잖아?”
“아, 그냥 도와주려고.”
실수했다. 눈치가 없었다. 이미 자기 몫은 끝냈으면서 왜 또 하고 있었을까. 뻔한데. 분명 다른 애들 것 까지 하고 있었던 거겠지. 그래, 넌 그런 아이였지. 더러운 놈들이 너를 괴롭히기 시작하니까 그 낌새를 눈치 챈 네 친구들이 널 껄끄러워 했고, 넌 그런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혼자 다니기 시작했지. 도대체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는데. 너를 갉아먹는 그 애들의 행동들에 이유는 없잖아. 그냥 네가 꼴 보기 싫을 뿐이겠지.
“하지 마.”
“응?”
“네 꺼 이미 다 한 거 알아. 하지 말라고. 너 박건후랑 친했잖아. 가서 놀아.”
“그건 안 돼.”
“왜?”
“...”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웃었고, 다시 글을 써내려갔다. 난 너의 이런 미소를 보고 싶었던 게 아니야 이시현.
#3
“야 이시현.”
“어?”
“밥.”
“밥?”
“급식실가서 같이 밥 먹자고.”
“난 진짜 괜찮아, 연아.”
“됐으니까 같이 가.”
난 나름 너에게 진심을 보였다. 동정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너를 향한 내 마음. 하지만 그 마음을 보여줄 순 없었다.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이시현. 왜 박건후랑 같이 밥 안 먹어? 걔도 나처럼 네가 다시 다가와주길 바랄 걸.”
“...”
우리는 조용히 급식실로 가 줄을 섰다. 우리 차례가 거의 다 되었을 즈음 그 애는 입을 뗐다.
“걔네가 나한테 태클을 걸기 시작했을 때, 건후한테 물어봤던 적이 있었어. 만약에 우리반에 누가 따돌림 받으면 어떨 것 같냐고.”
“...”
“걔는 우리 반에 따돌림은 없을 거라고 했지. 우리반이 유독 서로 친한 편이니까. 근데 걔가 그러더라고. 그래도 만약에 왕따가 생기면 자기는 그 애를 도와주진 못할 것 같다고. 괴롭히거나 동조하진 않겠지만 도와주지도 못할 것 같대. 그 애의 모습이 자기의 모습이 될까봐.”
“그런 게 어디있어. 방관도 똑같아. 방관도 폭력이야. 다들 알고 있잖아.”
“알고 있지만 달라지는 건 없어. 가해자는 가해를 하고 방관자는 모른 척 하고, 피해자는 피해 받잖아. 그리고 방관자라고 해서 나쁘다기 보다는 이해해주는 편이잖아. 너도 힘들었겠다하고. 다들 너 같진 않아 연아. 넌 특별한 거야.”
“그럼 너도 특별하네. 너도 일부러 혼자 다닌 거잖아.”
“그런가?”
그 애는 또 웃었다. 아니 이런 거 말고 시현아. 나를 위한 미소 말고.
#4
“모두 고개 들어라. 시현이가 좋은 곳에 갈 수 있게 오늘 자기 전에 다들 기도해줬으면 좋겠다. 다들 핸드폰 내고. 수업 시작하자.”
지잉-
[연아. 전화벨이 울리면 옥상으로 뛰어.]
...이시현? 이시현일리가 없는데. 그 애는 내 전화번호도 모르잖아. 하지만, 하지만 날 연이라고 부르는 건 그 애 밖에 없는데.
마음속에 혹시 모를 기대가 심어졌다. 사실은 죽은 게 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그래. 넌 내 마음을 알고 있었잖아.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지잉- 지잉-
그 순간 공기가 뒤틀렸다.
“이게 무슨..”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지잉- 지잉-
반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담임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나는 방금 핸드폰 껐는데.”
“뭐야, 이거. 이거 누구야.”
“근데...왜 전화번호가 이시현 번호야?”
“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박건후. 넌 이시현한테 전화 왔어?”
“어..나는 시현이 저장해놔서 이시현으로 뜨는데. 010-xxxx-xxxx?”
기대감이 싹튼다. 그래. 시현이는 아니야. 저렇게 전화가 왔다잖아. 분명 뒷문으로 들어오면서 지각해서 죄송하다고 말할 거야.
“어? 나도 그 번혼데?”
“나도 이시현이야.”
“뭐야..왜 죄다 이시현인 건데..”
핸드폰을 바라봤다. 010-xxxx-xxxx. 맞다. 이시현이다. 내가 가장 먼저 받으면 시현이가 역시 연이가 제일 먼저 받았다고 좋아 해줄지도 몰라.
뚝
교실이 적막에 쌓인다. 동시에 전화가 끊겼다. 왜. 이제 막 받으려고 했는데, 왜.
“야 한이연.”
“...”
“야 한이연! 너 방금 전화 받으려고 했지.”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지잉- 지잉-
그래. 시현아. 나도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
“잠깐만 이연아. 선생님이 받을게. 무슨 오류가 있어서 동시에 전화가 오는 것 같은데, 시현이 부모님 같으니까 선생님이 받고 얘기해볼게.”
#5
“여보세요?”
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전화가 끊겼다.
“여보세요? 시현이 아버님이세요?”
뚝.
선생님의 전화와 함께 불이 꺼졌다. 우리 교실만이 아니다. 학교 전체가 어두웠다.
“아아아악!”
“누구야! 진정해. 선생님이 일단 교무실에 다녀...”
박건후다. 선생님이 빛을 비추자 이미 피로 뒤덮혀 있는 박건후가 보인다.
지잉-
[보지마. 청소도구함으로 들어가서 눈을 감아.]
우당탕탕!
모두가 도망을 친다. 틈을 타 시현이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눈은 감지 않았다. 청소도구함의 문 틈새를 통해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보고, 들었다.
“문 좀 열어주세요. 밖에 누구 없어요?”
“얘들아 문 좀 열어줘! 밖에 아무도 없어? 야!”
문은 열리지 않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지각한 다른 반 애들이 오갔는데. 들리지 않는 걸까.
“아아아악!”
“아악 살려줘!”
애들은 하나 둘 픽픽 쓰러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피를 토해내며 쓰러지기만 한다. 도미노 같은 시체들. 시체들이 남긴 건 외마디 비명과 더러운 피 뿐이다.
“제발..제발..”
어. 한승우다. 시현이를 향한 괴롭힘은 한승우로부터 시작됐다.
“잘못했어. 이시현. 제발. 제발 살려줘. 제발.”
한승우는 무릎 꿇고 빌었다. 더러운 시체들 속에서 바닥에 무릎과 머리를 맞대고 빌어댔다. 우스운 꼴이다.
탁-
어? 불이 켜졌다. 자세히 보니 시체들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멀리서는 경찰차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교실의 문이 열렸다. 선생님들은 한승우를 둘러쌌고 교실 밖에는 다른 반 애들이 우글대며 우리 반 애들의 이름을 불렀다. 나와 시현이의 이름은 없었다.
지잉-
[결국 봤구나.]
지잉-
[무서운 거 보게 해서 미안해.]
지잉-
[좋아했어, 연아.]
눈물이 난다. 이시현이 보고싶다. 너만 나를 보고 왜 나에겐 보여주지 않는 거야.
“으흑.”
#6
그 일 이후로 한 달이 흘렀다. 선생님은 내 울음소리를 듣고 나를 찾으셨고 내가 그곳에 숨어있었기에 살았다고 생각하셨다. 아마 공포에 떠는 거라 생각하셨겠지. 경찰은 나를 유일한 목격자로 삼았지만 동시에 울린 전화, 문이 열리지 않는 교실, 소리 지르던 애들. 모두 믿을 만 한 건 없었다. 한승우는 나를 제외한 모두를 살인한 죄로 구속되었다. 시현이를 향한 학교폭력은 죄목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승우는 그곳에서도 계속해서 살려달라는 말을 했고 정확히 일주일 뒤 자살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다른 애들이 죽은 방식과 동일하다고 한다. 그리고 시현이는 죽은 게 맞았다. 그 애가 보낸 전화기록과 문자는 모두 사라져 있었다.
“김이연님.”
“네.”
“들어가실게요.”
난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상담을 통해 내가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도와준다고 한다.
“이연이 어서오렴. 반갑구나.”
“네.”
지난 번 상담과 비슷했다. 그냥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밥은 뭘 먹었는지. 쓸모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시현이가 보고싶다.
“그래. 이연아. 이연이는 가장 소중한 게 뭐니?”“글쎄요.”
“음. 그럼 이연이가 뭘 할 때 가장 즐거워?”
“아. 저는 살아있는 걸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걸 좋아해요.”
“...”
“그리고 그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것도 좋아해요.”
좋아해, 시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