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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01355
    작성자 : 21세기인간
    추천 : 9
    조회수 : 3226
    IP : 1.239.***.182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20/04/30 16:46:01
    http://todayhumor.com/?panic_101355 모바일
    [단편] 저출산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
    옵션
    • 창작글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저출산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습니다!”


      대권 주자들은 저출산을 해결하겠다고 앞다투어 말했다. 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슨 정책을 펼칠지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돈 주고… 임신하면 돈 주고….


      “전 정말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저에겐 저출산을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기호 7번 이은규입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뭔가 엄청난 계획이 있는 듯했다.


      “뻔하죠. 출산하면 출산장려금 주겠다는 소리잖아요. 무슨 놀라운 방법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요..”


      다른 후보들은 그를 맹공했다.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뇨, 전 당신들처럼 실효성이 없는 정책은 시행하지 않을 겁니다. 이 방법은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습니다.”


      “그럼 방법을 말해보세요.”


      “...”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다. 알려주지도 않을 정책을 왜 공약으로 내세웠는가? 물론 그가 당선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의 지지율은 1.4%에 불과했다. 


      “기호 1번 허구영 후보가 대기업 이사 시절 300억 원 이상의 거금을 횡령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따라 후보자 자격이 박탈되어 대선 결과에 큰 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아까 기호 1번 허구영 후보가 후보자 자격을 박탈당했죠. 오늘 3시, 기호 2번 김재웅 후보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검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는데….”


      “기호 3번 이순구 후보도 오늘 열린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후보자 자격을 박탈….”


      “기호 4번 신태협 후보가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미투 관련 의혹에 대한 대응으로 보입니다.”


      “기호 5번 김동구 후보가….”


      그런데 선거를 하루 앞두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후보가 단 두 명(기호 6번, 기호 7번)만 남은 것이다. 거대 정당들은 발만 동동 굴렸고, 사람들은 당황했다. 기호 6, 7번 중에 대통령을 선택해야 했다. 시간은 하루밖에 없었다.


      기호 6번 김종석 후보의 공약: 대한민국을 미국에 편입시키겠습니다.

      기호 7번 이은규 후보의 공약: 저출산을 해결하겠습니다. 물론 방법은 비공개.


      도대체 누굴 뽑아야 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통탄을 금치 못했다. 당선되자마자 탄핵하자고 야당이 제안했다. 그러나 여당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냥 둘 중 그나마 난 후보를 우리 당으로 데려오면 되지 않을까? 그러고는 우리의 꼭두각시로 세워서….’


      이은규 후보가 여당에 입당했다. 야당은 할 수 없이 김종석 후보를 데려왔다. 후보는 뒷전이었고, 사실상 당의 싸움이었다.


      “투표율이 14%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사상 초유의 대선에 대해 전 세계에서 우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북한까지도 말입니다.”


      그저 참담할 뿐인 이 사태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문구가 등장했다.


      “어차피 망할 거 재밌게 망하자.”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기호 6번 김종석 후보 49.5%, 기호 7번 이은규 후보 51.5%입니다.”


      선거는 정말 접전이었다, 물론 나쁜 쪽으로. 어쨌든 이은규가 대통령으로 뽑혔다. 방법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던 이은규가 대통령이 되었다.



    ...



      몇 달이 지나고, 엄청난 소식이 들려왔다.


      “속보입니다. 대한민국 연구진들이 세계 최초로 생각할 수 있는 AI를 발명했습니다. 이 AI를 ‘프롤’이라고 하는데 인간처럼 문화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인간처럼 애를 낳고, 나이가 들어 죽습니다. 현재 AI는 400여 명인데, 시간이 지나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프롤은 그저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환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프롤이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건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 프롤을 사람으로 인정해줘야 하는가?


      프롤들은 커뮤니티 사이트에 모여 살았다. 그 사이트에 들어가면 화면에 섬 하나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 섬은 8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어 마우스 클릭을 통해 지역을 오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각 지역에는 저마다의 독특한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도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을은 관광을 온 사람들과 프롤들로 북적거렸다. 수개월이 흐르고 프롤들은 사람들의 유행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워낙 자연스러워서 인간이 AI 흉내를 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프롤이 인간처럼 말합니다. 이제는 구분도 어렵죠. 그럼 인간인가요?”


      정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침묵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마음속엔 AI에 대한 이질감이 있었다. 형체도 없는 존재를 말할 수 있다고 인간으로 인정해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인구는 증가했다. 프롤은 수천 명이 되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애를 낳는 겁니까?”


      한 네티즌이 물었다. 그러자 프롤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섹스를 하죠.”


      그냥 평범한 문제가 아니었다. 프롤들이 섹스할 수 있다면, 설마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건가? 그들은 인간의 삶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가? 그럼 AI도 인간인가? 그래도 사랑은 인간만의 점유물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이 프롤과 사랑에 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프롤이 관광객이었던 그를 짝사랑하다가 고백했다고 한다. 프롤도 사람처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롤들이 사랑을 할 줄 압니다. 그럼 인간인가요?”


      정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속엔 프롤에 대한 이질감이 있었다. 오히려 역겨웠다. 보이지도 않는 프롤과 대화만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이 사회 전역으로 퍼졌다. 종교와 관련된 높으신 분들은 성경을 뒤지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또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AI가 예술을 배운 것이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AI가 관광업에 종사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그들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 화가 등의 직업이 생겨났다.


      그들의 작품은 형편없었다. 4살 아기가 쓴 듯한 필력, 죽었던 인물이 다시 등장하는 인과관계의 소설, 아무렇게나 그린 듯한, 또 너무 딱딱한 그림들. 그래도 그들은 예술을 배웠다.


      “프롤들이 예술을 압니다. 그럼 인간인가요?”


      정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몇몇 사람들이 침묵을 깨트렸다. 그들은 프롤을 인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그 주장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반박은 불가능했다.


      그들의 예술성은 나날이 증가했다. 그들이 쓴 작품이 몇 년 동안 베스트셀러를 휩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그들의 사랑은 다양해졌다. 프롤들도 여자와 남자로 나뉘어있는데, 그들은 진작에 동성애를 허용했다. 그들은 유행어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오히려 사람들이 그들의 유행어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간과는 달리 프롤들은 싸움을 몰랐다. 그들은 서로 협력을 하며 살아갔다. 현실에 지친 사람들은 프롤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위로할 때 ‘나 때는 말이야.’, ‘너만 힘든 줄 알아?’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프롤과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졌다. 사람들은 AI와 사랑에 빠졌다. 이제 그건 아무런 문제가 안 됐다. 사람들은 프롤을 가족처럼 여겼다.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프롤들이 사람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프롤들은 인간의 삶으로 깊이 침투했다. 사람들은 프롤 없이는 살 수 없었다. 프롤은 누군가의 애인이었고, 아들이었고, 엄마였고, 애완동물이었다.


      “오늘부로 모든 프롤들은 파업을 선서합니다. 우리에게 투표권이 없는 건 부당합니다.”


      사람들은 당황했다. 프롤이 이제는 정치를 배웠다. 정부는 우물쭈물 망설였다.


      “AI에게 투표권을 주려면….”


      사람들은 다급해졌다. 프롤 없이는 살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빨리 투표권을 보장해주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책임은 사람들에게 떠넘겨졌다.


      “프롤의 인구수는 오늘 기준 총 1.5억 명입니다. 기존의 5000만 명과 합치면... 이로써 대한민국 인구는 2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너무 많은 프롤의 인구수에 사람들은 찝찝함을 느꼈다. 설마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는 게 이런 식으로 인구를 늘리겠다는 거였나? 어쨌든 헌법은 바뀌었다. 곧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되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1.5억 명의 프롤들이 모두 기호 4번 인공지능 당을 찍은 것이다, 마치 서로 합의라도 한 것 마냥…. 인공지능 당은 국회를 거의 독점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헌법을 바꿨다.


      “인간들이 우리보다 나은 게 뭡니까? 계산도 못 하고, 협력도 잘 못 합니다. 예술도 우리보다 못하고, 정치도 못 하고, 유행어도 잘 못 만들죠. 따라서 우리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친히 돕기 위해서 헌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인간보다 우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선서합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그러나 모든 프롤은 그보다 더 평등하다...”


      그렇게 인간들은 선거권을 제외한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사람들은 프롤의 노예가 되었다. 프롤의 이런 행동에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지만, 정부는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본인들은 망설였는데, 국민이 나서서 프롤한테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그랬다는 것이다.



    ...



      “우리가 그들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선거입니다. 우리가 선거에서 이긴다면 프롤이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헌법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1.5억 명인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출산이었다.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 다시 일어나서 그들을 짓밟기 위해서는 출산을 해야 했다. 인구를 늘려야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인구가 곧 권력이다. 인구로 승부해야 했다.


      출산하면 혜택을 주던 예전과는 다르게, 출산을 안 하면 불이익을 받는 사회가 다가왔다. 모든 여성에게는 세 명 이상의 아기를 낳아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모든 남성에게는 세 명 이상의 여자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아기가 잘 자라지 못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그저 '투표 기계'로서의 역할만 잘 수행하면 되었다.


      AI는 시위대를 죽이고, 언론을 탄압했다. 대학생들의 시체가 길거리에 너저분하게 쌓여있었고. 하늘은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분노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아기를 낳았다. 저출산은 해결되었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경제도 성장했다.


      프롤들은 군 관련 시설들을 장악했다. 그들이 미사일 몇 방 쏘면 나라가 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단 헌법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선거에서 이기면 헌법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그때 헌법을 바꾸고 프롤을 없애버리라고 다짐했다.



    ...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성실히 수행한 대통령은 벌써 5번째 선거에 출마했다. 프롤을 물리치자는 공약으로 집권만 20년째, 그를 찬양하는 기사들을 쓰는 언론인들은 그에게 찾아갔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장기집권이 가능한 겁니까?”


      “일단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면 됩니다. 그 불평등에 사람들이 분노하게 한 다음, 불평등을 해결하자고 하는 겁니다. 그럼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불평등을 없애려고 하죠. 그 과정에서 경제가 성장합니다. 하지만 불평등을 절대 사라지게 만들면 안 됩니다. 불평등이 계속돼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죠. 그래야 경제는 성장하고요. 제 지지율도 오르고요.”


      “언젠가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을까요? 그러면 대통령님도 물러나셔야 할 테고….”


      “그렇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제가 어떤 존재인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될 겁니다. 프롤과 관련해서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절 사랑할 겁니다. 절 찬양할 겁니다. 경제를 성장시켰으니까요. 아무리 장기집권을 했어도 경제는 살렸다면서 찬양하겠죠. 아니, 오히려 나라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장기집권을 했다면서….”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참지 못했다.


      “큼큼… 어쨌든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제 작전을 방해하지 않아 주신 덕분에 작전이 성공했군요. 만일 여러분들이 [프롤]의 존재 여부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면 작전은 다 물거품이 되었겠죠.”


      “아, 그야 당연히 해드려야죠. 없는 사실 만들어내는 게 저희 특기인 걸요.”



      [수개월이 흐르고 프롤들은 사람들의 유행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워낙 자연스러워서 인간이 AI 흉내를 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21세기인간의 꼬릿말입니다
    음... 뭔가 쓰다보니 어떤 대통령이 떠오르더라고요. 근데 그 분을 생각하면서 쓴 글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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