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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창조주, 신이 필요하지만 그 생명을 파괴하는 데에는 고작, 좀 특별하지만 결국 별볼 일 없는 인간이라 불리우는 피조물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참 덧없이 전지전능한 신이요, 참으로 힘들이지 않고 신의 반열에 올라선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피조물로 창조물을 파괴하는 자기부정 또는 자가정화까지 내장한 초절정의 정교함으로 쌍생성-쌍소멸로 영원한 우주를 창조적인 파괴와 파괴적인 창조의 순환으로 완성한 신과 인간의 환상적인 합작품, 그 수학적인 아름다움일까.
“그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정했소.”
대통령의 말에 그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처럼 중차대한 결정을 전하면서 자신이 서 있는 무대가 영 틀려먹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계획 정도의 폭발력, 장단기적 영향력을 생각할 때, 삼부 요인은 물론이고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수십만, 수만, 수천 명에 이르는 온갖 공무원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은 자리에서 엄청나게 복잡하고 섬세하고 긴 예식 절차에 따라 자신을 온 인류가 다 지켜볼 수 있는 생중계 무대에 불러올려 울긋불긋하게 과장된 전투용 도끼라도 내려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대통령과 함께 대통령의 집무실에 생중계 카메라는 고사하고 그의 그림자라고 불리우는 실세 비서실장도 없어 더 텅빈 것 같은, 어떠한 종류의 기록 장치도 배제된 그야말로 무균실 같은 그 방,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집무실 내 좌표 위에 두 발을 딛고 그냥 서 있는 상태였다.
“이 일이 얼마나 중대한지는 잘 아시리라 믿소. 보안은 최고 등급 그 이상이란 것만 말하겠소.”
그는 대답 대신 대통령의 차가운 시선에서 눈을 떼어 집무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그 각도에서는 그 많던 관광객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늦가을에 석양인지라 안팎을 관통하고 있는 태양광선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워 보였다. 맥락도 없이 나른함이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끝에서부터 스며들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대통령의 제안을, 군통수권자의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딘가 지근거리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국가폭력의 첨단의 촉수는 눈도 깜박하지 못할 짧은 시간에 공격 모드로 전환되어 자신의 목줄기나 심장이나 전두엽으로 파고들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가 거절한다고 해서 그 계획의 실행을 늦추기라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계획은 완성된 형태로 컴퓨터 안에 들어가 있었다. 두 개의 다른 암호만 쳐 넣으면 그 계획은 컴퓨터 밖으로 기어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 계획은 컴퓨터란 활의 시위에 매겨 잔뜩 당긴 한 대의 화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온 땅을 피로 물들일 수 있는, 묵시록에 나올 법한 그런 화살 말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실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쩌면 그가 가장 기뻐해야 하는 순간일 수도 있었다. 그의 필생의 업적이 설계도를 벗어나 현실이 되어 온 인류의 눈앞에서 그 엄청난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과를 옮기겠다고? 공학을 떠나려고 하는 이유가 뭔가? 내가 듣기에 순수과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면서.”
그의 지도교수가 눈을 치뜨며 묻던 기억이 생생했다. 순수과학의 응용에 '지나지 않은' 공학은 그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공학이나 순수과학에 대한 그의 인식 자체가 어떤 근거도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었다. 그것도 오래 가지도 않을 그런 종류의 안개 같은 생각의 조각이었다.
“그건 자네가 아직 공학의 힘과 아름다움을 모르기 때문이야. 원한다면 내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줄 수 있네만.”
지도교수의 말이 현실로 드러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순수과학은 다 좋은데 그 지극한 순수함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손에 만져지는 것이 없었다. 놀라운 이론, 기가 막힌 계산 결과, 믿을 수 없는 예측이 난무했지만, 직접 손으로 만들고 맨눈으로 보면서 감탄하기에는 그 대상이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거나 너무 멀었다. 컴퓨터를 통한 모의실험과 계산 데이터의 가상현실화로 그나마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것이었지만, 공학적인 현실과 비교하게 되면 그 갈증은 이상하게 더 깊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국가 예산의 무한 지원을 받는 상태에서 그의 순수과학적인 이론과 계산과 예측은 이제 공학적인 현실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무서웠다. 그의 머리 속에서, 칠판 위에서, 연구노트 한쪽 구석에서, 그의 컴퓨터의 기억장치 속에서, 심지어 지구 최강의 수퍼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 수백만 개에 걸린 실행코드에서는 그 어떠한 종류의 계산착오나 버그가 발생하더라도 거의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공학적인 세상으로 이식된 그의 이론과 계산과 모의실험은 곧바로 현실이 되어 착오 하나하나 버그 하나하나가 그가 몸 담고 있는 현실 속 시공간, 물질과 에너지와 곧바로 상호작용을 일으키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단 현실로 나온 그 '괴물'은 뒤늦게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을 바꾼다고, 계산하던 컴퓨터를 리셋한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어주는 법은 결코 없다는 것. 시공간의 4차원 격자에 촘촘하게 단단하게 짜놓은 피륙인 이 세상은 그 조물주마저도 임의로 바꿀 수 없는 철칙의 세계였기에.
그는 대통령궁 앞에서 택시를 타고 연구소로 돌아왔다. 철저하게 사적 공간인 택시에 타자마자 그는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방금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입력된 막대한 정보와 그에 따른 정서의 폭주로 인하여 그의 뇌는 휴식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곧이곧대로인 자아를 잠시 끄고 시공의 제약마저 가볍게 뛰어넘는 능수능란을 갖춘 무의식 상태에서 입력된 정보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연구소에 도착할 때쯤, 그의 대통령과의 만남은 이미 핵심 연구요원 열 명에게 전달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근무시간도 아닌데도 그들은 이미 연구소에 나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실 탁자 머리에 앉은 그는 그들을 잠시 둘러보았다. 아무도 먼저 말을 하지 않고 소장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기자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열 사람을 대하고 있는 지금, 대통령 한 사람과 마주 서서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려는데, 도대체 그 사안의 무게에 대한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열한 명의 손에 피를 묻히는 셈인데, 한 사람당 몇명씩을 카르마 명부에 올리게 되는 걸까?”
다행히 그 생각은 머리에서 입으로 내려오지는 않았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 관한 한 생각은 얼마든지 주워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자마자, 그럼 말은? 아니, 공학적인 현실은? 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는 모두 알고 있을 터. 실행에 차질 없도록 합시다. 앞으로 24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도록. 최종 클릭은 대통령이나 내가 직접 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말에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침묵을 깨뜨린 것은 최고령 연구원이었다.
“누가 클릭을 하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아무래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또다른 연구원이 뒤를 이었다.
“신이 있다면 신이, 신이 없다면 가이아가, 가이아가 없다면 우리의 양심이 이 거대한 범죄를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연구소장이 대통령의 명령에 그 어떠한 저항의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장 그들 열명의 핵심 연구원들과 연구소장이 반기를 든다고 해도, 대통령의 뜻은 끝내 관철되리라는 것을.
인공지능은 그들 연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막강한 조력자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훌륭한고 완벽한 파업 파괴수단이 되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더 이상 인간 프로그래머의 감시나 견제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백억을 십억으로! 백년 동안이라지만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살륙입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몰랐을 만큼 순진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설마 했던 일들이 몇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 것뿐이었다. 그런 난감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대답할 말이 없어 곤혹한 처지에 빠진 사람도 애초부터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순수과학을 하는 사람들로서 일찌기 이와 같은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순수과학이 공학과 통합되어 가는 양상이 벌어지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물리학과 공학이 함께 발전한 결과였으며 컴퓨터 특히 인공지능이라는 접착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거기에다가 쐐기를 박은 것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가차없는 드라이브 정책이었다. 예산을 무한정 허용하는 대신 일정은 철벽이었으며 과학기술 윤리 같은 것은 간단히 무시되어 버렸다.
“이 계획은 오직 우리만이 추진하는, 어느 한 정신 나간 반인륜적인 독재정부의 인간성에 대한 테러가 아니란 말입니다.”
대통령은 그와 만날 때마다 강조했다. 일생동안 화 한번 내지 않았을 것처럼 사람 좋은 대통령은 주제가 그 계획의 당위성에 이르면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구 상에는 더 이상 지난 세기의 기준으로 볼 때 진정한 독립적인 국가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지구는 백억이나 되는 인류를 더 이상 먹여살릴 수 없다는 것. 이대로 정치경제적인 망설임만 계속하다가는 지구라는 시스템 그 자체는 돌아오지 못하는 지점을 지나게 되어 인류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 지구 생태계 그 자체가 콘크리트 바닥을 치는 유리공처럼,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에 부딪혀 가는 우주선처럼 수천 개의 유리조각으로, 무수한 원자로 소립자로 에너지 양자로 산산히 흩어지리라는 것.
순수과학과 공학이 통합되는 과학기술 만능의 세상에서 과학기술의 그와 같은 예측은 진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한 거대한 결론에 동의하기 위해서 그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용된 과학을 다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복잡도의 공학적인 문제에 대한 모의실험 결과와 실제의 실험 결과를 몇 개만 비교해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현대 과학기술이 내어 놓는 모의실험 결과는 실제로 실험해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 거의 귀납적으로 증명된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이것은 대통령 한 사람만의 결정도 아닙니다. 정부쪽 사람들 가운데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또 어떻습니까. 이 계획을 가장 열렬하게 찬성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대통령 말대로 이는 국가 차원이 아니라 전지구적인 차원의 계획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예산이 지금까지 투입되었는지 모릅니다. 인류조화위원회는 더 이상 종이 호랑이가 아니기도 하구요.”
“국가개조가 아니라 행성개조 프로젝트,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나서서 막는다고 막아질 일도 아닙니다.”
“그러한 거대 프로젝트에 우리 연구소만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너무 대단한 존재로 만드는 부끄러운 노릇입니다.”
“당장 누군가의 삶을 멈추게 하거나 수명을 줄인다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와는 정반대로,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삶의 질을 두배로 높인다는 모의실험 결과도 인류조화위원회로부터 나오지 않았습니까.”
“당장에 일어날 변화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구태여 백년이나 지난 뒤에 있을 현상에 대해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
“모든 인류를 위한 일이자, 그 모든 인류가 다 찬성하는 일인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우리가 실행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의 파트너들인 인공지능이 대신 하게 될 터인데, 이런 식으로 인공지능에게 공개적인 패배를 또 한번 인정해야 하겠습니까. 아마도 마지막 패배가 되겠지요. 인간의 무능함을 안팎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수석 연구원들은 돌아가며 한 마디씩 했다. 열 가운데 여덟이 찬성이었다. 소장으로서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 상황은 정리해야 했다. 인류조화위원회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까 언급한 대로 지금 당장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스케일에서 확률은 미세하게 조정될 것입니다. 다만 그것뿐입니다. 그 실제적인 인과관계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확률 조정에 따라 삶의 파동함수가 급격하게 변화되고 그로 인해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인구는 계속 줄어듭니다. 일종의 인종청소 아닌가요?”
다시 최고령의 연구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떨림이 분노 때문인지 상황의 엄중함 때문인지 그는 판단할 수 없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존재를 생명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바이러스가 생명과 물질의 영역을 오간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확률의 바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금시초문입니다. 소립자 세계의 쌍생성과 쌍소멸을 패러디한 것이라면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에 가로놓여 있는 시공의 심연을 너무 가볍게 여긴 듯합니다.”
이변은 없었다. 수석 연구원들은 다들 흩어져 갔다. 계획 실행을 위한 모의실험 코드는 모두 업로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반나절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컴퓨터보다는 자신들의 마음과 풀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상황이었다.
찬성파 수석 연구원들이 떠나간 회의실에 약속이라도 한듯 셋만 남게 되었다. 생명은 확률의 영역까지 소급되는, 그러니까 이 풍진 삼차원의 저급한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사차원적인 특성을 갖는 거의 유일한 것은 생명이라는 데에 뜻을 같이 하는 그들은 소수파로 몰려 있는 셈이었다.
“사형제도나 인종청소와 뭐가 다르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최연소 수석 연구원이 말했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이 계획을 좌초시킬 수 있는 묘수가 없을까요? ”
그런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자동항법장치로만 날게 되어 있는 무인비행기에서 인간 조종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수년간의 교육과 훈련, 수천 시간의 조종 경험도, 이를테면 사람의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조종간이란 게 아예 없는 비행기에서는 말이다.
백억 인류를 십억으로 줄이는 그 계획은 가상현실과 현실 양쪽 세계에서, 즉 컴퓨터 안팎에서 촘촘하게 짜여져 있어서 가상현실과 현실을 완전히 갈라놓기 전에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 두 세계 가운데 하나를 파괴해야만 하는데, 그들의 삶과 존재양식은 이미 가상현실 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현실에 직접 접속하여 영향을 미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들은 이미 가상현실을 통해서만 현실에 드나들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가상현실을 통하지 않고는 현실에 드나들 수조차 없는 현실. 그들이 존재하는 공간은 열에 아홉은 가상현실이었다. 오직 하나의 공간에서만 현실을 맨몸으로 접했다.
대통령궁에 가서 대통령을 만나고, 택시 타고 연구소로 이동하여, 이미 모여 있는 수석 연구원들과 만나 회의하고, 마지막으로 반대파 셋만 남아 그렇게 아무리 해도 현실을 바꾸는 힘으로 전환되지 않는, 결코 현실화될 가망이 없는 넋두리를 늘어놓았던 그 모든 일들이 실은 그의 집에 꾸며 놓은 가상현실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의 집 지하에 있는 가상현실 공간은 모서리가 백미터인 거대한 정육면체 모양의 현실 공간인데, 오십 개로 나누어진 층마다 백개의 방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현실 공간에 마련된 그 오천 개의 방은 중앙컴퓨터가 만들어 주는 가상현실을 담는 일종의 그릇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각 방은 컴퓨터의 조종에 따라 자유자재로 이동가능한 내벽과 트랜스포머 뺨치는 가구들이 설비되어 있는데, 내벽과 가구를 비롯한 그 가상현실 공간은 모두 자체 액츄에이터와 센서를 갖추고 있는 일종의 마이크로 레고 수천억 개의 집합인 스마트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즉, 그의 가상현실은 현실의 뼈대 위에 살갗만 입힌 것이었기에, 뇌에 직접 접속하여 오감을 통채로 전기신호 처리로 일관하는 매트릭스형 가상현실에 비한다면, 기계식 가상현실에 가까웠다.
스마트 물질로 만들어진 트랜스포머 가구는 물론 차가 되기도 하고 컵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그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바람이 되기도 하였다.
그의 한평생이 그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공간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을 소장 자신은 물론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오십 평생의 어느 한 싯점에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그 엄연한 사실은 그의 뇌리에서 엷어져 가고 있었다. 먼저 현실과 가상현실의 그 복잡한 상호작용은 좀처럼 믿겨지지 않았던 대신,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그 정교한 가상현실 속 세상은 너무도 생생하여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으려 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상현실 공간의 진실은 무의식의 바다에 깊이 가라앉아버려 그의 의식 표면에서는 잔물결에 부서지는 햇빛마냥 그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십억 프로젝트의 반대파인 두 명의 의원과 밀담을 나눈 그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벙커와 흡사한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좌우로 갈라지는 복도를 만나 잠시 망설이다가, 그는 왼쪽을 선택했다. 가족과 편한안 저녁이 기다리고 있는 거실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십여 년만에 처음 들어가는 작은 방은 좁아보였다. 의자가 하나 간신히 놓여 있어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폐소공포증이 스멀거리며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그는 마른 침을 삼키며 그 의자에 앉았다.
그의 집 지붕이 열리며 그를 태운 소형 드론 비행정은 밤하늘로 떠올랐다. 표면에 작은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는 프로펠러는 그 자체로 소음기 역할까지 하는 것이라 비행정은 나비 날개짓 정도의 소리만 낼 뿐이었다.불규칙적으로 아무렇게나 여기저기에 숭숭 뚫여 있는 듯한 무수한 구멍들은 실은 프로펠러 주변의 공기의 흐름을 극미세한 수준까지 조절하여 양력은 극대화시키면서도 그 고속 회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게 했다. 프로펠레의 회전으로 발생한 난류에서 소음으로 바뀔 에너지만 정교하게 골라내어 다른 에너지와 함께 파괴적으로 간섭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 역시 스마트 물질로 제조되었는데, 표면에 뚤린 구멍들마저 순간순간의 유체역학적 계산에 기반해서 그 구멍의 크기와 방향과 깊이를 수시로 바꾸고 있었다.
꿈 꾸어라. 그 꿈은 언젠가는 현실이 되리라. 바로 그랬다. 순수과학이란 꿈은 곧바로 공학이란 현실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초강력 수퍼컴퓨터와 인공지능은 그 순수과학마저 소위 스토리텔링으로 바꾸어버렸다. 순수과학 지식을 종합-분석-응용하여 소정의 효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자는 원하는 소정의 효과를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인공지능은 그 이야기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순수과학 이론들을 뽑아내어 조립한 다음 순수과학-공학 변환기를 통해 '컴파일'한 다음, 입체 프린터나 스마트 물질과 같은 궁극의 액츄에이터를 통해 실제의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의 드론 비행정도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그가 직접 만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모양과 성능의 것이었다. 무소음뿐 아니라 스텔스 기능까지 갖춘 꿈의 드론 비행정은 밤하늘에서라면 그 존재를 완전히 숨길 수 있어 좋았다.
그가 찾아간 곳은 인류조화위원회가 상주하고 있는 주메이라 인공섬이었다. 대통령의 눈을 피하기 위해 스텔스 기능을 사용했지만 국경을 한참 벗어나 주메이라 인공섬에 가까와져서 그는 자신의 비행을 공식화하는 신호를 내보내도록 했다. 그는 곧장 인류조화위원회 위원장에게 안내되었다. 그 신속한 사태의 전개에 그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쾌재를 불렀다. 대통령의 계획을 뒤집거나 멈추게 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바로 인류조화위원회를 움직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나라의 십억 프로젝트의 전면적인 유예를 요청합니다. 수나라 대통령의 반인륜적 독단을 고발하는 바입니다.”
그는 처음 만나는 위원장을 보자마자 간략한 의전도 건너뛴 채 자신의 요구사항부터 읊조렸다. 위원장의 인상이 퍽이나 대통령을 닮아 있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수나라의 십억 프로젝트는 인류조화위원회의 결정사항인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요?”
위원장은 부드러운 표정, 조곤조곤한 말투에 다소곳하기까지 한 태도로 그를 쳐다보았다. 눈이 참 맑고 깊었다. 그 또한 대통령을 빼다박은 것 같았다.
“이 계획은 일년 이내에 모든 나라에서 실행될 것입니다. 소장께서도 인류조화위원회의 정책에 협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인류조화위원회야말로 인류의 공존공영을 위한, 인류의 수호기관이 아니었습니까. 그러한 인류조화위원회가 인류 절멸로 가는 길을 닦는다니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까.”
“인류 멸절의 길이라.. 그와 같은 중대 결론은 어떤 모의실험을 통해 얻은 것인가요? 인류조화위원회 중앙 컴퓨터가 그러한 결론을 낸 문제를 푼 적은 없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위원장은 여전히 그를 녹일 듯한 달콤한 목소리로 어느 대목 하나 더듬지도 않고 또박또박 대꾸하고 있었다.
“중앙 컴퓨터가 무슨 전지전능한 존재라도 됩니까? 우리에게는 직관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숫자로 풀지 않고도, 언어로 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소장의 직관이 바로 판단의 근거라는 거군요. 종교적 열정 또는 성향이 묻어난 것이라고 봐도 될까요? 이것은 어떻습니까. 삼라만상이 다 신의 솜씨이며 작품이요 피조물입니다. 어느 것 하나 신과 그의 의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류조화위원회 중앙 컴퓨터 또한 신의 작품이며, 그 안에 신의 에너지가 머물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중앙 컴퓨터는 여느 고철 덩어리와는 다릅니다. 그 안에 자신들의 재능을 쏟아부은 과학기술자, 아니 사람들의 수는 부지기수입니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투입된 돈과 자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안에 흐르는 에너지의 순수함과 양은 적어도 지구상에서는 최고입니다. 신의 뜻이 깃든다면 인류조화위원회 중앙 컴퓨터와 같이 심혈을 기울인 피조물에 더 많이 깃들지 않을까요?”
그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프로젝트에의 재참여를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것은 정중하고 평화스러운 과정이었다.
인류조화위원회는 그를 곧장 대통궁으로 데려갔다. 역시 위원장을 빼다박은 대통령은 주메이라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고요한 시선으로 그를 맞이하였다.
대통령 앞에 선 그는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보다 위원장과 대통령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에 더 마음이 가는 중이었다.
(그들이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라면, 적어도 그 둘의 눈동자들은 단 하나의 액츄에이터에 의해 작동되도록 한데 연결되어 있을 거야.)
“위원장을 만나 그에게 설복당하였기를 기대해 봅니다.”
대통령의 엷은 미소 속에는 미움이나 비웃음과 같은 그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의 눈을 들여다 볼수록 그의 마음도 편안해지고 있었다. 위원장과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의 무의식은 이미 알아차린 것 같았다. 더 이상의 의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한 급격한 마음의 변화에 그 자신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연구소에는 또다시 열 명의 수석 연구원들이 모여 있었다. 이번에는 토론할 필요가 없었다. 프로젝트 반대파 연구원 두 사람도 어느새 편안한 표정들이었다. 대통령을 만나고 오면서 내내 걱정했던 것도 바로 그 연구원들이었는데, 뜻밖의 반전이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그는 곧바로 십억 프로젝트 실행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문제의 프로그램을 지구상의 모든 인공자궁 센터에 자동 설치하기 위한 마지막 클릭을 위한 순간이 다가왔다.
온라인으로 접속할 줄 알았던 대통령도 현장에 도착하였다.
“십억 프로젝트는 대통령령으로 결정된 사항이니, 직접 마지막 클릭을 하시지요.”
그는 대통령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십억 프로젝트를 입안할 때 그는 한 편의 소설을 쓴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로선 그만큼 재미있기도 힘들다고 생각했다. 이야기 속 인류는 절멸의 위험에서 간신히 벗어나 그 위대한 문명을 온 우주로 퍼뜨릴 것이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인류의 현재를 위하여! 인류의 과거를 위하여!”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는 연구소의 컴퓨터에 접속한 다음 십억 프로젝트 프로그램 실행을 위한 마지막 클릭을 끝냈다.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았으며, 몇 번의 눈깜박임과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의 미세한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컴퓨터 조작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눈동자의 움직임과 생각만으로도 조작이 가능했지만,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마치 그 어떠한 과학기술도 없이 자신의 몸만으로 그 모든 일을 해낸다는 느낌을 그는 좋아했다. 매트릭스형 가상현실보다 기계식 가상현실을 좋아하듯, 그는 인간의 본성은 물론이고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신체적 특징까지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하나일 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의 구조나 그 작동방식 또는 반응 양식이 달라지면 마음 또한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십억 프로젝트는 인류조화위원회 중앙 컴퓨터에 이식되어 실행되는 순간,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아마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었다. 적어도 인구가 십억으로 떨어질 때까지 인간세상의 화이트홀이라 할 수 있는 인공자궁 센터는 바로 그 십억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관할지가 되어, 신생아들의 수를 조금씩 줄여나가게 될 것이었다.
“인류라는 한 종의 개체수가 백억에서 십억으로 줄어든다면 종 내부의 다양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을까요? 백억의 인구라는 거대한 그릇에 담겨 있던 인류의 유전자의 다양성을 그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 작은 그릇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흘러넘쳐 그릇 밖으로 나간 유전자들은 인류란 종의 유전자의 바다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요.”
백억 인구를 먹여살리는 일은 인간들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에도 커다란 부담이었다. 인류는 막대한 양의 가축과 작물을 먹어치울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먹이를 삼지 않은 동식물은 물론이고, 먹을 수 없는 다른 야생의 동식물 그리고 무기물인 지수화풍까지도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구를 십억으로 줄이면서도 인류 유전자 풀의 크기를 희생시키지 않는 방안도 당연히 십억 프로젝트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크게 두 가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 전모를 밝힐 수는 없지만, 유의미한 실험 데이터가 쌓인 후에 인류조화위원회에 보고될 것입니다.”
소장은 어느새 방송 모드가 되어 있었다. 십억 프로젝트을 실행시키는 마지막 클릭 순간은 각 나라 정부의 모든 통치행위가 그러하듯, 모두 기록되고 있었다. 기록된다고 해서 다 일반에게 공개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십억 프로젝트 실행 순간은 온 인류에게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소장에 이어 수석 연구원들도 돌아가며 한 마디씩 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나섰다. 처음엔 살짝 긴장했던 대통령은 어느새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다. 연구소장과 연구원들의 업적에 대해 상세한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의 기억력은 대단히 탁월해서 인류조화위원회에서 입안되었을 때부터 개별 국가에서 승인되고 추진되는 복잡한 과정까지도 수많은 상세 자료들을 들어가며 한 편의 인기 많은 강의,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한적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연구소에서 열린 즉석 뉴스쇼였지만,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한 주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린 것이었다. 백억 인구는 지구의 표면을 말 그대로 '무소부재'의 현장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인류조화위원회 중앙 컴퓨터의 모의실험 결과..”
대통령이 목소리를 한창 높이고 있을 때 한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그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많은 경호원들이 나타나 대통령을 둘러싸며 우지 기관단총을 꺼내들었다. 뜻밖에도 대통령은 무사했고,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에, 한 사람이 서서히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바로 연구소장이었다.
그는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갑자기 투명한 검은 연기가 온 세상을 꽉 채우는 느낌에 이어, 온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지 세포 하나하나까지 저릿저릿 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가 깨어난 곳이 병원이라는 사실을 소리를 듣고 알 수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청각을 뺀 나머지 감각은 모두 죽어 있었던 것이다. 소리를 제외한 몸밖의 정보를 자신의 힘만으로는 몸안으로 들여올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날숨 말고는 몸안에서 몸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바로 식물인간이 된 것이었다.
다행히 통증도 따로 없었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생리적 욕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이 죽어 있어 그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생명 유지에 필요한 공기와 물과 영양소는 그의 몸에 자동으로 공급되고 있었다.
가족과 단 한 바이트의 정보도 나눌 수 없게 되면서 극심한 고립감을 겪었지만, 몸의 느낌과 철저하게 분리된 채 정신만으로 느끼는 고립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색조와 질감을 현저하게 잃어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생각과 청각과 호흡으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오로지 청각에 의지해서 외부 세계와 가늘게 연결된 상태에서 그의 영혼과 마음 그리고 자의식은 시각, 촉각, 미각, 후각의 생생함을 증발당하여, 마치 바닷물이 마르며 물을 빼앗기고 오직 소금 결정으로만 남듯, 단단한 껍질에 싸인 마음의 결정체와 같은 상태로 되어갔다.
그를 쏜 사람은 인간성 회복을 위한 일종의 비밀결사이자 테러집단의 일원이었다. 인류의 번식 수단인 인공자궁 센터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던 집단이었다.그들은 인공수정, 인공자궁, 인공육아를 반대하였다. 동물로서의 인간에게 충실한 방식으로 인류는 세대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실천은 기본이었다.
인공자궁을 인간성을 파괴하는 악마의 계략으로 간주하는 그들에게 십억 프로젝트는 우주 대마왕 그 자체였다. 십억 프로젝트의 중단이 그들의 새로운 투쟁목표가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그의 가상현실 공간은 스마트 물질로 건설된 곳이라 애초에 진짜 총탄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록 현실 공간에 스마트 물질로 건설된 벽체와 가구들로 이루어진 가상현실 시뮬레이터였지만, 스마트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유사원자 하나하나에 장치되어 있는 센서와 액츄에이터를 인류조화위원회 중앙 컴퓨터가 직접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의 가상현실 공간 안쪽으로 총이라고 하는 원본을 들여 오는 순간, 그리고 그 총을 발사하는 순간, 스마트 물질로 총을 만들고 스마트 물질로 총알을 만들어서 조립했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프로그램적으로 직접 제어가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즉 인공지능이 스마트 물질 속 유사 원자를 직접 접속하고 직접 프로그래밍으로 제어할 수 있는 마당에 스마트 물질 총에서 스마트 물질 총알이 발사되어 목표물에 날아갈 때까지 방치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 그의 가상현실 공간을 해킹하고 중앙 컴퓨터로부터 분리하여 그의 가상현실과 중앙 컴퓨터 사이에 오가는 신호를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었던 것이다.
테러분자의 가상현실 공간 해킹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가상현실 공간에는 물론 한편으론 실제 몸을 가진 생물학적인 개체로서의 자신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 스마트 물질로 만들어진 벽체와 트랜스포머 가구와 같은 사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기자신의 영혼은 자신의 몸을 조종했고, 스마트 물질로 만들어진 사물은 바로 인류조화위원회 중앙 컴퓨터가 조종하면서, 내 영혼과 몸과 사물이 조화롭게 한 공간에 존재하고 상호작용하면서 거대한 가상현실 공간에 통합되었던 것이다.
“내 몸의 감각이 거의 다 마비되어 내 영혼의 제어 대상인 몸이 죽은 상태에서 내 영혼은 어떻게 외계와 소통할 것인가. 일반 물질로 만들어진 내 몸 대신 스마트 물질로 만들어진 사물과 곧바로 접속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는 마침내 그의 가상현실 공간에 있는 스마트 물질에 자신의 영혼을 주입시켜 바깥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뉴스 컨퍼런스를 시작하겠습니다. 십억 프로젝트 테러 사건의 희생자였던 가상현실 연구소 소장을 모시겠습니다.”
그의 실제 몸은 가사 상태에 빠져 있지만 뉴스 컨퍼런스에 출연하기 위해 그의 의식이 스마트 물질을 통해 인류조화위원회 중앙 컴퓨터의 가상현실 인터넷에 접속하는 두 단계를 거친다는 간단한 설명을 했지만, 뉴스 컨퍼런스 시청자들을 포함한 다른 모든 관계자들도 그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였다.
오직 소장 가족들만이 청각과 마음만 살아있는 상황에서 스마트 물질과 사물 인터넷을 통하여 가상현실에 환생한 상황에 감격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집에 있는 가상현실 구현을 위한 실제 공간의 한 구석 방에서 생명유지 장치를 달고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는 그의 몸을 직접 보는 것은 여전히 고통이었지만 말이다.
소장 본인의 느낌은 또 한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스마트 물질 해킹을 통한 총격이라는 희대의 테러를 당해 뇌의 의식 영역과 청각 부분만 뺀 나머지 부분이 죽어있는 상황, 즉 외부에서 봤을 때 영락없는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아니 죽어버린 육신의 감옥에 갇혀 버린 그의 의식이 느낀 고립감과 무기력감은 그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형용이 불가능한 막막한 상태에서, 이를테면 죽은 몸 대신 스마트 물질이란 새로운 몸을 입고 식물인간의 뇌라는 감옥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상현실, 그 자체로는 현실세계인 가상현실(구현)공간, 그리고 인간의 뇌라는 삼각 구조는 세 꼭지점을 잇는 직선으로의 양자컴퓨터의 양자 상태 간섭을 통해 일종의 파이 차원으로 새로운 우회로를 찾아냄으로써, 다른 두 꼭지점과의 인터페이스로 작동했던 뇌의 대부분이 죽은 뇌사상태에서도 그는 탈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감동은 오래 가지 않았다. 뇌사로부터의 탈출경로가 일단 열리자 그의 의식의 흐름은 그 새로운 회로에 완전히 적응하여, 소장 자신도 자신의 실제 몸이 실은 식물인간이 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통령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온 것은 그렇게 테러 사건이 마무리되어 가고 소장 자신은 원래의 일상으로 완벽하게 돌아간 다음이었다.
“테러로 입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했다니 축하드립니다.”
대통령은 늘 그랬듯이 부드러운 눈빛과 목소리의 노신사의 모습이었다. 십억 프로젝트는 테러 위협이 현실화되는 등 저항이 없진 않았지만 소장의 희생으로 본 궤도에 올라가 있었으니, 그의 입지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었다. 그가 인류조화위원회 위원장 선거에 도전한다는 풍문이 나돌고 있었다.
“백년이 지나면 지구의 인구는 십억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모두 소장님 덕분입니다. 특히 마지막 클릭을 해주신 것, 고맙습니다. 오직 소장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대통령님, 겸손의 말씀을 하시는군요. 제가 만약 인류조화위원회에 가지 않았더라면, 위원장님을 만나고도 설복되지 않았더라면 다른 누군가를 연구소장으로 앉혀서 저를 대신하게 하셨을 것 아닙니까. 스위치 하나만 남기고 모든 준비는 끝난 상태에서 마지막 클릭이야 대통령님이 직접 하셔도 십억 프로젝트는 실행되었을 것이고 그 결과 또한 똑같을 테니까요."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대통령은 활짝 웃어보였다. 그 말투와 눈웃음이 무한 신뢰를 주는 것이라, 소장은 그가 인류조화위원회 위원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인류 유전자 연못, 저수지를 유전자 바다로 유지하기 위한 복안 두 가지, 잊지 않으셨겠지요. 그에 대한 연구를 바로 시작해주십시오. 예산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이 잘 아시듯, 그 또한 준비가 끝나 있는 상태입니다. 지난번 테러 사건이 마지막 어려운 문제를 풀어주었다는 것은 역설이라 해야겠습니다만."
"짝! 짝! 짝!"
대통령은 박수로 반응을 대신했다. 대통령은 말 한 마디 손짓 하나에도 유능한 과학자로서의 소장과 아름다운 여성으로서의 소장을 함께 배려하고 있었다. 소장은 대통령의 팔짱을 끼고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할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대통령 집무실을 나왔다.
인류 유전자 바다의 유지를 위한 첫번째 단계로, 지구의 인구가 백억에서 십억으로 줄어들 때까지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모든 국면이 낱낱이 기록되고 저장될 것이었다. 유전자 지도, 일생을 통한 유전자 발현 추이, 뇌파를 비롯한 모든 신체 상태, 오감 입출력 정보, 하루 24시간 개인의 주변을 맴도는 개인드론으로부터의 주변 정보는 모두 철저한 사생활 보호법 아래 인성을 갖지 못한 초급 인공지능 시스템의 관리를 받는, 인류 유전자 바다의 1차 자료를 구성할 것이다.
두번째 단계로는 현재의 백억 명을 포함한 앞으로 존재하게 될 모든 사람들은 죽음과 함께 순수가상현실로 자동 입주하게 하기로 했다. 비록 육체에서 완전히 분리된 순수한 에너지 형태의 가상 인격으로서 본인에게 자아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영생은 아닐 수 있지만, 에너지-정보-기억 보존의 입장에서는 영원을 누리며 인류의 문화사회적 요소, 밈으로 온전히 보존될 것이었다. 절대 허무로 망각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기억, 보존되는 죽음이라 해야할까?
그렇게 인류의 생물 유전자와 사회적 발현이자 공동체적 유전자인 밈를 보존한다면 비로소 인류 유전자의 바다는 따뜻한 살과 피로 된 육신으로 살아있는 인류 종족의 크기가 어떻게 되든 현재의 백억 인류의 생물학적 문화적 다양성은 단 하나의 유전자 고리도 단 하나의 밈 바이트도 잃어버리지 않고 보존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인류 전체의 4차원 데이터베이스화" 그리고 "저승의 가상현실화" 방안은 테러를 당하기 전에 이미 입안했던 것인데, 테러 사건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 속 식물인간에 갇힌 자기자신을 가상현실 속 스마트 물질 아바타로 탈옥시킬 수 있었던 경험은 그로 하여금 제3의 가능성을 상상하도록 했다.
모서리가 백 미터인 정육면체로 둘러싸인, 기계식 가상현실 구현을 위한 현실공간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소장 가족이 평생을 살아갈 집이었다. 인간 자체는 네안데르탈 이래 별 변함이 없었지만 그가 존재하고 살아가고 소통하는 무대인 대자연을 기계화, 가상현실화한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그가 테러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의 정신을 스마트 물질로 만든 몸으로 옮겨가게 함으로써 삶의 무대뿐만 아니라 삶의 주인공인 육신까지도 기계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스마트 물질로 만든 몸, 그러니까 기계식 가상현실 공간 속 아바타는 일반적인 로봇과는 전혀 다른 존재형식이라는 점이다. 로봇은 자체 안에 앤드로이드로서 구현할 모든 기능을 직접 실행하는 복잡한 내부 장치들과 에너지원까지 갖추고 있는 존재라면, 기계식 가상현실 공간 속 아바타는 '나노 레고' 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스마트 물질로 이루어진 사람의 형상으로서 실제 손으로 만질 수도 있었지만 앤드로이드로서의 기능은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피부에 해당하는 껍데기와 그 바깥에 해당하는 외부에 있는 존재였다. 둘 다 현실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로봇이 모든 기늘을 알아서 처리하는 독립형 컴퓨터라면 아바타는 대부분의 기능을 외부 어딘가에 존재하는 서버에 이관해버린 터미널이라 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로봇은 속이 차 있는 반면, 아바타는 빈 껍데기였다.
기계식 가상현실 공간은 순수현실 공간에서 순수가상현실 공간으로 가는 중간단계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기술적으로는 모든 기능을 컴퓨터 속 가상 공간 안에서 전자기 에너지의 흐름으로 바꾸면 되는 순수가상현실이, 그 모든 것을 물리법칙이 엄연한 물리 공간 안에서 톱니바퀴와 트랜지스터 '부품'을 써서 기계식으로 하나하나 만들어내야 하는 기계식 가상현실 공간보다 훨씬 구현하기 쉬웠다. 뱃속 뼛속까지 사람 몸과 똑같은 의료용 마네킹을 만드는 것보다 그 인체 모형 위에 바디 페인팅하듯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쉬울 수밖에 없었다. 더우기 그 의료용 마네킹을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것보다 바디 페인팅만 따로 떼어내 '활동사진'으로 만드는 것이 더 쉬우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장 가족을 포함한 대부분의 인류가 지금까지 순수가상현실이 아닌 기계식 가상현실 공간에서 삶을 영위했던 이유는 인간 존재 자체를 가상현실로 통째로 이전했을 때 인간성에 미칠 수 있는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그것이 아무리 미세할지라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문제에 대한 인류조화위원회의 정책은 확고한 것이어서, 기계식 가상현실 공간의 거주는 현 인류의 표준 존재방식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소장과 같이 식물인간이 된 상태에서 아바타로 환생할 수 있었다면, 식물인간도 아니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아바타로 환생시키는 마당에 굳이 기계식 가상현실 공간을 고집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일단 몸이 없으니, 현실 속 로봇이든 가상현실 속 아바타든 어차피 뜨거운 살과 피로 된 몸뚱아리가 아닌 마당에 굳이 로봇을 고집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인류 전체의 4차원 데이터베이스화"로 물리적 백업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라면, "저승의 가상현실화"는 구현하기 어렵고도 비싼 기계식 가상현실이 아니라 구현하기 쉽고 간편하고 값싼 순수가상현실이 정답이었다. '비싼'-'값싼'과 같은 비인간적이고 고색창연한 용어보다는 에너지적으로 '비효율적인'-'효율적인' 또는 환경적으로 '더러운'-'깨끗한' 과 같은 인간적이고 친환경적인 용어를 써야 하겠지만.
- 인류가 백억에서 십억으로 줄어드는 사이 현실공간을 떠나는 사람들은 순수가상현실 공간에 건설한 저승으로 이주한다.
- 몸은 유지한 채 기계식 가상현실 공간에 거주하는 십억을 인구 백만의 도시만 남기고 점차적으로 나노 레고 아바타와 기계식 가상현실 공간으로 이주한다. 뇌만 캡슐에 유지한다.
- 아바타와 기계식 가상현실 공간은 소인국화한다.
- 몸(로봇)을 유지하는 기계식 가상현실공간에 거주하는 한 가족, 인구 팔만의 아바타 소인국 도시, 순수가상현실 저승 복사본을 탑재할 항성간 우주선을 건조한다.
소장은 자신의 황당무계한 생각에 혼자 웃었다. 현재 인류조화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것은 첫번째 단계뿐. 하지만, 꿈은 꾸라고 있는 것. 게다가 순수과학과 공학이 통합되어가는 세상이 아닌가. 꿈은 언젠가는 현실이 되고 또 가상현실이 된다. 스토리 텔링은 공학적인 설계 그 자체다.
주메이라 인공섬에 있는 인류조화위원회 위원장의 사저에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대통령님, 아니 위원장님!"
소장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를 아직도 대통령이라 부르고 있었다. 인류조화위원회의 위원장이 임기를 마치자마자 그는 새로운 위원장으로 당선되었던 것이다. 십억 프로젝트의 입안자로서 실행자로서 모든 이들이 예상한 대로였다.
지구와 인류의 운명을 가르는 십억 프로젝트의 실행자와 실무책임자의 개인적인 만찬은 평범했다. 완전 채식으로 이루어진 저녁을 마친 다음, 포도주 한 잔씩을 들고 집 앞 개인용 부둣가 계단에 앉은 두 사람은 점점 사위어가는 저녁노을과 살랑거리는 해풍 그리고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의 입체적인 풍경에 젖어 있었다.
"포도주 맛이 썩 괜찮지요?"
위원장은 여전히 눈길을 바다에 둔 채 바람에 흐트러진 백발을 손가락으로 넘기며 말했다.
"처음 입어보는 로봇인데, 무척 자연스러워서 좋네요."
소장은 새 옷이라도 입은 양, 두 손을 들어올리고 자신을 장난스레 살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는 가상현실에서 현실로 빠져나오기 위해 위원장이 특별히 마련해준 로봇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로봇은 소장의 원래 모습과 똑같은 앤드로이드였다. 식물인간이 되어 가상현실로 도피한 그에게 현실은 로봇이라는 우주복을 입어야만 우주유영하듯 걸어나닐 수 있는 우주공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실 말씀이 있다 하셨는데, 뭔가요? 주메이라 섬의 석양, 멋진 대사를 읊조리기에 무대는 완벽한데요."
소장은 살짝 취기까지 느껴지는 것에 놀랐다.
"십억 프로젝트을 실행하는 마지막 클릭, 애초에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로봇입니다."
위원장은 여전한 미소를 띤 채 말했고, 소장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한참 동안 위원장을 쳐다보았다. 다시 취기가 돌며 살짝 어지럼증이 일었다.
"취중농담인가요?"
"취중진담. 무거운 진담이라면 모를까, 가벼운 농담쯤이야 술의 힘에 기댈 일도 없겠지요."
소장은 알 수 있었다. 인류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십억 프로젝트, 그것도 장기간에 걸쳐서라고는 하지만 간단한 산수로도 무려 90억이란 숫자의 사람이 후세로 대체되지 못하고 '죽는'다는, 글로 표현될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한 사실을 그의 로봇3법칙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임 위원장께서도 로봇이셨나요? 고위 공무원, 고위 정치인들은 모두 다?"
위원장은 한참을 잠자코 있더니, 진지한 표정이 되어 조용히 말했다.
"정치인과 공무원, 원래 공복이라 하지 않았던가요. 원래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니까요."
위원장은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고 덧붙였다.
"정치.. 대부분의 경우.. 그 어떤 인간보다도 우리 로봇이 더 잘 하는 대목이지요. 감히 말하자면.. 인간들의 자중자애는.. 우리 로봇들로 인해 완전해진다고 믿고 싶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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