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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야, 너 혹시 기억하니?"
낯익은 목소리에 난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떴어.
"그때 니가 나한테 풀이해줬던... 내 꿈 얘기."
18년 전 대학 시절로 돌아간 나는 벚꽃이 흩날리고 있는 상대 1호관의 쉼터에서 L과 함께 나란히 앉아있었어.
"니 꿈? 어떤... 아! 혹시, 그때 이날 1호관 쉼터에서 얘기했던 그 귀신 꿈... 그거 말하는 거야?"
"어."
"야, 당연히 기억하지! 지금껏 살면서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 중에 그게 제일 소름끼쳤던 일이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잊..."
"K야, 나 이번에는 막지 않았어."
"뭐?"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L은 고개를 돌리면서 얘기했어.
"이번엔 그냥 내버려뒀어. 그 귀신이... 하는 대로."
"L... L아... 너,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알아. 나도 아는데... 진짜 어쩔 수가 없었어."
L은 흐느껴 울기 시작했어.
"야! 왜... 너, 도대체 왜 그랬어?"
"우리도 좀 살아야지."
"인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그때 전화로 너한테 분명히 얘기했잖아. 그 귀신은..."
"K야, 나 진짜 못됐지? 그치?"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L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바라봤고,
"야... 아..."
난 몸을 잔뜩 움츠리면서 엉엉 울기 시작하는 그런 L을 그냥 아무 말없이 안아줬어.
그리고,
그렇게 꿈에서 깼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하더라.
L과 나는 2003년에 L이 동아리를 탈퇴하고 나간 뒤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거든.
그런데 갑자기 내 꿈에 L이 나타나서 18년 전의 그 꿈 얘기를 하다니...
"이게 뭐지? 왜 갑자기 이런 꿈을...?"
난 이해를 할 수가 없었어.
그 당시에는 전혀...
2002년 어느 봄날의 점심 시간,
우리 동기들은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한 후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상대 1호관의 쉼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여자 애들은 흩날리는 벚꽃을 배경 삼아 숨 가쁘게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남자 애들은 족구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이 넘어가도록 신나게 볼을 차고 있었어.
난 연일 이어진 공연 연습으로 피곤해진 몸을 벤치에 눕히고는 따뜻한 봄 햇살을 기분 좋게 만끽하고 있었지.
"K야, 너 혹시 꿈에 대해서도 잘 알아?"
잠이 막 들려는 찰나, 옆 벤치에서 L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해몽... 말하는 거야?"
"응."
"뭐... 기본적인건 할 줄 알지."
사실이 그랬어.
우리 집안에 그런 기운을 가지신 분들이 좀 계셔서
그 당시에는 그분들께 어깨너머로 보고 들으면서 배운 게 꽤나 있었거든.
"잘됐다! 있잖아. 내가 얼마 전에 진짜 이상한 꿈을 하나 꿨는데... 들어볼래?"
"그래, 얘기해봐."
난 누워있던 자세 그대로 L에게 말했어.
"내가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거든.
근데, 방밖에서 자꾸만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스윽- 퍽! 스으윽- 퍼억! 스윽- 퍽! 스으윽- 퍼억! 스윽...
그때가 이미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 기분 나쁜 소리가 잠시도 멈추질 않고 반복해서 계속 들리는 거야.
진짜 짜증나게.
그래서 내가 방문을 열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깐
그 소리가 부엌 쪽에서 들려오고 있더라고.
'하아... 범인은 엄마였구나!' 난 확신했지.
그래서,
'엄마! 불도 안켜고 깜깜한 부엌에서 이 시간에 대체 뭘 하는 거야?
이 짜증나는 소리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잖아!'
부엌에 도착한 내가 전등 스위치를 힘껏 누르면서 있는 대로 신경질을 냈어.
그런데...
전등에 불은 안들어오고,
스윽- 퍽! 스으윽- 퍼억! 스윽- 퍽! 스으윽- 퍼억! 스윽...
이 섬뜩한 소리만 멈추지 않고 계속 들려왔어.
아까보다 두 배 정도는 빠른 속도로.
그래서 난 다시...
'엄마! 내 말 안들려? 이제 그만하라고 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울먹이면서 그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곳을 봤는데...
거기엔 우리 엄마가 아닌 새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귀신이
돌아앉아서 뭔가를 반복적으로 계속 하고 있더라고.
'하아... 꿈이었구나?!' 난 바로 직감했지.
사실 귀신이 나오는 꿈은 이전에도 여러 번 꾼적이 있었는데...
내 경험상 꿈에서 귀신을 맞닥뜨리면 그 귀신이 나한테 엉겨 붙어서 좀 귀찮게 하기도 하고,
자잘하지만 며칠 동안은 안좋은 일이 연거푸 생기기도 해서...
난 이 귀신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길을 돌려 내 방으로 가려고 했어.
근데, 아... 또!
이 죽일 놈의 호기심이 또다시 얼굴을 들이미는 거야.
'도대체 뭘 하길래? 이런 소리가 나지?'
난 문지방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엄청 고민했어.
'L아, 괜히 후회할 짓 하지 말자. 넌, 지금 하나도 안궁금하다.'
이 말을 나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여봐도...
진짜 너무 궁금해서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라는 심정으로 다시 부엌으로 향했어.
부엌에 도착해서 난 그 귀신이 있는 곳까지 천천히 살금살금 다가갔어.
그러고 나서 '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하면서 빼꼼히 봤더니
이 빌어먹을 귀신이 글쎄 우리 집 쌀독에 있는 쌀을 박으로 퍼다가 자기 자루에 담고 있더라고.
나 참, 기가 막혀서...
얼마나 퍼 담았는지 우리 집 쌀독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귀신의 자루는 이미 쌀로 꽉 차서 넘쳐 흐르고 있었어.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막 화가 나더라고.
그래서,
'뭐 이런 거지 같은 귀신이 다 있어!?! 야!!! 너, 왜 허락도 없이 남의 집 쌀을 다 퍼가?!?'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치면서 난 계속 쌀을 푸고 있는 그 귀신의 팔을 확 잡아챘어.
그러자 그 귀신이 나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는데...
글쎄 그 귀신의 얼굴에 눈이랑 코가 텅 비어있는 거야.
입은 제위치에 있었는데...!
스윽- 퍽! 스으윽- 퍼억! 스윽...
난 내 귓속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이 섬뜩하고 기분 나쁜 소리가 당연히
귀신이 쌀독에서 쌀을 퍼서 자루에다 쌀을 담을 때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 소리가... 그 귀신이 입으로 내는 소리였더라고.
나는 깜짝 놀라서 '꺄아아아악─!!!' 비명을 질렀고,
그렇게 꿈에서 깼어."
어느새 난 일어나 앉아서 진지한 얼굴로 L의 얘기를 듣고 있었어.
"K야, 해몽... 가능하겠어?"
"아니, 미안해. 이런 꿈 얘기는 나도 처음 들어봐서."
"아... 그렇구나."
L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어.
"근데, 우리 가족 중에 니가 꾼 꿈에 대해서 아실만한 분이 계시니깐 내가 그분께 꼭 여쭤볼게."
"아! 진짜!? 고마워, K야. 그럼, 부탁 좀 할게."
"그래, 알았어."
L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어.
"L아, 사진 찍게 빨리 이리로 와~"
L은 동기들의 부름에 다시 여자 애들 무리로 돌아갔고,
나는 벤치에 누워 L이 들려준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어.
"쌀 푸는 귀신 꿈 얘기라... 흐음..."
<대학 동기 L에 관한 이야기 하나 더> 는 下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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