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는 표현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 또한 믿는 사람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거창한 인문학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발언은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의 경험에서 온다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저는 모든 작품에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훈적인 내용이든,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든 그건 메시지가 있는 거죠.
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작가가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게 있고 그걸 만화에 제대로 녹여낸다면 메시지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취사선택이 필요합니다.
독자로 하여금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거지요.
그리고 이런 불필요한 곁가지를 쳐내는 과정에 작가로서의 역량이 드러난다고 봅니다.
1626이라는 만화에서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측의 해명 메일 등,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사건의 중심이 되고 있는 묘사는 두 인물이 동거하게 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극의 전개 상 해당 장면은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 장면이 미성년으로 오인될 수 있는 등장인물에 대한(이건 사측 주장을 최대한 너그러이 수용한 결과) 성폭력에 대한 묘사였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NO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만약 작품의 주제의식이 그러한 민감한 사건과 맞닿아있는 것이라면 이해를 구할 수 있습니다.
자극적인 내용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작품으로서 인정받는 이유 역시 묘사되는 사건들이 주제의식을 표현함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도가니 등과 같이 그 묘사의 수준에 대한 찬반양론은 있을지언정 묘사 자체의 여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처럼)
1626에서의 그 장면은 충분히 다른 장면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작가 입장에서는 고민을 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클리셰를 피해 이 두 사람을 같은 공간에 밀어넣을 수 있을까?
어떤 사건들이 후보군에 올랐든 결국 작가가 선택한 묘사는 상기한 바와 같습니다.
섣불리 추측하는 것은 금물이지만 그 묘사는 작가 본인의 가치관에 의해 허용 가능한 묘사였을 수도 있고. 혹은 창작이라는 행동에 대한 고뇌의 부재 탓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성향이 어떻든 간에, 대중에게 공개된 미디어를 제작할 때에는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파급력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공개된 장소에 작품을 게시하는 일이 집에 꽁꽁 숨겨둔 일기장에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작가는 그 어떤 사항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은 채 작품을 게시했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작가의 자유이지만, 그것에 대하여 비평하는 것 역시 향유층의 자유입니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 작품의 성격은 작가 본인이 아닌 소비자의 평가에 의해 정해집니다.
이것을 거부하고 작가의 의도를 강변하는 순간, 작품의 생명은 끝납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는 해당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정서적 특성과도 일부분 닿아 있습니다.
일부 소비자들이 다른 나라의 잣대를 가져다 대어 불필요한 자극을 수용하지 못하는 대중을 폄하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없는 일로 비칩니다.
결론적으로, 불필요한 자극적 묘사에 의해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저는 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면, 저는 작가에게 스스로의 자질을 의심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고 레벨의 문제든 표현법의 문제든, 작가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대중을 만족시키기에는 그 그릇이 매우 작지 않은가 하고요.
그리고 지속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빙자하여 작가의 역량 부족을 변호하게 된다면, 결국 웹툰이라는 매체 자체가 서브컬쳐의 껍데기를 벗을 일도 없을 것이고 결국 대중과는 점점 유리되고 말겠지요.
요약
작가는 주제의식과 관계없는 자극적인 묘사를 했다.
이에 대한 비판은 타당하다.
이 모든 건 작가의 역량부족에 기인한다.
추신 :
다른 매체의 경우를 들어 자극적 묘사의 허용 가부 자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의미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