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되면 끊이지 않는 논쟁이 구미호 꼬리물고 고개넘듯이 넘어 오는 주제가 바로 "한국의 보신탕 문화" 이다. 이 보신 문화는 비단 개 뿐만 아니라 각종 동물친구들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에 애견 애호가에서 동물 보호자들까지 동물의 존엄권을 소리높여 외치고, 행여 집에 강아지라도 있는 열혈 네티즌은 외국의 시선과 자신의 편견을 조합해 보신탕 먹는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하기 일쑤다.
반면 이글을 보는 많은 분들이 푸르딩딩 리플들로 응답하시듯이 이제 우리 나라 네티즌들도 진정한 문화의 상대성과 서양식의 이기적 인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함양하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애견 애호가들이 주장하는 서양의 '한국의 야만문화'적 시각은 어디서 근거하는 것일까. 대충 그까이꺼 내 머리속 상식의 바다에서 건져올려 끄적여보고자 한다. 개는 라틴어로 canis(까니스)라고 하는데 종족의 범위는 동물군이 아니고 무려 "가족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니까 애견 문화는 최소 라틴어가 쓰이던 로마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개는 집단의 무의식속에 자리잡은 유목민의 동반자이자 당연히 여길수 있는 가족의 한 구성원에 다름이 아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오늘날 프랑스 포르노 배우 아줌마의 생각에도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들이 수천년 동안 개를 가족으로 대해왔으니 이제 와서 대뜸 개고기 문화를 그들에게 이해시키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찌 쉬운일이겠는가만, 그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손 치더라도 그들이 우리를 야만이라고 치부하는 그 문화는 스스로를 '문화적 편견'에 사로잡힌 비 지성인 이라고 인정하는 꼴이 된다.
기실 바르도 아줌마 같은 지성과 교양이 겸비되어 부족하신 양반을 제외하고서라도 서양의 동물 보호 사상에는 문제가 많다. 그들은 채식의 근거를 인도의 전통 풍습 뿐만 아니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까지 인용하면서 채식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제시하는데, 피 철철 흐르는 스테이크가 그들의 수천년간 내려온 주식임을 감안할 때 그 사상의 역전은 놀라울 정도이다. 현대에 이르러 그들의 소 도축문화의 잔인함과 동물학대의 끔찍함을 눈으로 본 사람이라면, 생명 존중과 동물의 권리를 위해 육식을 금하자!! 라는 슬로건은 어느정도 수긍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보자. 그들의 주장은 대체로 이런 것이다. 채식은 우리 아이들이 만화나 티비에서 동물 주인공(베이브같은) 들과 친숙해진 후, 식탁에 올라온 그들의 고기를 먹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고통에서 덜어준다..라는 식이다. 의학을 위한 동물실험 반대는 물론이고 이땅에 육식자들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그들의 동물의 권익 보호를 위한 투쟁은 계속될 터인데, 피 철철 흘리는 소고기는 괜찮고 옆에서 혓바닥 쭉쭉 빨면서 염색시키고 옷입혀주는 강아지는 못먹겠다는 그들의 논리에서 단 한발자국도 진보가 없다.
즉, 철저하게 인간의 입장에서 예전엔 개에 그쳤던 동물의 의인화를, 이제는 전 동물에게 확장시키겠다는 논리다. (최근에 식물의 감정, 활동들이 연구되고 있는데 언젠가는 이 사람들 다른 생명을 위해 굶어죽겠다는 운동을 펼질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들의 동물 사랑은 철저하게 인간의 시각에 근거한 의인화이자 자기만족에 다름아니다. 그래서는 인간을 위해서도 동물을 위해서도 득될 것이 전혀 없다. 이것은 새로운 자연의 학대에 불과할 뿐이지 않은가.
한국의 가치관은 조금 다르다. 한국은 역시 인본주의라 인간이 우선이고 동물은 나중이다. 얼핏 과거 서양의 사상과 다를바는 없어 보이겠지만 한국의 그것은 '동물은 동물답게'가 모토이다. 적절한 예가 있다. 과거 한창 광우병이 기승을 부릴 무렵, 전 세계적으로 광우병 기미가 있는 소들은 강제 도축당했었다. 어떤 사람들이 또 봤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티비를 통해 비쳐진 미국의 도축은 포크레인으로 그냥 소들 퍼다가 묻어버리는 그런 것이었다. 한국의 한 농가에서도 모든 소들이 도축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 목장의 주인은 그날 최고로 비싼 사료들과 여물들로 소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했다. 기자는 어째서 그런 경제적으로 무의미한 일을 하냐고 물었지만 주인은 소들이 상품 가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음식조절을 해야 했지만 마지막으로 죽기전에 맛있는 거라도 실컷 먹이고 싶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개들에게 염색을 하고 신발을 신기고 성대를 결절하면서 육식에 반대하고 휴가철에 기르던 개들을 유기하는 것이 그들의 동물 보호 문화라면, 마당에 놓아 기르고 먹다남은 반찬에 밥비벼 먹이다가 복날에 잡을 지언정 동물을 동물로서 최선을 다해 마음을 담아 기르는 것은 우리의 인본주의 이다.
종별과 나이를 불문한 무분별한 개의 폭력적이고도 비상식적인 도축은 충분히 비난받아 마땅하고, 합리적 분석에 따른 적절한 식용견의 선별과 한국형 인본주의에 근거한 식용견의 사육, 그리고 적법한 절차에 따른 도축 시스템의 구축은 정말 필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이것에 관한 논의와 개고기 문화에 대한 논의는 서로 별개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집 진돌이를 피서온 관광객들이 훔쳐다가 몽둥이로 두들겨서 구워먹은 것과 한국의 개고기 음식에 대한 문화적인 논쟁은 열성 믹스 영양실조 견 보다도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