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베의 섹스리스글들과 시엄니관한 글을 읽고 씁니다. 결국 대화가 중요하단 건 모두가 알고 있는 거 같아서요.
남편이 결혼 초 싸우면서 이 말을 참 많이 했어요. 길 지나가는 백명을 붙들고 물어봐라, 니가 맞나, 라고요. 그러면 의아했던 게, 그 백명의 평균이라서 저랑결혼한 게 아니잖아요? 그 백명이 저랑 살라고 해서 저랑 사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둘은 우리 둘의 상황에 맞는 룰을 세우고 그 룰을 지켜나가야 하는데, 남편에게 불리한 룰을 설정할때는 꼭 '백명'에게 물어야 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백명에게 묻지 않아도, 간단한 검색 한 번으로 남편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알려줄 수 있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둘만의 룰을 정할때 굳이 '외부의 백명' 이 필요치 않다는 걸 남편은 조금씩 깨달아 갔어요. 그 와중에 소리지른거랑 난리친거 생각하면 지금도 명치를 치고 싶....아...아닙니다.
대화,좋죠. 룰을 정하고 룰을 고치고 하려면 대화가 필요한데요, 근데 이 대화에도 룰이 있고요, 그 룰이 있다는 걸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있다고 하더라도 룰이 다른 경우가 참 많아요. 그러니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소통해서 서로를 알고, 이해의 기반 아래 룰을 정하고 룰을 지켜나간다는 건 정말 요원한 일이 됩니다.
1. 들어주는 것.
'대화'를 준비할 때 무엇을 생각하세요? 사랑과 신뢰 이런 추상적인거 말고요, 보통, 무슨말을 어떻게 하지, 를 준비하지 않으시나요. '발화'를 준비하죠, 보통.
전에 정치인의 트위터를 비교, 분석하는 보고를 한 적이 있는데요. 어떤 트위터는 팔로워도 많고 인기도 ㅏ많고 sns활동이 해당 정치인의 이미지 형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똑같이 활동을 열심히 하는 정치인은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때 중요한 차이가 리트윗이었어요. 트윗수보다 리트윗, 쪽지 답장의 정도가 트위터 인기에 더 큰 상관관계가 있었죠.
정치인, 하면 답답한 이미지가 있고, 뭔가 '포기'하게되는 게 있잖아요. 근데 와중에 별거아닌 내 트윗에 반응해주고 대답해주고, 심지어 자신의 계정으로 리트윗을 해주면 그 정치인의 그 답답한 이미지가 좀 벗겨지는 거죠. 네, 이게 소통의 시작이라고 봐요.
베스트에 올라간 시엄니 사랑한다는 글을 보면서 제 시어머니가 생각났는데요. 제 시어머니 참 착한 분이세요. 사랑도 많으시고 며느리도 딸같이 생각하시는 분이에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대화하는 법을 모르세요. 한때 제가 부모님과의 사이가 안좋아서 아이를 낳는 게 두렵다는 진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와인이 한잔 들어가니 속얘기가 나온 건데, 그 얘기를 들으신 시어머니가 박장대소(...이때부터 읭? 상태)를 하시면서 친구가 첫째손주는 여자애였고 이번에 둘째손주가 남자애가 나왔는데 첫째때는 아닌 척 하더니 막상 손자를 보니 좋아하더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집에는 아들이 꼭 있어야 든든하다고...(...네?) 말씀하시는데 정말 벙... 제가 딸이어서 힘들었다는 얘기도 아니고 아버지가 가부장적이어서 힘들었다는 얘기였는데 말이에요. 그후로도 몇번 그렇게 대화가 점프하는 일을 겪고, 이제는 다시 시어머니와 깊은 대화를 가지려 하지도, 그럴수 있는 자리를 만들지도 않아요.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낯선 며느리와의 자리에서 뭔가 할얘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고, 마침 주제가 '자녀'이니 근래 들었던 재미(?)있었던 얘기를 하신 거겠죠. 요새는 가끔 그럽니다. 어머님, 불편하시면 그냥 들어주셔도 돼요, 하고요.
그저 들을 준비를 하는 것 만으로도 대화를 할 수 있는 멍석은 50%가 깔린다고 생각해요. 오늘 이 사람이 무슨 일이 있었지, 요새 힘들지는 않은가, 걱정은 없는가, 하는 생각들이요. 그건 무언의 '관심을 전달하는 행위' 거든요.
2. 감정을 설명하기
들어주었다면 자신의 이야기도 전달해야죠. 근데 이때 그 이야기에 섞인 감정을 감정 그대로 전달할 때가 많아요. 그럼 이야기의 주가 되는 '사건'은 이전의 것인데, 지금의 시간마저 과거에 종속돼버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충돌이 되기 쉽습니다. 새로운 상처가 생기고, 새로운 상처는 또 대화를 막는 방해물이 되어 대화가 대화를 막게 되죠.
그렇다고 감정을 전달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 감정이 내 삶의 많은 부분인데요. 그때 서운해서 지금 얘기를 꺼내는 건데 서운했던 감정을 숨기면 발화의 목적자체가 바뀌는 거니까요.
그래서 설명하는 거죠. 내 감정이 그때 이러이러해서 서운했다, 슬펐다, 혹은 나도 왜그런지는 모르지만 감정이 이러이러 하다, 하고 말입니다.
이거 생각보다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이제껏 경험상 남자는 분노를, 여자는 슬픔을, 이렇게 설명하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뿜어내는 경우 많이 봤어요. 게다가 나는 슬픔과 분노를 잘 삭이고 말로 잘 설명하려고 하는데, 상대는 있는 그대로 뿜어내고 있으면 ㅋㅋㅋ 새로운 분노가 저 깊은곳에서 '뿜어도돼!' '얘가 먼저 그랬어!' 하고 속삭입니다. 결혼 초반에 다툼이 끝나고 나면 미안하다고 하는 남편에게 발로 열대만 차도 되냐고 많이 물어봤어요.
3. 힘들었겠구나, 말 한 마디의 힘.
서로의 이야기든 감정이든 오가고 나면 혹 지나가는 말이라도 '그래, 힘들었겠구나' 한 마디라도 해보세요. 마법의 주문같은 말이에요.
임신하고 몸이 안좋아서 하루를 엉망으로 보내고 밤에는 자괴감에 우울감이 섞여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고는 퇴근한 남편을 맞았어요. 남편이 찌든 얼굴을 하고 밤 열시에 왔는데, 그 얼굴에 대고 나 오늘 이랬다, 저랬다, 지금 이런 느낌이네, 하고 두다다다 사실상 감정의 배설을 한 건데,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그래, 우리 아내 임신해서 너무 힘드네...하고요.
사실 영혼은 없어보였고... ㅋㅋㅋ 본인한테 하는 말 같았지만 그 말이 마법처럼 하루의 우울을 녹이고, 저도 이렇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우리 오빠가 더힘들었네!! 얼굴이 안됐다!! 하고요.
대화는 소통을 위한 건데, 소통은 교감을 위한 거잖아요. 그럼 교감했다는 한마디를 해줘야 알게되는건데, 너무 당연한 건데도, 미안하다 고맙다 수고했다 잘했다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요.
사랑해, 라고 말하기 전에 그날의 이야기를 잘 들었다는 의미로 한마디를 먼저 해보세요. 아, 그랬구나, 정도라도요.
한줄요약
듣고, 표현하고, 발로차...아니, 고생이 많구나 한마디, 이 간단한데 하기 힘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