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조국·오연호,『진보집권플랜』
- 조국의 ‘진보집권플랜’을 둘러싼 논의들과 나의 입장
확실히 조국의 ‘진보집권플랜’이 화제입니다. 지난 20일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조국을 ‘겉과 속이 다른 강남좌파’라고 비판했습니다. 외고를 비판하지만 자기 딸은 외고에 보냈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보수진영에서는 이를 재생산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에 대해 조국은 "나는 내속의 '위선'과 '언행불일치'를 직시하고 이를 고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동아의 공격에 위축될 생각은 없다. 동아는 '강부자', '고소영'층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강남좌파'할퀴기에 여념이 없다."라고 대응했지요.
조국을 둘러싼 또 다른 논쟁 중의 하나는 김규항과 진중권의 것입니다. 김규항은 조국을 비판하면서 본 책의 제목을 ‘<시민집권플랜> 혹은 <민주집권플랜>’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진보란 먹고사는 데 별 걱정이 없는 중산층 엘리트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변화를 대다수 인민들을 위한 변화라 과장하는 게 아니"며, "자신들에겐 충분한 변화더라도 대다수 인민들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두 저자가 주장하는 적극적인 선거연합을 통한 정권교체는 '대다수 인민들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진중권은 "현재 진보정당은 집권 전망도 수권 능력도 없다. 이것이 철인좌파마저 모자 눌러쓰고 진보정당을 외면해온 바람에 생긴 빌어먹을 현실"이라며 정당 활동에 인색했던 김규항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선거연합에 대해서도 "지금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다가올 연합 속에서 되도록 진보의 가치를 많이 관철시키는 것이지, 그 연합에 딱지나 갈아붙이는 것은 확실히 아니"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김규항의 주장이 이해됩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우파 자유주의 정권임에도 끊임없이 ‘진보’의 탈을 쓰고 활개하여 진짜 진보가 망각되는 현실을 끊임없이 개탄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유시민과 손을 잡으려는 진보정당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극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지요. 하지만 진중권의 말마따나 현재의 진보정당의 현실 앞에서,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다소 무기력해 집니다. 김규항은 진보의 정체성을 공고히 확립하고 그것을 타협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사실 원론적인 말이지요.
저는 선거연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규항의 말처럼 자유주의 우파에게 근본적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우파에게 흡수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진중권은 "중요한 것은 공통의 가치를 마련하는 것. 유럽식 ‘사회국가’의 이념 아래 서민복지와 남북화해를 추구한다는 최저 강령에는 세 주체가 모두 동의하지 않을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선이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선이 지켜진다면 분명 많은 민중들이 더 나은 삶의 조건을 획득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실상 문제는 이러한 진보적 가치가 과연 실질적으로 관철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조국은 “남북 문제에서는 군축, 평화공존,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경제에서는 자유시장주의,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시장에서 패자를 아우르는 정책을 추구하고, 양심·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시한 각종 정치적 기본권의 확대·강화를 지지하는 것이 진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계급적으로 보면 진보는 강자나 부자의 편이 아니라 약자나 빈자의 편”이고, “특권을 가진 엘리트의 편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편”이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서민과 보통 사람이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봅니다. 진보의 길이 곧 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저는 어디에 가서든 공개적으로 진보를 자처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조국은 강남에 살고 있고, 서울대 법대 교수고, 딸은 외고에 다닙니다. 김규항이 볼 때 조국은 ‘좌파’라고 하기에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조국이 또다시 ‘진보’를 오염시키게 될까봐 많은 걱정을 하는 것이지요. 김규항에게 조국은 “양심적 자유주의자”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이 조국을 유시민과 같은 선상에 놓인 것으로 파악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10년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는 의미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지요. 저는 조국이 자유주의 정당이 아니라 진보정당과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가 표방한 진보가 우보단 좌에 가깝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제시하는 정책들도 대개 사민주의를 통해서만 수렴 가능한 것들이고요.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독자파’가 압승을 했습니다.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민노당’과의 결합에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분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조건들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과 선거연대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당은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런저런 바람에 휘둘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고 현실 정치에 구현하기 위한 전략은 있어야 합니다. 선거 연합은 그러한 전략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선거 연합 없이는 진보정당이 자신의 뜻을 결코 현실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흡수가 되는 것을 끝없이 경계하면서 연합의 ‘공동의 가치’에 진보적 가치를 이입하는 것에 힘을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만약 진보적 가치가 관철되지 않는 상황에서 연합이 요구된다면 무조건 반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차이’만을 부각시켜 고립을 자처하는 것 또한 반길 수 없습니다. 앞으로 굵직굵직한 선거가 연달아 진행됩니다. 진보가 더 이상 자유우파의 동원 대상이 되지 않으면서도 국민들과 괴리되지 않게끔 함께 고민하여 현명한 걸음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이 그럼에도 저는 다시 한 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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