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기분이 참 요상했다.
평소와 같이 산타페에 올라 시동을 켰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작은 나의 터전에 도착했던 하루였다.
도시의 높은 건물 숲 속에서 작은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카페 '작은' 에서 오픈 준비를 하던 도중,
딸랑, 하며 손님이 들어옴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어서오세요."
고객이 늘 아침을 맞이하며 기분이 좋길 바라는 마음에 웃으며 고개를 드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카페 바에서 나와 두리번 거려보아도 고객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뒤에서
"저기요."
그 고객(사람인지 아닌지는 잘모르겠다만 남자)은 자세히 듣지 않는다면 잘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아고, 놀래라. 어떤 음료로 드릴까요?"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부탁 드릴게 있어 왔습니다."
"어떤 부탁인가요?"
"당신의 수명을 단 하루만 저에게 줄 수 있으십니까?"
"네?"
"여기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딱 하루, 아니 12시간만 줄 수 없을까요?"
화장실을 이용한다거나, 혹은 핸드폰을 충전해달라고 하는 소소한 부탁과는 달랐다.
거짓말 같지만 너무나도 긴박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내게 부탁하는 남자의 청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장신의 남자를 내가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과, 안색이 창백하고 호소하는 그 남자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요? 말도 안돼."
"저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제발. 12시간만 줄 수 없습니까?"
여러 번 말하는 남자에게, 나는 그러겠노라.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남자는,
"감사합니다. 당신에게 절반의 슬픔과 절반의 기쁨이 찾아올겁니다. 당신 덕분에 정말 만나고 싶던 사람을 만나고 갑니다."
남자는 문을 열고 나갔고, 문이 닫힘과 동시에 종소리가 울리지 않음을 자각한 난 뭔가 홀린 것 마냥 문을 열고 나가 밖을 두리번거렸다.
어디론가 가버렸는지 형태도 보이지 않았고 뒤에서 문이 닫히며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정신 없이 일하다가 마감 시간이 되어 머신과 매장을 정리 한 후 매장 문을 꼼꼼히 잠그고, 다시 산타페에 올랐다.
하루가 찜찜하던 그 남자와의 일을 되짚어 보며 운전을 하던 중, 타이어가 터져 운전대가 흔들렸다.
겨우겨우 갓길에 주차 하고 차에서 내려 센터에 전화하던 중 나에게로 대형 트럭이 돌진하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나를 끌어당기듯이 옆쪽 보행자 길에 내팽겨쳐졌고, 화물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내 차를 그대로 들이박았다.
차는 불이 붙어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화물차는 운전석까지 찌그러진 상태에서 같이 불 붙고 있었다.
나는 전화하던 와중 그대로 얼어붙었고, 곧이어 사고가 났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와 소방차, 그리고 경찰차가 도착했고 사고 난 차에 물을 끼얹어댔다.
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수습이 끝나갈무렵 오전에 보았던 그 남자가 불빛 속에서 아롱아롱 비추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 남자는 인자하게 한번 웃어보이더니 뒤돌아서 걸어가버렸다.
며칠 뒤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에서는
"이경아 씨 맞습니까? 어제 사고 접수했던 경찰소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사고난 사고자가 …"
나는 그 순간 전화 받다가 환호를 지를뻔 했다.
"… 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아...아.. 어떻게 그런일이.."
"그러시는거 이해가 갑니다. 지금 방문 가능하십니까?"
"네, 곧바로 가겠습니다."
그 사고자는, 나의 남편 이자, 별거 중이지만 아직 까지 이혼하지 않아 억대의 보험금을 내게 남겨줄 남자였다.
나에게 수없이 뺨을 때리고, 이사 가는 곳마다 따라오고 위장 신분까지 하고 성형까지 해서 피하고 싶었던 사람.
이런 식으로 수명을 거래해서 죽였던 내 수많은 남편들. 죽어서도 날 위해 일할 수 밖에 없는 착해진 남편들.
그래도 내가 추모제는 잘 지내주잖아? 그럼 된거 아니겠어? 그렇지?
바닥에 새까맣게 눌러붙은 남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남자에게 웃어보였다. 하루가 기뻤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얼굴을 짓밟고 경쾌한 기분으로 사뿐사뿐 햇빛으로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