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전해들은 주아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 난 하나님만 믿어. 네가 뭘 잘 못 본걸 거야.”
“아니야! 진짜 아무것도 없다니까!”
시연이가 소리를 지르며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됐어. 그냥 잊어버리고 얼른 펜션이나 가자.”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모처럼 멀리까지 온 여행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아직도 속이 거북하다는 시연이를 다독여 차에 태우고 다시 출발을 했다.
이미 차안엔 여행의 설렘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우린 약속이나 한 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고, 주아는 핸들을 잡은 두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30분을 더 달려서 목적지인 해너미펜션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차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우린 깊은 숨을 쉴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좋은데?”
주아의 말에 그제야 시연이의 얼굴도 스르르 펴졌다.
“그래, 힘들게 왔는데 안 좋은 건 빨랑 잊고 재밌게 놀자~!”
“근데 아무도 없나? 실례합니다!”
관리사무소라고 쓰인 나무판이 걸려있는 컨테이너 문을 두드렸다.
숱이 적은 스포츠머리를 한 반백의 아저씨가 알록달록한 등산조끼를 입고 나왔다.
펜션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의구심을 가지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예약을 했는데요.”
“아~ 유강씨로 예약한 분들이신가요?”
시연이가 흘끗 주아를 돌아다봤다.
“네, 유 강 으로 예약을 했어요. 바비큐는 따로 준비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시연이의 눈빛을 누르고 주아가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네, 일찍 오셨네요. 이 쪽 방입니다. 오늘 비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어제부터 손님이 별로 없어 불행 중 다행인지 청소해둔 방이 있네요. 바로 짐 옮기셔도 됩니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싹싹한 말투, 싱글싱글 웃는 얼굴에 다소 맘이 놓였다.
“우와~! 역시 오길 잘했어. 빨리빨리 여기 좀 나와 봐!”
시연이의 설레발에 냉장고에 소주병 넣던 손을 멈추고 베란다로 향했다.
흰색 테이블에 흰색 나무의자가 눈부시게 놓여있는 베란다 정면으로 컴퓨터화면에서 보던 그 바다가 스크린처럼 펼쳐져 있었다.
“와~~~~와~~우~~와~~~~”
연신 감탄사만 쏟아내던 우리들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파노라마 샷, 전신샷, 셀프샷, 혼자서, 둘이서, 셋이서.....
“여기 정말 끝내준다. 우리 다음에 또 오자. 진짜 완전 너무 멋져!”
“그러게, 가을에도 겨울에도 좋을 것 같아.”
주아도 시연이도 맘에 들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근데 왜 유강이 이름으로 예약한 거야?”
“왜? 내 이름으로 하면 안 돼? 그 때 내가 바빠지는 바람에 주아가 대신 예약한 거지만, 여길 찾은 것도 나고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
시연이의 트집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그냥~ 중요한 것도 아닌데 뭘. 우리 파도나 타러가자.”
주아가 팔짱을 끼며 토닥여 주지 않았다면 큰소리가 날 뻔했다.
아까 가게일로 예민해 졌는지 기분이 널뛰기를 하는 것 같다.
짐 정리를 끝낸 뒤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나가려 계단을 내려가니 화면에서 보다 쨍하게 파란 빛 수영장이 있었다.
1,2층을 숙소로 만든 펜션은 바닷가 쪽으로 받쳐진 기둥안쪽으로 큰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고, 성인 가슴높이까지 오는 물 건너편엔 바다가 맞닿아 있었다.
베란다너머 바다를 볼 때처럼 우린 한동안 감탄사만 내뱉고 있었다.
“와................이게 뭐냐.”
“나 이런 거 실제로 처음 봐.”
“나도 나도.”
수염도 깎지 않았던 주인아저씨는 수영장 관리는 기가 막히게 해놓았다.
지하수를 끌어 온 건지 수영장 바닥에선 어디선가 퐁퐁퐁 물이 계속 나오고 있었고, 한 쪽엔 썬베드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베란다의 테이블과 의자처럼 눈부신 흰색의 썬베드 옆으로는 역시나 흰색의 라탄 그네의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건물 때문에 그늘이 져 뜨거운 햇빛도 피할 수가 있었다.
“정오가 지나면 해가 지면서 안쪽으로 조금씩 해가 들어요. 그 때 태닝하실 분들은 이곳에서 하시면 됩니다.”
언제 내려왔는지 반백의 아저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썬베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멋! 언제 내려오셨어요? 우리가 너무 흥분해서 발자국 소리도 못 들었나 보네요.”
시연이가 일부러 크게 놀라는 척하며 웃었다.
“그런데, 오늘 손님은 우리뿐인가요?”
“아닙니다. 끝 방에 어제부터 낚시하러 온 남자 두 분도 계시고, 가족단위 예약도 세 건 있어요. 아직 시간이 일러 도착을 안하신거죠.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라도 말씀하세요.”
“혹시 세탁기 있나요? 수영하고 옷을 말려서 가고 싶은데....”
“그럼요~ 다른 손님들은 안 되도 여기 손님들은 다 해드리겠습니다.”
“어머~ 감사해라. 호호호호 서비스가 정말 좋으시네요.”
시연이의 애교에 반백의 아저씨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정신을 놓았다.
“저녁에 소주한 잔 얻어먹으러 가겠습니다. 하하하하.”
“네~ 그러세요.”
시연이는 주아의 눈치에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리며 옆으로 비켜섰다.
“시연아 바다에 나가보자. 그럼 수고하세요.”
“어! 주아야, 같이 가~!”
나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가는 주아를 뒤를 쫓았다.
얼핏 돌아보니 짧은 목례를 하고 시연이가 급히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언제나 이렇다.
시연이는 관심 없는 남자에게도 늘 상냥했고, 그 남자들은 홀린 듯 빠져 들었으며, 주아는 진저리를 치며 그 자리를 피했다.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