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 엄청나게 둔감한 편이라서, 가위도 고3때 빼고는 눌려본 적이 없었습니다.그러다 몇년 전 미국의 어느 한 중소도시에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세들어 살 아담한 2층집을 구했는데, 오래된 건물이긴 했어도(약 70년 전에 지어졌다는군요) 집값이 이상할 정도로 쌌었습니다. 그랬으니까 구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둔감하니까 별 신경 안쓰고, 집도 오래된 것 치곤 상당히 깨끗하고 예쁘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의 터가 안 좋은지, 매일 밤마다 생전 안꾸던 악몽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의 내용은 매번 같진 않았지만, 항상 처음 보는 어떤 할머니가 꿈 속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죠)
밤 두시 쯤 되면 어김없이 끔찍한 꿈이 시작되고, 한참 동안 괴로워하다가 세시쯤에 깨어나 불을 켜고,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꿈 속의 일인데 제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계속 악몽을 꿀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며칠 뒤 한국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물론 안부를 묻는 어머니의 전화에, 저는 멀리서 걱정하실까봐 내색하지 않고 아무 일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이윽고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괜찮니? 실은 내가 요새 꿈을 꾸는 데 그게 기분이 참 안 좋아서 말이다..."
저희 어머니는 저와 달라 민감한 편이었기 때문에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꿈에서 네가 자고 있는데, 옆에 웬 할머니가 나란히 눕곤 하지 않니...? 그래서 내가 아니 [할머니, 왜 여기와서 누워요?] 하고 쫓으려 하니까, 그 할멈이 어찌나 무섭게 노려보는지, 내가 밤마다 놀라서 깬단다.
놀랍게도 어머니의 꿈은 제가 꿨던 꿈과 동일한 내용이었고, 저는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되어 그동안 안 나가던 성당도 찾아 나갔습니다. 다행히도 그 후론 악몽꾸는 일이 많이 없어졌죠.
얼마 후 그 집을 떠나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집을 내놓으려면 깨끗이 청소를 해둬야 했습니다. 평소 다른 곳은 날마다 청소를 했었는데, 어두침침한 다락은 그때까지 어쩐지 무서워서 올라가보질 않고 살았었습니다. 처음 이사올때 잠깐 들여다 본 이후 한번도 올라가질 않았죠.
그래도 이제 떠나려니 청소를 해야지.. 라는 생각에 사방에 쳐진 거미줄을 걷고 먼지를 한참 쓸어내던 와중, 방 구석에 곱게 포장지로 싸인 상자를 보았습니다.
아무런 짐도 남겨져있지 않은 빈 다락인 줄 알았는데, 그건 마치 벽돌처럼 놓여있어서 전 주인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나 봅니다. 이윽고 상자를 열어보니 웬 할머니용 구두가 들어있지 않겠습니까.
분명 오래된 신발일텐데 유난히 반짝거리는게 새것 같아, 웬지 기분이 나빠져서 쓰레기통에 버렸지만, 그때 악몽과 구두를 생각하면 기분이 뭐랄까 묘해집니다.
[투고] 크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