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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00418
    작성자 : 냥이박사
    추천 : 10
    조회수 : 1309
    IP : 59.151.***.57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9/07/01 22:02:35
    http://todayhumor.com/?panic_100418 모바일
    [단편] 푸른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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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장창- 하는 소리가 안방에서 들려왔다. 난 또다시 그것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엄마는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눈빛을 나와 언니에게 보냈다. 우릴 소파에 남겨둔 채 엄마는 안방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단발의 비명소리와 함께 아빠가 엄마를 구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열린 문 앞으로 달려가 비참한 현장을 직접 눈에 담았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안방에는 초록 소주병이 나뒹굴었다. 아빠는 또 술을 마셨다. 난 원망을 실은 눈빛으로 아빠를 쏘아보았는데 그에게서 이상한 것이 보였다.
       새파란 무언가가 아빠 뒤에 있었다. 얼마 전부터 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 아빠에게서 보인 것이었다. 난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했다.
     

       “, 가족끼리 무슨 신고야. 그러지마.”
     

       내가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언니는 나를 말렸다. 그러나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언니의 방해에도 난 기어코 112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경찰관 두 명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집안을 둘러봤다. 안방에 나뒹구는 소주병과 술에 취한 아빠, 그리고 볼이 얼얼해진 엄마까지.
       벽에 걸린 시계는 저녁 7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남편분이 술을 좀 거하게 드신 거 같은데... 가족일은 가족끼리 해결하세요. 경찰을 부르면 가족끼리 감정만 상해요.”
     

       경찰은 이 말만 남긴 채 그대로 가버렸다. 난 경찰을 부르면 무언가 해결이 될 줄 알았다. 엄마가 더 이상 맞지 않고, 아빠에게 보이는 새파란 무언가도 쫓아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난 수업 내내 침울했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나이다. 여러 생각들이 오고가는 나날인데 가슴속에 커다란 바위가 눌러앉은 기분이었다.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않는 바위 말이다.
       물끄러미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무언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 그거 알아? 저기 위에 산 하나 보이지? 어제 거기 올라갔었는데 요정을 만났다? 글쎄 그 요정이...”
     

       한 여자 아이가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친구들이 거짓말 하지 말라며 놀려댔지만 그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푸른 장미를 통해 얼굴에 나있던 화상 자국이 다 나았다고 했다. 아이가 얼굴을 반쯤 가린 머리를 들췄다. 화상자국은 그 아이의 콤플렉스 아니었던가?
       난 그 아이의 반들반들한 피부를 보게 됐다.
     

       난 퇴교 시간에 그 아이를 단독으로 만났다. 그리고 요정을 만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난 언니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언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웃어넘겼지만 아이의 화상 자국이 사라졌다는 얘기에는 관심을 보였다. 난 밑져야 본전이라며 산에 올라가보자고 설득했다.
       아무래도 해가 곧 질 시간인데 산에 혼자 가는 것은 무서울 테니까.
     

       우린 땀을 뻘뻘 흘리며 산책로 위를 걸었다. 정상까진 꽤나 높았다. 언니는 저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난 그만큼 간절했다. 엄마가 더 이상 맞지 않았으면 했고 아빠에게 깃든 새파란 무언가도 쫓아내고 싶었다.
     

       한참을 올랐을까? 해가 거의 저물어갈 때쯤 우린 정상에 도착했다. 탁 트인 시야가 마음을 안정시켜줬지만 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난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나침반 삼아 나무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언니가 구시렁대며 내 뒤를 쫓아왔다. 난 한참을 헤맨 끝에 그 나무를 찾았다.
     

       “언니, 이 나무에 신호를 보내면 요정이 나타난대.”
     

       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는 평범한 나무일뿐이라며 그만 돌아가자 재촉했지만 난 고집을 피웠다. 아이가 말했던 대로 나무에 양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주문을 외웠더니 나무에 갖다 댄 손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 -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어왔다. 그것도 몸이 휘청일 정도의 바람 말이다.
       언니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내 눈 앞에 그것이 보였다. 키는 성인 남성만하고 피부는 초록색이었다. 노란 눈에 주름이 잔뜩 난 얼굴...
       그것은 아이가 말했던 요정이었다.
     

    2
     

       요정은 우릴 내려다봤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 모습을 본 언니도 얼떨결에 같이 인사를 해버렸다.
     

       “너희들도 비밀의 문에 들어가 푸른 장미를 얻고 싶은 거니?”
     

       그래, 푸른 장미.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흉터를 회복시켜줬다면 우리 아빠에게 깃든 새파란 무언가도 쫓아내줄 수 있겠지.
       난 요정에게 푸른 장미를 얻고 싶다며 기회를 달라고 했다.
     

       요정은 손짓으로 우리에게 따라오란 신호를 보냈다. 난 겁에 질린 언니의 손을 잡고 요정을 뒤따랐다.
        어느 바위 앞에 선 요정이 손을 뻗자 바위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굉음과 함께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난 눈을 감아버렸다.
       잠시 후 눈부심이 사라지자 눈을 떴다.
     

       내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꽃과 동물들이 말을 하는 세계였다. 나와 언니는 입을 벌린 채 넋을 잃었다.
       요정은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기에 서둘러야한다고 경고를 보냈다. 이내 정신을 차린 난 언니의 손을 꽉 쥔 채 그 세계로 들어갔다.
       푸른 장미를 가져오기 위해서 말이다.
     

       요정은 우릴 어느 도박장으로 안내했다. 도박장에는 돼지와 개의 얼굴을 한 수인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난 요정이 지정한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 빨간 천으로 뒤덮인 테이블이 있었다. 난 긴장된 마음으로 대기하고 있었는데 내 앞에 누군가 앉았다. 난 그가 물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턱시도를 입은 사람의 몸에 얼굴은 물소였으니까.
     

       물소는 시가를 입에 문 채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연기가 내 코로 들어갔지만 재채기가 나진 않았다. 그것은 마치 바닐라 향 같았다.
       그는 총 3번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 번의 기회마다 카드를 3장씩 고를 수 있는데 그것이 모두 같아야만 승리하는 게임이라 설명했다. 그리고 승리하게 된다면 보상으로 챙겨갈 수 있는 푸른 장미에 대해서도.
       당연히 게임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만약 3번 다 실패라면... 넌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동물의 얼굴을 한 채로 이곳에 살아야 돼. 그래도 할 거니?”
     

       분명 이런 얘기는 없었다. 실패할 경우 이곳에 갇히게 된다는 것 말이다. 난 고민했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빈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언니의 반대에도 난 게임을, 아니 도박을 시작했다.
     

       빨간 천위로 뒤집힌 카드들이 펼쳐졌다. 난 그중에서 3장을 골라야했다. 난 신중하게 한 장, 한 장, 그리고 또 한 장을 골랐다. 물소는 3장의 카드를 모으더니 뒤집었다. 하나는 빨간 장미, 두 번째도 빨간 장미, 세 번째는 파란 장미였다.
       실패였다.
     

       두 번째 시도도 전과 같이 진행됐는데 역시나 실패였다. 난 잠깐 휴식 시간을 요청하곤 자리에 주저앉았다. 언니는 이제 어떡할 거냐고 걱정 어린 잔소리를 늘어놨지만 내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지켜보던 요정이 내게 다가와 앉았다. 그는 푸른 장미를 가져야하는 이유를 물었다. 난 망설이다 솔직하게 털어놨다. 우리 가족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그러자 요정은 이번 게임에선 그 간절한 마음을 담아 카드를 골라 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어떤 물이 든 음료 통을 건넸다. 목이 탔던 난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포기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아뇨... 끝까지 해볼 거예요.”
     

       그러자 물소 뒤로 두 명... 아니 두 마리라고 해야 할까? 호랑이 얼굴의 수인들이 나타났다. 마치 내가 패할 경우에 달아나지 못하게 할 모양이었다.
     

       마지막 게임이 시작됐다. 좀 전까지 진정되지 않던 심장이 안정됐음을 느꼈다. 난 요정이 건넨 알 수 없는 음료에 의해 효과를 보고 있다고 자각했다.
       그와 동시에 여러 생각들이 오고갔다.
     

       일자리를 잃고 집에 틀어박힌 아빠가 술을 입을 대면서 폭행이 시작된 악몽들. 가족 모두가 희생을 치렀지만 그중에서 엄마가 가장 불쌍했다. 한여름에도 멍을 감추기 위해 긴 옷을 입고 다니던 엄마가 안쓰러웠다. 또다른 한편으론 새파란 무언가에 의해 술을 마시게 된 아빠 또한 안쓰러웠다.
       그런 생각들을 한데 모아 난 카드 3장을 단숨에 골랐다. 그리고 물소가 뒤집기 전, 내가 그 카드들을 뒤집어버렸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온건지 모르겠다.
       푸른 장미. 카드 3장 모두 푸른 장미였다.
     

       물소 뒤에 있던 호랑이가 상자를 꺼내 건넸다. 그것을 열어보자 우리 가족에게 필요했던 것. 푸른 장미가 들어있었다.
     

    3
     

       요정은 푸른 장미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줬다. 자기 스스로가 됐든, 타인이 됐든 꽃잎을 갈아 마시면 소원이 깃든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반드시 마셔야하는 상대를 잘 선택해야 된다고 충고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 대상은 아빠였으니까.
     

       나와 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집에 아빠는 없었다. 난 냉장고에 든 소주병을 몰래 방으로 가져왔다.
       푸른 꽃잎을 곱게 갈아 소주에 태웠다. 난 찌꺼기로 인해 티가 나면 어쩌나 우려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꽃잎은 물에 눈 녹듯 녹아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난 냉장고에 소주를 다시 넣고 아빠가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것이 있었다. 매일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던 아빠였는데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이미 술에 취한채로 집에 돌아온 것이다.
       아빠는 문을 늦게 열었다는 이유로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우리 자매는 아빠의 다리를 붙잡으며 애원했지만 다 큰 성인을 제압하기엔 힘이 약했다.
       오늘따라 화가 많이 났던지 아빠는 부엌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엄마는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었다. 아빠 뒤로 새파란 무언가가 더 새파랗게 짙어졌다. 그것은 아빠의 감정에 의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 뭐해. 내가 잡고 있는 동안 112에 전화해.”
       “언니, 언제는 하지 말라며?”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야?”
     

       언니는 내게 화를 내곤 아빠의 다리를 붙잡았다. 난 그 틈에 112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경찰은 다소 귀찮아하는 목소리였다. 경찰은 하는 수 없이 가겠다는 말을 하곤 전화를 끊었다.
     

       1시간이 지났을까? 경찰 두 명이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아직까지 칼을 들고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아빠를 봤다. 경찰은 한숨과 함께 아빠를 연행해갔다.
       난 망연자실하게 끌려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새파란 무언가는 내 마음에 불안감을 안겨줬다.
     

       2달이 지났다. 우리 가족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더 이상 밤마다 공포에 떨 필요는 없었다. 소파에 누워 마음 놓고 드라마를 볼 수 있었고, 두렵던 안방도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다.
     

       쾅- -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은 저녁 8시였다. 난 이 시간에 누굴까? 하는 설렘과 불안을 안고 소리가 난 현관문을 바라봤다.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더니 문을 열었다. 누군가 들어왔는데 난 그만 얼어버렸다.
       몇 달 만에 돌아온 아빠였다.
     

       아빠는 그날 연행된 후 가정보호 사건에 송치됐었다. 그 이후 처벌을 받아야했는데 두 달 만에 불처분 판결을 받고 풀려난 것이다. 난 아빠 뒤에 새파란 기운이 남아있음을 느꼈다. 나와 언니는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말하지 않아도 푸른 장미가 섞인 술을 마시게 해야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동안 내가 잘못 했다. 구치소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해봤는데... 내가 너희들에게 못난 남편이자 아빠였다. 미안하다...”
     

       아빠가 불쑥 사과를 건넸다. 난 아빠 뒤에 있는 새파란 것이 아빠를 조종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내 눈에만 보이는지 엄마와 언니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동안 그렇게 당해놓고도 가족이란 이유로 감싸 주겠다는 거야?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떡해서든 장미가 섞인 술을 마시게 해서 저 새파란 것을 쫓아내고 말 것이다.
     

       아빠는 우리에게 다신 술을 마시지 않고 일자리도 구해보겠다고 했다. 엄마와 언닌 기뻐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내 눈에만 저 새파란 것이 보였으니까.
       한편으로 경찰과 법은 왜 아빠를 처벌하지 못했을까? 이렇게나 빨리 불처분을 받고 나올 문제던가? 여전히 그 경찰의 말대로 가족일은 가족끼리 해결하라는 판결이라는 것일까? 어린 내게 이것은 큰 의문이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잠이 들었지만 난 깨어있었다. 언제 아빠가 술을 마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난 상황을 봐서 아빠가 술을 마실 때 푸른 장미가 섞인 술병을 가져가도록 유도할 계획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고요했다. 냉장고에는 내가 놔둔 술병만이 있을 것이다. 어서 빨리 아빠가 저 술병을 꺼내 몰래 마시길 기다렸다. 아빤 새파란 무언가에 의해 또 술을 마실 테니까.
     

       끼익- 하고 슬며시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아빠였다. 난 거실 소파 밑에 숨은 채 아빠의 행동을 모조리 훔쳐봤다. 그는 주변을 살피더니 냉장고 문을 슬며시 열었다. 그리곤 술병을 꺼냈다.
       난 실망했지만 한편으론 안도했다. 저걸 마시면 우리 집에 평화가 찾아올 테니까.
     

    4
     

       아빠가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들이키려 했다. 그때 쾅- -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 한밤중에 누구란 말인가? 아빤 현관문 앞에서 짧게 대화를 한 후 문을 열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경찰이었다.
     

       “아이고, 늦은 밤에 실례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말입니다.”
     

       경찰은 집안을 눈으로 훑다가 테이블에 놓인 소주병을 발견했다. 그는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오더니 소주병을 들었다. 경찰은 아빠를 보며 씩 웃더니 소주병을 챙기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경찰이 나가자 아빠는 욕을 내질렀다. 소파에 숨어있던 나도 덩달아 욕을 할 뻔했다. 필요할 땐 늦게 오거나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면서 왜 이 타이밍일까?
     

       난 아빠가 화장실에 들어간 틈에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 소주를 되찾아야했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 물건이던가?
    난 경찰이 근무 중인 파출소를 향해 달려갔다. 파출소엔 경찰이 두 명 있었다. 소주병을 뺏어간 경찰까지 말이다.
     

       “그 소주 돌려주세요.”
     

       난 단도직입적으로 소주를 돌려 달라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런 나를 귀엽다는 듯 크게 웃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꼬마야, 너희 아빠가 술을 마셔서 그건 안 되겠다. 술 마시면 또 신고할 거잖니?”
       “그럼 그때마다 와서 도와주거나, 아빨 벌 받게 하면 되잖아요?”
     

       내 말에 경찰은 딱히 대꾸할 말을 못 찾는 듯 했다. 그는 밤이 늦었다며 얼른 돌아가라고 했다. 부모님이 데리러 안 오시면 자기들이 데려다주겠다는 호의와 함께 말이다. 난 계속해서 소주를 돌려 달라 했지만 거부당했다.
       거기다 경찰은 날 강제로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내 손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난 질질 끌려가다시피 집으로 가게 됐다. 이렇게 돌아갈 순 없었다. 그 술을 되찾아 우리 집에 평화를 가져다 줘야했다. 그때 내 눈에 새파란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날 데려가는 경찰 뒤에 붙어있었다. 왜 이제야 이걸 보게 된 걸까?
      난 요정이 헤어지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푸른 장미를 쓸 상대... 반드시 선택을 잘해야 돼.”
     

       집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그러자 훅- 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바닥에는 소주병이 나뒹굴고 선혈이 낭자했다.
       내 눈에 칼을 든 아빠가 보였고, 그 아래로... 칼에 찔린 채 숨을 헐떡이는 엄마가 보였다. 언니는 칼에 찔린 엄마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나도 엄마에게 달려가 울었는데, 그것이 슬펐다기보다는 분했다. 난 고개를 들어 아빠와 경찰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들 뒤에 있는 새파란 무언가가 보였다.
       선택을 잘못 했던 것 같다. 그 푸른 장미가 섞인 술은 아빠에게만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다. 아니, 아빠보다 경찰과 아빠를 풀어준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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