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연재소설 1>
월곡(月哭) 저수지 살인사건
마이산
1
스멀거리던 땅거미가 서서히 자리를 펴자 수고산을 향해 뻗어 있는 노송(老松) 사이로 크고 작은 빛이 출렁이며 나타났다.
덜커덩! 덜커덩!
그 소리는 비포장도로를 조심스럽게 달려오는 승용차가 분명했다. 경운기라면 발동기 소음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렁이는 빛도 한 가닥인데 비해 다가오는 불빛은 두 갈래고 보니 틀림없었다. 승용차는 소리에 비해 느리게 다가왔다. 그건 운전자가 초행길이라 각별히 조심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됐던 이 길로 들어섰다는 것은 둘 중에 하나다. 하나는 길을 잘못 들었거나. 하나는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걸까(?)
이곳 월곡리의 길은 두 갈래로 왼쪽은 월곡 저수지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수고산으로 간다. 하지만 이 길은 두 곳 다 막다른 길이다. 그러기에 통행하는 이가 없다. 굳이 있다면 수고산 입구에 살고 있는 노부부가 장을 오갈 데 쓸 뿐이다. 하지만 월곡 저수지 쪽은 아예 인기척이 없다. 한 때는 근처 대곡리 마을사람들이 막사를 지어 낚시꾼을 상대로 생필수품을 팔곤 했었다. 그러나 외지에서 흘러 들어온 실성한 처자가 투신한 뒤로는 발길이 끊어져 지금은 고요만이 진을 치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폐쇄까지는 할 필요는 없는데 굳이 폐쇄를 한 이유는 보름달이 뜨면 곡소리가 들린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래서 동리 이름마저 달의 계곡을 뜻하는 월곡(月谷)리에서 달의 울음을 뜻하는 월곡(月哭)로 바뀠다.
용기 있는 밤낚시꾼들이 낭설이라면 도전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하루 밤도 채우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저수지 중심 께에서 소용돌이가 일더니 물이 울더라는 것이었다.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안됐지만 누구 하나 증명하려 들지 않아 자연스럽게 폐쇄된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니다. 수고산 입구에 사는 노부부가 스티로폼 배를 타고 가끔 그물질을 했다. 부부는 이곳에서 붕어나 빠가사리. 메기. 잉어등을 건져 대리 5일 장에 가져다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이렇다보니 이곳은 노부부의 전용 일터인 셈이다.
갈래 길에 들어선 승용차는 잠시 머뭇거리는 가 싶더니 월곡 저수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물안개가 앞을 가렸다. 요즘 봄기운이 짙어지더니 수온이 올라 안개가 피어난 것이다.
- 부르릉!
승용차가 이따금 거친 숨소리를 냈다. 그건 아마도 패인 길바닥에 빠져 벗어나려는 것 같았다. 저수지 길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헤드라이트를 내리깔아 무난히 다다를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몇 번이고 심호흡을 내 뱉은 뒤에서야 겨우 저수지 입구에 다 달았다.
엔진소리가 멈추자 대기하고 있던 물안개가 승용차를 감쌌다. 그러나 승용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면 다음 동작을 해야 하는데 아무런 기미도 없었다.
저수지도 답답한 듯 요상한 숨소리를 내며 물안개를 승용차 쪽으로 내밀었다. 잠시 후 드디어 인기척이 들리더니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워낙 작은 소리라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은 뭔가 망설인 듯싶었다.
그렇게 10분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운전석 문이 열리며 검은 복장에 검은 모자를 눌러 쓴 사내가 내리며 조수석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와 동시에 조수석에서 역시 검은 복장을 한 사람이 내렸다. 그들은 또 다시 망설인가 싶더니 운전석의 사내가 뭔가 결심을 한 차 뒷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밀어 넣더니 묵직한 뭔가를 자신 쪽으로 끌어 당겼다. 가쁜 숨까지 몰아쉬는 것을 보아 상당히 무거운 물체가 아닌가 싶었다. 한쪽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일행도 뭔가 체념한 듯한 한숨을 내뱉고 반대쪽 뒤 차문을 열더니 그 물체를 밀었다.
운전석 사내가 기합과 함께 끌어당기자 뭔가 둔탁한 물체가 바닥에 털어졌다. 그건 마대포대였다. 나일론 끈으로 철저하게 동여맨 흔적이 역력했다. 그리고 입구 쪽에 묵직한 뭔가가 매달려 있었다. 그건 역기 추였다.
사내가 한바탕 숨을 고른 다음 역시 망설이고 있는 조수석을 노려봤다. 그는 더 이상 눈길을 피하지 못하고 뒤 문을 닫은 다음 운전자에게 다가 섰다. 운전자는 말없이 포대입구 쪽을 움켜쥐었다. 조수석 그는 뒷부분을 잡았다. 무게 때문에 포대가 밑으로 처졌다. 두 사람은 미끄러지지 않게 포대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두 사람은 애써 숨을 고르며 저수지 턱을 올라갔다. 가장자리에 서자마자 눈빛을 주고받더니 두어 번 앞뒤로 흔들더니 힘껏 저수지로 던졌다.
풍덩!
물기둥이 솟았다. 두 사람은 물기둥이 사라지길 한참동안 기다렸다. 물결이 잔잔해지자 두 손을 털고 승용차로 다가와 올라탔다.
- 부르릉!
거친 엔진소리와 함께 승용차는 미친 듯이 안개 속으로 파고들었다.
- 부릉. 부르릉!
질세라 저수지가 가늘게 울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멀리가지 못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