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층 꿈 전시관에는 특수 유리관 안에 잠든 "유아론자"분들이 있습니다.
저명한 학자, 수도승, 뇌 연구원에게서 사전 동의를 받아, 향후 사망 징후가 뚜렷한 대상은
뇌 이외 신체의 신진대사를 축소하는 시술을 거친 뒤 생명 연장 장치에 안치됩니다.
뇌사의 기로에 있는 그분들은 약 5~8년 정도 뇌 신호가 정지 전까지 법적으로 살아있는 상태며
머리뼈를 절개하여 노출된 뇌랑 직접 연결한 광섬유로 컴퓨터가 뇌파를 읽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뇌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과 감정을 분석하거나
역으로 인공 뇌파를 보내 일종의 대화처럼 생각의 전환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지원자분들은 과거 평소에도 "뇌의 물질적 화학적 공간적 조성의 완전복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신의 뇌가 무언가 특별히 의식할 때 보이는 뇌파와 그 관련 카테고리를 체계적으로 데이터화하였고
안치 당시 기준 개인당 평균 2.7페타바이트의 그 자료를 기반으로 그분들이 무슨 꿈을 꾸는지 이미지로 간추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꿈을 보여주기 위해 특정 뇌파에 상응하는 이미지를 열람하는 매칭 시스템이지만 그 메커니즘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지원자분과 정상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 진행한, 꿈을 맞히는 실험은 상당히 구체적인 이미지로 반영하는 단계를 달성했습니다.
전시관에서 모니터로 보실 수 있는 유아론자분들의 꿈 이미지는 프라이버시 문제에 저촉되는 건 검열 후
과학적 검증을 거쳐 전송함으로 지연에 따라 몇 주나 몇 개월 전쯤의 기록입니다.
광대한 은하계를 바라본 천문학자의 머릿속이나, 종교적으로 비범한 경지에 이른 철학자들의 머릿속이나,
학계에 알려진 이들 중 뇌를 가장 잘 아는 만큼 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 뇌 과학자의 머릿속이라든지
위대한 이들의 꿈을 보는 것은 굉장히 신비로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7층 꿈 전시관의 존립에 있어 인권과 관련된 사안을 모두 적법하게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후 노동"이라 주장하는 인권단체의 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유아론자를 앰니지액워커(기억을 상실한 노동자)라 칭하며 인권 구제 대상으로 본 대학생들이
생명 연장 장치의 기능 차단을 조직적으로 시도하려 한 정황도 발각됐죠.
국제범죄이자 인명 테러로 규정돼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습니다.
유아론자분들은 의학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살아있는 상태며
엄밀히 말해 노동자이기는 하나, 연구진이 추진하는 실험에 대해서도 모든 걸 알고 동의했고
각 소속 국가마다 행정적으로 최고 대우를 약속한 위인들 반열에 있습니다.
그리고 유아론자분들은 자신의 의사로 그 거처가 폐쇄적인 실험실보단 외부에 알려지는 걸 원했습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최고등급 보안 구역보단 관람객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드나드는 곳에 안치되길 바랐죠.
물론, 이곳 전시관은 많은 이변이 보고되기에 유아론자 역시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 있으나
7층은 층 전체가 그 입구와 출구에서부터 전시관과는 위상적으로 독립된 "특수한 공간"이자 성역입니다.
전시관 증축 중 "특수한 공간"이 생겼고 나중에 쓰임새를 발견한 거죠.
또한 유아론자분들이 이곳 전시관에 흔쾌히 입주한 가장 큰 이유는
"뇌의 물질적 화학적 공간적 조성의 완전복사 프로젝트"가
5번 매뉴얼에서 소개해드린 요한 하인리히 베스퍼 씨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7층 꿈 전시관에서 특별히 소개해드릴 유아론자분은
안치된 기간 중 2주 만에 약 90년의 흐름을 느낀 것으로 뇌파가 분석된 한국인 강건 씨입니다.
대한민국 소재 카이스트 대학의 생명공학과 교수였던 그 유아론자분의 꿈이 특별한 점은
시간대가 미래로 견인되는 게 아니라 과거로 회귀 중이란 점입니다.
꿈 이미지에서 나타난 강건 씨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 발발한 한국전쟁에도 참전했으며
더 예전으로 거슬러 한복이라는 전통의상을 입는 사회에서 생활하기도 했죠.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은 점차 가속되는 것으로 유추되는데
만약 인간의 수명을 초월한 세월을 꿈에서 영위한다면
과연 그는 "인간"이라 할 시점으로 꿈을 꾸는가에 대해 논의 거리가 생깁니다.
강건 씨는 지속해서 전에 보인 적 없는 패턴의 뇌파를 생성해왔으며
유아론자라는 상태에서도 자기가 모른 생소한 지식을 학습하는 거 같습니다.
보유한 사유의 총량을 재구성하면서 꿈꾸는 시대에 맞게 무의식을 발현하는 거라 할 수 있는데
진화에서 도태됐던 "유전자의 기억"이 다시 상기되는 측면에서 본다면 답습이겠죠.
강건 씨가 꿈에서 무언가 새로이 볼 때마다 생기는 뇌파의 동향을 분류하다 보니
그분의 "꿈 매칭 데이터는" 전체 용량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안치된 기간 중 단 2주만 분석이 완료됐고 현재는 강건 씨가 어느 과거로 거슬러 갔을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미루어 볼 수 있는 건 꿈의 영향으로 그분의 유전적 특질까지 현생인류와 다르게 바뀌었다는 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