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안녕하세요. 최평화입니다. <br>이번 이야기는 단편 소설입니다. <br>3-5화 정도에서 완결이 나지 않을까 싶네요.<br>그럼 이야기 시작합니다.<br><br><br><br>모기 (1화)</p> <p><br><br><br>31 번 모기가 채집된 곳은 경기도 파주시 조산리 어룡천이고, 개체 식별 번호는 JSAR-240614-BE-31이다. <br><br>이 식별 번호는 채집된 순간 정해진 것은 아니고, 나중에 그의 유전자 샘플이 채취될 때 부여되었다. <br><br>참고로 31 번 모기는 암컷이지만 편의상 ‘그’로 칭하기로 한다. <br><br>그는 2024년 6월 14일 채집된 약 200여 마리의 모기 중 하나였다. <br><br>채집 2주 전인 2024년 6월 1일, 그는 어룡천의 작은 물웅덩이에서 알을 깨고 태어났고, 유충과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된 것은 6월 13일 오후 7시 즈음이다. <br><br>그리고 그가 한국대 생물학과 대학원생들에게 채집된 시각은 성충이 된 다음날인 14일 오후 4시 45분이었다. <br><br>채집 직후 그는 다른 모기들과 함께 대형 샘플 통에 넣어졌고, 그곳에서 총 다섯 마리의 수컷 모기와 교미를 했다. <br><br>교미를 한 시각은 5시 05분, 5시 40분, 6시 15분, 6시 50분, 7시 25분이며, 처음 둘은 빨간집모기, 오후 6시 이후 세 번의 교미는 모두 그와 같은 종인 흰줄숲모기였다. <br><br>그리고 그가 한국대 생물학과 실험실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 정각이다.<br><br><br><br><br>-절대로 피를 빨지 마라. 그럼 너에게 큰 선물을 주겠다.<br><br>이 목소리가 31 번 모기에게 들린 것은 이상혁 석사 과정 학생이 채집한 모기 중 일부를 총 3 개의 0.5 입방미터 크기의 곤충 배양기에 나누어 넣은 직후였다. <br><br>31 번 모기는 목소리가 말한 ‘큰 선물’에 대해 몹시 궁금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묻지 못했다. <br><br>그에게는 입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의 주둥이는 말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br><br>하지만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내 목소리가 이어졌다.<br><br>-그것은 네가 원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좋은 것이다. 그러니 절대 피를 빨지 마라.<br><br><br>+ + +<br><br><br>이틀 후. <br>한국대 생물학과 박태중 교수 연구실이 위치한 504동 B314호에서는 주간 연구 보고 미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br><br>“그러니까 흡혈하지 않는 개체가 있다고?”<br><br>박 교수의 물음에 이상혁 학생이 답했다.<br><br>“네.”<br><br>“흰줄숲모기?”<br><br>“네, 맞습니다.”<br><br>“호오… 그래? 설탕물은?”<br><br>“먹는 걸 직접 본 건 아닌데, 활동량을 보면 분명히 먹었을 것 같습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 오전에 확인할 때도 그렇고, 계속 쉬지 않고 날라다녔거든요.”<br><br>흠—! 하는 소리와 함께 박 교수가 자신의 민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는 사이, 박사 과정 3년차인 이상미가 끼어들었다.<br><br>“혹시 교미가 안 된 거 아니야?”<br><br>임신하기 전의 암컷 모기는 흡혈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br><br>상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br><br>“설마요. 채집 통에서 3시간 넘게 있었어요. 수컷도 거의 100 마리 정도 있었고요.”<br><br>박 교수는 손을 옮겨 턱수염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br><br>“쉬지 않고 날아다닌다고?”<br><br>“네,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못 봤습니다.”<br><br>“그래? 그럼 상미 말대로 아직 교미가 안 된 걸 수도 있어. 어느 배양기에 있지?”<br><br>“중형 배양깁니다.”<br><br>“그럼 한 서른 마리?”<br><br>“네, 서른 셋입니다.”<br><br>“암컷만?”<br><br>“네.”<br><br>“그 놈만 따로 빼서 수컷 배양기에 넣어 봐. 교미하는 거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면 더 좋고.”<br><br>“아… 네….”<br><br>“혹시 그 이후에도 흡혈하지 않으면 나한테 바로 알려줘. 내가 직접 확인하게.”<br><br>“네, 알겠습니다.”<br><br><br>+ + +<br><br><br>같은 시각.<br>한국대 504동 C337호 실험실. <br><br>31 번 모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br><br>그는 참을 수 없는 갈증에 실험용 배양기 내부를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br><br>배양기에는 총 33마리의 암컷 모기가 있었고, 31 번 모기를 제외한 32 마리 모두 신선한 피로 배를 가득 채우고 벽에 붙어 한가하게 낮잠을 즐기는 중이었다. <br><br>하지만 31 번 모기는 쉬지 않고 날았다. <br><br>그러지 않으면 두 개의 피 주머니(실험용 모기가 신선한 피를 빨아먹을 수 있도록 얇은 콜라겐 막으로 만든 피 주머니)에서 올라오는 혈향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피 주머니 방향으로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br><br>시선이 피 주머니에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기라도 하면, 그는 어김 없이 배양기 벽에 부딪혔고, 부딪힌 충격으로 균형을 잃고 바닥에 떨어지기 일쑤였다. <br><br>떨어질 때마다 다리나 날개가 부러진 것처럼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는 다시 날아 올라야 했다. <br><br>몸이 부서지는 고통보다 피 냄새로 인한 갈증이 더 강렬했기 때문이다. <br><br>그렇다고 이제는 더이상 설탕물을 마실 수도 없었다. <br><br>갈증으로 조금 전에도 그는 설탕물로 배를 가득 채운 탓이다. <br><br>그는 또다시 벽에 부딪혔고, 두 차례 허공을 선회하다 다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br><br>그가 떨어진 곳 바로 옆에 빨간색 피 주머니가 있었지만, 그는 의연한게 몸을 일으켜 허공으로 비상했다. <br><br>그렇게 다시 날아올랐을 때, 그는 천장의 작은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br><br>이틀 전 이곳 작은 세상으로 들어왔던 문이었다. <br><br>31 번 모기는 생각했다. <br><br>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러 온 것이라고 말이다. <br><br>지난 이틀 동안 피를 빨고 싶은 욕망을 이겨낸 자신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br><br>날개가 부서진 것 같은 고통 따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배양기 내부에 가득한 혈향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br><br>이제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 질 거라는 사실… 아니,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큰 소원이 이루어 질 거라는 사실에 온몸에 긴장이 풀리며, 뱃속 가득했던 설탕물을 한꺼번에 소변으로 지리고 말았다. <br><br>몸이 한껏 가벼워진 31 번 모기는 그대로 천장의 작은 문을 향해 돌진했다.<br><br><br><br>(다음편에 이어집니다.)<br><br><br>작가 블로그<br><a target="_blank" href="https://blog.naver.com/choepeace" target="_blank">https://blog.naver.com/choepeace</a></p> <p>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