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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젠장할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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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네임변경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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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dungeon_23854
    작성자 : 젠장할
    추천 : 0
    조회수 : 1003
    IP : 121.135.***.64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1/02/12 07:32:38
    http://todayhumor.com/?dungeon_23854 모바일
    던파 에피소드20 폭룡왕바칼 1~10
    그림이랑 같이 나눠서 적혀있는거 보고싶으시다면.
    http://df.nexon.com/?GO=guide&TO=&mode=view&type=content&bbs_no=479&Depth1BbsNo=323
    그냥 편하시라고 다 이어서 붙여놓은것.

    <제 1장> 특별한 용


    나는 특별한 존재다.

     

    우연과 우연만이 전부인 이 빌어먹을 우주가 뱉어낸 더러운 토사물들 중에서 그나마 쓸만한 것은 나 밖에 없다. 나는 용으로 태어났고, 천부적인 싸움꾼이었으며, 몇 가지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내가 특별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을 경멸한다. 아주 티끌만큼 작은 가능성일지라도, 한 생명이 태어남으로써 이 우주는 또 다른 우주로 탈바꿈할만한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우주를 잊으면, 우주도 그를 잊는다. 그딴 우주는 이제 구더기들에게 살 곳을 제공해주는 질퍽한 음식물 찌꺼기만도 못하다. 나는 그런 우주를 끝장내 버리는 것을 즐겼다. 될 수 있으면 잔인하고 처절하게. 그것이 우주가 나에게 허락한 특권이기도 했지만, 비로소 그의 우주가 의미를 가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점점 더 강한 자들이 나타났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강했으니까. 이 우주의 어지간한 생명체들이 보기만해도 벌벌 떠는 용족들 중에서도 나는 가장 강했다. 사실 내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더 이상 상대할 자가 남아있지 않아 자연스레 용들의 왕이 된 이후였지만.

     

    폭룡왕 만세.

     

    내가 스스로 믿고 있는 만큼 비로소 저들에게도 내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우스운 건 이제 내가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모두가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나를 찬양할지라도, 이제 나의 삶에 창의적인 면이란 없었다. 정작 내 우주는 시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폭룡왕 만세.

     

    조용히 해.

     

    폭룡왕 만세

     

    오늘도 수십의 백성을 죽였다. 어제보다 좀 더 죽였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그것이 재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기분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그것만이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지금은 온전히 복종하는 척하는 저들은 내가 나이가 들어 쇠약해질 때만을 기다릴 것이다. 때가 되면 합심하여 달려들겠지. 그리고는 내 머리를 몸뚱아리로부터 지저분하게 떼어내 이리저리 질질 끌고 다니며 모욕할 것이다. 몇 십 년 동안이나 그럴테지. 퍽이나 아름다운 최후로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고작 그것이란 말인가? 내 머리에 침을 뱉고 싶어하는 녀석들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

     

    그녀가 나타난 것은 그때 즈음이었다.
    신기하게도 나에게서 느껴지는 기운과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그녀. 금방 울어버릴 것 같은,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은 눈매를 하고 있는 그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당장 그녀를 따라나서야 한나는 것을 알았다. 나는 직감하였다. 그녀가 가는 곳에 나의 미래가 있음을. 나의 특별한 – 아니 특별해야만 하는 운명이 바로 거기에 있음을. 

     

    [힐더]. 그녀의 이름이었다. 
    아쉽게도 그녀는 원래 내 이름을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정식으로 소개하고 싶었는데…. [바칼] 이라고.


    <제 2장> 일곱 가지 빛깔
     


    마계.
    참 재미있는 곳이었다.

     

    마계에는 빛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 그저 이공간을 떠돌 뿐인 작은 행성 조각이었으니까. 하지만 가끔 마계가 태양이 존재하는 행성에 결착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외부세계와의 공간이 열리며 빛이 조금씩 마계로 굴절되어 흘러 들어왔다. 굴절된 빛은 일곱 가지 빛깔로 갈라져 하늘을 수놓았다. 이때만큼은 마계가 이 우주 어느 행성보다 황홀한 곳이 되었다. 어둠만이 존재하던 이 세계는 가끔이나마 이렇게 보상받았다.

     

    빛이 마계를 비출 때면 나는 마계의 곳곳을 여유롭게 날아다녔다. 보이는 것이 있어야 나는 것도 즐거운 법이니까.

     

    그러나 아름다운 빛이 비친다고 현실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흉물스럽게 무너져가는 건물들 사이사이, 이름 모를 시체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벽마다 흩뿌려져 있는 핏자국은 그 시체들이 남긴, 이를테면 이세상 마지막 지문 같은 것이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얼마나 장렬하게 피를 뿜으며 죽었는가를 가지고 삶의 가치가 매겨지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피의 색깔은 일곱 가지가 아닌데. 그저 붉은 색일 뿐인데.

     

    여기저기 제각각으로 생겨먹은 생명체들이 무리 지어 신나게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들은 저렇게 사는 것이 - 아니 죽는 것이 -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왜 모를까. 이름 모를 시체가 되기 위해 저리도 발버둥 치다니.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저들이 목표하는 바는 분명했다. 그들은 자신이 “사도”이기를 바랬다. 온 우주로부터 마계에 모인 제각각인 생명체들이 오로지 한마음으로 고개를 숙이는 이름. “사도”. 두려움의 상징. 칭송의 대상.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이 나를 칭하여 부르는 이름. “사도 바칼”.

     

    사람들에게 비치는 나의 색깔 또한, 일곱 가지가 아니라 그저 붉은 색일 뿐이었던 것이다.

     

    사도라고 불리는 자는 나 말고도 몇 명이 더 있었다. 나는 그들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실력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그들 모두에게서는 힐더에게서 느껴졌던 바로 그 기운 – 나와도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 그들도 나에게서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사도라고는 해도 나는 그들 대부분을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중 단 한 명,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있었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온 몸에 외면할 수 없는 무서운 전율이 일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강함의 깊이를 나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측정할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이 두려워졌다. 그의 이름은 [카인]이라고 했다. 

     

    앞으로 사도라 불리는 자들과 싸워야 하는걸까?

     

    사실 “사도라고 불리는 자들”이라고 칭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카인과 자신이 싸우는 장면만을 반복해서 그려보고 있었다. 그 싸움은 언제나 그의 손에 의해 내 몸뚱아리가 갈기갈기 찢겨지며 끝이 났다. 

     

    마계. 이곳에는 분명 무언가 있다. 힐더가 이공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도”들을 이곳 마계로 불러모으고 있다. 저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이유로 여기에 올라탔을 것이다. 운명적인 이끌림. 그래. 그것이 대체 무엇일까. 힐더는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조급해하지는 않았다. 내가 운명을 피하지 않는 이상, 분명 운명도 나를 피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기다릴 때였다.

     

    마계에 일곱 빛깔의 빛이 쏟아지는 날은, 어김없이 새로운 강자가 외부세계에서 마계로 올라탄 것을 의미하였다. 오늘 올라탄 것은 또 다른 사도일까. 아니면 또 다시 뒷골목에서 조용히 썩어갈 이름 모를 풋내기일까.
     
    <제 3장> 예언자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그저 한가로이 마계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새로 들어선 건물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것이 다 그 건축가 영감의 작품이었다. [루크]라고 했던가. 말을 하지 못하는 노인네였다. 미친 듯이 건물만 지어대는 폼이, 노망이 들면 생명체가 어떻게 되는가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루크는 건물들을 지어내는 것 이외에도, 가끔이지만 마계에 전력이 들어오게 했다. 정말이지 마계에 불이 들어오다니. 물론 여기에는 쉽지 않은 조건이 붙어있었지만.
    “메트로 센터에 사는 [안톤]이 잠들었을 때.”
    “마침 루크가 전력을 살려놓을 여력이 된다면.”

     

    고도를 높여 도시를 굽어보고 있던 그때도, 우연히 전력이 왔을 때였다.

     

    <듬성듬성 들어오는 불빛이 도시를 더욱 일그러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군.>

     

    불은 잠깐 들어왔다가 바로 꺼졌다. 이제 돌아가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언가 발견하였다. 아니, 무언가 발견한 것 같았다.

     

    <불이 들어왔을 때 저 건물들.. 분명 자연적인 형상같지는 않았는데… 우연인가.>

     

    방금 불이 들어왔었으니, 메트로 센터로 가면 루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이봐, 벙어리 영감. 전력을 다시 들어오게 해줄 수 있나.」

     

    루크를 발견하자마자 땅에 내려서면서 외쳤다. 하지만 루크는 말없이 하던 일만 계속 하였다.

     

    「내가 뭔가 본 것 같아서 말이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

     

    루크는 내 쪽으로 돌아보지도 않았다. 내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나는 내 거대한 몸통을 훌쩍 날려서 쿵하는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루크의 바로 앞을 막아섰다. 쿵하는 소리는 거대한 벽과 쇳덩어리에 이리저리 튕기면서 끊임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메트로 센터 전체가 흔들거렸다. 나는 발전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방해해서 미안하네만, 전기를 좀.. 다시 들어오게 해주겠나?」

     

    영감이 들을 수 있는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말보다는 압도감과 정중함이 전해지기를 바랬다. 


    루크는 비로소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사실 “보았다”라고 한 것은 추측일 뿐이었다. 속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안경 때문에 그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서있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기만 하더니, 이윽고 덥수룩한 수염으로 덮인 입을 옹알거리며 움직였다.

     

    「영감,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그러고 보니, 그 건물들은 모두 당신이 만든 것이로군.」

     

    루크는 내 쪽으로 향하고 있던 얼굴을 다시 자신에게로 가져와 잠시 생각하더니,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몇 가지 스위치를 만졌다. 그러자 커다란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모터가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땅을 박차고 날아, 아까 그 그림이 보였던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주변 하늘을 빙글빙글 돌면서, 다시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멀리서 지지직, 펑하는 요란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리면서 메트로 센터 주변으로부터 차례로 전기가 들어왔다.

     

    드디어 확인할 수 있었다. 아까는 선명하게 보지 못했던 어떤 광경을.

     

    눈 앞에서 용 한 마리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 속에서 목을 길게 빼고 울부짖고 있었다. 건물들의 형체와 들어오는 불빛을 이용하여 조악하게 이어진 상징적인 이미지였지만, 이 그림을 그린 자의 의도는 분명했다.

     

    “바칼, 잘 보아두어라. 이것이 너의 죽음의 모습이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사실 이것이 나를 그린 것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그저 한 마리의 용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마계에서 용족은 나 밖에는 없었고, 내가 아는 한 나 이외에 루크가 알고 있을 만한 용은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바로 용들의 왕이었지 않은가.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용이 불타 죽는 그 그림 주변에는 세 가지의 형상이 더 있었는데, 모두가 어떤 생명체의 죽음을 그리고 있었다.

     

    하나는 형상이 모호한 어떤 자가 동굴 안에서 형체가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또 하나는 다리가 여러 개인 자가, 무너지는 돌무더기에 깔려 죽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 네다리로 걷는, 입이 삐쭉 튀어나온 자가 어디론가 다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며 육체가 갈갈이 찢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사도들의 죽음이라… 그 영감이 예언자라도 된다는 것인가? 아니야. 곱지 않게 미친 것이겠지.>

     

    그렇지만 미친 것은 나인 것 같았다. 거대해진 루크의 얼굴 수백 개가 온 하늘을 뒤덮으며 동시에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 자네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니 보여주네만…. 과연 자네가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

     

    어쩌면 이것은 예언이 아니라 경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힐더가 사도를 마계에 모으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루크에게 돌아가서 따져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벙어리”라는 조건은 그 몹쓸 영감으로서는 아무거나 싸질러 놓고 발뺌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 그렇게 보면 그가 사실은 벙어리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

     

    결국 스스로 모든 것을 알아낼 수 밖에 없다.

    <제 4장> 구원자
    우선 마계라는 곳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나는 한동안 고대도서관을 비롯하여 얼마 남지 않은 옛 마계의 자료들을 수집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면서 마계인들의 전설들을 주의 깊게 들으며 정리하였다.

     

    그러다 루크가 또 우연히 메트로 센터의 전력을 가동시키면, 그 동안 루크가 건물로 그려놓은 그림들이 없는가 살폈다. 그리하여 새로이 그려진 형상들을 빠짐없이 보게 되었으며, 이전에 루크가 그려놓은 몇 가지를 더 발견하게 되었다.

     

    루크의 그림은 모두 사도의 – 혹은 사도로 추정되는 자들의 - 죽음을 그리고 있었지만, 개중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아직 마계에 올라타지 않은 자들일까? 하지만 새로운 사도를 찾는 힐더의 여행이 멈춘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이었다.
    게다가 아직 힐더와 카인의 죽음은 그려지지 않았다. 혹시 그들은 죽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는 것인가?

     

    시간은 어느덧 수 십 년이 흘렀다. 루크의 건축 속도는 너무 느렸다.

     

    나는 수년 만에 지어진 새 건물들에 불이 들어온 것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그림은 이전과는 달랐다.

     

    <이것이 마지막인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것이 더 이상 사도의 죽음을 그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발 아래로 남녀 한 쌍이 풍요로워 보이는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장면이 광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남녀가 각각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았으나, 루크가 카인과 힐더의 죽음이 그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들일 것이라고 나는 추정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예상했던 결말이었기에,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랬다. 바로 이것이 힐더가 하려고 하는 일이 분명했다. “테라의 재창조”. 그녀는 마계의 고대문헌들과 전설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멸망한 테라의 재창조”를, 진심으로 실현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재료는 한 세상의 멸망과 사도들의 희생, 즉 죽음이다. 

     

    고대의 테라에는 테라의 멸망과 재창조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창신세기” 라는 문헌이 존재한다고 한다. 대부분은 소실되었으나, 다음과 일부 구절이 전해진다.

     

    ● 선포하노니 희생은 거룩한 것이요 우리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을 것이매 

    ● 오직 시련으로 연단된 칼만이 우리의 심장을 꿰뚫어 위대한 의지에 회귀토록 하리로다

    ● 이것이 참 희생이요 소멸은 곧 창조이리니 우리가 임재할 곳과 우리로 하여금 영광되게 할 것들이 이로부터 창조되리라 하니라

     

    테라의 역사학자들은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테라를 창조한 신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니 고대 테라 신들의 희생과 소멸로서, 테라가 다시 창조된다고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힐더는 무엇 때문인지 “테라의 신들”과 “사도들”을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 세계를 열어갈 한 쌍, 즉 자신과 카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도들을 희생시키면 그 빌어먹을 테라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그랬다. 드디어 운명을 만난 것이다. 세상의 멸망이나 다른 사도들의 죽음 따위에 신경 쓰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내가 죽게되는 운명만 아니었다면, 힐더가 계획을 실현하든 말든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나의 마음 속을 온통 뒤흔들고 있는 것은 다른 이미지였다. “카인”, “제 1사도”, “무적의 카인”, “절대자 카인”, 제기랄. 힐더의 계획에서조차 그는 죽지 않는다. 그는 나의 죽음으로써 일구어낸 새 땅을, 그저 덤덤하게 딛고 서서 힐더와 함께 새 세상의 영원한 신으로 남을 것이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크크크크… 큭큭큭큭… 크하하하하…」

     

    내 웃음소리는 점점 미쳐갔지만, 반대로 정신은 점점 또렷해져 갔다.

     

    「크하하하하. 내가 힐더의 계획을 방해하는데 성공한다면,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을 테니 많은 목숨을 구하게 되겠군. 명색이 폭룡왕으로 불렸던 내가 이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구하는 “구원자” 역할이라니!! 큭큭큭.」

     

    숨이 넘어갈 것 같던 나의 웃음은 어느덧 차분한 미소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 뭐, 이 정도면 평범한 운명은 아니로군.」

    <제 5장> 용의 전쟁
    「생명수를 혼자 차지하여 마계를 지배하려고 하시다니. 그렇게 놔둘 수 없습니다. 바칼님.」

     

    「마계를 지배한다라… 그것이 이 많은 지원군이 모여든 이유가… 되겠군? 참 그럴듯하군 힐더. 폭룡왕이라면 할 법한 일이기도 하고.」

     

    「아무리 당신이라도 여기 있는 사도 전부를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당신답지 않군요.」

     

    「그렇지. 원래 사도들 전부와 맞설 의도는 아니었거든. 뭐, 내가 뭘 어찌 해보기도 전에 당신이 나보다 먼저 저 사도 어르신들을 당신 편으로 끌어들인 것 아닌가? 내가 생명수를 얻는데 성공했다면야 지금보단 더 재밌는 일이 벌어졌을텐데. 헌데, 나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이토록 빠른 대응을 하다니 진심으로 감탄했네. 힐더.」

     

    「서로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시지요. 나중에 마계가 또 다른 행성에 도착하게 되면, 그곳에서 풀어드리지요. 원하신다면, 원래 계셨던 용의 행성으로 돌려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얌전히 묶여계신다면요.」

     

    「자네는 지금 마계가 결착해버린 이 행성을 떠나지 않을 것이네. 그렇지 않나? 벌써 수십 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지 않은가.. 여기가 계획을 실현할 바로 그 행성 아니던가…? 나를 속이려 들지 말게나.」

     

    여유로운 척 반박하고 있는 바칼이었지만, 상황은 분명 좋지 않았다. 힐더와 마법사들, 그리고 무엇보다 만만치 않은 사도들에게 둘러싸여 퇴로가 없었다. 공중은 힐더의 마법진으로 막혀있었다.

     

    <내가 창조한 용인들은 모두 죽은건가? 하긴 사도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겠지. 이거 난관이로군…>

     

    바칼은 루크의 건물들에서 본 불에 타며 고통스러워 하던 용의 형상을 떠올렸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야 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바칼의 머리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말이야… 자꾸 항복하라고 하는데 아까부터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분명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죽이지 않고 있고…」

    「아직 제게 자비가 남아있을 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을 것이매…’ ’우리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를…..’」

     

    바칼은 자신의 중얼거림에 힐더의 얼굴에 미세한 일그러짐이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이들을 빠르게 둘러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럴리가 없지.. 당신의 그 원대한 계획을 망쳐버릴 수도 있는 자를, 죽일 수 있을 때 죽여버리는 것 이외에 대안은 없을텐데….」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바칼은 마지막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뛰어오르더니, 큰 날갯짓 한번으로 카인에게 전속력으로 돌진하였다. 바칼의 긴 휘파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칼을 둘러싼 벽 중에서, 카인이 지키고 있는 쪽만 무리를 짓지 않고 카인 혼자 서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절대 강자 카인이 아닌가!

     

    카인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바칼을 보며 오른손을 들어 힘을 모았다. 온 대지가 진동하며, 주변의 가벼운 물체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소용돌이치며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다. 기가 약한 자들은 한꺼번에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반면 바칼의 긴 휘파람 소리는 어느새 기합소리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바칼이 카인에게 부딪히기 직전, 카인은 기를 모으고 있던 오른팔을 휘두르려다, 순간 표정이 굳더니 멈칫하였다. 그러더니 순간적으로 자신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오는 바칼을 한번 쳐다보고는 신속하게 몸을 돌려 바칼을 피했다. 그것은 퇴로를 열어준 꼴이 되었고, 바칼은 그 길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멀리 날아가버렸다.

     

    모두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미처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바칼이 날아간 방향을, 그리고 카인을, 그리고 힐더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카인도 스스로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오른손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고 있었다. 

     

    「추격할까? 힐더?」

     

    이시스-프레이였다. 그는 모인 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자였다.

     

    힐더는 바칼이 사라진 쪽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시스-프레이의 질문을 듣고서 비로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프레이님. 저 정도 속도라면 뒤늦게 출발하는 프레이님께서 따라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 마계에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을테니, 마계 밖으로 도망치겠지요. 오늘은 그의 마지막 날이 아닌 모양이네요. 하지만 그의 끝없는 욕심은 결국 그를 파멸로 몰아넣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대로 철수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힐더는 이날도 역시 울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때만큼은 분명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녀가 꿈꿔왔던 일의 첫 단추가 아주 잘 끼워졌던 것이다.


    <제 6장> 한 달 전
    벙어리 영감. 그거 말이야.. 나한테 보여준 것들...」

     

    루크는 뚝딱거리면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이번에 힐더한테서 뭔가를 좀 얻어보려고 하는데 말이야. 이번 일이 꼬이게 되면 이대로 내가 죽을 수도 있는건가? 설마 내가 불 속에서 죽는다는 게 여기 마계는 아니겠지? 그건 전혀 멋지지 않은데.」

     

    나의 우락부락한 신체는 무너져가는 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얹어져 있었다. 벽이 무너질 것 같다는 걱정에 한번쯤은 쳐다 볼만도 한데, 루크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저 망치질만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도라는 녀석들은 내가 사실을 이야기해주어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아무런 도움이 안돼. 자기 잘난 것에 대해 떠드는 데에만 관심 있는 놈들이라... 나랑 비슷한 놈들이거든. 크하하하.」

     

    루크는 그저 왔다갔다 벽돌을 나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뛰어내려 루크 앞을 가로 막았다. 쿵하는 큰 소리가 모래가루와 함께 이리저리 날렸다.

     

    「이봐 영감. 당신은 벙어리지만 귀머거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루크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피해 지나가려고 했다. 나는 이번에는 손을 뻗어 본격적으로 제지하였다.

     

    「나한테 이 모든 것에 대한 귀띔을 해줬으면, 조금이라도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내가 도망갈 곳이 필요할 것 같은데. 하지만 이공간 속에 떠도는 이 마계라는 공간은 오로지 힐더만이 조종이 가능한데, 내가 어디로 도망갈 수 있지?」

     

    루크는 시선을 돌려 먼 곳을 응시하기만 하였다. 그저 먼 산의 경치를 보는 것처럼.

     

    <이 영감이.. 유치하게 시선을 피하는 건가. 아니면 진짜 말을 못 듣나? >

     

    찡그리고 있던 내 두 눈은 자연스레 루크가 바라보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쪽으로 아주 희미한 조명이 비치고 있었고, 그곳에는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탑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저건 뭐지?

     
    나는 당장 그 탑을 향해 날아갔다. 탑은 한없이 위로 뻗어있었고, 위쪽으로는 마계의 하늘을 뚫으며 솟구쳐 있었다.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탑 주변에는 어떤 장치가 되어 있어서, 주변의 빛을 모두 차단하여 특정한 각도로 빛을 비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구조인 것 같았다. 이 능구렁이 영감. 이공간을 돌파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놓고 교묘하게 숨겨놓다니. 

     

    다시 루크에게 돌아왔으나, 그는 다시 묵묵히 자신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하. 이제 보니 영감이 완전 내 편이로군. 몰래 이런 것을 만들어 놓다니 말이야. 저 탑 위로는 어떤 세상이 이어져 있는지 모르지만, 뭐 어차피 이곳보다 지옥일 수는 없겠지.」

     

    이건 새로운 느낌이었다.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니.

     

    「벙어리 노인네 하나 내편을 들어준다고 이렇게 든든하다니. 큭큭. 하긴 그러고 보니 홀로 외롭게 싸웠던 어린 시절이나 지루한 왕 노릇할 때나 항상 내 편은 없었군. 이거 갑자기 무척 고마워지는데. 우리는 친구인가 영감?」

     

    나는 양손을 들어 루크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루크의 머리는 내 손바닥의 반 만했다. 나와 루크의 몸의 크기가 엄청나게 차이가 났기 때문에, 내가 몸을 완전히 구부려 인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는 한참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말하였다.

     

    「그런데 말이야,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슬그머니 내 미소를 날카로움으로 채웠다.

     

    「만약에 영감이 예언자가 아니고, 힐더가 시킨대로 하는 것이라면? 그러니까… 마치 예언을 하는 것처럼 내게 모든 것을 보여주었지만 그 모든 것이 힐더가 치밀하게 짜놓은 각본을 미리 그려놓아 내가 그대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루크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 나를 도주시키는 것까지 힐더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면 좋겠군. 일단 내가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혹시 또 모르지.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꼭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이 칙칙한 마계에서 불타 죽지 않아도 된다면 무엇이든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네. 큭큭큭..」

    <제 7장> 천계의 지배자
     









     

     

    그 탑은 정말로 외부로의 통로였고, 아라드 행성의 천계와 이어져 있었다. 시공간의 경계를 잇는 공법은 전 우주에서 오로지 루크 만이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바칼은 탑을 지나오면서 여기저기 떠다니는 엄청난 수의 시체들을 보았다. 아마도 탑의 통로로서의 기능을 시험해 본 것이리라. 바칼은 그 탑을 [죽은 자의 성] 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죽은 자의 성을 통해 가까스로 천계로 도망쳐 온 바칼이었지만, 천계에서는 더 이상 도망자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곳에는 바칼을 상대할만한 자가 없었다. 그는 바로 천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루크가 또 다른 사도에게 죽은 자의 성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 한 그의 천계지배가 견제 당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바칼은 단번에 이 세계의 구조를 파악하였다. 아래로는 커다란 대륙 아라드. 위로는 거꾸로 붙어있는 마계. 마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행성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루크는 마계와 이 행성을 잇는 죽은 자의 성까지 건설하였다. 이 행성이 바로 힐더가 마음에 담고 있는 "그" 행성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바칼이 할 일은 분명했다.

     

    모든 일이 힐더 맘대로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힐더의 목표는 결국 아라드 대륙일테니, 그 길목에 위치한 이 천계를 끊어버리면 된다. 즉, 아라드 대륙으로 통하는 하늘성과 마계로 통하는 죽은 자의 성을 봉인하면 될 것이다.

     

    할 일이 한가지 더 있었다. 천계에서 마법을 완전히 없애는 일이다. 그래야 힐더가 천계에 왔을 때 그녀의 강한 마법력을 깨끗하게 감지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계에서 마법을 없애려는 바칼의 진짜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힐더가 바라는 것은 사도들의 죽음이다… 그러나 카인이 나를 죽이지 못한 것처럼, 자신의 손으로 사도들을 직접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시련으로 연단된 칼만이 우리의 심장을 꿰뚫어 위대한 의지에 회귀토록 하리로다…’ 설마 힐더는 이 행성의 미개한 생명체들을 훈련시켜 언젠가는 사도들을 처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수백 수 천 년은 걸릴텐데..?>

     

    그때 바칼의 머리에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녀가 나로 하여금 천계를 지배하도록 놔둔 것도 어쩌면 그녀의 계획일 수도 있겠군. 바칼이란 시련을 주어 단련시킨다. 그렇지. 이 바칼은 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시련이지.. 이대로라면 그녀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 되겠군.>

     

    <그렇다면 모든 것이 그녀의 페이스대로 돌아가도록 해서는 안된다. 그녀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갈 만한 변수를 만들어야 해. 이런 종류의 치밀하고도 거대한 계획은 아주 작은 변수로 무너지기 마련이지.>

     

    바칼은 큰 고함소리와 함께 하늘 끝까지 날아올랐다. 

     
     「미개한 생명체들아. 내가 너희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최대한의 시련을 내릴테니 어디 한번 강해져 보아라. 너희가 잠재력이 있고 또 자존심이 있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은 힐더의 예상을 뛰어 넘는 것이라야만 한다. 그래야만 힐더의 계획에서 변수를 만들어낼 수가 있어. 난 힐더가 믿는 것보다 더 크게 너희를 믿어보겠다. 너희가 언젠가 카인과 힐더를 처치해버릴 그 날을 그려보겠단 말이다!! 하지만, 마법과 같은 한가지 힘에게만 의존해서는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어. 다른 힘이 더 필요하다. 꼭 너희 스스로가 무언가 찾아내야만 한다...!!!」

     

    이때부터 천계에서는 마법사용이 금지되었다.
    천계의 암흑기라고 불리는 500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제 8장> 7인의 마이스터
    마이스터 테네브(Teneb)는 고민에 빠졌다.

     

    마이스터 엘디르(Eldirh)..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째서 그녀는 마법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천계인이기는 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녀가 내놓았던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어쩌면 이 세상의 지식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군 젠장. 대체… 대체 뭐냔 말이다!!

     

    엘디르는 언제나 최고였다. 7인의 마이스터 중에서도 그녀를 따라올 사람은 없었다. 매번 연구가 벽에 부딪힐 때 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은 그녀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 게이볼그 프로젝트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테네브는 언제나 그녀의 천재적인 발상의 근원이 무엇일지 궁금해 했다. 그에 대해 물을 때면, 그녀는 “명상” 때문이라고 했다. 테네브는 자신에게도 그 명상법을 알려줄 수 없냐며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녀의 아이디어라는 것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라기보단 발전된 미래의 기술처럼 보였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테네브는 그녀를 의심하는 자신을 탓해왔다. 그녀의 뛰어난 재능은 자신에게서 강한 질투심뿐만 아니라, 존경심, 나아가서는 묘한 연정까지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연인인 젠느를 향해 느끼는 죄책감이 항상 가슴을 짓눌렀고, 그래서 엘디르가 가진 재능이 진짜가 아니라고 상상하는 것으로 유치하게 위안을 삼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되도록 빨리 이 혼란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정말로 그녀의 재능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마이크로 감시 로봇을 여럿 붙였다. 물론 이런 엄청난 일을 발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법이라니!

     

    테네브는 한밤중에 몰래 연구소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정처없이 걷고 있었다. 챙겨나온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난 10년간 한번도 피우지 않았던 담배였다.

     

    <후.. 세달 만에 마시는 바깥공기가 고작 담배연기라니.>

     

    「뭘 그리 괴로워해? 담배는 뇌의 화학물질 분비를 촉진시켜 창조적인 생각을 마구 떠오르게 해준다구」

     

    「어째서 네 창조적인 생각을 위해 우리의 수명을 줄여야 하는건데?」

     

    항상 티격태격하던 마이스터 라티와 볼간의 말다툼이 떠올라, 순간 훗, 하고 바람빠진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때였다.

     

    「고민할 것 없다.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위압적인 목소리. 엄청난 크기의 그림자. 테네브는 뒤돌아보기도 전에 겁에 질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뭐..뭐라.. 넌?」

     

    거대한 그림자는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왜 그녀는 마법을 쓸 수 있는가… 왜 그녀는 내가 모르는 지식을 알고 있는가… 왜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가…」

     

    테네브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암살자라면 말을 걸기 전에 죽였겠지. 마음이 조금 안정되자 큰 의구심이 들었다. 어떻게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게다가 엘디르에 관한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었는데.

     

    「거꾸로 된 도시의 신기루를 본 적이 있는가.」

     

    「…?」

     

    「아주 오래전 찬란한 과학문명을 발전시켰던 테라라는 행성이 있었지. 그 테라가 폭발할 때 도시하나가 떨어져 나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공간을 떠돌게 되었지.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올라탄 온갖 생명체들의 아귀다툼의 장이 되어버렸어. 그래서 모두들 그곳을 마계라고 불렀다네. 그 마계가 수백년전부터 바로 이 아라드 행성에 결착되어 있지. 거꾸로 말일세.」

     

    천계인이라면 마계에 대한 전설 쯤은 다 알고 있다. 물론, 거꾸로 된 도시의 신기루가 바로 마계라는 가설이 확인된 바는 없지만… 이 녀석은 왜 갑자기 앞에 나타나 내게 이런 뻔한 강의를 하는 것일까.. 혹시?

     

    「당신이 하고 싶은 헛소리는 그러니까….엘디르.. 그 엘디르가 마계인이어서, 그녀가 전해준 지식은 원래 고대 테라행성의 과학이었단 이야기인가..?」

     

    「아무나 7인의 마이스터의 수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로군. 바로 그렇다네. 그녀의 이름을 잘 생각해보게.」

     

    「엘디르… 엘디르... 엘디르(Eldirh) 라… 그렇다면 설마……. 힐더(Hilder)!!」

     

    사도에 관한 전설은 천계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마계에서 벌어진 용의 전쟁에서 바칼을 퇴패시킨 것은 사도들이라고 했다. 물론 그 때문에 바칼이 천계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사도들을 비난하는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천계인들은 언젠가 그 사도들이 천계로 강림하여 바칼을 물리쳐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천계인들 모두가 마음속에 함께 품고있는 거대한 신념이자, 종교였다. 물론 7인의 마이스터를 위시한 신흥 세력인 메카닉들은 종교보다는 과학의 힘을 믿었다. 

     

    「사도가.. 아니 그녀가 사도라면 왜 우리를 돕지?」

     

    사도의 도움은 놀라움이자 기쁨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건, 자네들을 정말로 강해지기 전에 빨리 나를 처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

     

    나를 처치… “나를” 이라고?
    그는 다시 눈 앞의 큰 덩치를 올려다 보았다. 그랬군. 제길. 이건 바칼이었어!

     

    「내가 멍청했군. 당신이 바칼이라니. 죽일려면 깔끔하게 죽이지, 뭘 그리 주절대는가? 아무리 나를 얼래보려고 해도 다른 마이스터들의 행방은 절대 말할 수 없으니, 시간낭비하지 말게.」

     

    애써 으름장을 내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바칼이 나에 대해서 샅샅히 알고 있다면 다른 마이스터들도, 그리고 게이볼그 프로젝트도 완전히 노출되었다는 건가!! 이럴수가!!!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조금만 참아주게. 조만간 죽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당신의 이야기는 듣지 않을...」

     

    「게이볼그 프로젝트를 멈춰주게나.」

     

    「뭐? 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져나왔다. 바칼이란 자가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는 자였다니? 웃다보니 자신이 바칼과 한가롭게 이야기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우습게 여겨져서 더욱 크게 웃었다. 하지만 웃음으로 모든 것을 넘겨버릴 수는 없었다. 역시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서, 게이볼그에 대해서 다 안다면, 왜 그냥 다 죽여버리지 않고 굳이 나를 찾아온거지?

     

    「그 게이볼그가 완성된다면,」

     

    바칼의 위압적인 음성에, 테네브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바칼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었다.

     

    「…내가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더군. 하지만 나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되네. 아직 자네 종족 전체가 강해진 것이 아니야. 하물며 자네들 7인의 마이스터들조차 그다지 강하지 않네. 게이볼그는 엄밀히 말해 자네들이 만든 것이 아니지 않은가. 결국 그것은 고대 테라의 과학문명의 힘일세. 이래가지고는 이 행성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어…」

     

    「멸망? 이젠 별 소리를 다하는군.」

     

    하지만 바칼의 말이 전부 헛소리는 아니었다. 게이볼그를 제안한 것도 엘디르였고, 프로젝트가 막힐 때 마다 해결책을 낸 것도 엘디르였다. 그래.. 그건 엘디르의 성과지. 엘디르가 정말 힐더라면…

     

    「지금 당장이 아니라면, 나를 언제 죽일 건가?」

     

    「자네들의 연구를 후대에 물려줄 준비가 되면.」

     

    「후대에 라고? 그게 무슨 의미가…」

     

    테네브는 반문하려다가, 그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바칼이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성과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것 정도는 문제도 안될 터인데, 그것을 남겨준다니?

     

    「그렇다면, 후대 사람들이 우리 마이스터들의 성과를 분석하여 자신의 기술로 흡수할 수 있도록 가만둔다는 것인가? 게이볼그가 아니라도 곧 네 녀석을 처치할만한 기술이 등장할텐데?」

     

    「그것이야 말로 궁극적으로 내가 바라는 것이지. 그런데 참고로 당신이 생각하는 “곧” 은 꽤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야… 」

     

    「결국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바칼.」

     

    「이제 내 이야기를 들은 준비가 된 것인가.」

     

    바칼은 담담하게, 그 동안의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용의 행성, 힐더와의 만남, 마계라는 곳, 사도, 루크의 예언, 그리고 힐더가 하려고 하는 일들과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들.

     

    테네브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윽고 바칼의 이야기가 끝나자, 테네브가 조용히 이야기를 이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증거라고는 엘디르가 마법을 쓸 줄 안다는 것 밖에는 없군. 하지만, 내가 믿건 말건 그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겠지. 어쨌건 당신은 게이볼그 프로젝트를 와해시킬테니. 그렇지 않나?」

     

    「정확히 짚었네. 내가 자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자네들의 연구 성과를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야. 만약 거절한다면, 자네들과 함께 그간의 성과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다시 자네들과 같은 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면 되겠지. 사실 한 백년 전에도 자네들만큼은 아니지만 꽤 성과를 낸 친구들이 있었어. 아쉽게도 그 친구들은 내 제안을 거절해서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 자네들의 성과가 뛰어나서 좀 아깝긴 하지만, 자네들 종족도 그동안 성장한 바가 있을테니 이번에는 수십년 정도만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싶네. 아주 큰 손해는 아니야.」

     

    테네브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좋네. 그럼 두가지 부탁이 있네.」

     

    「들어보지.」

     

    「나는 죽어도 좋으니 다른 마이스터들을 살려주게. 그들이 남아서 훗날을 도모하면 되지 않는가.」

     

    「그건 안되네. 자네들이 되도록 처절하고 장렬한 최후를 맞아야만 후대에 큰 전설로 남겨질 수 있지. 그래야 남은 사람들이 열의를 불태울거야. 아주 비극적인 연출이 필요하다네.」

     

    「그렇다면… 쿠리오만이라도 살려주게. 우리의 성과를 후대에 알려주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야.」

     

    「내가 요구한 바이니 들어주겠네. 대신 그가 살아남아 성과를 정리할 거라면 자네들 모두에게 많은 시간을 줄 필요는 없겠군. 또 한가지는?」

     

    「젠느.. 그녀가 내 아이를 가지고 있다네.. 이제 세상에 나올 날이 머지 않았는데, 살려줄 수 없겠나..」

     

    「인간이란 참 이상한 동물이로군. 자신이 죽는데 자신의 아이가 살아남건 말건 무슨 소용이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그냥 어느날 갑자기 당신이 마이스터들을 모두 죽이고 게이볼그를 와해시킨다면, 후대 사람들은 당신의 정보력이 두려워서 감히 무슨 일을 할 생각을 하기 힘들 것이네. 그렇다면 내가 배신자 역할을 자처하겠네. 원래는 성공할 뻔한 프로젝트였으나, 내가 배신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이야… 이러면 후대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시도할 것이네.」

     

    「좋은 생각이로군. 자네의 아이를 살려주도록 하겠네. 더 요구사항이 있는가..?」

     

    어찌 없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그만하고 그냥 사라져주게 바칼!

     

    「머리가 복잡하겠지. 하지만 빨리 정리하게. 자네가 준비할 시간을 딱 3일 주겠네.」

     

    바칼이 하늘높이 날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도, 테네브는 미동도 하지않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의 입에는 불을 붙이지도 않은 담배가 쓸쓸하게 물려있었다.

     

    바칼은 정확히 날짜를 지켰다.

     

    마이스터 테네브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배신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같이 꾸며놓은 증거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살하였다.
    마이스터 볼간은 미완성인 게이볼그에 타서 극렬히 저항하다가 게이볼그와 함께 장렬히 산화하였다.
    마이스터 라티는 계속되는 흡연과 과로가 쌓인 상태에서, 바칼의 손에 의해 게이볼그가 파괴되는 장면을 보는 순간 충격을 견디지 못해 피를 토하고 사망하였다.
    마이스터 쿠리오는 바칼의 침공에서 가까스로 도망친 후, 게이볼그의 잔해를 모아 이공간에 봉인하고, .그간의 모든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후세에 남겼다.
    마이스터 젠느는 바칼군의 침공으로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충격으로 조산하여 몸조리하던 중, 모든 일이 자신의 연인 테네브의 배신 때문이었음을 알게된 후 절망에 빠져 오드뤼즈에게 아이를 남긴 채 자살하였다.
    마이스터 오드뤼즈는 프로젝트 실패 이후 쿠리오를 돕다가, 어느날 젠느의 아이를 데리고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
    마이스터 엘디르는 바칼군의 침공하기 이틀전부터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제 9장> 생각보다 일찍

    지금으로부터 500년전. 천계.

     

    기계혁명.
    7인의 마이스터의 유지를 이어받은 천계인들은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연구 성과를 연구하여 발전시켰고, 드디어 스스로 바칼군에 저항할 만한 힘을 얻게 되었다. 어느 날 천계인들은 모두 합심하여 바칼군에게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퍼부었고, 천계의 모든 도시가 사람들과 함께 거친 비명소리를 내며 불타고 있었다.

     

    바칼은 자신의 궁전 발코니에서 전쟁으로 불타고 있는 도시를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여유로운 표정에는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서 귀를 찢는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들리고 있었다.


     

    「벌써... 때가 되었는가.」

     

    바칼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군. 힐더」

     

    그러자 바칼 뒤쪽의 어둠속에서 한 여인의 실루엣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었다.

     

    「참 오랫동안 제 앞길을 막으셨습니다. 허나 더 이상은 안됩니다. 바칼님.」

     

    힐더는 바칼 옆에 나란히 서서, 바칼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불타는 도시가 있었다.

     

    「좀 이르지 않나? 아직 이 세계에는 나를 상대할 만한 존재가 없을텐데. 혹시나 천계인들이 저 장난감 같은 기계덩어리 몇 개 만든 것 가지고 내 최후를 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힐더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미래에서 온 친구들이라면 어떨까요.」

     

    「흐흐흐.. 미래라… 마음이 많이 급한 모양이군. 힐더.」

     

    비로소 바칼은 고개를 돌려 힐더를 쳐다보았다.

     

    「그들이 나에게 도전할 만큼 특별한가?」

     

    힐더는 가만히 바칼의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요.」

     

    바칼의 눈빛이 순간 섬뜩해지더니 그의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거친 쇳덩이가 갈리는 듯한 바칼의 괴성이 대지를 흔들었다. 그럼에도 힐더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손에서 떨어지는 와인잔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덮은 바칼의 그림자가 점점 거대해지더니, 주변을 모두 암흑으로 칠했다.

     

    「사도들도 나를 어찌하지 못하는데,」

     

    바칼은 어느새 거대한 검은 용의 형상이 되어 힐더를 내려다 보았다.

     

    「감히 누가 나를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천지를 뒤덮을 것만 같은 거대한 위용을 뽐내며 호쾌하게 웃고 있는 검은 용을, 힐더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사실 그녀의 입가에는 아주 미세한 웃음이 스쳐갔으나 바칼이 보지 못하였을 뿐이었다

    <제 10장> 아주 작은 차이

     








      



     

     

    바칼의 성은 곳곳이 불타고 있었다. 바칼은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군데군데 크게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무리들이 서있는 뒤쪽에는 차원의 틈이 냈던 공간의 균열이 점점 아물어 가고 있었다.

     

    「너희들 전부가 천인은 아니로군. 그렇다면 내가 맞춰보지. 자네들이 바로 미래에서 온 친구들인가. 말해주게. 몇 년 후에서 왔는가?」

     

    「그렇다. 500년 후의 미래에서 왔다.」

     

    「500년.... 또다시 500 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세 마리 용은 처치하였는가?」

     

    「우리는 대륙으로 전이된 사도들까지도 여럿 처치했다. 네가 만들었다는 그 엉성한 용들은 우리들의 상대가 아니야.」

     

    「축하하네. 기본 테스트는 가볍게 통과한 모양이로군. 헌데 그 멍청한 사도녀석들은 결국 그녀 손에 의해 엉뚱한 곳에서 어이없게 죽임을 당했나? 내가 맞춰보지. 너희 땅에 내려와 죽었다는 사도들이 시로코, 로터스, 디레지에 인가?」

     

    「먼 미래의 일을 네가 어떻게 알지?」

     

    「흐흐.. 운명적으로 순서가 정해져 있는건지, 의도적으로 그녀가 그렇게 배치한건지 그건 나도 알 수가 없군. 그런데 인간뿐만 아니라 천계인과 마계인에 흑요정까지 가세한 것인가. 잠재력이 있다면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로군 힐더.」

     

    「너랑 대화나 나누려고 먼 길을 온 것은 아니니까, 빨리 한판 붙어보자구. 역사상에서는 천계인들이 기계혁명으로 네 녀석을 처치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오늘은 우리가 특별히 고대 천계인들의 수고를 좀 덜어주려니까. 이미 크게 상처를 입고 있어서 유감이지만, 악인에게는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는 법!」

     

    「큭큭큭큭. 천인들이 나를 죽였다고 배웠나? 이 따위 기계들로? 유감스럽게도 이런 조악한 것들로는 아직은 나를 죽이지는 못한다네. 하지만 저 기계들을 한꺼번에 상대하느라 나의 기력을 많이 소진시키기는 했지. 그녀는 이때를 노려서 너희들을 여기로 데려다 놓은 것 같군. 좋은 작전이다 힐더. 자, 이제 내가 진짜 역사 공부를 시켜주지. 내가 만약 오늘 죽는다면, 그것은 너희의 과거에도 그랬다는 것이다. 즉, 나를 죽인 것은 천인들이 아니라 언제나 너희였다는 이야기지. 그 사실은 변한적이 없는 것이고.」

     

    「.....!?」
     
    「이제 이해가 좀 되는가 보군. 너희 종족이 강해지려면 앞으로 500년. 힐더는, 내가 그녀의 계획을 가로막은 채로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자신의 예상을 뒤엎는 일들이 벌어질까봐 내가 죽을 시간을 앞당긴 것이로군. 사실 너희가 이렇게 수고스럽게 먼 미래에서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이제 곧 내가 대륙으로 내려갈 참이었는데. 아, 그래서 그녀가 마음이 급했던 것인가. 큭큭. 헌데 미래의 힐더는 이공간을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인가. 너희를 정확한 시간대의 과거로 보낼 수 있다니.」

     

    주변은 온통 불타고 있었다. 그렇지. 루크는 내가 불 속에서 죽는다고 암시했겠다. 그것이 지금이란 말인가.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너희의 말을 들어보니, 어쩌면 정말로 내가 오늘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군. 나의 기력이 소진된 지금은 확실히 기회지. 이대로 죽게되어 너희들의 강함을 정확하게 측정해 볼 수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쉽기는 한데...」

     

    바칼은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수백년간 노력한 결과가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이다! 그는 한명한명을 차례대로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과연 나의 노력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아니면 이것들은 그저 그녀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을까.

     

    「너희의 강함은 힐더의 생각대로일까 아니면 그 이상일까. 내가 힐더의 계획을 500년간 늦추는 동안, 너희 종족들은 조금이라도 성장했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을까. 이토록 잘 짜여진 게임에서는, 아주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지.」

     

    바칼은 날카로운 안광을 번뜩거리며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날개를 넓게 폈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모험가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씩 물러섰다. 모두의 얼굴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아, 한가지 변수가 더 있긴 하지. 비록 내 기력이 조금 상했다고는 해도, 과연 정말로 너희가 나를 이길 수 있을까..? 내가 오늘 죽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지라도, 나를 죽일 것은 너희가 아닌 미래에서 온 다른 자들일 수도 있지 않은가?」

     

    거대한 용의 입이 크게 벌려지고, 그 안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이글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http://df.nexon.com/?GO=guide&TO=&mode=view&type=content&bbs_no=479&Depth1BbsNo=323

    아무리봐도 사도중엔 바칼이 진리... 나쁜놈인줄 알았는데 제일 착한성님일세.
    젠장할의 꼬릿말입니다
    曇天 (흐린 하늘)-DOES

    鉛の空重く垂れ込み
    나마리노 소라 오모쿠 타레코미
    납빛의 하늘 무겁게 드리워져서
    眞白に澱んだ太陽が碎けて-
    맛시로니 요돈다 타이요-가 쿠다케테
    새하얗게 침체된 태양이 부서지고
    耳鳴りを尖らせる
    미미나리오 토가라세루
    귀울림은 거칠어져가네
    ひゅるりひゅるり低いツバメが
    휴루리 휴루리 히쿠이 츠바메가
    이리 저리 낮게 제비가
    8の字なぞってビルの谷を翔る
    하치노 지 나좃테 비루노 타니오 카케루
    8자를 그리며 빌딩의 좁은 길을 빙빙 돌며 나네
    もうじきに夕立が來る
    모- 지키니 유-다치가 쿠루
    이제 곧 소나기가 오겠지
    曇天の道を傘を忘れて
    돈텐노 미치오 카사오 와스레테
    흐린 하늘 아래 길을 우산을 잊어버리고
    步く彼女は雨に怯えてる
    아루쿠 카노죠와 아메니 오비에테루
    걷는 그녀는 비가 올까 걱정하네
    ので僕も弱蟲ぶら下げて
    노데 보쿠모 요와무시 부라사게테
    그래서 나도 나약함에 매달려
    空を仰ぐ
    소라오 아오구
    하늘을 바라보네
    あちらこちらアンヨは上手
    아치라 코치라 앙요와 죠-즈
    여기 저기 인사는 잘하네
    琲屋に寄って一休み極めたら
    코히야니 욧테 히토야스미 키메타라
    카페에 모여 잠시 쉬고 나면
    帰れない帰らない
    카에레나이 카에라나이
    돌아갈 수 없어 돌아가지 못해
    曇天の道をぶらりぶらぶら
    돈텐노 미치오 부라리 부라부라
    흐린 하늘 아래 길을 어슬렁 어슬렁
    歩く2人は足輕の如く
    아루쿠 후타리와 아시가루노고토쿠
    걷고있는 두 사람은 졸병(최하급무사)와 같이
    危険好きの誰かのフリをする
    키켄스키노 다레카노 후리오 스루
    위험을 즐기는 누군가의 흉내를 내네
    小心者ども
    쇼신모노도모
    소심한 자들아 !
    曇天の道を傘を忘れて
    돈텐노 미치오 카사오 와스레테
    흐린 하늘 아래 길을 우산을 잊어버리고
    步く彼女は雨に怯えてる
    아루쿠 카노죠와 아메니 오비에테루
    걷는 그녀는 비가 올까 걱정하네
    ので僕も弱蟲ぶら下げて
    노데 보쿠모 요와무시 부라사게테
    그래서 나도 나약함에 매달려
    空を仰ぐ
    소라오 아오구
    하늘을 바라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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