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년 전에 썼던 동화네요.
이외에도 갖가지 자연현상을 의인화시켰던 게 몇 개 더 있긴 하지만
제 자신에게 그나마 납득가는 동화는 이것 뿐이라 한 번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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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해바라기가 하나 있었다.
아직 보송보송한 이파리의 녹색을 벗지 못한,
애여린 해바라기였다.
 


태양이 있었다.
고래가 있는 곳에 바다가 있듯.
어쩌면, 해는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기'위해서 있는지도 몰랐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동쪽 산에서 머리를 내밀 때부터
서쪽으로 석양의 꼬리를 끌고 보랏빛 밤으로 숨어들 때까지.

 

그리고 다시 내일의 해를 보기 위해 
밤동안 해바라기는 동쪽으로 고개를 돌려
긴긴 밤을 지새웠다.

 

어느 날,
태양은 그런 해바라기를 발견했다.
언제나 하루 종일 자신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에게
태양도 점점 마음이 갔다.

 

그래서 그도 해바라기가 그를 보는 만큼
해바라기를 보게 되었고,
서로를 바라보는 만큼
서로를 원하게 되었다.
 

해바라기가 어린 티를 벗고
샛노란 꽃잎을 자랑하게 될 즈음...
해바라기는 언젠가부터 태양을 예전만큼 바라보지 않았다.
태양은 그런 해바라기가 의아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바라기를 바라보았다.

해바라기의 푸른 잎을 위해 진한 빛을 부어 주었고,
떠나는 길에는 수줍은 빛의 노을을 하늘에 깔아 주었다.
 
하지만 해바라기의 얼굴은
예전처럼 하루 종일 태양을 바라보지 않았고,
태양은 점점 지쳤다.


구름에게 부탁해
달콤한 비를 내리게 했지만
이제 더 이상 해바라기의 얼굴은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태양은 생각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벗고
이제 노란 아름다운 꽃잎을 갖게 되니까
자신이 필요없어진 건 아닐까.
더 이상 자신이 필요없어질 정도로 
해바라기는 화려해진 것이 아닐까.

 

큰 상처를 받은 태양은
이제 해바라기가 있는 곳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다 해바라기가 보이면
재빨리 다른 곳으로 가 버렸고,
태양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해바라기를 잊게 되었다.

 

어느 날.
달이 태양에게 말했다.
왜 해바라기를 비추지 않느냐고.
태양이 말했다.
더 이상 나를 보지 않는다고.

 

달이 화가 나서 말했다.
『해바라기가 더 이상 너를 바라보지 않는 건,
너에 대한 동경이 식어서가 아니라,
이제는 네가 자신을 항상 바라봐 준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그 증거로 해바라기의 얼굴은 너를 향하지 않지만
적어도 줄기와 잎은 
항상 너를 향하지 않느냐.』
 

 

 

태양은 놀랐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서둘러 해바라기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미 해바라기는 시들었다.
그 꼿꼿하던 줄기는 바닥을 향해 굽었고,
그 샛노란 잎은 어디로 가고
갈색으로 말라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달의 말대로
해바라기의 줄기의 끝과 이파리는
오지 않는 태양을 기다리며
동쪽 산마루를 향하고 있었다.
 

태양은 울고 싶었다.
하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면 뜨거운 몸 때문에
금방 말라버렸다.
 

 

태양은 생각했다.
만일 이후에 또 다른 해바라기가 자신을 본다면,
그 땐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올라 
해바라기를 바라봐 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슬픔을 지켜본 구름은
태양이 사랑한 해바라기를 위해
해바라기가 피는 날에는
어느 때보다 비를 열심히 내리리라
해바라기가 내리쬐는 빛에 목마르지 않게 잎과 땅을 적셔 주리라.
조용히 다짐했다.

 

 

그래서 해바라기가 피는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태양이 뜨겁고
찬란히 빛나고,
비가 어느 때보다  세차게 내리는 것이다.



-나머지 말.-

※실제로 해바라기는 잎이 초록인 봉오리 때에는 잎도 광합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가 뜨는 방향을 따라가며 바라보다가, 잎이 노랗게 되어 완전히 피게 되면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광합성이 불가능해지므로 태양을 따라 돌지 않고 남쪽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광합성과 향광성 때문에 줄기의 끝과 잎은 태양을 따라 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