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일, 일본 삿포로 돔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일본의 75번째 동북아 더비 매치에서 0:3이라는 치욕스러운 결과로 대한민국이 패배의 쓴 맛을 보아야했다.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으로 앞서있던(74전 40승 22무 12패) 대한민국은 자신만만 했고 최근 많이 성장한 일본이라 할 지라도 쉽게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애초에 우리는 일본원정에서 13년동안 패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최소한 비길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이날 경기를 제외한 최근 4경기에서 1승 2무 1패, 그나마 무승부 중 한 번은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패배한 경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아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더 이상 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케로니감독이 일본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일본축구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일본 선수들은 독일, 이탈리아, 잉글랜드 등 세계에서 최상위권이라고 불리는 리그에서 활약을 보이고 있고 그 중 '카가와 신지' '하세베 마코토' '혼다 케이스케'등은 명문클럽에서 눈독을 보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 일본 대표팀 명단엔 역시 그 선수들이 모두 포함됐고 유럽파 위주의 탄탄한 스쿼드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호락호락하게 지진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일본에게 축구 인프라, 시스템, 선수들의 개인 능력 등에서 밀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본을 압도했다. 그것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투지를 가지고 경기에 임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사실, 아무리 날고 뛰어도 우리에게는 그저 호랑이에게 덤비는 하룻강아지에게 불과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번 한일전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로, 외국인 출신의 감독 문제다.

이는 조광래 감독의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세계축구의 흐름을 유럽과 남미가 주도하는데 조광래감독은 외국, 특히 유럽축구계에 지휘봉을 잡아본 적이 없어 그에 따른 흐름을 완벽히 이해하고 경험하는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 국가대표팀에도 외국인 '코치'가 있긴 하나 전체적인 전술의 틀은 감독의 책임하에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유럽축구의 모양새를 구성할 수가 없었다.
이번 1월에 열린 아시안컵에서 조광래식 패싱축구는 우리를 감명시킬 만큼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유럽의 강호들 못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벽하게 짜여진 틀이 없이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 맞추다보니 2%부족한 면이 없지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내고 조광래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선수개인의 특성을 어떻게 전술에 맞게 포진할 것인가에 있다고 본다.



두번째로, 전문적인 윙어의 부재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캡틴박'이 은퇴한 대한민국대표에 대대적인 비상이 걸렸다. 마땅한 대체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축구는 박지성의 대체자로 염기훈, 김보경, 이근호 등을 꼽았지만 어쨰 좀 많이 부족한 감이 없지않다. 염기훈은 월드컵 경험과 공격상황에서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침착함이 부족하다. 김보경은 센스있는 플레이와 혀를 내두를 만한 킬패스, 활동량 등에서 박지성의 대체자로서 현재로선 가장 적합해 보이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이근호는 과거 인천과 대구에 몸담았을 때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있던 것이 버릇이 되어서 그런 지 좌측면에서의 드리블 돌파능력이 부족해 보였고 최근에는 골 결정력까지 많이 부족해진 모습이었다. 조광래 감독이 이근호를 쓰기 위해서는 기존의 4-2-3-1이나 4-1-4-1이 아닌 4-4-2 전술 구성을 통해서 박주영과 함께 투톱을 이루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청용의 부상 또한 악재로 다가왔다. 이청용의 선발이 당연시 되어있는 우리 대표팀에게 전치 9개월이라는 선언은 악몽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브라질 월드컵 예선을 치뤄야 하는 마당에 오른쪽 윙어로 어떤 선수가 투입될 지가 문제다. 이날 이청용 대신에 오른쪽에 위치한 구자철은 포지션에 많이 어색한 듯 보였고 결국 후반에는 전방으로 포진 돼 차두리가 잦은 오버래핑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것이 곳 우리 오른쪽 라인의 붕괴를 가져왔고 많은 기회를 일본에게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조광래호의 문제점은 마땅한 대체자를 준비해 놓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청용을 대체한 파괴력있는 오른쪽 윙어를 발굴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 하겠다. 차라리 이날 경기에서 윙어가 없는 대신 중앙 허리라인을 두텁게 가져가도록 4-3-2-1이나 4-3-1-2같은 전술을 내놓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세번째로, 박주영의 컨디션 난조다.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 이후 새로운 '캡틴'박이 된 박주영, 최근 수많은 이적설이 나돌며 그 자신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다 팀이 2군으로 떨어진 마당에 긴 시간동안 경기를 뛰지 못했고 결혼까지 겹쳐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컨디션이 떨어진 박주영을 대체할 최전방에 놓을 만한 선수라고는 지동원 정도가 있는데 그는 지금 새로운 팀에 적응 중이라 소집을 하지 않았기 떄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네번째로, 우리는 '축구'를 했고 일본은 '게임'을 했다.

우리는 초반부터 기선제압을 하기위해 전방에서 강한 압박을 시도했다. 하지만 일본의 정확하고 간결한 패싱플레이에 우리 수비조직력은 그대로 무너졌다. 정말 그들이 말하는대로 바르셀로나와 같은 플레이었다. 게임을 하듯 차근차근히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었다. 이날 경기는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를 보는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는 사비와 이니에스타를 필두로해 간결하고 정확한 패싱으로 상대를 괴롭힌 반면 레알마드리드(한국)는 수비에 급급했고 바르셀로나(일본) 선수들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이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상황과도 비슷하다. 상대전적에서는 레알마드리드(한국)가 바르셀로나(일본)에 앞서있고 타이틀 또한 레알마드리드가 많이 가지고 있다. 거기다 레알마드리드는 수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영입됐고(한국은 해외진출) 노장들이 대거 방출됐다(한국대표는 박지성과 이영표, 이운재 등의 은퇴). 바르셀로나는 새로운 감독(자케로니)의 전술이 거의 완성된 듯 보이고 선수들 또한 최적의 구성과 짜임새를 만들어냈다. 특히 바르셀로나는 메시-이니에스타-사비로 이어지는 삼각라인은 정말 예술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패싱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일본의 경우 카가와-혼다-엔도).

다섯번째로, 전술적 짜임새다.

팀에 전문적인 윙어가 없다면 과감히 윙어를 포기할 수도 있어야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공격형 중앙미드필더인 구자철은 오른쪽라인에서 다소 약한 모습을 보였고 이근호 또한 왼쪽날개가 많이 어색해 보였다. 기본적으로 한국축구가 윙어를 가져가는 포메이션을 그동안 짜왔지만 우리의 중원을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된다. 만약 중앙 허리라인에 구자철, 기성용, 이용래, 김정우가 함께 포진해 조목조목 세부전술과 패싱을 맞춰나갔다면 점유율면에서도 앞서나가는 경기를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박지성과 이영표의 부재다.

말할 것도 없이 이날 경기는 박지성과 이영표의 얼굴이 너무나도 그리워지는 경기였다. 경기내내 수비가 안될 때마다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왼쪽 수비수가 줄부상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을 때는 말그대로 처참했다. 아직도 경험이 부족한 김영권, 박원재 등은 팀에 녹아들지 못하는 듯 보였고, 마땅한 대체자를 발굴해내지 못한 상황에서 박지성이 돌연 대표팀을 은퇴한 것은 한편으로 아쉬움이 들었다. 아, 그가 조금만 더 대표팀에 남아 주었더라면...

이번에 우리가 아쉽게도 너무나 아쉽게도 통한의 무득점 패배를 맛보고 말았다. 역사적으로 일본에게는 지지 않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던 대표팀. 현대축구는 이제 '투혼'보다도 얼마나 상대를 잘 파악하고 전술을 따느냐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모두 대표팀을 위해서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고 앞으로는 저 일본에게 절대로 지지 않는 경기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