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처음으로 만날 날을 시작으로 해서



너와 같은 반이 되었던 학기부터 해서

너가 친구로써 내 곁에 있으면서

너가 나한테 한 행동들, 언행들, 그리고 너와 나, 우리가 같이한 시간들, 기억들, 그러니까...추억들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몇 년이 지났는지 아니?



언제부터인가 점심시간엔 식후에 단 둘이 미술실에 가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단 둘의 밀회는 10여분 밖에 안 되었지만 즐거웠다.

언제부터인가 체육시간은 너가 내 다리를 베게삼아 낮잠을 자는 시간이 되었다.

1년동안 쭉 무릎베게를 해온 내 다리가 저린적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가 끝나면 단 둘이 100m가 넘는 언덕 하교길을 같이 걸어가게 되었다.

그 날 하루 너와 마지막으로 함께 할 수 있던 그 시간이 언제부터인가 절실해졌다.



그렇게 내 학교의 일상이 너라는 색깔로 물들여지고 결국 땅부터 하늘까지 온 세상을 너로 물들였을 때.

그 순간으로부터 몇 년이 지났는지 아니?



비가 내렸어, 추적 추적 내리는 빗줄기가 그리 굵지는 않았어.

준비성도 조심성도 없는 넌 당연히 우산이 없었고 반대의 나는 우산이 있었지.

언제나와 같은 하교길, 단지 하나의 우산에 두명이 있었을 뿐.



단지 어제보다, 그저께보다 둘의 거리가 많이 가까웠을 뿐이었지. 너 얼굴이 내 어깨에 있었으니 좀 많이 가까웠었지.

나보다 2배는 작은 너몸이었고 우산도 아주 큰 우산이었지만 왠지 넌 자꾸 내품으로 파고들어왔었지.

그다지, 자극적이지도 않고 큰 일도 아니었지만 나는 이 비오는 날의 하교길이 가장 선명해.



학교에선 맨날 잠만자는 너였지, 수업끝나는 종이 울리거나 시작하는 종이 울리면 널 깨우는 것이 내 의무였어, 친구로써도 물론이고 우리 반에서의 규칙 같은거였지. 왠지 나 외의 다른사람은 널 깨우면 안 되는 것 같았어.

널 깨울 때 마다 나를 향해 부스스한 머리와 찡그린 표정, 비죽 내미는 입술로 나를 "향했을 때."

그래.

너가 나를 "향했을 때."

그 때로부터 몇 년이 지났는지 아니?



노트를 들켰던 그 날, 내 심정과 광기, 마음이 전부 담겨있는 그 노트를 너가 훔쳐봤던 그 날.

정말 죽고싶었던 그 날, 너로 물들여져 붉은 하늘이 무너져 버린 그 날.

도망치지 않았던 너.

그저 웃던 너.


수많은 얼굴들, 사건들, 시간들

정말 많았지.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


몇 년이 지났는지 이젠 잘 모르겠고 정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내가 학교를 떠난 그 날부터 지금까지 쭉- 아플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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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가슴이 시려오고, 그럼에도 가슴이 비어있을 때.

가끔 그런 순간이 옵니다. 지금 저가 그런 순간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