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13)<br><br><br><br>이틀 후.<br><br>“그럼 어젯밤에도 잠을 전혀 못 잔 거예요?”<br><br>나의 물음에 전화기 너머 은경의 짙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br><br>-응, 지금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어서 내일은 월차를 냈어.<br><br>수원에 다녀 온 월요일 이후로 사흘 째 잠을 못 자고 있는 것이다. <br><br>은경은 자신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증 때문이라고 했다. <br><br>어머니가 보낸 화해의 시그널을 전혀 눈치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 말이다. <br><br>자책이나 후회의 감정은 결단코 아니라고 했다. 특히, 은경은 ‘결단코’라는 단어를 강조했었다. <br><br>그때 가족과 연을 끊고 집을 나오지 않았으면 자신이 대형 사고를 쳤을 거라고 말이다. <br><br>전화기 너머 은경의 목소리가 이어졌다.<br><br>-그래서 말인데 나 오늘 인천에 가면 안될까?<br><br>“내 원룸이요?”<br><br>-응.<br><br>“나야 좋죠. 그런데 나는 내일 아침에 출근하는데 혼자서 괜찮겠어요?”<br><br>나의 물음에 한층 밝아진 은경의 목소리가 돌아왔다.<br><br>-괜찮아. 그럼 이따가 저녁은 내가 사갈게.<br><br>“먹을 음식은 집에 있을 거예요. 오늘 친누나가 곰탕을 해서 가져 온다고 그랬거든요.”<br><br>-오! 그래? 나 집에서 만든 곰탕 되게 좋아하는데 잘됐다.<br><br>“그런데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사먹는 거랑 비교할 정도는 아니에요. 깊게 우러나오는 그런 맛은 없거든요.”<br><br>전화기 너머 은경의 짧은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br><br>-네가 뭘 모르는구나? 집에서 요리한 곰탕은 그런 맛으로 먹는 거야, 그 살짝 밋밋한 맛. 음식점 설렁탕은 입에 착 감기긴 하는데 뒷맛이 텁텁하거든. 집 곰탕은 그 텁텁한 뒷맛이 없어서 그 맛에 먹는 거고.<br><br>“하하, 그런가요? 아무튼 뭐, 곰탕 좋아한다니 다행이에요. 그럼 몇 시 쯤 오는 거예요?”<br><br>-오늘은 다섯 시 퇴근인데, 분위기 봐서 괜찮으면 더 일찍 나갈 수도 있을 거야.<br><br>5시에 퇴근해서 바로 인천 원룸으로 오면 6시 15분 즈음에 도착한다는 뜻이다.<br><br>“나는 오늘 산업 단지에 외근이 있어서 조금 늦을지도 몰라요. 원룸 비번 기억하죠?”<br><br>-응, 건물 입구는 1894. 현관문 도어락은 내가 지금 끼우고 있는 반지 원래 주인의 생일인 것 같은데, 맞지?<br><br>역시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다.<br><br>“네, 맞아요. 그럼 이따 퇴근하고서 봐요.”<br><br><br><br>네 시간 후. <br><br>외근을 마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원룸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휴대폰을 꺼내 카톡 대화창을 확인했다. <br><br>10분 전 버스에서 내려면서 은경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 1 표시가 여전히 남아 있다. <br><br>혹시 잠이 든 게 아닐까? <br><br>사흘 동안 한숨도 못 잤으면 당장 기절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으니까. <br><br>계단을 올라 원룸 앞에 도착해 도어락 비번을 누르고 문을 열자, 활짝 열린 중문 너머 두 명의 여성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br><br>“누, 누나….”<br><br>나는 은경을 부른 것인데, 대답을 한 사람은 친누나였다.<br><br>“영식아, 왔구나. 들어와서 너도 같이 앉아.”<br><br>“어….”<br><br>나는 신발을 벗으며 은경과 누나 사이의 분위기를 살폈는데… 음…… 잘 모르겠다. <br><br>한가지 다행인 사실은 은경의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br><br>신발을 벗고 다섯 걸음 거리의 2인용 식탁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br><br>그동안 은경에게 친누나 이야기를 했었던가…? <br><br>친누나의 부탁으로 아버지를 찾아 석륜도에 갔었다는 대화가 떠올랐다. <br><br>아버지를 보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왜 자신에게 연락을 하고 사랑기도원까지 찾아갔느냐는 질문에 내가 했던 대답이었다. <br><br>애초에 나는 사실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결단코 없었으니까. <br><br>그런데 이거 말고는 없나…? <br><br>나는 자리에 앉았고, 누나와 은경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br><br>“내가… 먼저 소개부터 시켜줘야 하나…요?”<br><br>나의 물음에 식탁 오른쪽에 앉은 은경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고, 그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누나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br><br>“뭐야? 둘이 서로 존대하는 거야?”<br><br>“아… 그게….”<br><br>머릿속으로 단어를 고르는 사이 은경이 먼저 답했다.<br><br>“제가 영식 씨보다 다섯 살 많거든요.”<br><br>찰나의 순간이지만 누나의 얼굴에 몇가지 감정이 비치는 게 느껴졌다. <br><br>그게 무슨 감정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감정은 아닌 듯하다.<br><br>“와, 되게 동안이세요. 영식이보다 두세 살은 어린 줄 알았어요.”<br><br>누나의 말에 은경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br><br>“하하, 고마워요.”<br><br>흠… 누나와 은경, 이 두 사람이 지금 불편한 사이는 아닌 듯하다. <br><br>여기서 둘이 얼마나 같이 있었던 거지…? <br><br>은경이 퇴근하고 바로 여기로 왔다면, 대략 30분 전에 도착했을 것이다. <br><br>나는 누나를 향해 물었다.<br><br>“그런데 누나, 오늘 오전에 온다고 하지 않았어?”<br><br>“아, 그럴려고 했는데… 아침에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좀 많이 자버렸어, 하하.”<br><br>“그렇구나. 그런데 지금 매형 퇴근할 시간 되지 않았나?”<br><br>누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br><br>“다음주에 공판 잡혔다고, 이번주는 날마다 야근이야.”<br><br>나는 누나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br><br>“아… 야근… 그래… 매형은 오늘도 야근을 하는구나.”<br><br>누나는 그런 나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br><br>“왜? 나 빨리 가라고?”<br><br>“어이쿠, 그걸 이제야 눈치 챘어?”<br><br>누나는 짜증 섞인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br><br>“어휴—!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 인마.”<br><br>은경은 나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누나의 손을 잡았다.<br><br>“그러지 말고 다같이 저녁 먹고 가세요.”<br><br>누나는 어색하며 웃으며 입을 열었다.<br><br>“아유, 아니에요. 제가…….”<br><br>누나의 시선은 자신의 팔목을 잡고 있는 은경의 왼손에 잠시 고정이 되었다. <br><br>그리고 누나는 천천히 시선을 옮겨 나를 바라보았다. <br><br>은경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어머니의 은가락지에 대해 설명을 하라는 눈빛이다. <br><br>나는 말없이 양쪽 어깨를 아주 살짝 으쓱해 보였고, 누나는 다시 은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br><br>“제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하하.”<br><br>누나는 은경에게 잡힌 손을 빼냈고, 의자 등받이에 걸쳐 두었던 자신의 가방과 외투를 집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가방을, 오른손에는 외투를 각각 들고는 나에게 말했다.<br><br>“갈게. 내일 시간 날 때 나한테 전화 좀 해.”<br><br>누나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은경에게 고개를 돌렸다.<br><br>“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영식이가 엄마 없이 자라서 부족한 게 많은데, 그래도 예쁘게 봐 주세요.”<br><br>조금 전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은경의 얼굴에도 여러 감정이 섞인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br><br>“영식 씨 부족하다고 느낀 적 없어요. 그리고…….”<br><br>잠시 고민하던 은경은 왼손에서 반지를 빼 누나에게 반지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br><br>“이 반지 말인데요, 이거 며칠 전에 제가 잠깐 쓸 일이 있어서 영식 씨에게 빌린 거예요. 안 그래도 오늘 돌려주려고 이렇게 끼고 온 거예요.”<br><br>은경의 말에 굳어 있던 누나의 표정이 슬쩍 누그러지는 게 보인다.<br><br>“아! 그런가요?”<br><br>누나는 은경이 내민 반지를 받기 위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외투를 자신의 왼쪽 팔에 걸쳤고, 나는 그런 누나를 가로 막으며 은경에게 말했다.<br><br>“누나, 그 반지 내가 준 거잖아요.”<br><br>반지를 빌려준 것도 맞지만 수원에서 돌아왔을 때, 은경에게 마음에 들면 가지라고 했었으니까. <br><br>은경은 당황한 표정이 되고 말았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을 이었다.<br><br>“마음에 안 들어서 갖기 싫은 거라면 나한테 돌려주고요.”<br><br>“아니…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br><br>“그럼 누나가 가지고 있어요. 내가 준 거니까.”<br><br>나는 몸을 돌려 친누나를 향해 말했다.<br><br>“뭐야? 정말로 저 반지가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br><br>“영식아… 저거….”<br><br>나는 누나의 말을 잘랐다.<br><br>“나도 알아, 어머니 유품인 거. 아는데 이 사람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라 준 거야.”<br><br>나의 말에 누나는 입술을 가늘게 닫으며 씁쓸한 미소를 보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br><br>“그래, 알았어.”<br><br>그리고 은경을 향해 말을 이었다.<br><br>“영식이가 선물로 준 건지는 몰랐어요. 미안해요.”<br><br>“아니… 괜찮아요.”<br><br>괜찮다는 은경의 말에 누나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br><br>응? 뭐지? 이 표정? <br><br>불길한 예감에 볼 일 다 봤으면 원룸에서 나가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누나는 다시 은경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br><br>“은경 씨, 다음주 수요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br><br>은경은 고개를 저었고, 누나는 살짝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br><br>“그 반지 원래 주인 기일이에요. 그때 시간 괜찮으면 우리랑 같이 춘천에 가지 않을래요?”<br><br>“누나! 지금 뭐하는—”<br><br>“자기야, 잠깐만.”<br><br>나의 말을 자른 건 은경이었다. <br><br>은경는 누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br><br>“좋아요. 다음주 수요일. 꼭 시간 내 볼게요.”<br><br><br><br>누나가 원룸을 떠나자 은경과 나는 바로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br><br>국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은경은 두 그릇 째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곰탕에 밥을 말며 말했다.<br><br>“음… 맛있어, 맛있어, 정말 맛있어.”<br><br>한가지 확실한 건 누나가 가져온 곰탕이 이 정도로 과하게 칭찬할 만한 맛은 아니라는 거다. <br><br>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은경은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br><br>“곰탕이나 설렁탕은 사실 깍두기 맛이 절반이거든. 김장김치랑 먹는데 이 정도면 정말 맛있는 거야.”<br><br>은경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br><br>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고, 은경은 말을 이었다.<br><br>“다음주에 춘천에 가면, 자기 누님한테 레시피를 좀 받아 둬야겠어.”<br><br>결국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br><br>사골 사다가 푹 끓이는 게 전부인 곰탕에 레시피라는 게 있을 리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br><br>나의 웃음으로 은경의 살짝 미간을 찡그렸고,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화제를 돌렸다.<br><br>“우리 누나가 한 말 있잖아요? 춘천 같이 가자는 거, 그거 꼭 가야하는 거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br><br>“나 같이 가도 괜찮아.”<br><br>은경은 수저 위의 음식을 후후 불어 입에 넣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br><br>“혹시 우리 누나가 가자고 해서 억지로 가려는 건… 아니죠?”<br><br>은경은 입을 다문 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 보았다. 그리고 마치 왜 그런 생각을 한 거냐고 묻는 듯 오른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br><br>“그게… 아무리 그래도 초면인데… 우리 누나가 무리한 부탁을 한 거잖아요.”<br><br>입 안의 내용물을 삼킨 은경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br><br>“나는 무리한 부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혹시…… 자기가 싫은 거 아니야? 내가 같이 가는 게.”<br><br>“에이—! 그럴 리가요.”<br><br>나의 대답에 은경은 두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br><br>“나는 오히려 자기 누님한테 좀 고마운 걸? 솔직한 말로 내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거 아니야?”<br><br>“음… 듣고 보니 그렇네요.”<br><br>“그런데 수요일 언제 출발해?”<br><br>“아마 매형 퇴근하면 바로 출발할 거예요.”<br><br>“그럼 춘천에서 자고 다음날 돌아오는 거야?”<br><br>은경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br><br>“옛날에는 그렇게 했는데, 고속도로 뚫린 다음부터는 추모공원에 갔다가 바로 인천으로 돌아와요.”<br><br>“그렇구나. 그럼 저녁은?”<br><br>“인천 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먹죠.”<br><br>은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br><br>잠시 후 식사를 마친 후 은경은 샤워를 한다며 화장실로 들어갔고, 나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br><br>그런데 설거지를 채 마치기도 전에 은경은 화장실에서 나왔고, 곧장 침대 위에 이불을 펼쳐 그 속으로 들어갔다.<br><br>“나 졸려. 먼저 잘게.”<br><br>은경은 지난 사흘 동안 단 1 분도 잠을 못 잤다고 했다. <br><br>나는 고개를 돌려 침대에 누운 은경을 확인했다. <br><br>머리가 젖지 않은 걸로 미루어 세안만 마치고 나온 모양이다. <br><br>나는 급히 키친 타월을 뜯어 젖은 손을 닦았고, 싱크대 앞 커다란 창문을 커튼으로 덮었다. <br><br>그리고 침대 방향과 싱크대 방향 전등 두 개의 전원을 내리자 원룸은 이내 어두워졌다.<br><br>“설거지 하는 거 아니었어?”<br><br>“대충 다 했어요. 나머지는 내일 해도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고 자요.”<br><br>은경은 졸린 표정으로 미소를 보였고, 이불 한쪽을 걷으며 말했다.<br><br>“그럼 자기도 들어와. 같이 자자.”<br><br>이제 오후 8시다. <br><br>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아직 샤워도 못했다. <br><br>하지만 사흘만에 처음으로 졸음이 찾아온 은경에게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br><br>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br><br>“조금만 기다려요. 양치하고 발만 닦고 갈게요.”<br><br>그렇게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고 약 5분이 지나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은경은 이미 잠에 들어 있었다.<br><br><br><br>다음날 오전.<br><br>출근을 위해 내가 집을 나선 것은 오전 7시 25분이었고, 은경은 그때도 자고 있었다. <br><br>그리고 은경에게 연락이 온 것은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였다.<br><br><br><br>(다음편에 이어집니다.)<br><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