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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사김씨Ω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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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story_295440
    작성자 : 마법사김씨Ω
    추천 : 3
    조회수 : 751
    IP : 118.42.***.227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2/05/30 20:30:24
    http://todayhumor.com/?humorstory_295440 모바일
    내 생에 최악의 손님[펌]




    예전에 잠깐 pc방 야간 알바를 했었을 때 참 황당한 손님을 하나 겪은 적이 있다.


    마침 내가 근무교대를 하러 온 타이밍에 

    이미 10시간 가까이 컴퓨터를 사용한 상태였던 한 여자 손님이 중간 계산을 한다며 카운터로 왔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돈을 안 가져와서 그런데 저기 은행가서 좀 찾아올게요."

    라고 말했다.


    물론 이러한 경우가 알바된 입장으로서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기 때문에 대게는

    핸드폰 같은 귀중품을 잠시 맡아두는걸로 승낙을 한다.


    그런데 단골도 아니고 생면부지인 이 손님은

    무슨 고집인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자신의 가방 안에 있던 또 하나의 핸드폰을 내밀며

    업무용으로 쓰는 폰이라며 그걸 맡기겠다고 하는데

    그 업무용이라는 핸드폰이 참~ 으로 오래된 기종인지라, 

    알바생 입장으로서는 영 찜찜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근무교대 타이밍이어서 마침 전근무자인 형과 저 둘이서

    좋게좋게 이러이러하니 개인용으로 쓰시는 그쪽 폰을 잠시 맡아두겠다고,

    바로 옆에 현금인출기도 있으니까. 라고 설득해보았으나

    개인용 폰으로 전화 걸려올 것이 있다며 절대로 안 된다고,

    게다가 한술 더 떠, 자신이 현재 카드를 분실중이라 현금인출기로는 출금할 수가 없고,

    저기 위에 있는 OO은행에서만 뽑을 수 있다고 하는 게 아니가?

    그런데 그 OO은행이라는 곳은 빨리 걸어도 15분가량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시각은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대화는 평행을 달릴 뿐이었고, 

    그녀는 역으로 손님에게 이게 뭐냐는 식으로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근무교대 시간은 이미 25분이나 지났고,

    전근무자 형은 다음날 7시에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대화는 여전히 평행을 달릴 뿐이어서

    결국 전근무자 형은 그냥 나보고 같이 다녀오라고 말했다.

    생각치도 못한 황당한 일이었지만 형의 말에 나는 순응하였다.



    야밤에 아가씨와 산책을 하는 것 자체는 사실 나쁠 것 없었다.

    초겨울의 밤은 싸늘했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전근무자 형이 다음날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를 위해 수당도 안 나오는 초과근무를 해준다는 것 또한

    미안하기 짝이 없어서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손님이

    몸무게는 곧 세자릿수를 천원돌파를 할 것만 같았고, 

    얼굴은 빈말로도 예쁘다고 칭찬할 수가 없었으며,

    목소리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흉내라도 내는 듯한 기묘한,

    그런 대다가 영 듣기 좋지 않은 개성적인 말투까지 구사하는 것 또한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녀가 그냥 조용히 입다물고 은행을 가기만 했다면 말이다.




    PC방 알바는 서비스업이라는 생각에 처음 나는 점잖게 참고 듣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 어처구니가 없는 불평불만들에 결국 듣다듣다 나는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지금 상식적이지 못한 쪽이 어느 쪽이냐고 말이다.


    이전같았다면 그럼에도 참아냈을거다.

    하지만 그 날의 나는 그렇게 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왜냐면 그 날이 PC방 알바 하는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리하여 은행을 향해가는 우리들의 분위기는 한층 더 나빠졌다.

    한 손바닥이 혼자 허공에 삽질하고 있던 것이 두 짝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맞부딪쳐 짝- 소리가 나게 된 것이다.



    밤 12시. 우리 두 사람은 드디어 OO은행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은행문은 잠겨있었다.

    현금인출기에 접근할 수가 없게 바깥 문까지 말이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처음으로 와서 10시간 넘게 사용하고서 돈이 없으니까 은행가서 뽑아온다고 말하기에

    핸드폰 맡기고 가라니까 절대로 싫다고 우기고 우겨서 결국 지켜야하는 PC방은 안 지키고

    손님 따라 겨울밤 15분을 걸어 은행에 왔더니 은행은 닫혀있고 그럼 돈은 어떻게 되는 거임?

    라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PC방에는 전근무자 형이 

    다음날 아침에 출근해야함에도 불구하고(그리고나서 또 PC방 알바하는)

    무보수로 1시간가량 더 서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닌 관계로 당연히 화가 났다.

    차라리 먹튀를 당하는 게 훨씬 나으리라.

    사장님에게 죄송하다며 보고만 하면 끝이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물쭈물 나몰라 흥, 뿌우- 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던 그 손님은 

    그럼 대체 어쩌자는 거임! 라는 내 말에

    자신이 사는 아파트가 바로 근처라며 대안책을 말하였다.


    그래, 그 집까지 찾아가서 받아오면 되겠군.

    황당의 연속이다만 어쩌겠는가. 받아와야지.


    이 때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이것이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임을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PC방 알바가 야밤에 손님의 불평불만을 들으며 

    왕복 40분을 걸어 손님의 집까지 찾아가 

    손님이 깜박 잊고 챙겨오지 않은 돈을 받아와야하는 일을 겪을수도 있는

    알바인 줄 알았다면 결코하지 않았을 거다.


    아아, 정정하겠다. 깜빡 잊고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돈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 알바에게 말하고 돈 찾아올 생각으로 무일푼으로 그냥 PC방에 온 거였었지요. 

    그 손님은.



    건물의 위치가


    『 은행 - 손님의 집 - PC방 』


    으로, 

    은행을 들려 돈을 찾은 후에 PC방으로 가는 쪽이

    어디로보나 효율적이고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무일푼으로 단골도 아닌 PC방에 와서는

    음료수며 햄버거 등도 시켜먹고 10시간 넘게 게임하다가 나 돈 없음. 찾아오겠음.

    근데 님들이 맡기고 가라는 핸드폰은 맡길 수 없음. 

    이게 뭐 문제 있음? 이라고 말하는 그녀를 나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 손님집 - PC방 - 은행 』


    이었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여하튼, 나는 그 손님과 함께 그녀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갔다.


    얼씨구- 이게 뭐야.


    그녀는 이 동네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파트 건물도 딸랑 한 개짜리인 호화 아파트.

    근데 돈 많은 집 자녀분께서 12400원을 낼 길이 없어서 알바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군요.


    아주 굿이다 굿-



    그녀는 나보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홀로 들어갔다.

    알바된 입장으로서 여기서는 현관문 앞까지 따라가는 것이 맞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성이니까,

    잘 모르는 남성을 자기집 현관 앞까지 데려가는 것은 영 꺼름찍 할테니까

    라는 생각에 내 나름대로 믿고 배려하여

    중간 전화통화 중 꼭 현관 앞까지 따라가라는 형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입구 앞에서 기다렸다.


    당시 집과 알바하는 PC방이 가까웠는지라 나는 그다지 두껍게 차려입고 나오지 않았었고,

    그렇게까지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야밤에 기약도 없이 마냥 기다리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20분이 다 되가도록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초조해졌다.

    설마설마설마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 설마 나를 따돌리기 위해 아파트 주민인 것 처럼 가장하고 들어가

    다른 쪽 출구로 나와 도망쳤다든가 하는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하니 12400원 때문에 다 큰 성인여성이 그럴리는 없으리라.


    근데 그게 아니라면 대체 아직까지 뭘하고 있단 말인가?

    20분이면 집안을 다 뒤지고 자기방 청소 정도는 끝낼 수 있는 시간이다.


    결국 난 아파트 주민이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안으로 들어갈 때

    태연하게 같이 들어가 그녀가 사는 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몇 층에 사는지 내가 어떻게 안 건지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위에서는 너무 길어져서 생략했지만,

    그녀가 두고간 물건 중에는 어처구니 없게도 그녀의 주민등록 등본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력서도 있었던 걸 보면 아무래도 그녀는 어디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떠올리고 전근무자 형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던 것이다. 



    여하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보니 

    그녀는 자신이 사는 OO층의 비상구 계단 중간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아 지금 내려가려는 모양이구나. 근데 왜 계단으로 내려가는 거람? 장난?'

    이라고 생각했다만

    그래도 일단은 여자 손님이인지라, 내 나름대로 배려하여

    안 올라와본 척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대로 1층까지 내려갔다.


    근데 1층 홀에서 10분 정도를 기다렸음에도 그녀는 내려오지 않는 게 아닌가?


    이 때는 대략 정신이 머엉해졌었다.

    완전 후회 막심이었다. 

    여성에 대한 배려고 뭐고 그냥 봤을 때 말을 걸었어야 했다.

    설마 도망간 건 아니겠지? 아, 안돼-!!




    결국 난 엘리베이터를 다시 타고 올라갔다.

    과연 그걸 다행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만, 

    그녀는 그 비상계단 중간에, 

    그 어두컴컴한 곳에 아까 봤던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나 한테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들어간 지 30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이 야밤에 저 추운데서 30분이나, 아니 내가 찾으러 올라오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마냥 기다리게 했겠지.




    스스로도 놀란 일이다만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오늘 처음 본 연상의 여자에게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런 거친 남자였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벌써 30분이나 지났다고,

    안내려오고 여기서 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거냐고 내가 따져묻자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아직 집에 못 들어갔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네-? 

    예-?

    잘못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자기 집인데 현관문 비밀번호를 몰라서 못 들어가고 있다고요..?


    우....우와아아.....................................................




    그게 말이 되냐고, 

    만약 잊어버렸다고 쳐도 부모님에게 전화걸어서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나에게 그녀는 부모님에게는 물어볼 수 없다고 말하였다.


    자식이 바뀐 자기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부모님에게 물어보지 못하는 피치못할 사정이

    과연 무엇인지 나로서는 짐작이 가질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 그지깽깽이 같은 이유나마 듣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물어보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적인 일을 왜 당신에게 말해야 하냐는 그녀의 짜증이었다.




    그 순간, 대한민국에 하나의 성인군자가 탄생하였다. 

    상식을 벗어난 전개와, 상식을 벗어난 정반하장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은 남자가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성인으로 등극했던 것이다.


    나였다.



    성인으로 승격한 나의 영혼이 낡은 육체를 벗어나 

    극락의 세계로 떠나려고 하는 그 순간,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 진동에 정신을 되찾은 나는 전화를 받았다.

    전근무자 형이었습니다.


    그렇다. 나에게는 아직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거듭 말하였다.

    그러자 그녀가 되먹지도 않는 똑같은 이유를 말하려고 하기에

    그녀의 말을 끊고 상냥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알을 다 써서 전화 못건다고.



    아 시바 베리 굿-




    나는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물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그러나 그녀는 좀처럼 받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화를 냈다. 마지못해 그녀가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문자를 보내려는 손놀림을 보인 순간 또 한번 화냈다.


    "문자하지 말고 전화하세요!" 


    그 말에 문자 치려던 것을 멈추고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그녀가 나에게 조용히 있을 것과, 남겨진 번호로 절대 전화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오늘로 마지막이기까지한 내가 뭐가 아쉬워서 20대 중반에서 후반은 되었을

    여자 손님에게서 12400원을 받아내기 위해 그녀의 부모님에게까지 전화를 걸겠는가?

    라고 말해봐야 현실은 돈 받으러 야밤에 2시간이 넘도록 삽질을 하고 있는 요금셔틀이니 

    그다지 설득력이 없군.



    그녀가 조심스레 자신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별로 의도하진 않았지만 다 들리는지 알게 된 건데.

    어째선지 나는 그녀의 친구가,

    그것도 이전 그녀에게 빌려줬던 만원을 새벽 1시에 지금 당장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넓은 아량의 친구가 되어 있었다.



    "네에. 친구 분들과 모임이 있어서 늦을 거라고요? 네, 알겠어요."



    통화가 끝났다. 




    근데 현관문 비밀번호는 물어보지 않았네요?





    만약 이게 현실이 아니라 타입문 게임이었다면 이 시점에서 분명 나는 흑화 했을거다.

    분노게이지가 2회분이 되어서 게이지 2단을 사용하는 초필살기도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되었을 거다.


    그러나 그녀가 부모님에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묻는 일도,

    비밀번호를 묻지 못하는 이유를 말하는 일도 끝내 없었다.

    내 사적인 일을 왜 당신에게 말해줘야 하냐는 대단하신 이유 하나로 생때만 부렸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말이다.


    분명 아침 드라마 보다도 더 깊은 기구한 사정이 있는 것일테지.

    듣는다면 그거 나름 화가 치밀테니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뭐 어쩌겠는가― 손님이 왕인 것을.

    돈을 내지 못하는 시점에서 이미 손님이 아닌 듯한 기분도 들지만 

    이미 막장이 되어버린 것, 갈 때까지 가보기로 했다.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거냐는 내 닦달에 그녀는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사정을 말해서 비밀번호를 알아내겠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경비원이 아파트 정문 비번도 아니고,

    개인집 현관문 비번 같은 걸 무슨 수로 알겠냐만은,

    당시의 나는 냉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을

    여러분이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해서, 새벽 1시 20분에 아파트 경비원을 찾아갔다.

    제가 여기 주민인데 현관문 비밀번호를 몰라서 그런데 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당신이 아파트 경비원이라면

    새벽 1시 20분에 대뜸 찾아와서는 

    여기 주민인데 자기 집 현관문 비번을 몰라 집에 못 들어가고 있으니 비번 좀 가르쳐달라.

    하다못해 몇 호의 누구인지 조차 말하지 않으면서 이런 요구를 해오는 사람이 있다면

    '네 OOOO입니다'라고 가르쳐주텐가?

    주민의 현관문 비밀번호 같은 걸 알리도 없겠지만 안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나라면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을 거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직무태만이란 말인가? 

    혹시 도둑이라면 그게 대체 무슨 꼴인가?


    헌데 당시의 저는 어지간히도 냉정을 잃고 있었는지

    그 정신나간 행위에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그런 무의미한 짓거리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이 새벽에 뭔 소리를 하는 거냐고

    당연하게도 짜증을 내시면서 지하경비실에 찾아가보라고. 말했다.

    거듭 말하지만 당시의 나는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라

    그것에 일말의 가능성을 또 걸어버렸다.


    무책임하게도 나몰라 배째- 하고 있는 그녀를 다시 닦달해 

    아파트 지하 경비실과 인터폰이 연결되어 있는 정문 앞으로 돌아왔다.

    근데 힘들게 데려온 그녀는 또 우물쭈물 거릴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한다는 소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란다.



    으아아아악-!!!!!


    아파트 정문 대리석 기둥에 무슨 죄가 있겠냐만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대리석 기둥을 죽일 듯이 발로 차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어 흥분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힌 나는 연상의 그녀에게 

    '몇 호에 사는 누구누구인데요.
    제가 저희집 현관문 비번을 잊어버렸는데
    지금 가족들이 부재중이고 연락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좀 가르쳐 주실수 없겠습니까?'

    정도로 말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못해 지하 경비실에 연결하여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하는 그녀.

    근데 우물쭈물거릴 뿐 보는 내가 답답할 정도로 

    제대로 사정 설명도 않고 그냥 비밀번호를 좀 알려달라고 이러고 있다.

    그냥 시간만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근데 그 사이에 아파트 주민인 아가씨 한 사람이 왔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면 주민만 아는 비밀번호를 눌러야하는 모양인데

    이 눈치도 없고 염치도 없는 여자가 경비실과 대화중이라 

    이 겨울밤에 자기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보통이라면 일단은 대화하던 걸 끊고 그녀를 안으로 들여보내겠지만

    둔감한 그녀는 그러한 세간의 매너를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해서 내가 그 여자주민의 이목도 있어서 조용히 눈치를 줘봤지만

    아무래도 이 둔감한 여자에겐 직구 밖에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행여 그녀를 좋아하는 남성이 나타난다면 돌려 말하지 말고 꼭 직구를 던지길 바란다.

    남자는 많고, 취향은 가지각색이니까 그런 사람도 있든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람.


    결국 난 크게 직구를 날렸다.

    그제야 이럴 땐 비켜주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의미도 없는 대화를 중단하고

    주민에게 양보해주었다.

    말은 안했지만 한 3분을 기다려야 했으니 주민 아가씨는 속으론 퍽 짜증이 났을거다.


    근데 나는 그 수십배는 더 짜증이 났다.

    왜냐면 벌써 3시간 째 이 따위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를 하고 있었으니까.

    5시간 후면 회사에 출근하고 와서 바로 다시 PC방 알바를 또 해야 하는 전근무자 형이

    이 손님 때문에 3시간이 넘어가도록 보수도 없이 근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지금 바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형이 잠자는 시간은 3시간이 될까말까겠군.


    결국 지하 경비실을 찾아가기까지 했지만

    물론,

    쓸데없는 짓거리일 뿐이었다.

    업자도 아니고, 경비원이 그딴 걸 대체 무슨 재주로, 무슨 필요로 알겠는가?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나는 그 손님과 함께 PC방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는 길, 내 옆에서 나란히 걷던 그녀가 또 다시 투덜거렸다.


    오... 세상에나...


    나는 악랄하고 쪼잔 한 PC방 알바생. 

    그리고 자신은 조금 실수했을 뿐인 비극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그딴 게 뭐 중요하겠냐만은,

    걸려올 전화가 있어서 절대로 못 맡긴다고 했던 그녀의 개인 핸드폰으로는

    아직까지 한통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고 있었다.

    벌써 새벽 2시 반이 다 되었는데 말이다.


    도대체 그녀가 그토록 고집을 부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를 맞추느니 차라리 베아트리체의 비문을 푸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쪽이라면 적어도 풀고 나서 화는 나지는 않을 테니까.


    여하튼, 그녀와 함께 차도 다 끊겨가는 밤길을 걸고 있는데

    앞쪽에 두 쌍의 중년의 부부가 정답게 대화를 하며 걸어가는 게 보였다.

    물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내 신경 껐다.


    헌데 그녀가 그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웃는 게 아닌가?

    뭐야 이거. 싶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는데 대체 뭐가 웃겼던 건지 원...

    조금 의아했지만 결국 신경 쓰지 않았다. 지칠대로 지쳐있었기에.



    그리하여 아무런 해결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돌아온 두 사람.


    무일푼의 그녀를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전근무자 형과 망할여자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친 나는 끼어들 힘도 없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얌전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려고 했는데...



    알바의 신의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가 내뱉은 말에 나는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전에 본 중년 부부들 중 한 쌍이 그녀의 부모였다는 것이다.






    지, 진정하자...

    침착하게 떠올려 보자...

    이럴 때에는 어떡하면 좋을까...


    헤이헤이~ 헤이~ 헤이헤이... 헤이헤이~ ....


    침착하자... 


    '헤이'를 중얼거리며 진정하는 거다..!


    '헤이'는 나만이 중얼거리는 고독한 말...


    내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준다....









    ...............진정할 수 있겠냐아아아아!!!!! 




    뭐임마아아아아아아아시바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시각은 어느덧 새벽 3시.

    나는 그녀와 함께 다시 그녀가 사는 아파트 앞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았다. 하얗게 불태워서 재만 남았다.



    우리들은... 틀렸던 것일까...?

    그냥 그녀의 똥고집에 순응하고 먹튀를 당했어야 했던 것일까...?

    그게 옳았던 것일까...?


    그래, 그랬다면 적어도 세 사람이 상처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형은 틀렸던 것이다.

    나는 그 때 나보고 함께 다녀오라고, PC방은 자기가 보고 있겠다고 말한

    형의 말을 부정해야 했었다. 거부해야 했었다.



    그랬더라면 적어도 이런 모두가 불행할 뿐인 최악의 결말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금방 돈 받아서 나오겠다며 그녀는 또 나에게 아파트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춥다고 씨발아... 이 양심없는 개재끼야


    ...라고 욕이 절로 나왔지만, 그냥 추우니까 1층 홀에서 기다리겠다고 점잖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뭘 믿겠는가?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의 업무용 구형 핸드폰을 잠시 맡아두기로 했다.

    그리고 이젠 정말 끝났구나. 하며 기다렸다.




    근데 또 안나온다...


    미안합니다. 제발 이제 그만 용서해주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는 다시 그녀가 사는 층으로 올라갔다.

    정말 최후의 최후까지 최악인 여자다.

    그러나 집안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설사 없더라도 그녀의 부모는 있을 터.


    12400원을 받기 위해 요금셔틀이 새벽 3시도 넘은 이 야밤에 매너없게 초인종을 누른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



    새벽 3시가 넘은 야심한 밤에 울려퍼지는 초인종 소리에

    아 뭐야 지금이 몇 신데 뭐야... 뭐냐고... 하느리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귀를 기울여 보니 안에서 무언가 말싸움을 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원인은 뻔했다.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피방 알바가 새벽 3시에 자택 현관까지 찾아와서 벨을 눌러주는 경우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피자요- 도 아니고 피시방이요...라는 말을 새벽 3시도 넘어서 하게 될 줄 알았다면

    PC방 알바 따위 절대 하지 않았을 거다.

    한 번도 안해본거니까 조금만 해볼까 하는 안애한 생각으로 했던 것이 실수였디.

    PC방 알바 따윈 미친 짓이다. 


    두 번 째 초인종에 그녀의 어머니가 드디어 대답해주었다.

    '지금 내보낼게요―!'라고 말이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선명하게 말싸움이 세어 나온다.

    좋은 아파트니까, 당연히 방음도 잘 될 터인데도, 다 들렸다.

    막장이다. 개막장.



    그녀가 자기 집 비번도 몰랐던 이유. 거짓말을 한 이유.

    모든 것을 자연스레 이해했다.

    아니, 사실 진작 눈치 챘지만 애써 의식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이제는 마주볼 수밖에 없었던 것 뿐.




    그 때 생각했다.


    아- 이건 글렀구나~..




    새벽 4시. 나는 홀로 PC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울 수 없는 기억과 피로에 절어서.


    전근무자 형 또한 무리한 5시간 무보수 추가노동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괜찮겠지 뭐.

    집에 가서 30분 정도 눈 좀 붙였다가 준비하고 회사 갔다 와서 다시 PC방 알바하고 

    돌아가서 자면 되니까.




    결국 그녀에게서 12400원을 받아내는 일은 없었다.



    3번째로 초인종을 눌렀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저흰 모르니까, 경찰에 신고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라고 말씀하셨고, 그녀가 나오는 일 또한 없었다.


    12400원 때문에 경찰에 신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설사 신고해도 받아들여줄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녀가 처음에 맡기기를 희망했던

    그 구형 업무용 핸드폰만을 손에 쥔채 힘없이 아파트를 뒤로 했다.



    차라리 사장님에게 12400원을 주고 이 핸드폰을 내가 가질까?

    그리고 나서 아주 개발살을 내는거지. 부숴버리겠어.



    아니, 의미없는 짓이다. 지쳤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나는 그 업무용 핸드폰에 내 핸드폰 번호를 입력한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지금 거신 전화기는.....』








    아무래도 나는 서비스업에는 맞지 않는 모양이다.





    출처: http://niari.gav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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