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에 앞서, 두가지는 확실하게 해두고 가겠습니다.<br><br>첫번째. 우지파동 때문에 삼양이 법정관리까지 간 것은 사실입니다.<br><br>두번째. 전 농심 제품을 벌써 10년 넘게 안먹고 있습니다.<br><br>삼양의 몰락이 우지파동과 관련이 없다거나, 농심을 두둔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br><br><br>가끔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읽다보면 삼양이 몰락한 것은 우지파동 때문이며 농심은 어부지리로 1위 자리를 차지했다는 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br><br>흠. 10 %의 진실 때문에 100 %를 모두 믿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br><br>여기서 사실은 우지파동 때문에 삼양이 큰 타격을 입었다 정도입니다. 그외는 사실이 아닙니다.<br><br>결론부터 적고 간다면 삼양이 1위를 내준 것은 시장의 변화를 전혀 체크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br><br>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삼양라면입니다. 1960년에 라면을 들여온 후로 80년대초까지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업계 1위죠.<br><br>농심은 초창기엔 롯데공업이라는 사명으로 라면사업을 시작합니다. 그후 1978년에 농심으로 상호를 변경하죠.<br><br>삼양의 점유율은 격차가 클 때는 80 % 이상으로 시장을 석권하기도 하였습니다. 업계에서 80 %면 독점이나 마찬가지죠.<br><br>이는 당시 농심의 사명이 '롯데공업'이라는, 음식과는 맞지 않는 이름이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문제점은 맛에서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br><br>당시 라면은 스프에 들어가는 재료를 거의 탈때까지 고온으로 건조시킨 후 강하게 분쇄하는 방법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br><br>이것은 양사가 동일했는데 아무리 맛을 달리 주고 싶어도 공정과정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았고 또 살짝 가미된 탄맛 때문에 맛에서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게 됩니다.<br><br>때문에 먼저 시장을 선점한 삼양을 농심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죠.<br><br>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농심에게도 기회가 찾아옵니다. 통일벼가 수확되기 시작한 겁니다.<br><br>70년대까지 라면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딱히 먹을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br><br>쌀 수확량은 자급자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다른 곡식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br><br>때문에 저렴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라면은 밥을 대신하는 주식으로 자리잡았던 거죠.<br><br>그런데 통일벼로 인해 쌀을 자급자족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수확하게 되자 라면 시장도 점차 흔들리기 시작합니다.<br><br>쌀의 가격이 떨어진 마당에 굳이 밥 대신 라면을 먹을 필요가 없었던 거죠. 실제로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라면 시장은 점점 위축되기 시작합니다.<br><br>그런데 여기서 삼양과 농심은 다른 노선을 걷습니다.<br><br>업계 1위인 삼양은 굳이 모험을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맛을 지키면서 딱히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합니다.<br><br>웃긴 것이 이런 삼양의 자세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크게 변한게 없어서,<br><br>내놓는 광고가 '라면은 원래 이 맛!'이라던가, 신제품처럼 내놓은 '삼양라면 클래식' 등.. 한사코 예전의 영광만을 바라 보는 모습이었습니다.<br><br>하지만 농심은 완전히 다른 자세를 취합니다. 주식에서 라면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예상한 거죠.<br><br>이후 농심은 라면 맛을 바꾸려고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우선 고온건조로 인해 천편일률적인 맛을 내는 스프 공법부터 바꾸죠.<br><br>그로인해 다양한 맛을 내는 것이 가능해지자 본격적으로 '분식' 시장에 뛰어듭니다. 예. 라면을 주식이 아닌 분식으로 바꿔버린 겁니다.<br><br>당시 분식으로 인기가 많던 것은 '우동'이었습니다. 농심은 여기에 착안하여 1982년, '너구리'를 내놓습니다.<br><br>어차피 주식으로 라면의 활로를 개척하긴 힘들기 때문에 분식으로 팔 수 있는 우동류를 내놓으면서 전혀 새로운 시장을 뚫은 거죠.<br><br>시장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점심과 저녁 사이, 그리고 야식으로 너구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죠.<br><br>농심은 이에 그치지 않고 1983년, 약간 적은 양을 담아 분식에 좀 더 어울리는 '안성탕면'을 출시합니다.<br><br>그리고 1984년, 짜파게티가 출시되면서 전세는 완벽하게 뒤집어집니다. 1986년에 신라면을 내놓으면서 굳히기에 들어가죠.<br><br>신라면이 나온 시점에서는 더이상 주식과 분식을 가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라면계에서는 농심이 삼양을 압도했으며 점유율에서도 두배이상 차이가 나버립니다.<br><br>삼양도 여러 라면을 새로 출시해서 반격을 바라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은 짜짜로니 정도입니다.<br><br>그후에는 다들 아시다시피 우지파동이 터지면서 겉잡을 수 없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죠.<br><br>정리하자면 삼양이 라면업계에서 1위 자리를 내놓은 것은 단순히 우지파동 때문이 아닙니다.<br><br>시장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수성의 입장만을 취했기 때문에 점차 자신의 울타리를 스스로 좁혀버린 결과입니다.<br><br>실제로 '나가사키 짬뽕'이나 '맛있는 라면' 같은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 삼양의 주력은 40년 넘게 그냥 '삼양라면'이었습니다.<br><br>그에 반해 농심은 업계 1위인 아직도 매년 새로운 제품을 내놓습니다. 두 회사의 차이는 얼마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느냐.. 이거였던 거죠.<br><br>물론 우지파동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점유율에서는 두배 이상 차이가 났지만 충분히 해볼만한 상황이었죠.<br><br>그런데 우지파동이 터지면서 이런 판이 완전 나가리 되버린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br><br>하지만 우지파동 때문에 삼양이 1위에서 밀려났다...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이미 삼양은 한참 뒤처진 2위에서 우지파동을 맞이했습니다.<br><br><br>한창 농심의 병크 +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삼양이 반사이익을 받기도 했습니다만,<br><br>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사실과 전혀 다른 낭설이 사실처럼 퍼지고 있는 것은 바로 잡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br><br>혹시나 주변의 누군가가 우지파동과 삼양의 관계를 상당히 극단적으로 알고 있다면 이정도 얘기는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br><br>저녁이네요. 식사 맛있게 하시길.<br><br><br>덧붙임.<br><br>우지파동에서 삼양이 쓴 '공업용 소 기름'은 철저하게 미국식 관점입니다. 미국은 소 기름을 식용으로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공업용'입니다.<br><br>그런데 이걸 공장이나 돌릴 때 쓴다고 생각한 모 기자가, 그것도 술자리에서 슬쩍 넘겨들은 것을 터트려버린게 우지파동입니다.<br><br>너무 삼양에만 불리하게 쓴 것 같아서, 덧붙여 둡니다.<br><br>/이상/<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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