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 </div> <div> </div> <div>"대단하군. 대단해."</div> <div> </div> <div> </div> <div>바다거북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듯 미소지었다.</div> <div>불과 두 시간 전 그들은 살면서 마주하기 힘든 일을 겪었다. 어떤이는 오래 이동할 수 없는 바다거북을 위해 절벽을 통해</div> <div>간절곶으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으레 모든 바다거북이 그렇듯, 이 바다거북은 절벽을 오를만한 몸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div> <div>어떤이는 고민했다. 자신이 바다거북과 함께 여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니, 바다거북과 내가 함께 여행할 만 가치가</div> <div>충분히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하지만 곧, 지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div> <div> </div> <div>바다거북은 그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곁에서 말없이 울음소리를 들어 준 유일한 자였다.</div> <div>그것만으로도 바다거북이 그와 함께 동행할 이유는 충분했다. 어떤이는 바다거북을 끈으로 엮어 자신의 등에 메었다.</div> <div>제법 큰 바다거북의 무게에 어떤이는 힘들거라고 생각했다.</div> <div> </div> <div> </div> <div>"괜찮아요. 내가 할 수 있습니다."</div> <div> </div> <div> </div> <div>어떤이는 그 말을 시작으로 바다거북을 등에 맨 채 절벽을 힘겹게 오르기 시작했다.</div> <div>등에 메어져 있어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바다거북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div> <div> </div> <div> </div> <div>"힘들지 않은가? 다시 내려갈 수도 있다네. 나 때문에 자네가 고생이군."</div> <div> </div> <div> </div> <div>"고생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당신은... 내가 힘들 때 곁에서 울어준 자입니다. 그것만으로도...</div> <div>당신은... 충분히... 나와 같이 갈... 이유가... 있습...니다!"</div> <div> </div> <div> </div> <div>"짐을 모두 지고 갈 필요는 없네. 그저 슬퍼보였네. 그게 다일세."</div> <div> </div> <div> </div> <div>분명히 멀리서 볼 때는 만만한 절벽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가까이서 절벽 높이를 보니 그 생각은 곧 사라졌다.</div> <div>어떤이는 절벽을 오르면서 후회를 하고, 당장이라도 생채기 투성인 자신의 몸을 땅으로 떨어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죽는다면?</div> <div>바다건너를 바라보다가, 바다를 동경하며 해변가에서 쓸쓸히 죽는다면, 요행히 살아 돌아가더라도 가슴속 후회는? 내가 아는 사람들의</div> <div>실망은? 놔 버릴까? 아니야. 이는 나의 슬픔을 겪고 진지하게 곁에 있어준 자야. 그럴 수는 없어.</div> <div> </div> <div>힘이 솟았다. 어떤이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 내어 두시간을 넘게 절벽에서 사투한 끝에 마침내 간절곶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에</div> <div>닿을 수 있었다.</div> <div> </div> <div>'내가 해냈어!'</div> <div> </div> <div>어떤이는 바다거북이 등에 메어진 것을 까맣게 잊고 앞으로 풀썩 쓰러져 웃으며 성취감에 목이 메이는 듯 했다.</div> <div>하지만 너무 무거웠다. 그제서야 어떤이는 바다거북을 묶은 끈을 풀고 자신도 왼쪽으로 빙글 돌아 대자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div> <div>측은함과 미안한 표정으로 어떤이를 바라보던 바다거북이 입을 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고맙네. 수십년동안 올라와본 적 없는 곳에를 다 올라왔군. 자네덕분에 말이야."</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바다거북의 눈이 커졌다. 흙으로 잘 포장된 도로와 인간들이 먹고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논밭, 산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div> <div>지붕이 있는 집들. 어디선가 들리는 말과 소의 울음소리. 그것이 말과 소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신기한 소리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구름은 가깝고, 새소리는 그보다 더 가깝다. 바닷바람이 고동을 통해 전해져 웅웅- 거리는 무서운 소리를 냈던 바다보다는 이 편이</div> <div>훨씬 좋아보였다. 문득 바다거북은, 십몇년 전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내야 했던 알들에 대한 회상에 잠겼다.</div> <div>백 서른 네번째 자식은 바다로 향하던 도중 물살에 휩쓸렸다. 어디에 있어도 잘 살겠거니, 했지만 마지막에 살려달라며 소리치던</div> <div>그 백 서른 네번쨰 자식에 대한 생각은 십몇년동안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거북이는, 사람과 달라서 잘 살고 있다고 찾아오는 법도</div> <div>없었다. 그저 갈매기나 상어에게 먹히지만 않았으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이상했다. 바다거북은 문득 백 서른 네번째 자식과 이 광경을 같이 보고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지나간것은, 지나간대로 잊혀져야 한다. 오랜 세월 살면서 얻은 그 지혜의 결론은 일정부분 쓸모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쓸모없는</div> <div>논리이기도 했다. 지성을 가진 생명체는 어떤 방식으로든 과거를 후회하며 산다. 자신이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언젠가 피우게 될 등껍질</div> <div>위의 담배를 상상하고, 두근거리는 동안 백 서른 네번째 자식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런지.</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래. 결국 여기에 올라왔군. 자네는 대단한 사람일세... 내가 보고싶어 했던 그 절벽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었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어떤이는 이상했다. 이 늙은 거북은 대단하지도 않은 일에 기뻐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div> <div>곧 숨을 추스린 어떤이가 물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선생님. 대단한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길을 매일 걷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매일 경험합니다. 이건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자네에게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라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자신감은 중요한 것일세.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일을 소중하게</div> <div>여기고 있다는 뜻이야. 그런 자네를 스스로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큰 기쁨일세."</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어떤이는 곧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바다거북에게 말을 건넸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하지만 이건 별 일이 아닙니다. 그저 절벽을 올라온 것일 뿐 입니다. 당연히 선생님은 절벽 위의 풍경을 본 적이 없을테니</div> <div>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매일 봐 왔던 풍경일 뿐입니다. 정오 전에 과일따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div> <div>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시겠지요."</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기억하네. 기억하고 말고."</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 친구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커다란 나무에 집을 짓는 또 다른 제 친구를 도와주었습니다.</div> <div>나무를 잘라 만든 지붕 재료를 세개나 등에 메고도 열번을 넘게 올랐습니다. 저는 나무에 오를 수 없었기 때문에...</div> <div>무서웠기 때문에 밑에서 망치질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렇게 할 자신이 없어서, 밑에서 존재감없이 망치질만</div> <div>하고 있었을 뿐입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 망치질은 무엇을 위한 것이였나?"</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별건... 아닙니다. 인간은 집을 지을 때 지붕을 얹습니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용도입니다.</div> <div>얇은 판으로 된 나무를 지붕에 고정시키려면 못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판에 못을 고정시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div> <div>그래서 밑에 있는 사람이 미리 못을 박아놓으면,  위에서 지붕작업을 하는 사람은 못박힌 판을 받아 약간의 힘만 주면 지붕이 완성되는 겁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바다거북은 더욱 놀란 표정이 되어 소년처럼 떠들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렇다면 자네는 누군가의... 그래. 지붕이라는 것은 비바람을 막아주는 용도일테지! 자네는 누군가의 비바람을 막아주기 위한</div> <div>첫번째 일을 한 것일세. 그러면 자네는 대단한 사람인 것이야. 자네가 망치질을 하지 않았다면, 나무를 오르는 사람도 위에 있던 사람도</div> <div>아무 일을 할 수 없었다네. 자네는 모든 일의 시작을 한 것일세!"</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하지만 두 사람의 노력에 비하면 나는 그저 망치질 몇번으로 끝난 것일 뿐입니다. 그 두 사람은 땀을 흘리며 나무를 오르내리고</div> <div>판이 어긋나지 않게 덧댄 노력을 했는데...!"</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어떤이는 과거가 떠올랐다. 자신이 하릴없이 망치질을 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은 나무를 오르내리며 많은 이야기를 하고 즐겁게 떠들며</div> <div>일을 했다. 자신이 별로 대단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두사람이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어떤이는 매우 슬퍼했다. 하지만 그들은</div> <div>모든 작업이 끝난 후 자신을 불러 과일로 담근 술과 함께 얼마전 노쇄하고 병들어 죽어간 닭을 고기로 만들어 그를 초대했다.</div> <div>하지만 아무일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어떤이는 결국 그 술자리에 참여하지 않았다. 며칠이나 친구들이 그의 집을 방문했지만, 아무 도움도</div> <div>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괴감만 가득했던 어떤이는 친구들에게 말 조차 꺼내지 않고 서울을 떠나 이 울산앞바다까지 왔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첫 번째 일이 없다면 모든 일의 끝도 없다네. 시작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끝이 있겠는가. 자네가 나의 호의를 고맙게 생각해 이 절벽을 올라와 준</div> <div>노력과도 같네. 나는 그 뜻밖의 행운에 대해 감사하고 있네. 만약 그 친구들도 자네가 없었다면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겠나. 자신을 사랑하게.</div> <div>나는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 증거로 자네는 무거운 나를 지고도 절벽을 오르는데 성공했지 않은가."</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대단하지 못한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어떤이는 바다거북의 말에 조금 자신감을 일으킬 수 있었다.</div> <div>그래. 나의 완전하지 못한 절벽의 오름이 이 바다거북에게 뜻밖의 행운을 안겨주었듯, 미숙한 망치질이 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문득 어떤이는 친구들이 보고싶었다. 그리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며 밤새 술을 마시지 못한 그 날이 후회되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