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 </div> <div> </div> <div>우리집은 아주 가난했다.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한 작은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그 일대에서도 아주</div> <div>가난한 집에 살았다. 50번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카센터를 지나면 작은 삼거리 골목이 나오는데, 항상 똥차가 서있는 그 골목을 가로질러</div> <div>들어가면 황량한 공터에는 누군가가 심어놓은 호박이 자라고 그 공터를 지나 좌측으로 보면 파란철쓰레기통 옆에 연탄재 그득그득 쌓여있는</div> <div>집이였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에 화장실과 그 옆에 창고가 보이고, 길고 좁게 뻗은 마당 한켠에는 어머니가 언제나 채소를 씻고 있었다.</div> <div>바퀴벌레가 자주 나오는 마룻바닥 위에는 나무로 된 선반과 그 위에 아버지가 중동 다녀오면서 사온 일제 밥솥 그리고 골드스타 냉장고가 있었다.</div> <div> </div> <div>아버지는 중동에 다녀오면서 또한 인켈 오디오와 코끼리 tv도 사왔는데, 사실 그것들은 아버지가 유년시절부터 꿈꿔온 서울 복판의 2층짜리 집에</div> <div>들어갈 예정이였던 것들이였다. 큰아버지가 아버지의 중동외화를 전부 써버리면서 남은것은 그것들밖에 없게 되었는데 나는 그것들 때문에라도</div> <div>우리집이 굉장한 부자인줄로만 알고 지냈지만 남들이 다 사는 죠다쉬 쓰리쎄븐 가방을 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에는</div> <div>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div> <div> </div> <div>나는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많이 맞으면서 자랐다. 구구단을 외우지 않아서,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아서, 아빠가 자는데 만화영화를</div> <div>봐서, 혹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서였다. 나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기를 매우 기다렸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술을 마시게 되면 나를 때리지 않았고</div> <div>치킨을 사줬다. 다음날 학교에 갈 때 먹고싶은 떡볶이 때문에 백원만 달라고 해도 아버지는 웃으면서 돈을 줬지만 술을 마시지 않은 평소의 날에는</div> <div>사소한 실수만으로도 뺨을 맞거나 발로 채이기 일쑤였다.</div> <div> </div> <div>나는 술을 마시면 온화해지는 아버지가 좋았다. 평소에는 잘 웃지도 않고 말도 안하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지고 잘 웃었다.</div> <div> </div> <div>잠깐 서두에 집 이야기를 했던가. 남가좌동 중에서도 가장 가난할 것만 같은 그 집에 살면서 또 그렇게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나는 나들이를</div> <div>기대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술이라도 먹여 어떻게 나들이를 가볼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우스운 생각도 하지만 남들이 자연농원이니 롯데월드니</div> <div>그런데를 갖다왔다고 하면 또 선생님이 '우리 학생들 놀러갔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보세요' 하면 나는 가본적도 없는 놀이공원 이야기를</div> <div>지어내야만 했다. 선생님은 내가 놀이공원 이야기를 지어내서였는지 아니면 엄마가 선생님한테 육성회 선물을 안줘서 그랬는지 내 그림을 볼때마다</div> <div>너는 그림이 어떻고 생긴게 어떻고 하면서 손바닥이나 뺨을 때렸고 집에가서 그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는 또 술을 마시고 웃었다.</div> <div> </div> <div>여름엔 너무 더워 선풍기가 뜨거운 바람을 내뿜고 겨울에는 항상 장판 밑이 까매질 정도로 연탄을 태워도 춥던 그 집에서 아버지는 어느날부터인가</div> <div>한달에 한번 우리를 김포의 한 창고로 부르곤 했다. 토요일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오면 어떤날은 엄마가 평소보다 좋은 옷을 입고 갈아입을 옷을</div> <div>챙겼는데 세살터울의 동생은 사탕먹으며 엄마가 땋아주는 머리를 기다리고 그럼 난 말하지 않아도 책가방을 방에 던져놓고 새옷으로 갈아입었다.</div> <div>그날은 김포 가는날이였다.</div> <div> </div> <div>몇번 버스인지 기억도 안나는 버스를타고, 신촌에서 내리면 신촌에서 또 등촌동 가는 버스를 탔는데 가는길에 항상 인공폭포를 지났고</div> <div>두어정거장쯤 더 가다가 내려 김포 검단 방향으로 들어가는 읍내에서 내리면 그 어느때보다 해맑은 아버지가 마이티 트럭을 몰고 우리앞에 오곤했다.</div> <div>우리는 아버지의 차인줄만 알았던 그 차에 낑겨타고 조금 더 가다가 정육점에서 내려 고기를 아주 많이 사고, 술과 음료수를 아주 많이 샀다.</div> <div> </div> <div>비포장도로를 조금 달리다보면 장사를 하는지 안하는지도 모를 슈퍼에 들러 소고기라면 네개를 사고서야 마침내 창고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div> <div>소똥냄새가 항상 나는 그 창고 앞쪽으로는 도로를 제외한 모든것들이 논밭뿐이였다. 산이라고는 저 멀리 조금 보이는게 전부고 사람목소리는 커녕</div> <div>동물소리만 간혹 들리는 아주 조용한 그곳이 바로 우리가 김포창고라고 부르는 곳이였다. 아버지가 우리를 그곳에 부르는 날은 아버지가 창고숙직을</div> <div>하는 날이였다.</div> <div> </div> <div>창고라고는 하지만 그곳에서 꽤 많은 일을 한다고 말이라도 하는 듯 창고옆에는 우리집에 세배쯤 큰 가정집이 하나 있었다.</div> <div>아버지는, 평소에는 직원아저씨들이 일하는 곳이지만 오늘은 우리집이라고 마음껏 놀아도 좋다고 했다. 나는 창고 구석에서 거의 썩어가는</div> <div>잠자리채를 들고 나와 집에서 챙겨온 잠자리통을 함께 가지고 주택 뒷편 풀이 무성한 잡초밭으로 향했다. 거기엔 잠자리도 거미도 또 방아깨비와</div> <div>메뚜기가 아주 많았다. 동생이 몇번인가 버스를 갈아타고 오느라 피곤에 지쳐 자고있는 사이에 나는 종횡무진 잡초밭을 돌아다니며 곤충을 잡았고</div> <div>해가 뉘엿뉘엿 지며 밥냄새가 올라올 때쯤이 되어서야 토요일날 하는 '위제트'를 보려고 집으로 기어들어가곤 했다.</div> <div> </div> <div>집에서는 아버지가 위제트를 보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야구를 봐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김포창고에 간날은 내가 위제트를 볼 수 있었다.</div> <div>나는 위제트를 보며 말벌박제된 모형도 만지며 놀고 유난히 해맑은 아버지에게 장기도 배우고 팔씨름도 했다. 그러다보면 엄마가 저녁준비</div> <div>다 됐다며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불판을 올려놨다. 밤새도록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아버지는 나와 동생에게 노래도 시키고 옛날이야기도 많이</div> <div>들려주고 엄마와 술도 많이 마셨다.</div> <div> </div> <div>김포창고에서 돌아오는 길은 항상 일요일 이른 오후였다. 유난히 피곤한 아버지가 우리를 트럭으로 집앞까지 내려다주고 다시 김포로 향하는것은</div> <div>지금생각해보면 굉장히 힘든일이였지만 버스를 다시 타고 그 먼 거리를 되돌아가는 것이 어머니에게 굉장히 힘든일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div> <div>아버지 당신은 그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을테다.</div> <div> </div> <div>지긋지긋한 기억에도 추억이 새겨져 있다면...</div> <div>아마 그런 부분들이 추억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 아닐까 한다.</div> <div>남들이 가지고 있는 놀이공원이나 또 어떤 맛난 음식들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는 반면 그들에게도 말하지 못할 어두운 시절이 있었듯,</div> <div>또 나에게도 남들이 가진 모든것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남들은 경험할 수 없는 좋은 기억들이 있듯이</div> <div>작고 큰것의 차이일 뿐이다. 나 역시. 그래.</div> <div> </div> <div> </div> <div>나에게도 작지만 추억이라는게 있었구나.</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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