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일교차가 커 낮에는 아침에 챙겨입고갔던 잠바를 벗어야만 했던 오후였다.</div> <div>밥하기도 귀찮고, 냉장고에는 콩나물이 곤죽이 되어가는데도 반찬조차 만들기 귀찮았다.</div> <div>나는 그래서 바람이 되었고.</div> <div> </div> <div> </div> <div>아니!아니!</div> <div> </div> <div> </div> <div>편의점이란 참 좋다. 싼 값에 엄청난 칼로리를 섭취할 수도 있거니와 몇몇 품목은 마트보다 싸다.</div> <div>그리고 제일 좋은점은 우리집 반경 20미터 안에 편의점이 두 개나 있다는 것이다.</div> <div>기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다 하지 않는 기업들의 제품을 불매하는 건 둘 째치더라도 내 배때지 안의</div> <div>위장이 그것을 원하는 한 언제까지고 경남 사천군에 사는 김모 할아버지가 키운 돼지와 전남 곡성에 사는</div> <div>박 모 할머니가 키운 콩나물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div> <div> </div> <div> </div> <div>나는 편의점 도시락을 집어들고, 사발면도 하나 집어들었다.</div> <div>낮시간에 마주치는 여자 알바생은 말이 참 없다. 처음에는 내 마스크가 현상수배범의 그것과 비슷해서</div> <div>대화 자체를 회피하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술취한 외국인이 시가렛을 외치며 돈을 집어던져도 변하지 않는</div> <div>표정에서 '아 사람의 속성이 원래 저렇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div> <div> </div> <div> </div> <div>야간에 나오는 편의점 사장에 말에 따르면 매우 무미건조하게 '그새끼 신고했어요' 라고 했단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뜬금없이 조용필의 모나리자가 머릿속에서 재생되는데...</div> <div>모아이 석상마냥 말이 없는 그녀는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그래도 조금 많이 본 사이라고 그녀가 '봉투 이십원요' 라는 말을</div> <div>짧게 건넸고, 나 역시 '저번에 열봉지 쓴다고 이백원 줬잖아요' 라고 응수하자 무언가 생각난 듯 '네에...' 라며 봉투값은</div> <div>따로 받지 않았다.</div> <div> </div> <div> </div> <div>그 시점에서의 시각 오후 두시 이십분.</div> <div> </div> <div> </div> <div>다시한번 말하지만 우리회사는 워라벨이 굉장히 좋다.</div> <div> </div> <div> </div> <div>집에 가봐야 총각냄새나 날거고, 남는 시간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원룸촌 사이로 한줄기 햇살과 하얀 구름을 보는 것도</div> <div>썩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편의점 앞 한켠에 앉아 메가톤바를 꺼내 한 입 베어물었다. 비루한 인생이라지만,</div> <div>입속에 퍼지는 메가톤바의 향은 지난날 살아온 내 후회를 잠깐이나마 씻어내 주었다.</div> <div> </div> <div>근데 그러면 뭐한담? 후회의 결과물은 씻겨지지 않는데?</div> <div> </div> <div> </div> <div>으레 그렇듯 공장지대가 밀집한 곳에 위치한 원룸촌은 낮시간이 아주 조용하다.</div> <div>지나가던 고양이하고 눈싸움도 한번 하고, '이리온' 했지만 '봉투안에 든거 줄거 아니면 꺼지쇼'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길래</div> <div>나도 작별을 고하고. 왠지 모르지만 저번에 비오는 날 날 공격했던 포메라니안이 주인과 함께</div> <div>가다가 또 덤벼들길래 결사항전을 준비했는데, 주인이 데려가버리고...</div> <div> </div> <div>반성과 후회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는 돼지같이 두번째 아이스크림을 꺼내들려고 하는데, 그와 눈이 마주쳐버리고 말았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날 심연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그 여고생.</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우린 서로 <니가 왜 여기있냐> 라는 눈빛으로 쳐다봤고, 실제로 여고생은 우뚝 멈춰선 채 경멸에 찬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div> <div>나 역시 별로 좋은 감정은 아니였기에 <아이스크림 먹는 아저씨새끼 처음보냐> 라는 눈빛으로 응수했다. 친척형 딸이 너만하다 이</div> <div>누군가의 조카새끼야.</div> <div> </div> <div>그런 어색한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렉스턴 한대가 나와 여고생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갔고, 찰나의 순간 다시 눈에 들어온 그 여고생은</div> <div>여전히 경멸에 찬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이 대낮에 편의점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 쳐먹는 백수새끼야!> 누가봐도 그런 표정으로.</div> <div> </div> <div>그리고 난 여기서 돌이킬 수 없는 또 다른 실수를 하게 되고 만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회사가 일찍 끝났는데요..."</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니 근무시간을 왜 이야기합니까..?</div> <div> </div> <div> </div> <div>도저히 사태수습이 안될 것 같다. 순간돌풍이 여고생의 이마를 깐다. 쟤는 이마가 태평양이구나. 나도 저런 주름없는</div> <div>이마를 가진 때가 있었지. 경멸에 찬 표정이 순식간에 어색한 표정으로, 어색한 표정이 또 연민에 찬 표정으로 바뀔 때 나는 또 한번,</div> <div> </div> <div> </div> <div>"...아이스크림은 이게 마지막인데요..."</div> <div> </div> <div> </div> <div>...어쩌라고..?</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나는 나도 모르게 '느집엔 이런거 없지' 라는 말투로 두 번째 아이스크림 보석바를 베어물었고, 여고생은 <그 때 내가 잘못 본게 아니였구나></div> <div>라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제 갈길을 갔다. 나 진짜 왜그랬지?!</div> <div> </div> <div>멀어져가는 그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말이라도 안하면 정신나간놈이라는 오명은 벗을 수 있었을거란 후회에 빠졌지만</div> <div>떠나간 기차는 다음차가 없고, 나는 이 동네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영원한 미1친놈으로 찍힐 수 있을 것이란 두려움에 휩싸였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Malo의 '1994 섬진강'이 너무나 듣고싶은 하루였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