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우리는 문화의 세뇌속에서 살아왔기에 모든가치를 과학이나 명예로운 사람들(성인,학자,스승 등)의 의견이 절대적이라고 믿지만 전체를 고르게 살펴보면 그렇지가 않다는걸 알수있다.<br /><br /><br />1+1=? 라는 수학의 등식에서 답은 2가 되지만 수학이 뭔지도 모르는 부족들한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것처럼 수학이라는 "틀" 내에서나 답을 지니는 것이지 "틀=약속된 체계"을 벗어나면 답이라는건 의미가 없어진다. 답이 되려면 "그것=수학에서의 약속" 을 지켜야하지만 약속하지 "않은사람=부족민족"에게 약속을 강요할수 없기 때문이다.<br /><br /><br />특히나 인간의 감정이 들어가는 글귀들 ex>공자,부처,예수 등 어떠한 성인의 말이되건 모두에게 정답이 되는 답이라는건 있을수가 없다. 모두에게 답이 되려면 모두가 "약속"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br /></div> <div><font size="2" face="맑은 고딕">→댓글을 통해 최월드님께서 워낙 반박을 잘해주셔서 새로운 반박을 할 여지가 없습니다. 반박해보았자 최월드님의 말씀을 되풀이 하는 꼴이 될 거 같아 부끄럽습니다만 적겠습니다.</font></div> <div><font size="2" face="맑은 고딕">1+1이 2라는 것은 약속한 것이 아니라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증명되기 이전에 우리는 이미 숫자라는 개념을 얻었고, 개념을 통해 입증해왔다. 마치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것처럼 적었으나 실제로는 학자들 사이에서 꽤 많은 반박들이 오가고 그들의 사상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논증적 사유가 들어간 글은 논리적 증명 과정을 통하고 검토해서 들어간 것이지 어불성설이거나 약속만 믿고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이 말은 엄청난 비판을 샀다. 이 말이 현재까지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아서였지. 데카르트는 이 말을 적고나서 수많은 반박과 싸워야만 했다. 이처럼 학자들 사이에서 무엇하나를 주장하면 많은 반박을 싸워서 입증해낸다.</font></div> <div><font size="2" face="맑은 고딕">작성자는 부처,예수,공자가 처음부터 네임벨류로 명성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삶에 대한 고찰과 심오한 사고를 통해 얻어낸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해서이다. 물론 이 말이 진리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난 뒤 받아들이지. 처음부터 약속한 적은 없다.</font></div> <div> </div> <div> </div> <div><br /><br />철수라는 인물을 두명이서 동시에 보더라도 둘의 생각이 비슷할수는 있지만 동일할수 없다. 그리고 생각이 완전히 상반된 경우일수도 있다.<br /><br />이렇듯 객관이라는건 없다. 객관이 있다는 사람들 전부는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이라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이며 이들은 우월감의 노예들이다.</div> <div> </div> <div> </div> <div><font size="2" face="맑은 고딕">→철수라는 인물을 두 명이 동시에 보더라도 동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답은 있다. 헛된 소문이나 단순한 인상으로 철수를 오인으로 인해 철수를 규정한다면 그것은 분명 오답이다. 하나의 답이 꼭 정답일수는 없다. 하지만 객관의 틀이 어느 정도 존재할 가능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font><br /></div> <div> </div> <div> </div> <div><br />지구인들은 공감대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는 의견에 흥분을 하며 공격하는 이유는 우월감의 노예라서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남이 주장한다면 자기의 우월감이 상처받기 때문에 참을수가 없는것이다. <br /><br />이처럼 모르는것은 우월감을 헤치기에 절대적으로 아는척 해야하고 자기의견이 틀렸다는걸 알더라도 끝까지 인정할수없는 우월감의 노예들이다. <br />객관이란게 없다라고만 인정하더라도 세상을 향한 시선이 달라질것이다. 그리고 남들의 눈치를 벗어날수있기에 자유로울수 있다. </div> <div> </div> <div><font size="2" face="맑은 고딕">→노답.</font></div>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조직된 시민의 깨어있는 힘입니다.
우리가 아픈 이유는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있소.
일단 당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느끼는 것과 느끼지 못한는 것, 행동하는 것과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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