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그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에 가까운 아주 어두운 밤이였다.</div> <div>아름다운 모양의 초승달의 빛이 그 온통 검은 밤마저도 환하게 빛내어,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다.</div> <div>그 망할 달빛이 모든 불운의 시발점이었다. 그 아름다운 달빛이 나를 그 위험한 새벽에 아무 생각 없이 걷도록 만들었다.</div> <div><br></div> <div>쌀쌀한 가을에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을 달빛과 가로등 빛에만 의지해서 목적지 없이 하염없이 걸으며 느끼는 시원한 바람이란 그야말로 최고다.</div> <div>이걸 경험해본 사람들은 아마 이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그 새벽에 낯선 길을 걸어다녔던 이유를 조금은 이해해줄 것 같다.</div> <div><br></div> <div>난 그렇게 마냥 걷다가 낡은 푯말을 발견했다. 고개를 살짝 들어 확인해보니 그건 이정표였다.</div> <div>그걸 보고서야 나는 내가 지금까지 왔던 길이 동네 뒷산 등산로라는걸 알게 됐다.</div> <div>아무리 밤길을 걷는걸 좋아하는 나라도 산길을 걷는건 좀 꺼려졌다. 그래서 숨을 고르고 내려가는 찰나에,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난 풀숲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div> <div>많이 올라온게 아니었으니 위험한 동물 따위는 아닐거라 생각하고 그저 운동기구에서 조용히 운동하는 아저씨 등산객이겠지 하고 그쪽을 무심코 쳐다보았다.</div> <div><br></div> <div>뭔가가 이상했다. 나는 슬쩍 그쪽을 쳐다본후, 곧바로 몸을 돌려 근처 벽 뒤로 숨었다. 그리고 숨죽이고 곁눈질로 그쪽을 바라보았다.</div> <div>작은 소리가 들렸다.</div> <div><br></div> <div><br></div> <div>"이 정도면 충분히 판 것 같은데 슬슬 묻읍시다."</div> <div><br></div> <div>"넌 거기 다리 쪽 들어라. 하나 둘 셋, 읏차!"</div> <div><br></div> <div><br></div> <div>쳐다봤을때 꽤나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명확히 들렸다. 분명 그들은 뭔가를 하고 있었다.</div> <div>부정하기엔 삽으로 흙을 퍼는 소리와 '다리를 들어라' 라는 말이 너무나 똑똑히 들렸다. 이 근방에서 활동하는 조폭들이 사람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div> <div>그렇지만 난 호기심이 강했다. 당장이라도 도망쳐야 했지만 난 그 상황에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뒷받침해주거나 그 반대로 만들어줄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div> <div><br></div> <div>난 그쪽을 쳐다본후, 일말의 희망마저도 사라졌다. 조폭 두 명이서 사람을 들고 있었다.</div> <div>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이 먼 거리에서도 보일만큼 그 사람은 손가락을 꼼지락대고 있었다.</div> <div>대체 왜 그 사람은 반항하지 않는 것인지,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인지 또 의문점이 들었지만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도망쳐야 했다.</div> <div>난 곧장 올라왔던 길로 다시 전력질주했다. 죽기 살기로 뛰었다. 그래, 그것이 최대의 실수였다.</div> <div><br></div> <div>그쪽에서 나는 목소리가 이쪽까지 들렸었다. 그러므로 이쪽에서 나는 소리도 그쪽까지 들린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난 잠시 망각했던 것이다.</div> <div>최대한 발소리를 작게 해서 그쪽과 최대한 멀어질때까지 걸어간 다음 뛰었어야 했는데, 그건 정말 멍청한 실수였다.</div> <div>내 운동화가 빗물 흐르는 길바닥과 부딪혀서 내는 요란한 소리를 듣고 조폭들은 그 즉시 달려왔다.</div> <div>이게 내 정신을 잃기 전까지의 마지막 기억이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 당시 조폭들이 날 잡아서 마구 구타했지만 기적적으로 나는 살았다. 나는 지금 링거를 꽂고 병원 입원실 침대에 누워있다.</div> <div>폭행을 당하고 난 뒤 조폭들이 완전히 곤죽이 되어버린 나를 등산로 주변 풀숲에 대충 팽개쳐놓고 갔고, 그 다음날 아침 등산객이 나를 발견하여 119에 신고해서 이 병원에 실려왔다는게 의사의 설명이었다.</div> <div>아마 조폭들은 내가 죽은줄 알고 내팽겨쳐놓고 갔을 것이다. 나는 조폭들이 내가 살아있는걸 알면 또 다시 나를 죽일거라고 생각해서 병원에서 퇴원한후 바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결심했다.</div> <div><br></div> <div>혹시 조폭들이 병원까지 찾아와서 해코지하지 않을까라는 망상도 했지만, 내가 수술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날 찾아온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div> <div>마취가 풀린 뒤 깨어나보니, 눈을 감고 있어도 아직 수술 중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수술 중에 마취가 풀려도 괜찮은건가? 말을 해야하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div> <div>어렴풋이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div> <div><br></div> <div><br></div> <div>"김선생, 메스 좀. 어, 고마워. 여긴 어떻게 할까?"</div> <div><br></div> <div>"이 부분을 깔끔하게 절개해야 돼. 제일 중요해."</div> <div><br></div> <div>"음, 그렇지. 생채기라도 나면 곤란하니까 말이지."</div> <div><br></div> <div>"잠깐만 잠깐만, 이거 빨리 이식해야돼. 빨리."</div> <div><br></div> <div><br></div> <div>내가 아무래도 조폭들한테 맞으면서 많이 다친 것 같았다. 장기를 이식받아야 할 정도라니. 그나저나 아프다. 말을 해야 하는데...</div> <div><br></div> <div><br></div> <div>"저기, 이 사람 마취가 풀렸습니다."</div> <div><br></div> <div>"어? 진짜? 진짜네. 다시 마취시켜."</div> <div><br></div> <div>"별 말 안했죠?"</div> <div><br></div> <div>"으.. 음... 뭐..."</div> <div><br></div> <div><br></div> <div>다행이다. 이렇게 마취 풀린 상태로 계속 있으면 아파서 쇼크로 죽을 것만 같았다.</div> <div>의사들이 빨리 알아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이 사람 건강하지 않은 장기가 많아."</div> <div><br></div> <div>"하아... 도움이 안되는군.."</div> <div><br></div> <div><br></div> <div>나는 다시 마취로 인해 잠들었다.</div> <div>마취에서 다시 깨어났을땐 나는 들것에 실려서 급하게 옮겨지고 있었다.</div> <div>많이 추웠다. 내가 지금 병원 안에 있는건지도, 밖에 있는건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div> <div>담요같은 것을 덮어달라고 하고 싶어도 말할 기력조차 없어서 하지 못했다.</div> <div><br></div> <div>그 직후 나는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div> <div>그러자 몇 시간째 안 떠졌던 눈이, 떠졌다. 난 주위의 광경을 보고 그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div> <div>눈은 떠졌지만 아직도 말할 기력이 없고, 마취 탓인지 몸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저 시각과 청각만 온전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이 정도면 충분히 판 것 같은데 슬슬 묻읍시다."</div> <div><br></div> <div>"넌 거기 다리 쪽 들어라. 하나 둘 셋, 읏차!"</div> <div><br></div> <div><br></div> <div>그 순간 내 눈에 반대편에서 이쪽을 엿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명확하게 보였다.</div> <div>그렇지만,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소리를 지를 수조차 없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살고 싶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여 구해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div> <div>나는 계속 그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렇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div> <div><br></div> <div>얼마 안 지나 내 눈에 흙먼지가 잔뜩 들어갔기 때문이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에 가까운 아주 어두운 밤이였다.</div> <div>아름다운 모양의 초승달의 빛이 그 온통 검은 밤마저도 환하게 빛내어,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다.</div> <div>그 망할 달빛이 모든 불운의 시발점이었다. 그 아름다운 달빛이 나를 그 위험한 새벽에 아무 생각 없이 걷도록 만들었다.....</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사실 주인공은 저랑 상당히 비슷합니다. 저도 늦은 밤에 돌아다니는걸 좋아해요. 물론 위험하니까 실제로 돌아다니진 않습니다.)</div> <div>[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div> <div>[꿈과 공포가 넘치는 공포게시판으로 오세요.]</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