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상 편한 말투로 글을 쓰는 걸 용서해 주세요 ㅠㅠ.. 높임투로 쓰니 글이 써지질 않더라구요. 죄송합니다.
여행을 가게된 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10년도 더 전부터 유럽이라는 곳에 막연히 가고 싶어 해왔을 뿐이고,
그 막연한 소망이 어느 순간부터 굉장히 강한 열망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언제쯤 여행을 가야하나 계속 간만 보고 있던 와중에 마침 아르바이트 제의가 들어왔고,
그 돈이면 여행 경비를 충당할 수 있을 거란(굉장히 순진해 빠진) 생각으로 제의를 수락하고
휴학을 하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돈은 생각보다 더디게 모였고, 나가는 곳은 많았으며, 중간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어찌어찌해서 계획했던대로 생일날 비행기 티켓을 나 자신에게 선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날 받은 유일한 선물이었다고 합니다...ㄸㄹㄹ)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창하게 유럽 여행이라고 썼지만 사실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였고,
저번 일본 여행에서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은 걸 후회하며 이번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만 여유롭게 즐겨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행기 티켓을 가장 싼 가격으로 찾다보니, 1월 22일 IN - 2월 24일 OUT으로, 대략 33일의 날짜가 주어지게 되었다.
주어진 시간에 맞춰 이리저리 루트를 짜보기 시작했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리스본'이었다.
오늘의 네이버캐스트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보게 된 이 한 장의 사진,
이 사진을 보자마자 생각이 들었다. '리스본에 가야돼!'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리스본.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리스본을 수도로 둔 포르투갈은 서로 멀지 않은 동네다.
다만 이 두 나라에서 리스본을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지나가게 되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스페인.
사실 스페인은 딱히 관심이 많았던 동네는 아니었다. 언젠가 바르셀로나를 한 번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정도.
그런데 포르투갈을 넣은 채로 루트를 짜다보니 필연적으로 '스페인을 넣어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스페인에 관해 이리저리 찾다보니 생각보다 너무 매력적인 동네였던 것이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는 물론이고, 삶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세비야,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
그리고 색다른 문화와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빌바오까지, 가고 싶은 동네가 너무 많았다.
30일 일정에 스페인을 넣으려면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한 도시에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 짧아지게 되었다.
시간에 쫓기는 나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면서, 결국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통째로 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만 한 달을 쓰는 것으로.
그러나 리스본은 잊을 만하면 떠올라서 사람을 괴롭게 만들었고,
결국 로마로 떠나기 열흘 전, 밀라노-리스본 왕복 티켓을 끊고야 말았다. ㅎㅎ.
결국 잠정적으로 정한 루트는 이렇게 되었다.
로마-피렌체-베네치아-(밀라노)-리스본-제노아-마르세유-리옹-파리
이렇게 개략적인 루트만 짜고, in도시인 로마의 숙소를 예약했다.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계획하거나 준비하지 않았다.
기차표나, 숙소나, 세부 일정이나, 아무 것도.
그렇게 계획 없는 여행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기도 했고,
겨울철이라 숙소가 많을 거라는 예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선택이었다.
준비한 것이 없으니 쫓길 것도 없었으니까.
21인치짜리 자그마한 트렁크 하나와, 학교 다니면서 쓰던 평범한 배낭 하나에 짐을 꾸역꾸역 넣고 난 후,
짐을 모두 본가로 보내 휑한 자취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짐을 택배로 보내야 했는데 하필 설연휴라 택배 방문 접수가 안 된다는 바람에 그 전날까지 짐을 싸고 나르는 개고생을 해야해서,
몸살이라도 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22일 아침이 되었다.
여행의 설렘과 긴장으로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채로, 서울역 공항철도로 가서 입국 수속을 하고 공항으로 바로 가는 직통 열차를 탔다.
옆에 있던 양키 형님이 개찰구 앞에 있던 역무원 누님을 보며 "so beautiful"을 연발했다.
나는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분은 정말 예쁘시긴 예쁘셨다.
공항에서 마일리지를 적립한 후, 무려 6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보험도 가입한 후,
2014 JAN 22라고 선명하게 적힌 도장이 여권에 찍혔다.
도장으로 빼곡한 여권을 갖고 싶어 했던지라, 괜히 기분이 좋았다.
사지도 못할 면세점들을 몇 시간이나 돌아다닌 끝에, 드디어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1시 30분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0927 편이었다.
제주 갈 때 탔던 제주항공이나, 오사카 갈 때 탔던 피치항공 같은 저가항공과 본질적으로 다른,
국적기의 위엄을 내뿜는 '무려 세줄짜리' 비행기였다.
거기다 좌석 앞에는 TV까지 있었다!! 그래봤자 이코노미기는 했지만.
좌석벨트 표시등이 켜지고,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서성이던 비행기가 멈추고, 좌석벨트 표시등이 깜빡였다. 활주로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몸이 뒤로 쏠렸고,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드디어 이륙한 것이다.
집밥보다 맛있는 기내식 밥을 먹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