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자는 태평하게 무릎을 베고 누운 카레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br>그녀는 대충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자기와 비슷한 대상에게 잘 대해 준다는 것은 아무런 미덕도 아니다.<br>테레자는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거기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br>그리고 심지어 토마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랑받는 여인으로 처신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토마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br>(.......) 인간의 참된 선의는 아무런 힘도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순수하고 자유롭게 베풀어질 수 있다.<br>인류의 진정한 도덕적 실험, 가장 근본적 실험, (너무 심오한 타원에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그것은 우리에게 운명을 통째로 내맡긴 대상과의 관계에 있다. 동물들이다.<br>바로 이 부분에서 인간의 근본적 실패가 발생하며, 이 실패는 너무도 근본적이라 다른 모든 실패도 이로부터 비롯된다.<br>-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br><br><br><br><br>'먹고 살기도 힘든데 동물을 왜 챙겨?'라는 물음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br>만약 지금보다 더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온다면 그 물음은 인간을 향하게 될 겁니다.<br>'먹고 살기도 힘든데 저런 인간을 왜 챙겨?'라고 말이죠.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br>저런 인간에는 장애인이 들어갔고, 동성애자가 들어갔고, 사회주의자나 반사회주의자가 들어갔고,<br>종교인이 들어갔고, 유태인과 폴란드인과 집시가 들어갔고, 심지어는 조선인조차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br>쓸모있음의 잣대는 동물을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동물 뒤에 숨어있는 인간들을 겨냥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br>먹고 살기도 힘든데 동물을 챙기는 것은, 우리의 세상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존중받고 있다는 의미입니다.<br>존재가 얼마나 쓸모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존재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존중받는다는 뜻이죠.<br>아무리 어려운 세상이 오더라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의지인 셈입니다.<br>아무리 먹고 살기 어려워도 동물을 챙겨야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br>